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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식물 덕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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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반려식물]


중장년층 취미였던 식물 키우기

최근 SNS 타고 20~30대 인기몰이 중

적은 비용으로 ‘생명력’ 확인하는 즐거움

반려동물보다 부담 적다고 생각

플랜테리어(식물+인테리어), 식물 카페 인기도 한몫

한겨레

<식물 저승사자>의 저자 정수진씨가 운영하는 식물 가게 ‘공간 식물성’에 있는 아름다운 식물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장면 1

리본이 묶인 화분이 줄지어 회사로 들어온다. 회사 높은 사람들 인사가 나면, 승진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적힌 리본을 매단 난 화분 배달이 시작된다. 그렇게 새로 들어온 식물 식구들은 회사 높은 분들의 운명과 비슷한 희로애락을 겪는다. 처음에는 책상이며 사무실 창가를 에워싸듯 파릇한 이파리의 화분들이 늘어섰다가, 다음번 인사 때 회사 높은 분이 자리를 떠나게 되면 어느새 시들어버린 주인 잃은 화분들은 애물단지가 되곤 한다. ‘화분 버리실 분은 금요일까지’ 같은 공지가 회사에 한 번 돌면, 어디 있었는지도 몰랐던 누렇게 뜬 화분들이 곳곳에서 출현한다. 누군가는 버려진 화분들을 분갈이에 쓰겠다며 집으로 가져갔고, 누군가는 욕을 하면서 흙을 버리고 죽은 나무를 버렸다. 그리고 새 윗선 인사와 더불어 난 화분이 줄지어 회사로 다시 들어온다.

# 장면 2

아버지의 취미생활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식물 가꾸기였다. 너무 잘 자라서 ‘악마의 아이비’라는 별명이 있다는 스킨답서스는 거실의 티브이를 에워싸듯 자라곤 했다. 주말이면 욕실로 옮겨 샤워를 한 번씩 시켜주고, 해가 잘 드는 자리에 있는 화분과 주기적으로 위치를 바꿔주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 인생에 일도 자식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식물은 정직하게 정성 들이는 만큼 커나가는구나, 가족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장기입원을 한 뒤 아무도 돌보지 않아, 마법 같은 생명력을 지녔다는 스킨답서스조차 이파리가 다 누렇게 뜨고 말라 죽었다.


이렇듯 식물 가꾸기는 오랫동안 어르신들의 취미생활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플랜테리어’(식물을 이용한 인테리어), ‘반려식물’ 같은 표현들과 더불어, 최근 에스엔에스(SNS)의 인기 트렌드 중 하나는 ‘#식물’이다. ‘난을 친다’는 표현은 2030세대의 식물 가꾸기 문화에서는 인기가 없다. 사진으로 본, 커다랗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이파리의, 한국에서는 도통 볼 일이 없던 수입 식물들을 ‘직구’해서 기르고, 아예 싹을 틔우는 단계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식용작물 재배가 주요 목표인 ‘도시농부’와는 다르다. ‘도시농부’가 집 밖의 텃밭을 무대로 한다면, 지금의 식물 가꾸기는 도심의 아파트나 빌라에 딸린 베란다나 작은 창문으로 드는 햇살이 닿는 단칸방의 한구석에서 시작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생명을 집 안에 들이고 싶지만, 반려동물을 돌보기는 여의치 않기 때문에, 자기 파괴적이지 않은 몰두할 거리가 필요했는데 마침 들인 화분 하나를 돌보는 즐거움에 푹 빠져서, 큰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생장의 과정을 묵묵히 따라가는 즐거움이 가능해서, 사진으로 본 특이한 식물이 궁금해서 등. 게다가 힙하다는 카페 인테리어 중 식물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현실의 공간(카페)과 인터넷상의 공간(SNS) 모두에서 갑작스러운 식물 열풍이 부는 셈이다. 출판계에서는 식물 에세이가 붐이다. 새로운 ‘식물인간’의 탄생. 이전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이다혜 <씨네21> 기자·작가 krapple@cine21.com,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반려식물

애완동물이라는 표현을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반려동물이라는 표현의 연장선에서 등장한 표현. 식물을 잘 돌보는 것을 시작으로, 식물과 교감하고 마음의 평온을 구하며, 식물과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가족처럼 지내며 성장한다는 의미에서 식물 애호가들이 쓰기 시작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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