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책상 위의 작은 정원 ‘테라리엄’
유리병 속에 봄을 담다
미니어처 숲을 만드는 즐거움
앙증맞은 식물들이 주는 편안한 휴식
작은 숲이 주는 소소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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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형태의 집을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마침 한옥이 주제다. 유난히 창과 문이 많은 한옥을 건축할 때 중요한 요소는 ‘차경’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자연의 풍경을 빌리는 것’이다. 작은 방 안으로 대자연을 가져올 수 없기에 조화롭게 창을 내어 흙과 돌, 나무가 어우러진 마당의 풍경을 들인다는 뜻이다. 소통과 환기의 기능을 갖는 창문에 의미를 더해 풍경을 담는 액자로 본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참으로 운치가 있었다. 그런데 멋진 조경을 갖춘 마당 있는 집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우리는 대체 어디로 창을 내어야 자연을 눈에 담을 수 있을까.
나만의 작은 생태계
집 안에 자연을 담기 위해 식물로 인테리어를 하는 플랜테리어(Planterior)의 인기는 꾸준하지만, 여러 개의 화분을 곳곳에 배치해서 분위기를 가꿀 만큼 충분한 공간이 없으면 식물 카페처럼 싱그러운 느낌을 내기가 힘들다. 식물도 저마다 성질이 달라서 물주기와 흙갈이 등 관리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만일 그런 실력이 부족하다면 화초를 키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방법이 없을까? 최근 원예가들이 추천하는 게 있다. 테라리엄(Terrarium)이다. 밀폐된 유리그릇이나 입구가 작은 유리병 안에 소형 식물을 기르는 것을 뜻하는데, 식물과 친숙하지 않은 초심자들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 어항 안에 작은 바다를 만들어 물고기를 기르는 것처럼 초록의 이끼와 선인장, 다육식물 등을 돌 같은 자연물과 함께 작은 병 안에 배치하여 만든다. 컴퓨터 모니터 불빛에 지친 눈을 쉬게 할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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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리엄은 작은 용기 안에서 식물이 스스로 물과 공기를 순환하며 자라기 때문에 ‘보틀 가든’(Bottle Garden)이라고도 불리는데, 돌과 양치식물로 숲처럼 꾸밀 수도 있고, 모래와 다육식물을 이용하면 작은 사막이 탄생하기도 한다. 이끼와 자갈을 조형미 있게 배치해서 푸른 초원과 맞닿은 해변을 만들기도 한다. 이끼를 기른다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끼는 가만히 관찰하면 꽃만큼 싱그럽고 예쁜 잎을 가지고 있는 식물이다. 지구에는 수많은 종류의 이끼와 다육식물이 존재하는 만큼 작은 병 안에 담을 수 있는 초록의 세계 또한 무궁무진하다.
내 손으로 만드는 작은 정원
요즘은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쉽게 테라리엄 디아이와이(DIY) 키트를 구할 수 있어서 나만의 정원을 직접 만드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각종 돌, 모래, 미니어처 피규어 등도 취향에 맞게 따로 살 수도 있다. 온라인 쇼핑몰과 내츄럴팟, 엑스플랜트 같은 테라이엄 전문 숍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와인 잔이나 잼을 먹고 남은 병을 이용해도 된다. 만들기 도구로 가위와 핀셋이 있으면 완성이 훨씬 수월하다. 물 빠짐 구멍이 없는 밀폐된 용기 안에 자연물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맨 밑에 스펀지 혹은 자갈이나 난석을 깔아주는 것이 디아이와이의 출발점이다. 물을 정화하기 위해서 난석 위에 숯을 넣기도 하지만, 생략해도 된다. 원하는 위치에 이끼나 식물을 배치하고, 조형미를 고려하여 나머지 공간을 돌 등으로 꾸미면 된다. 식물을 심을 때는 주의를 조금 기울여야 한다. 식물이 안정감 있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세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식물을 활용한 테라리엄. 내츄럴팟 제공 |
테라리엄용 식물은 다육식물이나 선인장 등 모래 같은 거친 환경에서 물 없이도 잘 자라는 품종이다. 계곡의 바위틈에서 이끼와 함께 자라는 고사릿과의 식물과 이끼도 해당한다. 이끼는 산에서 채집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채집과 관련된 법이 미비해 권장하지는 않는다. 일반인이 재배하기도 쉽지 않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여러 종류의 이끼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니어처 피규어나 오브제가 있다면 함께 넣어보자. 마침내 나만의 작은 세계가 탄생한다.
테라리엄 만들기에 매료되어 유튜브를 탐닉하다가 유튜브 채널 내츄럴팟의 ‘테라리엄 만들기 왕초보 탈출’ 영상을 접했다. 내츄럴팟 조동욱 대표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궁금증을 해결했다. 오래전부터 물고기를 좋아해서 아쿠아리움 관련 사업을 하다가 2년 전부터 테라리엄 전문 숍을 운영하는 그는 테라리엄이 주는 매력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꼽았다. “테라리엄에 사용하는 자연 재료들은 공기 정화나 미세먼지 완화 기능이 뛰어나다. 특히 이끼는 다른 식물과 비교했을 때 산소 발생량이 매우 높고 습도 조절 기능도 한다”며 “돌이나 자갈처럼 쉽게 만질 일 없는 자연물들을 직접 만질 때의 촉감과 식물의 초록색이 주는 시각적 편안함도 큰 매력”이라고 말한다. “스트레스가 많고 바쁜 현대인들에게,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불안한 요즘 같은 시기에 편안함과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작은 병 안에 나만의 세상을 만들면서 집중하는 동안 잡념을 잊고 숲에 있는 상상을 할 수 있다.”
초록색 자연이 주는 위로
개당 2만원인 테라리엄 키트를 사서 두 개를 만들었다. 선인장과 이끼 테라리엄 두 가지다. 과연 조동욱 대표 말대로 아침에 일어나면 이 작은 식물들을 제일 먼저 들여다보게 되었다. 분무기로 물을 칙칙 뿌려주기만 하면 밤사이 말라 있던 잎들이 순식간에 펴지며 초록이 짙어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작은 이끼 잎 위에 맺혀 있는 귀여운 물방울들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서서히 잠에서 깬다. ‘이 방 안에 살아있는 것이 나 말고 또 있구나.’ 포근해진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안에 넣은 인형을 바꾸거나 돌의 위치를 변경하면, 내일 아침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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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의 유행 때문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사람을 만날 수 없다. 봄이 만개한 시절에 야외활동을 할 수 없어 예전의 모든 접촉이 그립다. 쉽게 우울감이나 무기력에 빠질 수 있는 이 시기에 초록빛 생명을 곁에 두는 것만으로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조그마한 세계를 만드는 동안 잡념을 떨쳐보자. 초등학교 때 현미경으로 아름다운 눈의 결정을 보던 순간처럼 작은 구멍 안에 싱그러운 자연이 펼쳐질 것이다.
최고운(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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