검색

가정간편식 플라스틱 용기의 비밀

그렇구나! 생생과학

쌀·채소·​고기 골고루 익히려 층층 계단식 설계

용기·​필름은 다양한 재질로 겹겹


가스레인지를 한번도 켜지 않고 그럴 듯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세상이다. 어느새 없으면 불편한 제품이 돼버린 ‘가정간편식(HMR)’ 덕분이다. 전자레인지에 데우거나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포장된 가정간편식은 유통업계에서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 받는다. 업계는 올해 가정간편식 시장 규모가 5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식품 보관과 운반이 간편하고, 열을 가해도 변형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가정간편식 제조에는 부득이하게 플라스틱 용기가 사용된다. 그런데 이 플라스틱 용기를 유심히 살펴보면 제품마다 생김새가 제각각이다. 음식을 먹고 난 뒤 무심코 버리게 되지만, 간편식 플라스틱 용기는 사실 수많은 실험 끝에 탄생한 아이디어의 집약체다. 가정간편식의 플라스틱 용기는 다양하게 디자인돼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플라스틱 바닥에 숨은 비밀

가정간편식 용기를 뒤집어보면 밑바닥 전체가 고르게 평평한 제품은 거의 없다. 보통 가운데 부분이 안쪽으로 옴폭 들어가 있다. 들어간 정도가 부분부분 차이 나는 제품도 있다. 용기 바닥을 굳이 이렇게 만든 이유는 식품 성분마다 열이 전달되는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간편식 제품은 대부분 전자레인지에 익혀 먹는 방식이다. 전자파(극초단파)를 받을 때 플라스틱 용기 속 내용물이 골고루 잘 익기 위해서는 바닥에서 약간 떠 있는 게 좋다. 그래야 전자레인지 내부에서 사방으로 나와 퍼지는 전자파가 내용물 아래로도 고루 침투하기 때문이다. 간편식 용기 밑부분이 전자레인지 바닥에 닿지 않도록 움푹 들어가게 디자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품 속 3대 영양성분은 전자레인지 안에서 지방, 탄수화물, 단백질 순서로 익는다. 수분은 이들 성분보다 더 먼저 데워진다. 가정간편식 용기의 바닥 높이는 바로 이 순서를 감안해서 고안된다. 이를테면 시중에 나와 있는 한 소고기 비빔밥 간편식 제품은 용기 바닥을 계단식으로 디자인해 바닥부터 뚜껑까지의 높이가 세 단계로 구성돼 있다. 바닥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소고기가 올라가 있다. 단백질이 많은 육류는 데워지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같은 가열 시간 동안 전자파를 더 골고루 받게 하려는 목적이다. 함박스테이크 등 육류와 채소가 섞인 간편식에서 고기가 항상 채소와 섞이지 않고 일정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도 용기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


반대로 밥은 대개 용기의 가장 낮은 곳에 넣는다. 쌀은 육류보다 수분 함량이 상대적으로 많아 같은 시간 동안 더 빨리 데워지기 때문이다. 만약 높이를 조정하지 않은 용기에 담으면 전자레인지에 데웠을 때 밥은 뜨겁고 소고기는 차가운 상태가 된다. 균일하게 가열되지 않은 음식은 본연의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가정간편식을 개발하는 식품업체는 용기의 바닥 높이를 음식 성분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설계한 다음 전자레인지에 넣고 실제로 데워보며 열화상 카메라로 용기 내 위치에 따라 음식이 익는 정도나 속도를 측정해 최적의 바닥 구조를 결정한다.


간편식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음식 속 수분이 가열되면서 증기가 발생한다. 이를 그대로 잡아두면 용기가 급격히 팽창할 뿐 아니라 가열 후 개봉하는 과정에서 열이 한꺼번에 빠져 나와 자칫 손을 델 수 있다. 전자레인지용 가정간편식 용기에는 그래서 증기 배출구가 있다. 용기에 구멍을 뚫으면 산소가 침투해 음식이 상하기 때문에 뚜껑 역할을 하는 얇은 필름을 플라스틱 용기에 부착(실링)할 때 특정 위치의 실링 강도를 살짝 줄인다. 내부에 증기가 차오르면 그 압력으로 약한 실링 부분이 벌어지면서 증기가 살짝 빠져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증기 배출구는 필름이나 용기에 별도로 표시돼 있지 않으면 맨눈으로는 구별하기가 어렵다.

