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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흠뻑, ‘불멍’만큼 좋은 황금빛 ‘숲멍’

캠핑의 정석: 충남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한겨레

황금빛 터널이 아름다운 충남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

가을 하면, 나는 샛노란 단풍으로 아름다운 은행나무숲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10월 한 달만 개방한다는 홍천 은행나무숲은 그만 시기를 놓쳐버렸다. 평소 같으면 조급해진 마음에 안절부절 못했겠지만, 이번엔 여유를 부려본다. 충청남도 아산에 가면 곡교천변을 따라 이어진 은행나무길이 있으니까.


전국에 은행나무길은 여럿 있지만 내가 꼽은 1위는 단연 충남 아산 곡교천 은행나무길이다. 2000년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산림청·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 주관)가 있었는데 ‘아름다운 거리 숲’에 선정된 길이다. 때때로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보고 매료돼 현장에 가면, 막상 기대했던 것과는 달라 실망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곳이라면 그런 걱정은 잠시 넣어두어도 된다. 잘 찍은 사진 한장보다 훨씬 입체감 있고 근사한 모습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한겨레

가을이 무르익은 외암민속마을.

긴 터널을 이룬 은행나무길은 황금색 카펫으로 방문객을 맞아준다. 무엇보다 아산시에서 차 없는 거리로 지정 운영하고 있어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며 가을을 만끽할 수 있어 좋다. 은행나무 가로수길 아래 둔치에 펼쳐진 가을의 정령 코스모스와 억새도 함께 만날 수 있으니 일거양득.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라면, 버스 정류장 갤러리 옆 빨간색 귀여운 사랑의 우체통을 놓치지 말자. 가을날의 추억을 담아 편지를 쓰면 6개월 뒤 수신인에게 편지를 전해준다.


반려견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나는 느긋하게 가을을 즐기고 싶어 아산 곡교천 야영장을 찾았다. 캠핑 사이트 내 차량 진입이 불가한 곳이라 이번에는 차박보다 캠핑으로 결정했다. 반려견 동반 캠핑장인 데다 은행나무길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어 다리 하나만 건너면 언제든 황금 터널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게다가 아산시에서 관리하고 있어 비용도 저렴하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은행나무길을 반려견 겨울과 바다, 나 이렇게 오직 셋이서 걷고 달렸다. 발아래 바스락거리는 잎사귀 소리,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은행 나뭇잎들을 바라본다. 바다에 바다멍, 강가에 물멍, 화롯대 불멍이 있다면, 곡교천 은행나무길에서는 황금빛 숲멍을 만끽해 보시길.


조선 시대로 떠나는 시간 여행자가 되어볼까. 오래된 돌담길을 따라가면 수백 년 수령의 보호수와 좁은 골목에 자리한 초가, 그리고 충청도 고유의 양반 가옥이 눈길을 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로 지정된 아산 외암민속마을이다. 흔한 민속촌쯤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예안이씨인 이사종이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예안이씨 집성촌으로 이루어진 게 조선 명종 때라고 하니, 그야말로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건재고택에서 외암 이간이 태어나고, 참판댁에서는 이조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이 살았다. 송화댁은 송화 군수를 지낸 이장현이, 교수댁은 성균관 교수 이용구가 거주했다. 주인들의 관직명이 그대로 집의 이름이 되었다. 그중에서 주목해야 할 곳은 건재고택이다. 한때는 영암 군수를 지낸 이상익이 살아 영암군수댁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그의 아들 이욱렬의 호인 건재를 따서 건재고택이 되었다. 걸출한 인재로도 유명하지만 빼어난 조경으로 더 유명한 이곳은 수백 년은 되었을 정원수가 인상적이다. 진한 초록빛 이끼랄지, 고택 안에 자리한 연못과 인공수로랄지. 신비한 느낌을 주는 오브제가 많은 것도 흥미롭다. 일전에 충남 예산 추사고택을 다녀와서 그런지 이번 여행에서는 기둥마다 걸린 현판과 편액의 글씨가 유독 눈에 띄었다. 추사가 극진히 사랑해 마지않았던 아내가 바로 외암마을 예안이씨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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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양식이 이국적인 공세리 성당.

공세리 성당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자 충청남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로 유명하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은 특유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으로 각종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가 많다. 사진작가들에게는 사계절 주목받는 피사체이고, SNS 인플루언서들에게는 매력적인 배경이 되어주는 곳이다. 공세리는 원래 내포 지역 천주교 신앙의 중심지로, 성당은 1875년 프랑스에서 온 에밀 드비즈 신부가 원래 있던 여염집을 개조해 세웠다. 


지금의 근대식 외관이 완성된 것은 1921년, 유럽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고딕양식 건물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여행객들에게는 아름다운 외관으로 주목받는 명소가 되었으나, 공세리 성당은 충청남도의 대표적인 가톨릭 성지이자 순례지로 이름이 높다.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로 인해 이 지역 천주교 신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순교했다. 경내에서 만날 수 있는 아산 지역 순교자 32분의 묘석과 순교자 현양탑이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라고. 외부에서 천천히 성당을 둘러보았다. 성당은 본당과 사제관으로 나뉘고, 두 건물 모두가 벽돌로 지어졌다. 정면에 보이는 높은 첨탑이 프랑스나 스페인의 어딘가에서 보았던 성당들을 연상케 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했다.

알아두면 좋아요

1. 곡교천 은행나무길 자차 이용 시, 은행나무길 제2주차장을 이용하자. 은행나무길까지의 접근성이 좋다.


2. 외암민속마을 건재고택은 하루 세 번, 관람 가능 시간(10:30, 13:30, 15:30)에 맞춰 방문하면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3. 외암민속마을 주말 방문 시 한지공예, 짚풀공예, 떡메치기, 널뛰기, 투호 놀이와 같은 전통 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4. 공세리 성당은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무리가 있다. 승용차를 이용하는 게 유리하다.


글·사진 홍유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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