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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 의외로 봄을 맞이하기 좋은 도시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의 진수, 전북 익산 여행. 백제 고도와 근대건축, 봄날 걷기 좋은 원불교총부까지. 미륵사지·왕궁리유적부터 황등시장 별미까지 맛과 이야기가 있는 봄 여행지 추천.

미륵사지와 근대건축물의 도시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의 진국을 맛보다

좋은 삶을 사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여행이라 믿고 있다. 친한 사람들과 함께 하루나 이틀 정도(일주일은 너무 길다. 싸울 수도 있다) 어딘가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꽃나무 아래 산책도 하고 나면 힘도 나고 그럭저럭 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경험상, 생을 긍정하는 가장 유용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단언컨대 여행이다(짧은!). 올봄에는 전북 익산으로 가보시라고 추천해 드린다. 미륵사지가 있는 그곳 맞다. 음식도 맛있고 가볍게 산책을 즐기기 좋은 곳도 많다. 옛 백제의 번성을 가늠할 수 있는 왕궁터도 있다. 여유롭고 한가롭고 느긋한 봄 여행을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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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중앙총부 공회당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그리고 여행작가로 일하는 이십 년 넘는 시간 동안 돈(원고료)이라는 걸 받고 글을 써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 텅 빈 워드파일을 보고 있으면 막막하고 아득하다.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매일 새벽마다 노트북을 연다. ‘일단 쓰자, 쓰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뭐라도 되겠지’ 하고 심호흡을 한다. 


글을 써보니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계속 쓰는 수밖에는. 이 감정은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이나 이십 년 동안 원고료를 받고 쓴 사람이나 똑같을 것이다.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계속 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대신 틈틈이 삶을 즐기는 것도 잊지 마시길. 좋은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니까.


익산은 경주, 공주, 부여와 함께 특별법으로 우리나라 4대 고도로 지정되어 있다. 왕궁, 왕릉, 사찰, 산성이라는 고도의 4대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뜻이다. 도시도 제법 크다. 전북 도내에서 두 번째, 호남에서 네 번째다. 인구는 약 28만 명. 철도와 도로 교통도 좋아서 서울에서 KTX를 이용하면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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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위) 나바위성당 내부(아래)

그런데 나는 익산을 ‘백제의 고도’보다는 ‘콩나물국밥의 도시’로 기억하고 있다. “엥? 콩나물국밥은 전주 아닙니까?” 하시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인생콩나물국밥’을 익산에서 먹었다. 세상의 모든 콩나물국밥을 다 갖다 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단 한 그릇의 콩나물국밥이었다.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의 도시 익산

몇 해 전 지인들과 1박 2일 동안 전주와 익산을 답사한 적이 있다. 사실 답사는 핑계였고, 전주에 근무하는 지인 A를 따라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요량으로 떠난 길이었다. 우리는 A가 짜놓은 코스를 따라다니며 ‘성실하게’ 먹었다. 


지인 중에 피순대 마니아가 있어 그의 안내로 피순대집에도 갔다. 선지 맛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길거리에 있는 가맥집에도 들렀다. 낮부터 조금씩 마시기 시작한 술이 저녁에는 어느덧 기분 좋게 취해 있었다.


다음날에는 익산으로 넘어 갔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지인 중 한 명이 ‘아침은 죽어도 익산에서 먹어야 한다’고 미리 못박았기 때문이다. 전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그는 말했다. “무조건 콩나물국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가 말한 콩나물국밥집은 숙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고, 콩나물국밥을 일행 모두가 좋아하는 데다, 미식가인 그의 강력한 주장이라 다음날 아침은 익산으로 가서 아침을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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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옥 콩나물국(위) 황등시장 비빔밥은 토렴을 하고 비벼서 나온다.(아래)

약간의 기대도 있었다. 콩나물국밥이 콩나물국밥이지,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그리고 콩나물국밥 하면 전주 아닌가. 왱O집, 삼O집, 현O옥 등은 전주 여행길에서 누구나 한번쯤 들르는 집들이다. 이들 집에서 차려내는 콩나물국밥은 전국 어디에나 있는 ‘24시 콩나물국밥’과는 차원이 다른 맛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집들을 전부 뒤로 하고 익산으로 가자니. 다음날 우리는 일찍 채비를 하고 익산으로 갔다. 차 안에서 그가 말했다.


“한때는 콩나물국밥에 빠져서는 전국의 콩나물국밥을 다 먹어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지. 그런데 이 집 콩나물국밥을 먹어보곤 ‘아, 더 이상 딴 데는 안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콩나물국밥 집에 들어섰다. 메뉴는 콩나물국밥 딱 하나였다. 주방에 놓인 커다란 솥에는 육수가 펄펄 끓고 있었고 솥 앞에서 주인 아저씨가 국밥을 토렴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토렴 풍경이었다. 솥에는 멸치가 가득 든 커다란 망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멸치육수의 단내가 코 끝으로 훅 끼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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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렴해서 내는 일해옥 콩나물국밥

콩나물국밥이 나왔다. 콩나물이 푸짐하게 들어가 있었고 그 위에 김가루가 살짝 뿌려져 있었다. 계란노른자도 떠 있었다. 한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다. 속이 따뜻해졌다. 태어나 술을 처음 마신 이후 지금까지 쌓인 숙취가 모두 풀리는 느낌이었다. 영혼까지 말갛게 씻기는 것 같았다. 콩나물국밥을 천천히 그리고 깨끗하게 다 먹었다. 


