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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 룸살롱에 호출하며 100만원 내기…KBS 팀장급 기자 정직

한 지역 KBS 총국, 남성 선배 기자가 여성 후배들 지속적 성희롱


피해자들, 지난해 성평등센터 개소 뒤에야 신고 접수


KBS, 성희롱 인정해 정직 6월 징계…가해자는 불복


지노위, “징계사유에 비해 징계 과도하다” 판정


“직장 내 성희롱 맥락 무시한 시대착오적 판단” 비판 나와


한겨레

ㄱ씨는 <한국방송>(KBS) 한 지역 총국의 5년 차 기자다. ㄱ씨는 동시에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이기도 하다. ㄱ씨를 포함해 해당 지역 총국 기자 3명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선배 기자 이아무개씨로부터 수차례 성희롱을 당했다. 가해자 이씨는 13년 차 기자로, 2014~2015년 지역 총국의 사회부 경찰팀 ‘캡’(팀장)으로 일하며 피해자들을 통솔했다. 몇 년 동안이나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끙끙대던 피해자들은 지난해 10월 사내 성평등센터에 신고했다. KBS는 조사 끝에 지난해 12월12일 이씨에게 정직 6월의 징계를 내렸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지난해 KBS 징계심의 결정서를 종합하면 피해 사례는 크게 4가지다. 이씨는 2014년 하반기께 ㄱ씨와 또 다른 피해자인 ㄴ씨 등을 룸살롱에 데리고 가서 회식을 했다. ㄴ씨는 “한 여성이 양주, 맥주 등을 가져왔고 단순 서빙만 했던 게 아니라 ‘쟤들(피해자들)한테도 술을 따라주라’는 가해자의 말에 내 옆에 앉아 술을 따라줬다”고 기억했다. 당시 입사 1년 차였던 ㄴ씨는 말로만 듣던 룸살롱에 왔다는 생각에 수치심이 들었고 또래처럼 보이는 여성이 술을 따라준 것이 매우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결국 ㄴ씨는 “캡, 이런 상황이 불쾌하니 집에 가겠다”고 말한 뒤 룸살롱을 뛰쳐나왔다. ㄱ씨는 “당시 ㄴ씨가 뛰쳐나간 뒤 가해자는 뭐가 문제인지를 모르고 ‘쟤가 분위기 깬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씨는 여성 후배 기자를 룸살롱에 불러내며 다른 언론사 남성 기자와 ‘100만원 내기’를 하기도 했다. 2014년 11월19일 밤 9시께, 이씨는 이미 퇴근을 한 피해자 ㄷ씨에게 전화를 걸어 “총경(경찰 간부)들이랑 모여 있으니 와야겠다”고 요구했다. ㄷ씨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팀장의 지시여서 택시를 타고 이씨가 말한 장소로 갔다. ㄷ씨는 “방 안에 들어가자 붉은색 조명 아래서 야한 옷을 입은 여성 접대부 3명이 총경 6~7명과 타 언론사 남성 기자 등에게 술을 따르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씨는 ㄷ씨에게 “네가 빨리 와서 술값 100만원을 벌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성 후배를 동시에 불러놓고 누가 더 빨리 오는지 다른 언론사 남성 기자와 술값 내기를 했다는 말이었다. ㄷ씨는 “그 말을 듣고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랐고 50대 총경들 사이에서 그들의 기쁨조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 퇴사까지 고민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여성 후배 블라우스에다가 돈을 꽂아 넣기도 했다. 2015년 5~9월 사이에 열린 보도국 단체 회식 노래방 뒤풀이 자리에서다. 피해자는 ㄴ씨. ㄴ씨는 “당시 내가 입었던 블라우스는 가슴 부분에 작은 삼각형 홈이 있었다. 인사불성 상태에서 춤을 추던 가해자가 다가와선 그 홈에다가 만원짜리 한장을 꽂아넣었다”고 말했다. ㄴ씨는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는데 곱씹을수록 가해자가 나를 노래방 도우미로 착각해서 팁을 주듯이 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수치심을 견딜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씨는 지난해 4월10일 새벽 함께 회식을 하고 헤어진 ㄷ씨에게 “사랑해 영원히”라고 적힌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ㄷ씨는 “문자를 보자마자 몸이 떨릴 정도의 수치심과 불쾌함을 느꼈고 공포스러웠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한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사 특유의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당시 입사 1~2년 차였던 피해자들이 직속 상급자인 이씨에게 문제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경찰팀의 ‘캡’은 경찰 기자들에게 취재와 보도 전 과정을 지시하고 피드백하는 자리인 탓에 피해자들은 되레 업무적으로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고 한다. ㄱ씨는 “가해자는 매우 권위적인 캐릭터로, 폭언도 잦았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야, 너라고 부르는 관계인 데다가 피해자들이 말 잘 듣는 어린 여성 후배들이라는 점도 사건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가해자의 행동을 묵인하는 보도국 분위기도 피해자들을 고립시켰다. “가해자가 ‘머리는 왜 달고 다니냐’며 보도국이 떠나가라 욕을 할 때도 그 모습을 보던 다른 선배들은 가만히 있었어요. ‘아,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ㄱ씨) 해당 지역 총국이 2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조직인 점도 피해자들이 몇 년 동안 입을 여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피해자들의 침묵에 균열이 시작된 건 지난해 초부터다. 당시 미투 운동이 크게 일어나면서 KBS여성협회가 ‘사내 성폭력 조사’를 실시했고 10월에는 사내에 성평등센터가 만들어졌다.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직장 내 성폭력을 조사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조직이 만들어진 것이다. ㄱ씨는 특히 미투 운동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 전까지는 말해봤자 달라질 게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미투 운동을 보면서 ‘아, 문제 제기를 해야 세상이 바뀌는구나’를 느꼈죠. 우리처럼 정규직 기자들조차도 말을 못하고 있었잖아요. 우리가 목소리를 내서 또 다른 피해자를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는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두 달에 걸친 조사 과정에서 이씨는 물적 증거가 있는 문자 메시지의 경우 발송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성적인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나머지 신고 내용 대부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신고 자체가 사내 갈등으로 인해 불거진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KBS 중앙인사위원회(인사위)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행위는 피해자에게 성적 혐오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므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인사위는 징계시효 2년이 지나긴 했지만 룸살롱에서 회식을 진행하고 100만원 내기를 한 점, 블라우스에 돈을 꽂아넣은 점 등이 모두 사실로 인정되며 이 역시 성희롱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업무상 위계관계나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으로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즉시 신고하기 어려웠던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징계시효가 지난 나머지 사건들도 징계 수위를 정하는데 참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씨는 ‘정직 6월 징계가 과하다’며 특별인사위원회(특별인사위)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특별인사위는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특별인사위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으며, 허위로 가해자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징계는 내려졌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시선 때문이다. ㄱ씨는 “시작부터 이 사건을 감정싸움 정도로 보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며 “정당한 문제 제기인데 ‘팀장과 사이가 안 좋았어?’ 이런 식으로 묻는 것 자체가 상처가 됐다”고 토로했다. 언젠가 다시 이씨와 마주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여전하다. 회사는 신고 직후 피해자와 가해자를 즉시 분리했다. 문제는 정직이 끝난 뒤다. 피해자들은 회사에서 가해자를 “지역 정책 관련 부서로 보내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 대부분이 지역에서 근무 중인 상황에서 해당 부서의 업무가 피해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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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소식은 또 있다. 지난 5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가 회사가 가해자에게 내린 정직 6월이 ‘부당정직’이라고 판정한 것이다. 이씨는 앞서 지난 3월 지노위에 구제를 신청했다. 지노위는 일단 “문자 메시지는 가해자 의도와 상관없이 성희롱에 해당하므로 징계사유가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지노위는 “나머지 사건들은 징계시효가 지났고 피해자들의 진술과 전문 증거만이 존재하며 날짜와 장소가 특정되지 않는다”며 “징계사유에 비해 징계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KBS는 지노위에 “미투 운동 등 최근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됐고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고 있어 성 관련 징계사유가 발생하면 보다 강화된 처분을 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지노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납득이 가지 않는 결과”라고 반발하고 있다. ㄱ씨는 “사건 당시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증거를 남겼겠지만 그런 게 아니지 않나”라며 “우리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자체가 2차 가해”라고 주장했다.


