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저샐러드’ 근본 따지지 말고…아삭한 상추에 뭐든 올려 드시라
[ESC]
바삭한 빵조각 올려 화룡점정
이탈리아에선 생소한 메뉴
멕시코서 북미로 퍼져 대중화
시저샐러드. 박찬일 제공 |
다음 중 이탈리아 음식이 아닌 것은? (정답은 맨 뒤에 공개)
1. 파인애플 피자 2. 알프레도 스파게티 3. 크림 카르보나라 4. 시저샐러드.
섬유질의 나라 한국
세계에서 ‘풀’을 제일 많이 먹는 나라는? 아마도 한국일 듯하다. 유럽 여행 다니면 섬유질 부족으로 고생을 많이 한다. 감자도 채소라면 할 말이 없지만 풀이 제대로 나오는 나라가 어디 있나. 나는 유럽을 간다면 공포가 먼저 밀려온다. 풀! 풀을 다오. 아예 오전에 작은 마트에 가서 러시안샐러드를 한 봉지 산다. 뭐 대단한 게 아니다. 채 썬 양배추와 당근, 그리고 마요네즈소스가 들어있는 거다. 한국에선 늘 풍성한 푸성귀로 가득한, 적어도 김치가 있는 식탁을 즐기다가 타국에서 건더기 중심 식탁을 만나면 우리 속이 고생한다. 무슨 소리냐고? 샐러드 시키니까 아주 한 대접 푸짐하게 주던데? 맞다. 그냥 나오는 반찬만으로도 충분한 섬유질을 보장받는 한국과 달리 타국에선 따로 주문해야 한다. 심지어 채소 많이 먹을 것 같은 일본이나 중국도 따로 시키지 않으면 채소 구경이 어렵다. 일본애들이 양배추 딸려 나오는 돈가스나 숙주 가득한 라멘을 기를 쓰고 먹는 것도 섬유질 챙기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어쨌든 공짜 채소가 가득한 한국 식탁은 그저 고마울 뿐.
예전에 여러 외국인과 유튜브를 찍었는데 대화 주제가 한국과 다른 자국 음식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인도 친구는 카레 같은 건 인도에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미국 친구가 말했다.
“한국 햄버거가 미국보다 훨씬 좋아요. 토마토도 주거든요.”
미국 버거엔 토마토가 없다니! 현지인의 말이니 믿을 수밖에 없었고 출연자들은 그를 위로했다. “대신 너희는 엔비디아가 있잖아”라고.
간단한 전채 요리도 샐러드
샐러드 예찬론자가 많다. 아삭아삭하고 싱그러운 채소들, 즙 많은 줄기를 씹고, 향 좋은 기름과 레몬즙에 버무린 드레싱을 찰싹찰싹 이파리에 붙여낸 솜씨를 맛보는 즐거움. 더구나 먹는 속도에 비해 칼로리는 낮고, 건강함을 먹는다는 심리적 안도감도 얻으니까 좋다.
물론 섬유질로는 한국 나물에 안 되지. 큰 볼에 담긴 샐러드라고 해봐야 나물처럼 삶으면 한줌도 안된다. 그래서 식당에선 샐러드 팔면 마진이 남아서 좋아한다. 부피는 크지, 조리도 거의 없지, 건강에 좋아 보이기도 하니까 말이지. 한국식의 싱싱한 풀 가득한 샐러드는 서양의 고급식당에선 잘 만나기 어렵다. ‘푸성귀는 집에서도 얼마든지 구해 먹을 수 있는데 굳이 식당에서까지?’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때문에 샐러드를 팔자면 별난 푸성귀, 트뤼프(트러플)처럼 귀한 것, 손이 많이 가고 기발한 토핑 따위를 내야 한다. 돈값 하려면 애를 쓰는 거다. 오래전 일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있을 때 여러 가지 음식 문화 충격을 겪었다. 내가 알던 이탈리아식 내지는 양식의 상식은 그 나라에 거의 없었다. 크림 카르보나라가 없는 것처럼. 그중 하나는 샐러드 메뉴였다. ‘샐러드=싱싱한 날것의 풀’이란 상식은 맞지 않았다. 풀 한점 곁들이지 않고 그저 익힌 새우도 샐러드, 구운 버섯도 샐러드라 부르는 게 아닌가. 물론 전통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샐러드도 주문할 수 있었지만 대개는 미국인 손님의 특별 주문이었다. 간단한 전채 요리를 샐러드라고 부른다는 것, 풀 가득한 그린 샐러드는 고급식당 메뉴에 대개 없다는 것이 그 시절의 놀라움이었다.
아, 오늘의 주제인 시저샐러드는 이탈리아 메뉴가 아니어서 애초에 없다. 또 모르지. 이탈리아 사람들이 김치도 담가 먹는 세상이니까. 말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이탈리아에는 김치를 어찌어찌 배워 담가 먹는 현지인들이 꽤 있다. 한 요리동호회 사이트를 보니 이런 질문이 있었다.
“김치를 담글 때 전분을 넣는 이유는 뭔가?”
그러자 어떤 이가 답을 달았다.
“발효를 촉진하여 맛을 좋게하고 농도를 낸다.”
한국인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꽤나 전문적인 내용을, 자국 음식에 대해 국수주의적인 이탈리아인들이 이해하고 있다.
시저샐러드는 멕시코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1924년 시저라는 이름을 가진 멕시코인이 만든 게 효시라고 위키에 나온다. 미국인 관광객이 그 맛을 좋아해서 북미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시저란 이름은 물론 로마의 시저에서 따온 거다. 이탈리아나 남미 사람 이름으로 흔하다. 시저는 미국식 발음이고, 이탈리아에선 체사레라 부른다. 내가 살던 이탈리아 하숙집 주인도 체사레였다. 좀 옛날에 유행한 이름이어서 요즘 젊은이 이름으로는 드물다.
시저샐러드는 레터스 상추(로만 레터스를 쓰는 게 고전이라 흔히 로메인이라고 부른다)와 소스로 만든다. 오만가지 소스 레시피가 있는데 기본은 마요네즈에 레몬즙, 가루치즈, 후추, 안초비다. 무얼 더 넣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저 정도면 충분하다.
시저샐러드는 어차피 ‘근본 없는’(?) 음식이니까 뭐든 올려서 먹어도 좋다. 구운 베이컨이나 살라미, 생햄, 생 모차렐라치즈, 부라타…. 최고의 킥은 물론 크루통이라 부르는 비스킷 같은 빵조각이다. 여름밤, 시원한 맥주나 와인에 먹기 딱 좋다.
앞에서 낸 문제에 대한 정답 : 답이 없다. 전부 이탈리아 음식이 아님. 물론 이탈리아에서 파는 곳이 있을 수도 있다.
시저샐러드 2인분
로메인 상추 100g(로메인이 단단해서 샐러드 하기 좋다. 일반 상추는 물러서 별로)
마요네즈 50g, 레몬즙 10g, 가루치즈 25g
안초비 2필렛, 치아바타(바게트) 30g, 후추
1. 상추는 낱장으로 씻어 물기 뺀다.
2. 빵을 가로·세로 2㎝ 크기로 잘라 기름을 바른 뒤 에어프라이어에서 7~8분 갈색으로 구워낸다.
3. 마요네즈, 레몬, 가루치즈 절반, 안초비를 다져서 잘 섞는다.
4. 상추를 먹기 좋게 썰고 3번의 소스와 2번의 크루통을 얹어낸다.
*쌉쌀한 크래프트 맥주와 잘 어울린다.
글·사진 박찬일 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