누군가에게 다정한 위로를 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하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맛이었다. 원래는 익산에서 콩나물국밥을 먹고 바로 서울로 올라와야 했지만, 우리는 익산에 하루 더 머물기로 했다.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다는 그의 꾐에 넘어가서는 말이다.


그리고 비빔밥. 익산에 간다면 비빔밥도 꼭 드셔보시길. 사실 내 입맛에는 전주비빔밥보다 더 맛있었다(입맛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까). 황등면의 황등비빔밥은 익산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한때 우시장까지 있었다던 황등시장은 위세를 잃었지만, 비빔밥은 여러 식당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황등비빔밥은 밥을 살짝 비벼 고기 국물에 토렴을 한 뒤 그릇을 데워 육회를 얹어 내는 게 특징이다. 거기에 선짓국을 곁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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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산책을 즐기기 좋은 원불교중앙총부(좌) 봄산책을 즐기기 좋은 원불교중앙총부(우)

전주비빔밥이 뭔가 예술적이라면 황등비빔밥은 터프하고 서민적이다. 황등은 예로부터 돌이 유명했고 그 돌을 다루는 석공이 많았는데 비빔밥은 그들의 음식이었다. 주방에서 밥 위에 각종 나물을 얹고 토렴을 하며 미리 비벼 나오기 때문에 엄연히 말하자면 비빔밥이 아니라 ‘비빈 밥’이라고 해야 맞다. 비빔밥 위에 올라 있는 주먹만한 육회 덩어리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익산의 봄, 봄, 봄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을 먹는 틈틈이 우리는 여행을 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원불교중앙총부. 익산의 봄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장소다. 3월 말이면 원불교중앙총부 곳곳에 벚꽃이 환하게 핀다. 익산 시내에 자리한 원불교중앙총부는 종교시설, 게다가 국내 4대 종교의 하나로 꼽히는 원불교의 본산이라 선뜻 안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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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중앙총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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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는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이 1916년 깨달음을 얻고 문을 연 종교다. 많은 이들이 원불교를 불교의 한 종파로 알고 있지만, 엄연히 다른 종교다. 원불교당에는 불상이 하나도 없다. 원불교는 철저히 실리적이고 개혁적인 종교다. 배타적이지도 않다. 부처님과 예수님, 마호메트도 다 훌륭한 선각자라고 인정한다. 유일신을 믿지도 않는다. 원불교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종교가 아니라 생활 철학으로 이해가 된다.


원불교 중앙총부는 1924년 만들어졌다. 1924년 9월 익산총부를 건설하면서 최초로 지어진 본원실을 비롯해 1927년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의 처소로 지어진 금강원 등 8개 건물이 초창기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대종사의 거처로 지어진 금강원, 대종사뿐만 아니라 2대 정산 종사, 3대 대산 종사가 열반한 종법실, 집회소였던 공회당, 대종사의 집필장소였던 송대 등이 모두 일본식주택건축 영향을 받은 목조 구조의 개량 한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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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궁궐터의 벚꽃

벚나무를 비롯해 다양한 수목이 어울려 있어 짧은 봄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총부 이곳저곳을 거닐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히 공회당 앞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커다란 벚나무 한 그루가 파란 지붕을 인 적산가옥과 어우러져 아주 멋스럽게 핀다.

백제의 번성을 상상하다

앞서 말했듯, 익산은 경주와 공주, 부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고도다. 고도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궁궐터가 있어야 한다. 익산 왕궁리는 백제 궁궐터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장소다.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건립했다는 제석정사 터를 비롯해 그 안에 관궁사, 대궁사 등의 절터와 토성 터 등이 남아 있는데, 이는 이곳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유적이라는 학설을 뒷받침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등의 문헌들도 이곳이 ‘옛날 궁궐터’, ‘무왕이 별도를 세운 곳’, ‘마한의 궁성 터’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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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오층석탑

왕궁리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5층 석탑이다. 언제 세워졌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화장실 유적. 삼국 시대 최초의 화장실이면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회충, 편충 등 기생충 알도 발견됐다고 한다.


익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는 미륵사지다. 익산시 금마면 한가운데 솟은 미륵산 자락 아래에 자리한다. 폐사됐으니 엄밀히 말해 미륵사지다. 미륵사는 신라 황룡사와 고구려 금강사에 대응할 만큼 백제 대표 호국사찰로 꼽히는 절이며, 백제의 가장 거대한 석탑을 품은 옛 절터다.


신라 땅으로 가 섬섬옥수 선화 공주를 데려왔던 사내 무왕이 나라가 기울어 가는 시점에 지은 절이다. 시인 신동엽은 시 ‘금강’에서 미륵사에 얽힌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준다.


