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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진 대부’ 임응식…1953년 ‘구직’ 원본 필름 공개

스페이스22 임응식 회고전

50~60년대 서울·부산 풍경도

한겨레

한국 현대사진사에서 가장 유명한 걸작으로 꼽히는 임응식의 1953년 작 <구직>의 가로판 사진. 스페이스22의 임응식 회고전을 통해 찍은 지 67년 만에 처음 전시에 공개됐다. 청년이 몸에 매단 한자로 된 ‘구직’ 푯말이 건물 대리석 벽에 거울처럼 비치는 구도를 보여준다. 기존에 알려진 세로판 사진 <구직>의 뒷배경에 등장하는 두 남자의 악수 장면도 우산을 들고 전면으로 걸어오는 남자가 가리고 있어서 세로판 사진을 찍기 전에 촬영한 사진임을 알 수 있다.

벙거지를 쓴 청년이 ‘구직(求職)’이란 한자 푯말을 몸에 달고 건물 벽에 기대어 선 채 머리를 숙인 사진 한 점. ‘한국현대사진의 대부’이자 ‘사진을 예술로 인정받게 한 선구자’로 추앙받는 임응식(1912~2001) 사진가의 1953년 작 <구직>이다. 한국전쟁 직후 서울 명동 옛 미도파 백화점 대리석 벽 앞에서 행인들을 배경으로 구직을 호소하는 청년을 찍은 이 작품은 전후 한국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성 때문에 60년대 발표 뒤 단박에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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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나온 <구직>의 세로축 사진 원본.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되었다. 현재 알려진 명작 <구직>의 이미지들은 이 원본의 가로나 세로 풍경을 조금씩 잘라 만든 것들이다. 세간에 알려진 <구직>에서는 삭제된 윗부분의 ‘미도파 미장원’ 간판이나 오른쪽의 옛 조선호텔 건물과 행인의 우산, 쉐보레 차량의 뒷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서울 강남역 앞 사진 전문 대안공간 스페이스22에 <구직>을 찍을 당시 필름과 67년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가로축, 세로축 원본 프린트를 최초로 공개하는 회고전이 차려졌다. ‘부산에서 서울로’란 제목이 붙은 이 전시는 작가가 고향 부산에서 활동하던 1946년부터 한국전쟁기를 거쳐 서울에 정착하는 1950~60년대, 서울·부산의 거리와 사람들의 삶을 찍은 다큐 리얼리즘 계통의 사진 53점을 선보인다. 출품작들은 고인의 손자 임상철씨가 정리해온 만여컷의 필름과 사진 아카이브들을 지난 1년간 간추려 준비했다고 한다. 현재 남은 두 종의 <구직> 원본 필름을 밀착인화한 프린트를 포함해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35점의 초기작들을 처음 프린트해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사진사적 의미가 남다르다. 기획자인 정진호 스페이스 22 대표는 “임응식 작가는 해방공간과 전후 시기 자기 작업은 물론 후학 양성과 사진단체 결성 등 다방면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해 사진을 예술 영역으로 자리매김시켰다. 후대 사진계가 큰 빚을 지고 있는데도 그의 공로와 업적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초창기 작품들을 집중조명하는 전시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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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작 <파란 학생>. 당시 부산 도심 거리의 모습을 담았다. 옛 시청 앞 광복동 들머리 길가에 피란 온 학생이 봇짐을 놓고 서 있는 장면이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건 <구직>의 가로판 사진이다. 임응식 회고전은 1972년, 1982년, 2011년 각각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열렸지만 이 걸작을 전혀 다른 구도로 재현한 가로축 원판은 67년 만에 처음 나온다. 유명한 세로판 <구직>과 달리 이 작품은 한자로 된 ‘구직’ 푯말이 가로로 늘어진 건물 대리석 벽에 거울처럼 비치는 구도를 보여준다. 세로판 <구직>의 뒷배경에 등장하는 두 남자의 악수 장면도 우산을 들고 전면으로 걸어오는 남자가 가리고 있다. 세로판 사진을 찍기 전에 촬영한 사진임을 알 수 있다.


전시에 나온 <구직>의 세로축 사진 원본도 사실상 처음 공개된다. 현재 알려진 <구직>의 이미지들은 이 원본의 가로나 세로 풍경을 조금씩 잘라 만든 것이다. 세간에 알려진 <구직>에서는 삭제된 ‘미도파 미장원’ 간판이나 오른쪽의 옛 조선호텔 건물, 행인의 우산, 쉐보레 차량의 뒷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찍을 당시의 흐릿한 날씨나 행인들이 활보하는 시내 분위기 등을 좀 더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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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작 <시구문, 광희문, 서울>. 전란으로 전각이 허물어져 누대와 출입구만 남은 시구문 너머로 옛 왜식 주택이 보이고 문 아래에서는 서민촌의 왁자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전후 50년대 서울 사람들의 풍정을 전해주는 인상적인 사진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살롱사진으로 통칭하는 회화적 사진 작업을 하다 전쟁의 참화를 겪으면서 사회적 문제와 삶의 현장을 주목하기 시작한 임응식의 다큐사진은 고인이 명명한 대로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으로 일컬어진다. 이번 전시는 50~60년대 서울·부산 거리 연작을 통해 작가의식과 세계관, 사회상이 서로 얽혀든 그의 초기 작품을 조명한다. 한영수, 이형록 등이 살롱사진의 영향을 받아 조형적 요소가 들어간 시각으로 도시의 풍경을 조명한 반면, 그는 날것 그대로의 생활 현장을 보여주는 리얼리즘적 시선을 드러낸다. 일례로 1955년 작 <시구문, 광희문, 서울>을 보면, 전각이 허물어져 누대와 출입구만 남은 시구문 너머로 옛 왜식 주택이 보이고, 문 아래엔 서민촌의 왁자한 풍경이 펼쳐진다. 전후 50년대 서울의 풍정을 전해주는 인상적인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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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작 <청계천 사람들>. 이 사진을 통해 복개하기 전의 청계천 축대에 당시 식당들이 돌출형 메뉴 간판을 달아 손님을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60여년 전 찍을 때와 오늘날 볼 때와의 시간적 간극이 극명하게 느껴지면서 감상의 묘미를 배가시키는 작품이다.

부산 시절 작업한 1950년 작 <피란 학생>은 옛 시청 앞 광복동 들머리에 전쟁으로 피란 온 학생이 봇짐을 놓고 서 있는 장면을 통해 당대 사회의 거칠고 불안한 기류를 전한다. 1957년 작 <청계천 사람들>은 60여년 전 찍을 때와 오늘날의 시간적 간극이 극명하게 느껴진다. 복개하기 전 청계천 축대에 식당들이 ‘설농탕’ ‘곰탕’ ‘백반’ 등의 음식 이름과 값을 목판에 써내려간 돌출형 메뉴 간판을 달아 손님을 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0~50년대 서울·부산 거리 연작을 새롭게 살펴보면서 시대의 기록자로 정체성을 자리매김했던 1950년대 임응식 사진세계의 이면을 부각하는 전시다. 7월9일까지. 개막에 맞춰 도서출판 이안에서 빈티지프린트(작가가 생전 직접 인화하고 작업한 사진) 출품작 등 40~50년대 작품 100여점이 실린 대형 사진집도 펴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스페이스22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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