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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쇠 맛, 피 맛…날육회 진짜 맛은 뭐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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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취향으로 전국 지도를 그릴 수 있다. 이를테면 순대에 무얼 찍어 먹느냐로 그리기도 하고, 냉면 남방한계선(?)이니 제피(속칭 산초) 북방한계선 같은 말도 있다. 육회도 그런 것 같다. 서울은 육회가 그다지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궁궐 상이니 양반 상에는 올랐다는데, 대중성은 별로 없었다. 귀인을 접대한다거나 잔칫상에 육회가 올라오는 경우를 거의 못 봤다.(비싸서 못 올렸을 것 같기도 하다.) 서울 마장동에 도축장이 있던 시절에 육회를 처음 먹어본 이가 많을 것이다. 마장동 가는 건 특수 부위를 먹는 행사였다. 육회 말고도 제비추리니 차돌박이니 하는 것을 그 동네에서 배웠다. 아마도 1990년대 이후의 유행 같은데, 호남식 육회가 강남에서 먼저 터졌다. 호남의 소고기 권력과 손잡은 투자자들이 호황이던 강남에 대형 식당을 열었다. 주먹이 뒷배를 봐준다는 얘기도 있었다. 가장 좋은 고기를 남들은 손 못 대게 ‘아도 쳐서’(독점해서) 가져온다는 말이었다. 그런 대형 고깃집의 주력 메뉴는 물론 생등심에 갈비였는데, 육회가 숨은 메뉴였다. 그 집 매니저나 사장을 알면 좀 다른 육회가 나온다.


“아그야, 거시기 좀 내와라 잉.”


홀 직원에게 이런 특명을 때려버리는 것이었다.


“이것이 육 사시미라는 건디 함 잡솨보쇼.”


육회는 익히 들었지만, 육 사시미는 또 뭔가 했다. 정리한다면, 육회는 전통적인 방식대로 가늘게 썰어 양념해서 먹는 방식이고, 육 사시미는 생선회처럼 양념 없이 그대로 썰어 나온 놈을 먹는다는 차이였다. 육회는 아무래도 섬유질이 있는, 상대적으로 값이 싼 부위로도 조리가 가능하다. 육 사시미는 액면 그대로 나와 버리니 육질의 차이가 선명하다는 것이었다. 이 정체불명의 신조어가 이제는 전국 식당에서 거의 표준어(?)가 되었다. 단 경상도에서는 맥을 못 춘다. 거긴 뭉티기가 있으니까.


하여튼 이 칼럼에서는 날육회란 말을 쓰고자 한다. 양념 안 한 육회라는 뜻이다. 이걸 잘하는 집에서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쇼가 벌어지는데, 텔레비전에도 나온 접시 뒤집기 쇼다. 뒤집는다기보다는 접시를 세우는 정도다. 육질이 얼마나 찰떡처럼 차지면 접시에서 떨어지지 않느냐는 시위인 것이다.


너붓하게 썬 날육회는 딱 한 점을 집기가 쉽지 않다. 서로 들러붙어서 두어 점이 함께 딸려온다. 색깔도 시커먼 암적색이 더 좋다고들 한다. 게다가 마블링 없는 저등급 살점이 더 대접받는 이상한 부위다. ‘투뿔’쯤 되는 고가 등급 소고기는 마블링이 없어야 할 안심이나 엉덩이살 같은 데도 기름이 끼어 있다. 그래서 국밥이나 육회용은 오히려 마블링 없는 낮은 등급의 소가 선호되곤 한다. 기름이 낀 육회감은 금세 질린다. ‘쎄~한’ 헤모글로빈 맛(?)이 좍 입안에 퍼지고, 어금니에 잘근잘근 씹히는 저작감이 살아 있는 고기는 역시 기름이 없어야 한다. 거세우는 싱겁고 암소가 좋다는 게 정설이기도 하다. 암소는 어떤 걸 고르냐는 전문가마다 말이 다르다. “어린 소가 좋다”, “아니다. 새끼를 두어 배 낳은 경산우가 좋다” 등 말이 다 다르다.


이 날육회가 이젠 수도권 대도시에서도 언제든지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남쪽 도시가 명성이 있다. 광주며 대구 같은 도시들이다. 전국 어디든 서너 시간이면 다 닿는 물류 속도전이 벌어지는 이 좁은 국토에서도 신기하게도 날육회의 지역성은 인정받는다. 현지 가서 먹어야 더 신선한 고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시골돼지론’처럼 의아한 대목이기도 하다. 시골돼지론이란 흔히 하는 말로 “시골에서 잡은 돼지라 더 맛있다”는 건데, 도시에서 기른 돼지가 어디 있다고.


하지만 이런 논리가 나온다.


“도축장에서 경매로 넘어가면 그만큼 신선도가 저문다. 구이용은 숙성하므로 오히려 도축 후 적당한 시일이 지난 것이 좋다. 하지만 육회는 숙성하는 고기가 아니다. 누가 더 빨리 도축장에서 받아온 놈을 그날 저녁상에 올릴 수 있느냐가 날육회 맛의 열쇠다.”


우둔이니 홍두깨니 꾸리살이니 하는 부위가 날육회로 나온다. 썰면 칼에 고기가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고기 썬 칼날 냄새를 맡아보면 신선한 고기와 쇠붙이 기운이 섞여 있다. 기름장에 찍거나 간장에 찍어서 오래오래 씹는다. 불이 없던 시절에 사냥한 고기가 이랬을까. 금속성 피 맛 뒤로 달큼한 고기 맛이 넘실거린다. 이런 고기에는 소주를 차갑게 해서 마신다. 보해나 금복주가 제격이겠다.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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