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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붓고 끓이면 끝! 얼마나 맛있으면 이름도 ‘맛조개’일까 [ESC]

[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맛조개


순천에선 ‘맛조개’를 ‘맛’으로 표기


해감 뒤 구워먹거나 술찜으로


남은 국물에 라면·죽 요리 추천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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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 요리 유학을 갔던 후배가 있다. 그가 경제 형편이 넉넉해서 유학을 간 건 아니었다. 전세금 빼서, 저축 헐어서 갔다고 한다. 다녀오면 무슨 큰 수가 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십몇 년 전만 해도 요리 유학은 ‘황금의 훈장’ 비슷했다. 서울 강남의 가게에 ‘수료증’이나 졸업증서를 진열해놓은 경우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하기 싫어도 주변에서 권했다. ‘다녀 온 것도 벼슬이고, 네 공인데 왜 낯을 가려’ 그랬었지. 후배가 유학을 다녀왔다기에 만났다. 그는 울상이었다. 정해진 ‘스타쥬’(견습)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귀국했다. 참을성이 많고 진득한 친구여서 뜻밖이었다.


“매일 온갖 해산물 손질하는 게 일의 전부. 특별한 기술도 없어요. 셰프가 나보다 생선포 뜨기를 못해요. 조개 닦고, 오징어 분해하고, 가재 반으로 자르고, 가자미 비늘 벗기고 내장 따내는 게 일의 전부였어요. 소스도 없다니까요. 그냥 올리브유에 소금 발라서 그릴에 굽는 걸 그렇게 좋아해요. 소스가 없을 수밖에요. 소스 자체에 관심도 없어요.” 그의 실망이 이해됐다. 거창한 무슨 소스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특별한 생선 손질, 이를테면 2미터짜리 청새치 배라도 따는 특수한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생선에, 해산물에 기름 바르고 소금 쳤다고?




하지만 남부 유럽,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그리스의 해산물 요리라는 게 대부분 그렇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재료의 맛을 살린다”는 얘기가 사실이다. 외부인에게는 다양한 해산물 요리 기술을 쓰기 싫어서 하는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맞는 말이다. 손 안대고 만든 그쪽 나라의 해산물 요리가 얼마나 맛있는지.(하기야 그들은 소고기도 그냥 구워서 소금 후추만 뿌려먹는 게 일반적이다. 소스?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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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가면 미슐랭 별이 달려 있어도 거의 소스를 치지 않는다. 정말로 최소한이다. 정말 좋은 재료가 있다면 소스는 군더더기이거나 방해물이다. 아마 동의할 거다. “최소한의 개입만 하는 게 맛있는 요리”라는, 이제는 진부한 듯한 이 선언이 한때 한국에도 무지하게 퍼졌다. 고급요리엔 이런저런 기술과 기합을 넣어 만든다는 요란한 소스가 동반한다는 선입견이 무너진 지 오래지만 예전엔 고급 식당이라면 소스가 필수였다. 안 되면 토마토소스라도 발라야 했다.


올해 4월 초에 전남 순천에 갔더니 시내에 괜찮은 술집마다 비슷한 메뉴를 팔고 있다. 대충 종이짝에 휘갈기듯 써붙여 놓았다. “맛 2만원.” 맛? 그래, 맛조개를 ‘맛’이라고 써놓았다. 맛있어서 ‘맛’이라는. 왕년에 갯벌이나 모래밭에서 소금 살살 뿌려서 잡던 추억을 가진 나이 든 독자들이 있을 거다. 봄에는 조개다. ‘맛’은 그 조개 중에서 최고다. 예전에 봄이면 시장에 조개들이 마구 쏟아졌다. 바지락을 위시해서 백합과 상합, 중합 같은 비슷한 조개들. 그보다 일찍 나오는 게 새조개이고, 바지락 맛이 떨어지고 더워질 때 쯤이면 피조개가 나왔다.


조개는 번식도 잘 하고, 그 시절 어촌의 여성노동력이 헐했던 걸 증명하듯 조개도 아주 쌌다. 그것도 다 안 팔려서 동네에 함지를 이고 팔러 다니는 아낙들도 많았다. 다 옛날 얘기다. 지금 캘 사람도 없고 조개도 씨가 말랐다. 그래도 무슨 행운인지 봄에 순천에는 맛이 지천인가 보다.


“와온(면)에서 잔뜩 나와요. 순천 사람들은 이맘 때면 맛조개 먹는 게 당연한 일이요.” 순천 맛조개 음식점 주인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순천시 순천만, 여자만에서 ‘맛’이 많이 나오는 모양이다. 인터넷에서도 판다.


조개는 가장 단순하게 요리하면 된다. 해감하고 잘 씻고. 가능하면 낡은 칫솔이나 전용 솔로 조개껍데기를 잘 닦아주는 게 좋다. 찬물에 넣어 바락바락 쌀 씻듯이 비벼대는 방법도 있는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귀찮더라도 솔을 쓰자. 아참, 깨진 조개는 죽었거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버리는 게 좋다.


해감은 동전을 넣네, 뭘 하네 온갖 말들이 많다. 그만큼 해감이 완벽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몇 가지만 지키면 괜찮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물 1리터 기준으로 소금 30그램 정도를 넣으면 된다. 요즘 같은 날씨라면 상온에서 두세 시간 해감하면 된다. 해감하는 그릇 위에 뚜껑을 씌워서 컴컴하게 해주는 게 좋다. 그 다음에 잘 씻어서 요리한다. 그래도 모래가 씹힌다? 그건 별 수 없다. 완벽한 해감은 어려운 일이다.




맛조개는 해감한 뒤 숯불 피워서 그대로 철망이나 석쇠 얹어 굽는 게 최고다. 조개구이집에서 하듯이. 그러나 가정에선 불가능한 일. 그러니 술찜을 만들자. 마늘 몇 톨과 파 정도면 충분하다. 먹다 남은 소주나 청주가 있으면 조금 넣어도 좋다. 싱싱한 놈은 술을 안 넣어도 비린내 없고 깊은 맛이 잘 난다.


맛조개를 냄비에 넣고 자작하게 조개가 잠길 듯 말 듯한 정도까지만 찬물을 붓는다.(중요하다! 물을 많이 부으면 맛이 없다. 술을 넣으려면 이때 같이 넣는다) 끓어서 맛조개 한두 개가 입을 벌리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끈다. 다져둔 약간의 마늘과 파를 뿌려라. 뚜껑을 덮어두면 잔열로 충분히 익는다. 조개는 많이 익히면 질기다. 살을 발라 먹으면 된다. 그냥 먹어도 좋고, 초간장을 만들어 찍어먹어도 좋다.


맛조개는 살점이 큰 조개라 먹을 게 많다. 인터넷에서 1킬로그램 당 2만원선에 판다. 둘이서 먹기 딱 좋다. 양을 늘리려면 바지락을 1킬로그램 같이 사서 함께 요리해도 된다. 요새 바지락은 알이 상당히 굵어서 까먹는 재미가 있다. 먹고 남은 맛과 국물은 물을 더 부어서 라면이나 칼국수를 끓이면 완벽하다. 찬밥이나 즉석밥을 그대로 넣어서 진간장 한 숟갈 뿌려 죽을 만들어 먹어도 물론 맛있다. 술은 차가운 소주나 매실주 추천. 물론 맥주도 좋고, 하이볼도 오케이.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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