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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부캐’는 K팝 아이돌과 논다, 메타버스에서

메타버스 올라탄 K팝

SNS 뛰어넘을 플랫폼 예상…새로운 기회의 땅 선정 나서

팬 개인 맞춤형 콘텐츠 제공에 게임·광고 결합 시너지 기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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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K팝. 사진 유튜브 갈무리, 이뽀키 인스타그램, 제페토, 노느니특공대엔터테인먼트, SM엔테터인먼트 제공

#1. 아이돌 그룹 4명이 아바타로 나와 가상공간에서 춤을 추고 팬과 함께 셀카를 찍으며 사인을 나눠 준다.


#2. 아이돌 그룹 7명이 가상공간에서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세계 최초로 공개한다. 아이돌 안무를 구매하면 내 아바타가 아이돌처럼 멋지게 춤을 춘다.


다가올 미래 모습을 그린 소설이나 공상과학(SF) 영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 앞에 든 예는 미래에 대한 상상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얘기다. 모두 ‘메타버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메타버스는 가상·초월을 뜻하는 ‘메타’와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를 합친 말로 가상세계를 일컫는다. 1992년 미국 소설가 닐 스티븐슨이 쓴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소개됐다.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려야만 가상세계 ‘메타버스’로 들어갈 수 있다.


1번 그룹은 블랙핑크다. 지난해 9월 네이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3D 아바타로 나와 팬 사인회를 열었다. 실제가 아닌 아바타를 보러 사람들이 찾아왔을까? 보름 동안 열린 행사에 아바타로 팬 사인회를 찾은 사람은 4600만명이나 된다.


2번 그룹은 방탄소년단(BTS)이다. 지난해 9월 메타버스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신곡 ‘다이너마이트’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이를 전세계에서 270만명이 지켜봤다.


케이(K)팝이 메타버스 세계에 다양한 방식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수만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는 지난 6월 비전을 발표하며 메타버스 세계에서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 에스파를 소개했다. 에스파는 4명의 실제 멤버와 이들의 아바타 넷을 결합한 그룹이다. 멤버들은 또 다른 자아인 아바타와 함께 활동한다. 뮤직비디오에선 멤버와 아바타가 함께 등장해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른다. 팬 미팅이나 콘서트에도 함께 참여한다.


인공지능(AI) 기술을 바탕으로 한 가상 가수도 나왔다. 3D 토끼 아티스트 아뽀키는 지난 2월 첫 싱글 ‘겟 잇 아웃’을 선보였다. 이 노래의 릴레이 댄스 영상(노래 부분마다 순서를 바꿔가며 춤을 추는 영상)은 공개한 지 1주일 만에 100만 조회수를 올렸다. 유튜브 구독자가 30만명에 이르고 쇼트폼 동영상 서비스 틱톡 팔로어는 240만명에 이른다.


이처럼 케이팝 가수들이 메타버스에 올라타는 이유는 무엇일까? 코로나19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로 오프라인 공연 무대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랜선으로나마 공연을 보고 싶어 한다. 무대에 서고 싶은 가수와 그들을 보고 싶은 관객이 메타버스 공간에서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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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캐릭터 가수 아뽀키(오른쪽 둘째). 아뽀키 인스타그램

또 다른 이유는 메타버스가 유튜브·페이스북·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을 뛰어넘는 차세대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케이팝 가수들은 주로 에스엔에스 플랫폼에서 활동하며 전세계 팬을 확보했다. 앞으로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것으로 보이는 메타버스를 선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까닭이다.


메타버스 전문가인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메타버스를 새로운 콘텐츠를 창작하는 터전, 즉 플랫폼으로 삼으려 한다. 메타버스에서 케이팝 가수들은 콘텐츠를 다각화할 수 있다. 노래를 댄스나 게임으로 변형할 수 있다. 팬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메타버스는 케이팝 가수의 세계관을 담기에도 좋은 그릇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케이팝 아이돌은 이전에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존재하는 캐릭터가 실제로 구현된 것 같다는 반응을 얻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외모와 능력을 갖춘 멤버로 이뤄져 있고, 신화나 허구적인 세계관으로 새로운 인격을 부여받기도 한다. 실제 인물이 가상의 세계관을 대변하는 셈이다. 케이팝 아이돌이 구현하는 세계관은 메타버스에서 한계를 갖지 않고 무궁무진하게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팬에게 개인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할 수도 있다. 블랙핑크가 오프라인에서 보름 동안 4600만명의 팬에게 사인해주는 건 불가능하지만, 메타버스에서는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또 메타버스에서는 게임, 광고 등 수많은 콘텐츠와 시너지를 만들고, 이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도 개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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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포트나이트’ 공연 화면. 유튜브 갈무리

