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막혔다, 강릉 바다로 갔다, 술술 풀렸다
"머릿속이 복잡할 땐 강릉으로 떠나보세요!" 바다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맛있는 음식 한입 하면 놀랍게도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 강릉 소돌해변엔 소를 닮은 소바위, 코끼리와 거북이 모양의 바위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최갑수 제공 |
살수록 삶이란 게 참 간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잠을 충분히 잘 자고, 규칙적으로 산책하고, 좋은 음식을 먹고, 부지런히 책을 읽고, 가끔 여행을 가는 것. 할 수 없는 일에 뭔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않는 것(그러면 자기를 잃어버리니까). 그거면 된다.
설 연휴 꼬박 새 원고 작업을 했다. 지금까지 써왔던 여행 원고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글이었다. 오래전부터 구상을 해왔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시도여서 작업 들어가기가 겁이 났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계속 미루다가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강원도 강릉으로 가는 고속도로에 훌쩍 올랐다. ‘가끔 여행을 가는 것’의 실천이라고 할까.
뭔가가 막혀서 풀리지 않을 땐 탄수화물을 잔뜩 먹는 것과 바다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 해결책이 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강릉으로 난 새벽녘 고속도로를 달리며 우리나라에는 강릉이라는 곳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소돌항 어선. 최갑수 제공 |
![]() 소돌항 등대. 최갑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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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는 경포대도 있고 ‘도깨비’ 촬영지인 영진해변도 있고, 카페 ‘보헤미안’과 ‘테라로사’도 있지만, 내가 가는 곳은 주문진 쪽의 소돌항과 등명낙가사, 그리고 영진해변에 있는 ‘브라질’이라는 카페다. 소돌항에 가서 해 뜨는 걸 보고 산책을 하며 난전을 구경하다가, 등명낙가사에 가서 용왕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영진해변의 카페로 가서 커피와 옛날 스타일의 조식을 먹고 돌아온다. 그러면 멋진 여행이 된다.
사는 경기도 파주에서 강릉까지, 가고 오는 약 5시간 동안, 나는 차 안에서 원고를 비롯한 일에 관한 이런저런 구상을 한다. 아마 각자에게 ‘영감의 공간’이라는 곳이 있을 것이다. 나는 코인세탁소와 차 안에서 생각지 못한 영감을 받을 때가 있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면 아침 일찍 집 앞에 있는 코인세탁소에 가 이불과 수건을 커다란 세탁기에 넣고 동전을 마저 넣고 버튼을 누른다. 세탁기 창 너머로 거품을 만들어내며 힘차게 돌아가는 빨래를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개운해지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때도 있다. 차 안이라는 공간에서도 나는 영감을 받는다. 좁은 공간에서 연주곡을 들으며(가사가 있으면 생각에 방해된다) 운전을 하다 보면 뭔가 반짝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다. 나는 얼른 녹음기를 켜고 그 영감을 받아 옮긴다.
![]() 소돌해변의 바위들. 최갑수 제공 |
아무튼 파주에서 소돌해변까지 오는 2시간 반 동안 나는 새 원고의 얼개를 대략이나마 구성했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해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바닷가로 갔다. 바닷가에는 소를 닮은 소바위(소돌)를 비롯해 코끼리며 거북이 등 다양한 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다. 이 바위들은 약 1억5천만년 전 중생대 쥐라기에 바다 아래 있다가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른 것이라고 한다. 아들바위도 있는데 자식이 없는 노부부가 그 앞에서 100일 동안 정성스레 기도한 뒤 아들을 얻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고 해서 소원바위라고도 부른다. 나는 소원바위를 보며 ‘이번 작품이 잘되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다. 우리의 꿈을 이루어주는 건 노력과 회의, 실패와 시도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영험한 기운이 서렸다는 곳에 와서 기도를 하고 가지 않으면 손해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 등명낙가사 풍경. 최갑수 제공 |
![]() 등명낙가사에 걸린 용왕 그림. 최갑수 제공 |
‘문청’(문학청년) 시절 이홍섭 시인의 시 ‘등명이라는 곳’을 읽고 무작정 강릉으로 간 적이 있다. “사랑도 만질 수 있어야 사랑이다/ 아지랭이/ 아지랭이/ 아지랭이/ 길게 손을 내밀어 햇빛 속 가장 깊은 속살을 만지니/ 그 물컹거림으로 나는 할 말을 다 했어라”가 전부인 짧은 시였다. 아, 사랑도 만질 수 있어야 사랑이라니! 지독한 유물론자였던 나는 무릎을 탁 치며 ‘등명’이라는 곳을 무작정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 ‘등명낙가사’라는 절이 있다는 걸 알고 들르게 됐다. 등명(燈明)은 부처님 전에 올리는 촛불이나 등잔불, 석탑 안에 켜놓은 전등을 말한다.
절은 괘방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데,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세웠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석탑 3기에 부처님 사리를 봉안했다는데, 그중 석탑 1기만 남아 있다. 약사전 앞에 서면 오층석탑 너머로 푸른 바다가 일렁인다. 바닷가 절이라 산신각에는 산신령 대신 용왕님이 모셔져 있다. 나는 용왕님께 이번 작품에 강릉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가 들어가니 잘되게 해달라고 또 빌었다.
![]() 소돌항 난전. 최갑수 제공 |
![]() 소돌항 어시장의 ‘막회’. 최갑수 제공 |
등명낙가사에서 나와 영진해변의 카페로 가 옛날식 조식을 먹으며 커피를 마셨다. 통유리 너머로 짙푸른 동해 바다가 넘실거렸고, 파도가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달려왔다. 나는 수첩에 새 원고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메모했다.
그렇게 강릉에서 돌아와 새 원고 작업을 하고 있다. 다행히 진도가 나가고 속도도 조금씩 붙기 시작한다. 소돌바위와 용왕님 앞에서 한 기도 덕분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마감이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글을 쓰며 느낀 건 ‘영감은 마감에서 오고, 일단 써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살수록 삶이란 게 참 간단하다. 어딘가에 도착하려면 일단 출발을 하고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 놓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카페 ‘브라질’ 조식. 최갑수 제공 |
B급 음식
영진해변의 카페 ‘브라질’. 옛날 스타일로 나오는 조식을 먹어보자. 토스트와 잼, 삶은 달걀 등이 나온다. 소돌항 앞에는 조그만 어시장이 있다. 오후 배가 들어올 무렵 이곳에 가면 어선에서 갓 부려놓은 횟감을 싸게 살 수 있다. 횟집의 번듯한 회가 아닌, 아주머니가 막 썰어주는 ‘막회’ 스타일이지만 일류 횟집보다 훨씬 맛있다.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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