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혀 나온 걸 또 요리하니 얼마나 맛있게요
돼지창자 안 다양한 속재료 담아
몸에 안 좋다는 가공육 중 최고
그을리고 껍질 찢어져야 제맛
고춧가루 뿌려 맵게 구운 소시지와 달걀프라이 안주. |
예전에 독일 어느 도시에 앉아 있었다. 메뉴에 수십 가지가 있었는데 영어 병기가 안 되어 있어서 직원에게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올 소시지!”
조리법은 삶고 굽고 찌고 훈제하고. 모양은 굵고 가늘고 짧고 길고. 뉘른베르크니 프랑크푸르트니 분데스리가 축구에서나 들어본 온갖 도시 이름이 메뉴에 같이 적혀 있기도 했다. 역시 독일은 순대, 아니 소시지의 나라였다. 이탈리아는 세계에 파스타를 수출하고 독일은 소시지를 수출한다. 미국 같은 다른 권역은 모르겠지만, 유럽 안에서는 그렇다. 길에는 벤츠와 폴크스바겐(폭스바겐)이 굴러다니고 식당에서는 소시지를 판다.
삶아서 낸다는 소시지와 맥주를 주문했다. 커다란 김치단지 같은 항아리를 내오길래 설렁탕이 나오나 했다. 그 단지 안에 뜨듯한 맹물이 가득했고, 손가락처럼 작은 소시지가 가득 들었다. 아무리 꺼내 먹어도 계속 나왔다. 화수분 소시지였다. 어른 손가락만 한 게 10개도 넘었다. 뽀득뽀득한 걸 씹었다.
몇해 전에 방송에 나갔다. 전현무가 진행하고 독일인 다니엘 린데만이 패널로 나와 앉아 있었다. 전현무가 내게 “코로나 동안 식당도 안되고 뭐 하고 지냈느냐”고 물었다. 책 ‘독일 음식 문화사’(니케북스)를 보고 있다고 했다. 다시 “뭔 내용인데?” 물었고 내 대답은 이랬다. “역시 독일은 소시지의 나라더군.”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전에 물린 입맛 ‘쏘야’의 혁신
소시지는 그 자체가 그릇이다. 창자가 그릇 역할을 한다. 안에다 무얼 넣든 다 요리가 된다. 선지피도, 견과류도 넣는다. 본디 돼지창자에 돼지고기를 넣는 걸로 시작된 소시지는 점차 잔머리를 굴리게 된다. 닭이나 칠면조도 넣고, 온갖 부스러기를 다 넣어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값이 싸지고 원하는 다른 맛을 낼 수 있었다. 요새 말하는 융합과 창조의 요리다. 밍크코트 수요가 넘치자 우리나라는 밍크토끼라는 걸 수입했다. 농촌에 분양했다. 털은 어찌어찌 가공해서 수출했는데 고기가 문제였다. 한때 우리가 토끼고기 소시지를 먹었던 이유다. 유전적으로는 안 되는 종의 배합도 소시지는 문제없다. 닭고기에 돼지고기, 소고기를 한 데 섞는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소시지는 창조주처럼 이리저리 섞고 배합한다. 소시지는 놀랍게도 이미 익혀서 파는데도 사람들은 그걸 또 따로 요리한다. 정육점에 가서 돼지수육이나 로스트비프를 사서 또 익혀 먹을 궁리를 하는 사람은 없다. 소시지는 다르다. 2차 요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앞에서 말한 식당은 데치고 삶아서 항아리에 푹 담가내고 구워내고 튀겨냈다. 그게 소시지의 열린 결말이다. 그 창자 안에 무얼 넣든 자유이고(팔리는 건 다른 문제이지만), 그걸 또 어떻게 요리하느냐는 또 자유다.
20년도 넘게 옛날부터 잘 아는 요리사 후배가 있는데, 초년 시절에 요리사들도 비슷한 걸 묻는다. 넌 어쩌다 요리사가 되었니. 다른 후배들은 기억이 안 나는데, 녀석의 답은 아직도 생생하다.
“제가 동네 건달을 했어요. 건달 형 중에 손 씻고 호프집에서 요리사가 된 사람이 있었어요. 놀러 갔는데, 주방에서 프라이팬에 뭘 볶는 걸 보게 됐어요. 소시지와 채소를 척척 썰어서 소스를 붓고 볶는 거 말이에요. 그게 나중에 ‘쏘야’라는 걸 알았지요.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요리사 시켜달라고 했죠.”