메타버스 타깃 계층은 엠제트(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다. 메타버스를 주로 이용하는 계층이다. 거시적으로는 보면, 이들은 취업난에 힘들어하며 집값 폭등 등에 속상해한다. 이런 현실을 벗어나 가상세계에서 대리만족을 하고 싶어 한다. 미시적으로 보면, 이들은 현실과 다른 ‘부캐’(부캐릭터를 줄여서 부르는 말로, 평소 내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할 때를 가리킨다)로 살아가는 걸 은근히 즐긴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른바 ‘386세대’와 엑스(X)세대는 현실과 가상의 자아가 분리되는 것을 낯설어하지만, 엠제트세대는 캐릭터가 자신과 똑같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다”며 “제2의 자아를 만들고 즐기려는 엠제트세대의 이런 성향과 맞물려 메타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메타버스 속 인기는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한순간이라는 의견도 있다. 1998년 1월 등장한 국내 1호 사이버 가수 아담이 그랬다. 타이틀곡 ‘세상엔 없는 사랑’을 담은 1집 앨범을 20만장이나 판매하며 인기를 끌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 뒤 사람들에게 잊혀 무대에서 내려가야만 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에서 어떻게 해야 계속 달릴 수 있을까? 단지 새롭거나 신기한 것으로만 그치면 인기 역시 그친다.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오래갈 수 있다. 메타버스에서 새로운 팬덤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 캐릭터만이 가진 고유한 매력과 개성이 있어야 한다.


최근 메타버스 기반 사이버 밴드를 선보인 김형석 프로듀서는 “메타버스라서 ‘재미있다’ ‘신기하다’로 끝나서는 안 된다. 매력을 느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재미와 감동을 주는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인간을 탐구하는 인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케이팝 가수들이 글로벌 팬덤을 확장할 수 있었던 데는 유튜브의 영향이 컸다. 이들은 텍스트가 아닌 영상에 그들만의 세계관과 스토리를 담아 전세계 팬을 사로잡았다. 앞으로 메타버스에서도 케이팝 가수들이 성공을 이어갈지에 관심이 쏠린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작곡가 김형석도 메타버스 참여

보통사람 캐릭터 밴드 ‘402호’ 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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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레전드 매거진 제공

“시간과 공간에서 차이가 나지만, ‘아침이슬’과 메타버스는 닮은 점이 있어요. ‘아침이슬’이 오프라인에서 자유를 찾으려는 사람을 위한 노래였다면, 메타버스는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얘기거든요.”


지난 16일 서울 성수동 녹음실에서 만난 작곡가 겸 프로듀서 김형석은 자신이 최근 편곡한 <아침이슬 50주년, 김민기에 헌정하다> 앨범을 대표하는 노래 ‘아침이슬’과 비교하며 메타버스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 4월 ‘노느니특공대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메타버스 세계로 진입했다. 메타버스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케이(K)팝의 글로벌 시대다. 다음은 뭐가 될 것인가를 고민했다. 메타버스라고 생각했다. 기존 아이돌을 사이버 캐릭터로 옮기는 데서 더 나아가야 했다. ‘우리와 닮은’ 평범한 인물들이 도전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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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에서 활동하는 사이버 밴드 402호(사공이호). 왼쪽부터 오리알씨, 쑤니, 이태원팍. 노느니특공대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래서 나온 밴드가 메타버스에서 활동하는 사이버 밴드 402호(사공이호)다. 밴드 이름은, 기획했을 당시 방 번호에서 따왔다.


밴드는 쑤니, 오리알씨, 이태원팍 등 서로 다른 개성의 캐릭터 3명으로 꾸렸다. 오리알씨는 프로듀서이자 디제이(DJ)로, 티타늄으로 된 오리알 탈을 쓰고 있다. 쑤니는 리드보컬로, 우리나라에서 흔한 이름인 순이를 응용했다. 이태원팍은 댄서이자 드럼 연주자로, 아프리카계 피가 섞였다.


밴드의 열쇳말은 ‘비주류’와 ‘레트로’다. “아이돌은 넘쳐나니까, 굳이 아이돌 스타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내가 동경하는 스타가 아니라, 스타를 동경하는 나 같은 보통 사람으로 캐릭터를 만들었다.”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엠제트(MZ)세대에 다가서기 위해 세계관과 다양한 내러티브도 준비하고 있다. “엠제트세대는 정체성이 강하고, 공정성, 환경보호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세대에 다가서기 위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


여러 가수 음반을 프로듀싱 해온 그에게 오프라인과 메타버스의 차이는 무엇일까? “비슷한 점은 미리 준비·기획해야 하고, 미디어와 인터넷 같은 플랫폼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반면 메타버스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해서 오프라인보다 좀 더 상상력과 재미를 자극한다.”


그는 메타버스가 기성세대에도 화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386세대와 엑스(X)세대엔 메타버스가 생소하고 낯설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치열하게 살면서 사람에 대해 고민한 세대이기에 오히려 메타버스가 축복이 될 수 있다. 디지털의 외피를 벗겨내고 보면 메타버스에도 감성과 휴머니티가 스며 있기 때문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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