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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한겨레

홍콩 밤거리 질주해 바에서 얻은 위로와 탐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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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있는 바 ‘코아’의 바텐더가 칵테일 여러잔을 만들고 있다. 잔 모양은 소박하지만, 맛은 ‘요리’ 수준이라는 평을 듣는 곳이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모든 일은 기세가 중요하다. 술 마시는 일도 예외가 아니다. 음주는 술자리가 내뿜는 흥겨운 ‘기’를 흡입하는 일이다. 첫 잔부터 기세 좋게 콧노래라도 흥얼거리며 마셔야 술맛이 난다. 외국여행 술집 투어도 마찬가지다. 낯설어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기가 죽으면 술맛은 달아난다. 요즘 유행하는 여행 방식에 ‘바 호핑 투어’라는 게 있다. 영어 ‘호핑’(hopping)은 ‘바쁜’ ‘활발한’이란 뜻인데, ‘깡충깡충 뛰다’(hop)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바 호핑’은 ‘깡충깡충 뛰는 것처럼 바쁘게 술집을 돌아다니며 음주하는 것’을 말한다. 한 술집에서 밤새 마시는 게 아니라, 여러 술집을 돌면서 술집마다 다른 맛과 분위기를 즐기는 여행이다. ‘도쿄 바 호핑 투어’ ‘시부야 바 호핑 투어’ ‘방콕 바 호핑 투어’ 같은 여행 상품이 줄줄이 등장하는 요즘이다. 밤 문화야말로 그 나라의 속살을 제대로 알려준다.


홍콩은 ‘바 호핑 투어’ 하기에 더없이 맞춤한 곳이다. 홍콩 정부도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바가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곳이다. 그만큼 색다른 바가 많다. 바 대부분은 홍콩섬 소호와 란콰이퐁, 센트럴 지역에 몰려 있다. 밤하늘의 별보다 많은 홍콩 바를 지난달 16일부터 3일간 다녔다. 홍콩관광청이 자신 있게 추천하는 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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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바 ‘고칸’의 실내 모습. 밤 풍경이 아름다운 홍콩은 바도 흥겨운 분위기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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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있는 바 ‘코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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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바들이 몰려있는 거리. 박미향 기자

술이 아니라 요리

지난달 17일 저녁에 도착한 ‘더 세이버리 프로젝트’(The Savory Project/G/F, 4 Staunton Street, Soho, Central) 들머리엔 간판이 없었다. 단골이 아니면 도통 찾아갈 수 없는 곳이다. 서울에서 지금도 유행하는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를 지향하는 곳인가. 스피크이지 바는 1920~30년대 미국 금주법 시대에 성행한, ‘아는 이만 갈 수 있는 비밀 공간’을 콘셉트로 한다. 한국에선 2014년에 문을 연 ‘르챔버’를 시초로 본다.


차림표에 희한한 이름의 술이 있었다. ‘타이 비프 샐러드’. ‘타이 비프’는 잔에 올라간 가늘고 쫄깃한 육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땅콩·코코넛 등이 재료인 칵테일은 달큼하면서도 엇구수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술이긴 한 걸까. 바의 대표인 아지트 구룽이 럼(사탕수수에서 뽑은 당밀로 만든 증류주)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의심했을 것이다. 이 술은 럼이 주재료다. 이 바엔 커피, 버터, 일본 된장이 재료인 칵테일도 있다. 구룽이 안쪽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더 깊게 숨겨둔 ‘비밀 공간’이었다. 33㎡(10평)도 안 되는 이 공간에서 술을 마시면 외계인이 침공해도 술잔을 놓기 어렵다. 폭신한 소파의 감촉이 술맛을 부른다. ‘바 호핑 투어’ 첫 집은 본공연에 앞서 추임새로 등장한 소리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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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포를 올린 ‘더 세이버리 프로젝트’의 ‘타이 비프 샐러드’.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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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있는 바 ‘코아’의 실내 풍경. 박미향 기자

센트럴 지역에 있는 ‘코아’(COA/G/F, Wah Shin House, 6-10 Shin Hing Street, Central) 벽엔 이름이 적혀 있긴 했다. 하지만 고작 세 글자. 합쳐봐야 한 뼘도 안 되는 크기였다. 주인 제이 칸은 바텐더들이 갖춰야 할 인성으로 꼽는 ‘호스피탤리티’(hospitality, 손님 응대 방식으로 환대를 의미) 태도가 높은 이였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다정한 표정으로 자신의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멕시코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바를 차렸다고 했다. 멕시코가 원산지인 용설란(잎의 모양이 용의 혀를 닮았다고 이름 붙여진 다육식물. 또 다른 이름은 아가베)이 이 집 칵테일 맛의 기본이다. 그는 “다양한 아가베 증류주 그 생산 과정, 맛과 향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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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의 주인 경 바텐더 제이 칸. 박미향 기자

