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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아침 8시 경복궁 오픈런! ‘한식 디저트’ 그윽한 단맛 보려면

이젠 K-디저트, 다과 열풍 분다

‘스몰 럭셔리’ 인기 타고 한식 다과 젊은층 인기몰이

전통에 현대적 해석 더하며 셰프의 음식으로 탈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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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생과방의 모습. 경복궁 생과방 누리집 갈무리

프랑스 정찬 요리의 끝은 디저트 뒤에 나오는 차와 프티 푸르다. 프티 푸르는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작은 케이크와 과자 따위를 말한다. 직역하면 ‘작은 오븐’이란 뜻인데, 요리하고 남은 오븐의 열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차와 어울리는 달콤한 이 작은 조각은 ‘이 식당에 다시 와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만드는 프렌치 코스의 화려한 대미다.


한식에선 다과상이 이와 닮았다. 오후의 훌륭한 간식거리로, 때론 디저트로도 활용된다. 특히 소반에 담아 놓은 다과는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미적으로도 훌륭한 모양새다. 작고 예쁜 것에 탐닉하는 스몰 럭셔리가 트렌드인 지금, 다과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픈런에 새벽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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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악, 약과, 설기떡 등으로 구성된 한식 디저트 카페 ‘김씨부인’의 소반차림 다과상.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다과의 최근 인기는 ‘경복궁 생과방 대란’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뛰기 편한 운동화를 신을 것.’ 지난 6월 상반기 일정이 종료된 ‘경복궁 생과방’ 체험에 성공한 이들의 조언이다. 조선 시대 국왕과 왕비의 후식과 별식을 준비하던 경복궁 생물방에서 다과를 즐기며 잠시 일상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궁궐에서 다과라니! 말만 들어도 설레지 않나. 경복궁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한 체험인 셈.


2016년 특별 체험행사로 문을 연 경복궁 생과방은 개장 초기 여유롭게 입장할 수 있었으나 에스엔에스(SNS)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좋아요’를 누르지 않을 수 없는 ‘비주얼’에 엠제트(MZ)세대들은 열광했다. 올해는 아침 8시 전에 경복궁에 도착해 생과방으로 가는 최단 경로로 전력 질주해 선착순 대기표를 받아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생과방 오픈런’이란 말까지 생겨났을 정도. 블로그와 에스엔에스에는 땀내 나는 오픈런 후기가 많이 올라와 있다. 하반기 운영은 9월 시작하는데 미리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할 수도.


온라인 예약을 받는 ‘한국의집 궁중다과 고호재’도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다. 예약이 일찌감치 마감되기 때문에 간혹 나오는 예약 취소 티켓을 잡기 위한 새벽 예약 누리집 체크 노하우가 공유되는 상황이다. 휴식기를 거쳐 9월에 중순에 열리는 가을 다과상에는 곶감, 밤, 유자 등을 이용한 8종의 병과와 국화 꽃차가 오를 예정. “카카오톡에서 한국의집 채널을 등록해두면 예약 오픈 일시를 빠르게 알 수 있다”는 것이 고호재 담당자가 전한 예약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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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레시먼트의 한식 디저트.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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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집 궁중다과 고호재의 가을 다과상. 고호재 제공

파인다이닝도 동참

언제부터 이런 열풍이 시작됐을까. 외식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다과 열풍을 이끈 곳으로 2017년 문을 연 한식 디저트 카페 김씨부인이 거론된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김씨부인은 조선시대 독상 문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떡과 한과를 1인 소반 차림으로 구성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황·청·백·적·흑 오방색을 고루 갖추되 어느 하나가 튀지 않도록 채도를 낮춘 상차림과 개성 주악(찹쌀가루를 막걸리로 반죽해 기름에 지진 떡), 송화다식, 정과류(과일이나 식물 뿌리를 조려서 만든 과자)와 떡 각각의 아름다움을 받치는 식기까지 단정하다.


국내산 말린 오미자를 물에 불려 하나하나 씨를 발라 곱게 다지고 팥알보다 작게 뭉쳐 설탕에 굴린 오미자 정과는 가까이 들여다보면 반짝이는 보석 같다. “맞다. 한식 디저트계의 다이아몬드라고 불린다. 재료와 수공(손으로 만드는 기술) 싸움이라 제대로 하는 곳이 드물 수밖에 없다.” 김씨부인 김명숙 대표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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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된장, 고추장을 이용한 밍글스의 대표 디저트 장트리오. 사진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김 대표는 “단맛을 설탕에 의존하지 않고 재료에서 찾는다. 감, 조청, 꿀, 대추, 도라지나 인삼 같은 뿌리에서 나는 그윽한 단맛이 다 다르니 이를 느껴보시길 권한다”며 서양 디저트와의 차별성을 설명했다.


