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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어묵이야? 오뎅이야?

한겨레

어묵탕. 사진 박찬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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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신문사의 교정기자가 ‘어묵’이라고 고칠 게 뻔하지만, 나는 오뎅이라고 일단 쓴다. 이건 마치 이탈리아 국수라고 하지 않고 ‘스파게티’라고 하는 것과 같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렇다. 오뎅은 어묵을 포함하며 무, 소고기나 힘줄, 문어, 두부, 곤약 등을 육수에 넣어 끓인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어묵은 오뎅의 일부분일 뿐이다. 오뎅이 한강이라면, 어묵은 실개천이다. 물론 한국의 오뎅은 대개 어묵만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오뎅을 어묵 꼬치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오뎅에 꼬치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도 오뎅이다. (쓰면 쓸수록 미궁에 빠진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독자들의 항의가 들린다.) 결론적으로 나는 오뎅이든, 어묵이든, 하다못해 어묵꼬치든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어묵, 참 많이 먹었다. 그래도 맛있다. 먹고 싶다. 맛없기도 힘들다. 엠에스지(MSG)가 넉넉히 들어 있다. 혹시라도 맛없을까 봐 맛 내는 물질을 종합선물세트로 넣었다. 생선살 들어 있지, 탄수화물도 어느 정도 있다. 결정적인 건, 대개는 튀긴다는 사실이다. 그냥 찐 어묵도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어묵은 튀긴 것이다. 어묵은 온갖 모양과 재료로 진화하고 있다. 르네상스다. 부산에 가면 어묵 베이커리도 있다. 옛날에 아버지가 음식 관련해서 하시는 말씀은 딱 하나였다.


“오뎅 먹지 마라.”


덧붙이시기를, 만드는 걸 봤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 시절에는 그런 이미지가 강했다. 시장 귀퉁이에서 알 수 없는 재료로 뭔가 쓱싹쓱싹 만드는 것 같던. 그러나 어묵의 유혹을 어찌 떨칠 수 있으랴. 그중에서 나는 단연 사각어묵이 최고다. 일본 오뎅 취재도 많이 했고, “좀 아네” 하고 그들 앞에서 거들먹거렸지만 실은 한국에서 만드는 사각어묵 만한 게 없다. 어려서부터 도시락 반찬으로, 머리가 굵어져서는 포장마차에서 간식과 술안주로, 하다못해 밥집의 국과 반찬으로 늘 먹어온 것이니까. 똑같은 반죽으로 만드는데, 왜 길쭉이나 동글이가 아니고 사각만 좋아하느냐, “너는 바보다”라고 할 사람도 있겠다. 대답하기를, “똑같은 반죽인데 왜 수제비와 칼국수는 전혀 기호가 다를까요”라고 대꾸할 수밖에.


사각은 ‘이불어묵’이라고도 부른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부산의 한 지인이 학창시절에 그렇게 불렀다는 것이다. 기막힌 작명이다. 다른 ‘부산러’에게 확인해보니 “그래요? 그렇게 부른 건 없는 듯한데”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자, 이제 이불을 펴 봅시다. 마법의 양탄자 같은 비밀이 있다. 사각은 반찬으로 가장 많이 팔리기 때문에 가장 싸다. 같은 재료를 썼더라도 무게 대비 가격을 싸게 매기는 것 같다. 제일 대중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툼한 한 봉지(500g이나 800g까지도 나간다)가 3000~4000원밖에 안 한다. 백반집 반찬과 가정용으로 최고 많이 쓰기 때문에 싸게 내는 것 같다. 사각어묵은 ‘옛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럴 이유가 있다. 요즘 어묵에서는 옛날 맛이 안 난다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이다. 과거에는 연근해에서 잡은 여러 잡어가 어묵 재료로 많이 쓰였다. 조기, 갈치의 새끼들이나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이 어묵공장에 갔다. 요즘은 원양 연육이 많이 쓰인다. 옛날 맛이 안 난다. 가끔 버석거리기도 하고, 쿰쿰한 냄새도 나는 그런 어육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식 사각어묵 중에는 국산 어육을 쓰는 제품이 종종 있다. 버석거리는 감촉은 어린 생선을 뼈째, 머리째 갈아서 넣는 까닭이다. 참조기새끼만 쓰는 제품도 있다. 좋은 어묵을 찾는 방법 중에는 어육 함량을 보라는 조언이 뒤따른다. 70% 이상이 기준이다. 더러 90% 이상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국산 어육 함량이라는 사실. 물론 옛날 맛을 찾는다는 전제에서 그렇다. 포장지 뒷면을 잘 보라. 재료와 함량이 적혀있다. 순 국산 어육으로만 70%를 채운 제품도 있고, 수입 연육과 반반씩 섞은 것도 있다. 확실한 건 이런 것들이 옛날 맛이 난다는 점이다.


이불어묵을 샀으면 날도 추우니 탕을 끓여서 소주 한잔하자. 일본인은 라면이나 우동 국물을 대개 싹싹 비운다. 한데, 우리가 생명처럼(?) 여기는 오뎅 국물은 거의 안 먹는다. 국물 달라고 하면 주인이 의아하게 생각한다. 후쿠오카에 가면 엄청나게 장사 잘 되는 오뎅집이 있다. 값도 엄청 비싼데 손님이 많다. 현지인도 인정하는 집이다. 이 가게가 한때 한국인 미식가(?)의 오뎅 성지였다. 이유가 많은데, 주인 할머니의 국물 인심이 아주 좋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일본인은 안 먹는다지만, 우린 국물의 민족 아닌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할머니가 “오다시, 오다시(국물)~” 이러면서 국물을 퍼주었다. 역시 장사는 손님이 좋아해야 잘 된다.


한국에서 일본식 오뎅 만들자면 세트로 파는 게 있다. 다채로운 모양의 어묵과 곤약, 유부찰떡주머니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이런 제품보다 이불어묵에 두부, 계란, 무 정도를 넣는 걸 즐긴다. 물론 한국식이다. 국물도 넉넉히 끓인다. 국물 맛은 어떻게 내느냐고? 그야 ‘동봉된 별첨 수프’지. 팁을 드리자면, 무가 중요하다. 둥글게 깎아서(사각으로 자르면 귀퉁이가 허물어진다) 미리 수프를 넣고 오래 끓여야 맛있다.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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