여성단체들도 지노위 판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직장 내 성희롱은 사건 하나가 핵심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건이 발생함에도 피해자들이 아무런 조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며 “지노위가 이러한 맥락과 환경을 무시한 판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미투 운동 이후 보다 강화된 처분을 하고 있다는 KBS의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지노위가 시대적 요구를 무시한 것과 마찬가지이며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8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지노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노위의 판정은 직장 내 위계관계에서 성희롱이 발생하고 유지되는 맥락을 철저히 무시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예정이다.


KBS 역시 <한겨레>에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하여 무관용의 원칙으로 엄중히 대응하고 있다”며 “이번 지노위 결정은 성희롱 사건의 특수성과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불복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가해자 이씨는 7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회사 조사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피해자 쪽 진술만 인정하는 등 부당한 점이 있었다”며 “지노위에서도 이 점을 인정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씨는 회사의 징계 자체는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정직 6월은 과하다는 입장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보이지 않으니까요.”(ㄱ씨) 그런데도 피해자들이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뭘까.


“기자들은 남에 대한 비판은 잘하면서 자신에 대한 비판은 잘 못 받아들이잖아요. 스스로 부조리와 싸우는 투사처럼 여기지만 정작 자신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또 문제를 지적했을 때도 제대로 반성하는 일에 미숙한 것 같아요. 비단 KBS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이 그렇잖아요. 이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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