고급 정찬을 뜻하는 파인 다이닝도 한식 다과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미슐랭가이드 서울에서 별 2개를 받은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와 권우중 셰프의 권숙수는 디저트와 다과에 전통 장류와 우리 식재료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권우중 셰프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한식 기반 디저트 숍 ‘리프레시먼트’를 올 3월에 열기도 했는데, 홍삼 캐러멜과 감태 치즈 타르트가 인기다. 리프레시먼트의 장현정 총괄 셰프는 “전통 기록을 바탕으로 재료의 특성과 조리법을 연구해 최상의 형태로 구현한다. 여름 전통음료 ‘생맥산’은 얼음을 곁들여 푸딩으로 내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이 정도가 약과지!

최근 한식 다과의 발전을 느끼기 위해선 대표 유밀과(곡물 반죽을 기름에 튀긴 한과)인 약과 체험을 추천한다. 가장 접근하기 쉽고 익숙한 맛이기 때문. 하지만 제대로 만든 약과를 먹어본 이는 의외로 드물다. 요리연구가 조자호가 1953년 문을 연 전통 다과 전문점 ‘호원당’( howondang.co.kr)은 넓적한 중모과, 대추고를 넣은 만두과, 틀에 눌러 모양을 낸 다식과 모두 공산품 약과처럼 매끈하지 않고 투박하다. 하지만 사각사각한 표면부터 눅진한 속까지 끈적임 없이 씹히고 단맛은 편안하다. 익숙한 음식의 원형을 만날 때 ‘이거였구나!’ 탄성이 터지는데 호원당 약과가 딱 그렇다. “오랜 단골 비중이 높지만 약과 생각이 나면 소량으로 찾는 젊은 손님도 꾸준하다”는 것이 신환욱 대표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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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약과들. 윤동길(스튜디오어댑터 실장)

담백한 약과를 맛보고 싶다면 ‘병과점 합’( haap.co.kr)이 제격이다. 이곳의 신용일 셰프는 기름에 튀기는 과정을 오븐 조리로 대체해 약과의 기름진 부담감을 덜어냈다. 간장 약과, 팥 약과, 초콜릿 약과 등 종류도 다양한데 입안에서 코로 은은한 향이 번지는 유자 약과가 특히 매력적이다.


인기 웹툰 <백로식당>에서 나온 개성 모약과가 궁금하다면, ‘강정이 넘치는 집’( gangjeonghouse.com)이 딱이다. 개방된 주방에서 매일 신선한 강정을 만드는 젊은 셰프들은 약과도 잘한다. “매장에서 만들어서 파니 신뢰가 따라온다. 당연한 원칙을 지키면 맛이 나온다.” 황용택 셰프의 말이다. 켜켜이 스민 계피 향과 달콤함이 확실해서 기분 전환용 간식으로 안성맞춤이다.


‘병과점 임오반’은 약과의 새로운 면모를 펼친다. 이곳은 일주일 전에 문자 예약(010-8792-2785) 을 해야 하는 주문 제작 형태다. 그만큼 특별하다. 깨 약과는 개성식 약과의 파삭함과 고소함이 앞서고 입자가 굵은 소금이 녹아 은은한 단맛을 끌어올리더니, 개운한 생강 향으로 마무리된다. 기승전결이 확실하다. 기본 약과는 후추 향이 신선한 반전이다. “원래 전통 약과에 후추가 들어간다. 당시에는 귀한 재료였으니 형식적으로 넣었던 건데 저는 통후추의 인상이 도드라지게 썼다.” 임오현 셰프가 찾은 약과의 밸런스에 반해 팬이 된 이들은 맥주 안주로 삼거나 달지 않은 스파클링 와인을 페어링한 경험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서양의 디저트와 만난 약과도 있다. 혹시 초콜릿이나 슈톨렌(독일에서 크리스마스에 즐겨 먹는 빵) 가운데 박혀 있던 달콤하고 쫀쫀한 덩어리를 먹어본 적이 있나. 아몬드 가루와 설탕을 반죽해 만든 페이스트의 일종인 마지팬이다. 독일의 항구도시 뤼베크(뤼벡)에서 만든 것이 가장 유명한데 그 마지팬을 약과에 활용한 곳이 있다. ‘맛과봄’( makkabom.com)의 오정은 대표는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 모국의 전통 음식을 소개하는 행사에서 생전 처음 겁도 없이 약과에 도전했단다. 한국에 돌아와 독일에서 즐겨 먹던 마지팬을 약과에 접목한 것이 ‘뤼벡 약과’. 식감은 약과, 향은 쿠키에 가깝다. 계피 향 때문에 약과를 꺼리던 이들에게도 반응이 좋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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