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먹은 전복이 비릿한 건 요리사 때문이다
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시장 상인 상술에 잔뜩 사온 전복
내장은 쪄서 된장 소스에 ‘찍먹’
포 뜬 살은 식해 만들어 기다리기
전복 회. 박찬일 제공 |
시장에서 전복 열두마리를 샀다. 뭘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당에 설치하는 유아용 풀장 같은 천막 재질로 임시 수조를 만들어 전복을 잔뜩 풀어놓은 상인이 그저 “왕전복 5마리에 만원”이라고 써 붙여 놓았기 때문이었다. 왕전복은 어느 정도 크기일까. ‘왕’이란 수치는 아주 가변적이다. 파는 주인이 정한다.
하여튼 나는 다섯마리를 사려고 했다. 몇마리는 회를 뜨고, 몇마리는 버터구이 하고 이런 계산도 없었다. 나는 5천원에 세마리만 달라고 흥정을 할 위인이 애초에 아니었다. 내 옆의 어떤 이는, 수많은 전복의 밭에서 돼지처럼 살이 찌거나 아니면 프로야구 대주자처럼 빠릿빠릿 움직이는 놈을 손가락으로 뒤적거리며 찾아내고 있었다. 나야, 주인이 담아주는 대로 봉지를 받아들 심산이었다. 상인이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다섯마리 더 들여가. 두마리 더 줄게.” 나는 홍성대 ‘수학의 정석’을 맨 앞의 ‘수와 식’ 부분까지만 열심히 했던 인간이지만, 저 정도 계산은 할 줄 알았다. 으음, 그럼 만원당 여섯마리를 사게 되는 것이야. 나는 이익을 보고 있는 셈이지. 역시 투자는 코인보다는 전복이지.
전복을 길러볼까 하다가…
상인이 담아준 전복 열두마리는 이미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 물차(활어를 담아 이동하는 수송차)를 타고 왔다고, 전복 크기가 비슷하다고, 활력도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미 만성이 된 디스크 5번, 6번 탈출증에 오십견이 덜컥 찾아왔으며 지팡이 감으로 어떤 재질이 좋을지 쇼핑몰을 뒤지는 나 같은 놈이 있는가 하면, 강철 부대에 나가도 될 녀석들도 섞여 있다. 나는 나 같은 놈만 열두 녀석 끌고 온 게 분명하다. 손가락으로 눌러도 조금 꿈틀, 하면서 아직은 살아 있다는 표시를 귀찮은 듯이 하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혹시나 해서 다른 녀석을 쿡 찔러보자 그는 귀찮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그게 그거여. 뭘 자꾸 찔러 쌓고 그려.” 완도산이라는데, 왜 충청도 말을 했는지는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혹시 충청도 자연산?
하여튼 그렇게 해서 내 주방에 다 죽어가는 전복 열두마리가 분양되었다. 그걸 수조에 넣고 살려서 기를 수도 있을 것이다. 먹이란 뻔하다. 염장한 미역이나 다시마를 헹궈서 넣어주면 충분할 것이다. 뭘 먹는지 모르는 개구리나 카나리아 같은 것과는 다르다. 가볍게 구할 수 있는 걸 먹는다. 전복 업자가 선전하는 것 중 하나는 전복이 다시마와 미역만 먹고 사는 청빈한 개체라는 점이다. 그렇다. 항생제를 마구 뿌릴 것 같은 불안도 없고, 엄청나게 뭔가 동물성을 먹어대어 지구 환경에 부담을 줄 것 같지 않다는 이미지 아닌가. 하여튼 미역이나 다시마는 싸고, 사기 쉽다. 그러니 기르기도 쉬울 것 같았다. 게다가 녀석들이 짝짓기하는 장면이라든가, 야행성이라는데 밤에 몰래 다시마를 갉아먹는 걸 적외선카메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린다거나 하는 걸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배가 고팠다. 무엇보다 안주를 기다리는 소주 두 병이 있었다. 소주는 언제나 갑이다. 깨어질지언정 모자를 따이고 빈 병이 되는 순간에도 꼿꼿하게 서서 안주를 거느리고 산다. 비싼 오마카세 소갈비짝을 굽더라도, 사람들은 소주를 앞세운다.
전복. 게티이미지뱅크 |
“이봐, 소주나 한잔 하자고. 갈비나 구워서.” 여담이지만, 코스 메뉴에 기십만원 하는 청담동이나 별 여섯 개짜리 호텔 프렌치 식당에도 한 달에 몇 명은 이런 요청을 한다. 진짜다. 돈이 없어 그런 게 아니다. “이봐요, 소믈리에. 내가 와인을 못 마셔. 소주 좀 어떻게 반입해주면 안 되겠나?”
나는 소주에 바칠 안주가 필요했다. 전복을 설득했다. 전복은 숟가락으로 쉽게 딸 수 있다. 내장을 터뜨리지 않고 따는 게 좋지만, 그냥 숟가락을 넣어 힘을 주면 어떻게든 껍질에서 분리된다. 내장은 보통 참기름에 볶아서 죽을 끓여 먹는데, 나는 좀 다르다. 끓는 물에 술을 넣고 5분간 쪄서 찬물에 담가 식힌 뒤 멸치육수와 식초를 넣은 된장에 찍어 먹는다. 이거, 별미다. 전복 열두마리의 내장이면 소주 두어병은 먹을 수 있다. 아니면 찬밥 한술, 마늘과 함께 참기름에 볶아서 곱게 간 뒤 소스를 만들어 전복살 데친 것을 찍어 먹어도 맛있다.
기다렸다 먹는 전복식해의 맛
전복살은 식해를 담갔다. 귀찮은데, 신경을 썼다. 좀 기다렸다 먹는 안주도 필요하다. 살을 얇게 포로 뜬다. 가능하면 잘 드는 칼이 좋다. 전체 분량의 5%쯤 되는 소금으로 4시간 절였다가 전복 양의 세배쯤 되는 무를 나박썰기하여 고춧가루, 액젓, 찬밥 서너 숟가락을 넣어 냉장고에서 하루이틀 둔다. 엿기름은 옵션, 이른바 전복식해다. 옛날엔 정말 부자들만 먹었을 것이다. 요새는 저쪽 동해안의 서민들이 먹던 가자미식해가 더 비쌀 수도 있다. 만원에 왕전복을 여섯마리나 살 수 있는 세상이다. 제주도에서는 전복 따서 바치라는 관의 가렴주구에 남자들이 다 도망을 갔다고 했다. 그렇게 귀했다. 귀하면 비싸다. 요새 전복은 만만하다. 라면에도 넣더라.
아 참, 전복을 먹고 비리다고 생각한 분들은 게으른 요리사가 썬 걸 먹어서 그렇다. 전복은 아주 꼼꼼하게 솔로 닦아야 한다. 얼룩덜룩한 살의 무늬는 실은 전복이 오랜 세월 살아온 세월의 때다. 이걸 다 씻어내야 비린내가 안 난다. 아 참, 딱딱한 이빨과 그 주변 근육도 슬쩍 끊어내는 게 좋다. 이빨이 어디 있냐고 물으신다면, “유튜브를 보세요!”라고 답할 수밖에. 검색어는 ‘전복 손질법’.
박찬일 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