쏘야는 학사주점 말기에 나온 안주였다. 맨날 파전이나 동태찌개 안주에 물린 손님에게 혁신이었다. 새콤한 케첩과 아삭한 양파에 소시지 조각이 굴러다니는 쏘야는 멋진 안주였다. 입가에 케첩을 묻히며 생맥주를 마셨다.
소시지는 지금도 호프집이나 치킨집에서 흔한 안주다. 서울 강남 잘 나가는 와인바에서도 판다. 폼 나는 수입 살라미며 살루미, 파스트라미 같은 걸 안주 목록에 놓고 있는데 ‘걍’ 한국식으로 막 굽거나 튀겨서 겨자 곁들여주는 게 인기 있다. 사실 우리가 폼은 잡고 있지만 입맛은 또 따로 있는 거다. 강남에서 수백만원 하는 술상 마신 사람들이 뛰쳐나와 가는 곳이 어디겠나. 순댓국·해장국이지.
에어프라이어로 간편하게
하여튼 나도 소시지 많이 먹었다. 가공육 많이 먹으면 병 걸린다고 하도 인터넷·신문에서 협박을 하는데도 꿋꿋하게 먹었다. 이탈리아에서 살 때는 그 좋다는 프로슈토·살라미 다 먹었지만 내 입에 제일 맛있는 건 독일식 소시지였다. ‘뷔르스텔’이라고 통칭한다. 원래는 한 상표였는데, 나중에 독일식 소시지의 일반명칭이 되었다. 소시지를 살 때는 딱 하나, 돼지고기 함량만 본다. 육색 빨갛게 낭창하고 돼지고기 많이 들어간 게 맛있다. 한국 소시지는 예전에는 어묵급이었다. 요새도 옛날 소시지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닭이 들어간 게 좀 있고 나라가 좀 살 만하고 돼지사육도 많이 하니 대부분 돈육 함량이 좋다. 요새는 에어프라이어가 있으니 요리가 손쉬워졌다. 칼집 내서 팬에 뒹굴뒹굴 굴려가며 익혀도 좋지만 에어프라이어에 맡기면 손쉽다. 팬에 구울 때 재미가 있다. 칼집을 안 넣고 통째로 구우면 소시지 안의 수분이 팽창해서 소시지 껍질이 툭, 투둑 하고 헐크 윗도리 찢어지듯이 터지기 시작한다. 에어프라이어에 넣으면 요 재미는 없지만 편하고, 기름 튀지 않게 구울 수 있다.
소시지를 요리할 땐 팁이 있다. 이미 익혀서(쪄서 포장한 것) 나오므로 오래 익힐 필요 없다. 하지만 맛나게 보이려면 그을리고 껍질이 찢어지는 맛이 있어야 한다. 소시지는 간이 이미 완벽히 되어 있다. 어떤 건 상당히 짜다. 채소를 충분히 곁들여서 염도를 조절해주는 게 좋다. 석쇠에 걸어서 가스레인지에 구우면 툭툭 터지면서 기막힌 직화구이가 된다. 맛도 아주 좋다. 직화 못 이긴다. 물론 캠핑 가서 숯에 구우면야…. 소시지가 몸에 나쁘다는 그런 말에 너무 민감할 필요 없다. 담배 피우고 소주 마시고 길에 나서면 미세먼지가 폐를 찌르고 나라 엿 같아서 머리 터지는 거 비하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춧가루 뿌려 맵게 구운 소시지와 달걀프라이 안주(2인분)
재료 : 소시지(돈육 함량이 80% 이상인 것) 4가락, 고춧가루, 후춧가루 약간, 파 반 줄기, 양파 반 개, 달걀 2개
1. 에어프라이어를 켠다. 180도, 5분 조리로 맞춘다. 예열된 동안 소시지에 칼집을 낸다.
2. 양파와 파를 대충 잘라서 에어프라이어 바닥에 깐다. 소시지를 올린다.
3. 그사이에 프라이를 한다.
4. 고춧가루와 후춧가루를 뿌려서 안주한다.
*겨자·케첩 찍어 먹어도 물론 맛있다. 디종 머스터드 같은 것도 좋다. 막걸리에는 안 마셔봤다. 맥주나 소주지.
글·사진 박찬일 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