우리에게 익숙한 테킬라(용설란의 한 종류인 ‘블루 웨버’로 만드는 술)만 떠오르겠지만, 이 집엔 메스칼(Mezcal, 여러 종류의 용설란으로 만든 증류주)도 종류가 많았다. 테킬라와 메스칼을 굳이 구별하자면, 테킬라가 메스칼의 하위 범주다. 요즘 유명한 바를 가르는 기준은 메스칼이다. ‘메스칼이 있는가, 메스칼로 만든 칵테일을 파는가’ 등이 이른바 ‘바 힙 지수’를 결정하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코아야말로 지구에서 가장 힙한 바다. 2017년 문 연 뒤 2021년부터 3년간 술집 버전 미식 행사인 ‘아시아 베스트 바 50’ 순위에 오른 이유다. 소금, 구아바 소다, 코코넛, 블러드 오렌지, 진저 허니, 커피, 코코넛 크림, 파인애플 등 재료가 다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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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있는 바 ‘코아’의 바텐더가 칵테일 여러잔을 만들고 있다. 잔 모양은 소박하지만, 맛은 ‘요리’ 수준이라는 평을 듣는 곳이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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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다운’의 구성원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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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다운’의 칵테일. 박미향 기자

그가 내민 칵테일 두잔은 마시자마자 눈을 감게 했다. ‘신의 물방울’ 저자가 구사한 현란한 어휘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넘치는 맛이었다. 차갑게 쏘는 맛이 오는가 하면 이내 은은한 구수한 맛이 나타났고, 다시 황량한 사막 바람이 불었다. 달곰새금한 알코올은 혀를 타고 내려가 목젖을 자극하고 몸을 달궜다. 술이 아니라 ‘요리’였다. ‘바 호핑’ 본공연은 찬란했다.

화려한 인테리어와 비범한 칵테일

한국 바 ‘제스트’ 바텐더 4명의 얼굴이 걸려 있는 ‘록다운’(Lockdown/G/F 27 Hollywood Road, Central)도 ‘코아’에 버금가는 ‘메인 디시’였다. 최근 제스트와 협업 행사를 했다고 한다. 전구를 세로로 줄줄이 이어 만든 화려한 인테리어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맥주잔처럼 긴 잔에 큰 얼음이 들어간 칵테일은 평범해 보였는데, 막상 맛을 보자 발가락 끝까지 육체적 쾌락이, 참을 수 없는 관능이 퍼졌다. 이 두 바는 여행객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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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바 ‘제스트’와도 협업한 홍콩 바 ‘록다운’의 실내. 전구를 활용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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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8천명이 넘는 유명인 데벤데르 세갈이 칵테일 설명을 하고 있다. 박미향 기자

우리 술 ‘담술’과 일본 술도 재료로 쓰며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8천명이 넘는 유명인 데벤데르 세갈이 맛을 내는 ‘디 오브리’(The Aupey/25/F, Mandarin Oriental Hong Kong, 5 Connaught Road, Central), 뉴올리언스 라이브 연주를 들으며 한잔할 수 있는 ‘엘라’(Ella/26F, The Trilogy, H Code, 45 Pottinger Street, Central), 우주선과 베르사유 궁전을 섞어 만든 듯한 ‘아르고’(Argo/Lobby, Four Seasons Hotel Hong Kong, 8 Finance Street, Central), ‘아시아 베스트 바 50’에서 1위를 한 ‘바 레오네’(Bar Leone/G/F, 11-15 Bridges Street, Central), 일본 바 영향을 받은 ‘고칸’(Gokan/30 Ice House, Central) 등도 ‘바 호핑 투어’ 여행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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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인기 바텐더 데벤데르 세갈이 맛을 내는 바 ‘디 오브리’의 음료.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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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과 베르사유 궁전을 섞어 만든 듯한 ‘아르고’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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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베스트 바 50’에서 1위를 한 ‘바 레오네의 외관. 박미향 기자

‘홍콩 바 호핑 투어’의 결론은 밤거리를 질주해 술로 얻은 ‘열정적 위로’와 ‘우아한 탐닉’이었다.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은 술과 음악을 다룬 책 제목이다. 홍콩 칵테일 여행은 상상을 훌쩍 넘는 맛으로 한 발랄한 연주였다.


홍콩/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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