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냉정과 열정 사이, 다슬기 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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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 ‘주마본’의 다슬기 수제비. |
분식집이라지만 명색이 ‘전주’(全州)다. 과연 명불허전. 다슬기를 넣어 끓여낸 수제비 한 그릇이 시원하기도 하다. 시원하다니. 조석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 대니 자연히 뜨끈한 국물이 떠올라 찾은 수제비인데. 그렇지만 다들 담백하고 시원한 맛에 수제비를 떠올리니 뜨겁고도 시원한 냉정과 열정을 모두 품은 음식이렷다. 구황 식품, 서민 음식으로 알려진 수제비는 사실 조선 후기까지 고급 음식 축에 속했다. 밀이 귀했던 까닭이다. 홍두깨로 밀어 썰어내지 않고 반죽을 손으로 뚝뚝 뜯어 팔팔 끓여낸 그 묵직한 쫄깃함을 즐겼다. 국수보다 포만감도, 식감도 컸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 식량 원조로 들여온 밀가루로 만든 급조된 음식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 그전부터 있었다. 중국 <제민요술>에 나오는 이름은 박탁(餺飥)인데 한자어 자체가 ‘수제비 박’에 ‘수제비 탁’을 쓸 정도로 엄연히 독립된 음식 장르였다. 우리나라에선 운두병(雲頭餠)이라는 이름으로 문헌(<조선쌍무신식요리제법>)에 기록돼 있다. 수제비가 된 이유는 손(手)으로 접(摺)었다 해서 그리됐다는 말도 전해진다. 조리할 때 밥보다 곡물이 더 많이 드는 떡에 가까우니 평범한 음식은 아니었다. 다만 탄수화물만 다량 섭취하는 형식이 현재로썬 부담이 될 뿐이다. 그래서 보통 매운탕 등 단백질 국물에 함께 곁들여 먹는다.
전북 전주에 있는 ‘주마본’. 이 집은 콩국수, 팥죽 등 다양한 분식을 파는 맛집으로 소문났다. 수제비도 있는데 다슬기를 넣어 단백질을 보충한다. 이끼를 먹고 사는 다슬기는 엽록소를 비롯해 아미노산과 칼슘, 칼륨 등 미네랄과 타우린을 함유하고 있어 단백질 공급에 더없이 좋은 재료다. 다슬기가 한가득 들었다. 특유의 감칠맛이 배어난 국물에 얇게 뚝뚝 던져 넣은 수제비 반죽으로 커다란 그릇을 채운다. 여기다 애호박과 대파, 당근이 단맛을 더해 전주 특유의 분식 맛을 완성한다. 칼국수나 밥으로 고를 수도 있는데 겨울엔 아무래도 수제비가 어울린다.
곁들여내는 김치나 깍두기, 깻잎, 물김치 등도 섬유질을 보충해 한 상 위에 완벽한 맛과 영양의 균형을 잡아낸다. 새알이 든 팥죽과 팥칼국수, 호박죽도 맛이 참 좋기로 소문났다.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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