한국일보

가정간편식이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우면서 화상 카메라로 음식이 익는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수원=서재훈 기자

한국일보

박광수 CJ제일제당 포장개발팀장이 가정간편식용 플라스틱 용기 바닥의 높낮이가 다양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수원=서재훈 기자

한국일보

시중에 판매되는 함박스테이크 가정간편식 제품. 바닥 높이가 가장 높은 부분에 고기가 놓이고, 쌀과 채소는 낮은 부분에 놓여 있다. 수원=서재훈 기자

용기도 필름도 겹겹이

가정간편식의 플라스틱 용기 두께는 1㎜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1~3겹으로 이뤄져 있다. 냉동보다 냉장, 냉장보다 상온 보관 제품이 여러 가지 특성을 가진 재질을 더 겹겹이 붙여 용기를 만든다. 특히 상온 보관 간편식 용기는 출시 전 고온고압으로 살균을 하기 때문에 잘 찌그러지지 않도록 내열성이 강한 재질을 사용한다. 산소를 차단하는 재질은 상온은 물론 냉장 간편식 용기에도 필수다. 박광수 CJ제일제당 포장개발팀장은 “우리가 개발한 냉장 간편식 용기는 산소 투과도 테스트 장비에 넣고 하루 종일 산소를 강하게 불어넣어도 투과량이 0.001㎖(cc)에 불과하다”며 “이보다 산소 투과량이 더 적은 건 유리나 금속뿐”이라고 설명했다.


플라스틱 용기를 덮는 얇은 필름 역시 여러 겹이다. 냉동 간편식은 대개 2겹, 상온 제품은 4겹 정도 된다. 음식의 신선도 유지뿐 아니라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최근에는 필름 사이사이에 산소흡수제 성분을 추가하기도 한다. 이들 필름은 대부분 열가소성 플라스틱이다. 열이나 화학약품으로 녹여 다시 쓸 수 있다. 가정간편식 용기의 필름은 음식물이 묻은 부분을 잘 씻어내고 일반 비닐과 함께 분리수거 하면 재활용할 수 있다.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정색 비닐봉투는 바로 이런 폐필름을 모아 만들기도 한다.


간편식 용기 전체의 크기와 모양은 내용물 형태를 고려해 결정한다. 단 내부에 어느 정도 여유 공간을 남길지는 제조사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가정간편식 용기도 내용물을 담고 남은 공간이 전체의 15%가 넘으면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과대 포장이 된다. 용기 색깔 역시 음식 특성에 따라 결정한다. 햇빛을 받으면 음식이 변질되기 때문에 투명한 용기보다는 빛을 차단할 수 있는 유색 용기가 주로 쓰인다. 특히 상온 보관 간편식 제품은 대형마트 등의 진열대에 놓여 오랫동안 형광등 불빛을 받기 때문에 빛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용기에 색깔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 또 고추장이나 소스 등 색이 진한 음식을 담는 용기는 되도록 흰색을 피한다.

한국일보

CJ제일제당의 한 연구원이 가정간편식 뚜껑용 필름을 길게 잘라 기계로 잡아당기며 강도를 확인하고 있다. 수원=서재훈 기자

한국일보

연구원이 작게 자른 가정간편식 뚜껑용 필름을 핀셋으로 집어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수원=서재훈 기자

부패 일으키는 산소는 최소화해야

용기 내부의 기체 조성도 맛과 품질 유지에 중요하다. 식품업계에서 쓰는 기능성 포장 기술은 기체 조성에 따라 공기조절포장(MAP)과 공기제어포장(CAP)의 두 가지로 나뉜다. 공기조절포장은 내부 기체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생선을 구운 채 넣어 판매하는 최신 가정간편식 포장이 바로 MAP 방식이다. 용기에 익힌 생선을 담고 질소를 가득 채워 필름을 덮으면 음식을 부패시키는 원인인 산소의 양이 최소화된 채로 보관ㆍ유통된다.


CAP는 주로 과일이나 채소 같은 농산물을 장기 보관할 때 활용하는 포장 기술이다. 수확 후 저장해놓은 과일이나 채소는 계속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뱉으며 ‘호흡’을 한다. 오래 된 사과가 점점 푸석해지는 이유가 호흡 작용 때문이다. 이럴 때 CAP 기술로 사과 저장 용기에 이산화탄소를 일정 비율 넣어주면 호흡이 적당히 줄어들어 특유의 아삭한 식감이 비교적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진화한 가정간편식’으로 불리는 ‘밀키트(손질된 재료와 양념을 소량 포장해 간편히 조리할 수 있게 만든 제품)’의 포장에는 농산물의 호흡 작용을 감안한 디자인이 적용돼 있다. 밀키트에 들어 있는 손질 채소는 대개 얇은 비닐에 담겨 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이런 비닐 표면에는 대개 레이저로 미세한 금을 그어 놓는다. 채소가 적당히 호흡하며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공기 중에 그대로 노출하거나 완전히 밀봉해도 채소는 금세 물러진다.


육류와 생선, 국과 찌개까지 완전 조리 또는 절반 조리 형태로 판매할 수 있게 된 데는 식품의 저장ㆍ가공 기술뿐 아니라 포장 기술도 큰 몫을 했다. 박 팀장은 “지금까지의 간편식 포장 기술이 제품의 가치를 높이도록 개발돼왔다면 이제는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양을 줄여가는 ‘필(必)환경’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말했다.


수원=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오늘의 실시간
BEST
hankookilbo
채널명
한국일보
소개글
60년 전통의 종합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