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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화의 원천 ‘신당’ 50곳 찾아 ‘만신’ 70명 촬영했죠”

【짬】 무속 사진 전문 박찬호 작가



한겨레

사진가 박찬호씨가 에 실린 ‘진도 뽕할머니사당 단골레 박미옥’ 작품을 들고 있다. 박미옥 단골레는 중요무형문화재 진도씻김굿 전수조교다. 곽윤섭 선임기자

십수년간 죽음에 관한 의미를 좇아 사진작업을 잇고 있는 사진가 박찬호(50)씨가 올해 1월 우리 신화의 공간인 신당과 신관(무당)을 찍은 사진집 <신당>(나미브)을 출간하고 서울의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같은 이름의 사진전을 열었다. 이 사진전은 자리를 옮겨 4월 3일부터 27일까지 부산 예술지구 피(P)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난 10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본사에서 작가를 만나 쉽지 않은 작업주제인 죽음과 신당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을 극복하려고 들었던 카메라가 한국 신화의 원천인 신당으로 향하게 된 겁니다.”


그는 2003년에 딸의 돌사진을 찍으려고 처음 카메라를 장만했지만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몇 년 뒤의 일이다. 몸과 마음이 아팠고 하던 사업도 벼랑 끝까지 밀리는 등, 모든 게 맞물려 앞이 캄캄하던 2007년 무렵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은 지경에 이르렀는데 우연히 아는 선배를 따라 안동에 가서 노인들이 갓을 쓰고 제사를 지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고 사진도 몇장 눌러봤다.


박씨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왜 제사 같은 것에 관심이 가는 걸까?” 그때부터 박씨는 전통장례, 다비식, 굿 등 죽음과 추모의 장소는 어디든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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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천리본향당 강복녀 심방(무당). 박찬호 사진집 중에서.

“모든 종류의 죽음에 관한 제의를 찍고 다녔지만 여전히 내가 왜 이걸 찍는지 몰랐어요. 종교학 관련 책들을 엄청나게 읽었어요. 카렌 암스트롱의 책들이 내 사진작업에 깊이를 제공했죠.” 박씨는 그 무렵, 초기부터 찍은 사진을 다시 한 장씩 꼼꼼하게 들여다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제의가 열리는 곳이라면 산, 바닷가, 절, 성황당 할 것 없이 어딜 가든 매번 찍어둔 것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들이 기도하는 장면이었다. 사실 제의작업이라면 그 동네의 어머니들이 기도하는 것은 한 두 컷이면 될 뿐, 나중에 쓰임새도 별로 없는데 장소와 사람만 다를 뿐, 전국 각 지역에서 어머니들이 기도하는 사진을 부득부득 찍어온 것이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던 거죠. 내가 10살 때 말기 암 환자들이 모인 병실에서 암투병하는 어머니를 간호하며 지냈는데 결국 3년 만에 돌아가셨어요. 밤마다 들리는 누군가의 비명이 죽음보다 무서웠어요. 그 아픔이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게 한 거죠.”


모친을 잃은 뒤에도 박씨의 몸에는 아픔의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계속 죽음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이 내용을 담은 ‘돌아올 귀’ 작업이 2018년 <뉴욕타임스>에 인터뷰와 함께 소개되었고 이듬해 첫 사진집 ‘귀’가 출간되었다.


“이번 사진집 <신당>과 그 전 작업의 차이요? <귀>는 순수하게 나를 찾는 작업이었어요. 나무 하나, 돌 하나, 절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안에서 나를 봤는데 <신당>은 객관적으로 나를 빼고 기록의 형식으로 남긴 것입니다.”


어머니 잃은 아픔 이기려고

30대 중반부터 카메라 들어

주로 죽음과 추모 장면 담아

‘귀’ 이어 두번째 사진집 ‘신당’ 출간

4월3일부터 부산에서 ‘신당’ 사진전

“재개발로 신당 사라져 안타까워”


사진집 <신당>에는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 곳곳에 있는 신당 50여곳에서 유형학적 형식으로 만신(곳에 따라 법사, 심방, 당주, 무녀...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70명을 찍었다. 이들 중에는 보유자와 전수조교도 있다.


“굿을 하는 장면은 그들의 동작에 집중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이번 <신당>작업의 핵심은 장소입니다. 바위, 나무, 성황당, 바닷가 등의 장소는 한국 신화와 설화의 소중한 터전입니다. 마을마다 (복을) 비는 내용과 대상이 다르니 만신의 이름이나 복장, 무가가 다르죠. 그래서 더 소중해요. 근대화, 산업화의 물결과 함께 많은 신당이 사라졌는데 이번 책엔 남아있는 마을당 중 중요한 곳은 거의 포함했어요. 책에 실린 몇 곳은 최근 3년새 사라졌고 곧 사라질 곳도 많아요. 도심 신당은 재개발과정에서 그냥 밀어버린다고 해요. 유럽과 중국에만 신화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도 천지창조를 비롯한 많은 신화가 있는데 그 원천인 신당이 없어지고 만신의 대가 끊어지면 전통문화도 사라지니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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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작가가 찍은 충남 황도붕기도당의 고 김금화 만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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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작가가 찍은 부산 상리당산의 이미영 만신. 중에서.

무당이 굿을 할 땐 무가를 부른다. 이 무가의 가사, 사설에 신화의 내용이 들어있다. 세습무의 경우 대물림하며 무가를 익히는 것인데 전수자가 없어지면 함께 사라진다. 민속학자들이 이를 채록하고 문서화한다. 박씨의 작업을 지켜본 민속학자 조성제 박사가 그동안 조사해온 마을 신당과 마을제의 내용에 박씨의 사진을 함께 실어 연말께 소논문 형태의 학술자료로 발간할 예정이란다.


“여기 만신들이 서 있거나 앉아있는 공간은 1년에 딱 한 번 마을제가 열리는 날에만 외부에 공개됩니다. 당연히 해당 만신들 또한 마을제를 하는 날이 아니면 갈 수가 없죠. 그러다 보니 이번 사진촬영을 위해 장소섭외가 아주 힘들었죠. 몇십년 만에 처음 문을 열어준 곳도 여럿입니다.”


작가는 사진집을 한 장씩 넘기며 신당과 그 장소에서 버티고 있는 만신을 하나씩 소개했다. 어느 순간 박씨의 목소리가 신이 난 듯, 신들린 듯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사실 굿이나 신당을 촬영할 때도 주변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런 소리를 종종 듣곤 했어요. 내가 흔들거리면서, 흥얼거리면서 촬영하는 모습이 마치 신들린 것 같다고요. 글쎄, 집중하다 보니 그런 것 같은 데 뭐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닙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올가을 미국에서 박씨의 ‘귀' 작업이 포토 에세이집 형식으로 미국 버지니아의 출판사 ‘알파 시스터즈’에서 나올 예정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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