“어느 날 선화는 미륵산 아래를 산책하다 미륵불을 캤다. 땅에서 머리만 내놓은 미륵 부처님의 돌, 마동왕의 손가락 이끌고 다시 가 보았다. 안개. 비단 무지개, 백성들이 모여 합장, 묵념. 그들은 35년의 세월 머리에 돌 이고 염불 외며 농한기 3만 평의 땅에 미륵사, 미륵탑을 세웠다.”

독특한 정취의 근대문화 건축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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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성당에 한지로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위) 나바위성당(아래)

익산에는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의 시대상을 살필 수 있는 근대 건축물이 여럿 남아 있는데, 답사의 가장 첫걸음을 놓아야 할 곳이 화산 천주교회다. 나바위성지 또는 나바위성당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이다. 


나바위성당은 건축 양식이 독특하다. 정면에서 보면 벽돌로 만들어진 영락없는 서양식 교회지만 건물 옆으로 돌아가 측면을 보면 팔작지붕에 한식 기와를 올렸다. 처마 아래로는 툇마루를 개조해 만든 회랑이 이어진다. 


1906년 처음 지어질 당시, 나바위 성당은 흙벽과 마룻바닥, 기와지붕과 나무로 만든 종탑이 있는 한옥 목조 건물이었다. 그러다 1916년까지 증축을 거듭하면서 한옥과 양옥의 형태가 뒤섞였다.


성당 안에도 초기 성당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부에는 공간을 가르는 8개의 목조 기둥이 있는데, 이는 남녀유별의 관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창도 이채롭다.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한지의 수묵 그림을 댔다. 성당 분위기가 한층 그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바위성당에서 멀지 않은 성당면 두동리에는 1929년에 세워진 두동교회가 있다. 


한옥으로 지어진 ‘ㄱ자’형 교회로 김제의 금산교회와 더불어 국내에 두 곳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렇게 지은 이유는 남녀 신도가 따로 앉아서 설교자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성당 앞 마당에는 나무로 쌓아 올린 종탑의 모습도 그대로 간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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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동교회(위) 두동교회 내부(아래)

익산에서 하루를 더 머물며 비빔밥도 먹었고, 찐빵도 먹었고, 고추짬뽕도 먹었다. 사실 나는 고추짬뽕 말고 물짜장을 먹었는데, 그건 내 인생 3대 후회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다음에는 반드시 고추짬뽕이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배우 윤여정의 수상 인터뷰를 들었다. “저는 경쟁을 싫어합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역을 연기했잖아요. 우리끼리 경쟁할 순 없습니다. 오늘 제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죠.” 오랜 세월 배우로 존재하다 마침내 궁극의 인생을 완성한 사람의 수상소감이었다. 동의한다. 


연기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에도 인생에도 경쟁 같은 건 없다. 이만큼 살아보니 알겠다. 다만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라는 걸. 그 과정에서 운이 상당히 많이 작용하고, 실패가 모두 당신 탓은 아니라는 것도. 그러니까 자신에게 조금 관대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이 원고를 썼다. 스탠드 불빛 아래 노트북을 켜고 앉아 있으면 세상 끝에 선 듯한 기분이 든다. 쓸 단어가 없지만 그래도 뭔가를 써야 한다. 일단 ‘지금 나는’이라고 썼다가 지우고, 한참 뒤 ‘어제 나는’이라고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젠 작가로 살아갈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조차도 모르겠다. 다만 날마다 뭐라도 써야 하는 인생이라는 걸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써나가다 보면, 언젠가 내게도 수상소감 같은 걸 말할 날이 오지 않을까. 물론 운이 좋다면 말이다. 


글을 쓰는 사이 어느덧 아침이 되었고 나는 익산의 따뜻한 콩나물국밥을 떠올리고 있다. 다른 콩나물국밥과 경쟁하지 않고 궁극의 콩나물국밥으로 존재하던 그 맛을 말이다.

익산 여행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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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익옥수리조합 건물(위) 황등시장 비빔밥(아래)

‘익산’ 이전, ‘이리’였던 마을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통감부를 설치하고 호남평야에서 곡식을 수탈해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1907년에 전군 도로를 개설하며 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1914년, 이리를 연결 지점으로 호남선 철도가 놓이면서 만경강 유역의 한촌은 근대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시절 익산을 상징하는 건물이 익산 구 익옥수리조합 건물이다. 1930년 지어진 이 건물은 익산과 옥구군의 농장 지주들이 농지를 관리하고 쌀 생산량을 늘리고자 창설한 조합의 사무소였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원형이 잘 남아있는데 창문과 창문 사이에 벽돌로 치장 쌓기를 한 것이라든지, 테두리 보의 벽면을 붉은 벽돌로 쌓은 것 등은 현재 건축기법과 다르다.


내가 찾은 콩나물국밥집은 일해옥이다. 황등비빔밥은 시장비빔밥을 비롯해 한일식당, 진미식당 등이 이 맛집으로 꼽힌다. 선짓국을 곁들인다. 신동양의 고추짬뽕은 전국구 맛을 자랑한다. 동서네낙지는 소 곱창과 낙지를 함께 볶아주는 곱창낙지볶음이 맛있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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