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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자매, 시골집 고쳐 해안에 머물다

바다에서 멀지 않은 거제도 농촌 마을.

그 한가운데, 주인을 잃고 비어있던 시골집에 정다운 온기가 스미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 펼쳐진 ‘윤 자매’ 김윤정·윤진 씨의 좌충우돌 리모델링 스토리.

대문을 열고 바라본 시골집 ‘해안에 머물다’. 마당에 있던 재래식 화장실과 창고를 철거하고, 시멘트로 덮여 있던 바닥에 흙을 채워 잔디를 심고 디딤석을 깔았다.

시원하게 사표를 냈다. 조선소에 취업하면서 이곳 거제도로 왔고, 결혼해 낳은 아이가 어느새 7살, 3살이었다. 이제는 한숨 돌려, 자신과 주변을 좀 더 살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김윤정 씨. 익숙지 않은 여유에 허덕이며 이 시간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던 언니에게, 동생 윤진 씨는 시골집 한 채를 구해 같이 고쳐보자고 제안했다. 거제도의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인 윤진 씨도 마침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 중이라 시간이 났다. 특히 시골 생활에 대한 로망을 오랫동안 품어온 그녀는, 해본 적은 없었지만 왠지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전라도 시골 외할아버지 댁 마당에서 종일 뛰놀았던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뜻을 모은 자매는 바로 부동산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볕 잘 드는 마당이 있고, 서까래가 있는 시골집. 이왕이면 아이들이 올챙이, 메뚜기 등을 보며 놀 수 있도록 논과 밭이 있는 마을이었으면 했다.


아래채 대청마루에 앉은 윤 자매. ‘해안에 머물다’는 꼼꼼하고 현실적인 언니 김윤정 씨(좌)와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의 동생 윤진 씨(우)의 합작품이다.


해안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바라본 풍경 / 좁다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담 너머 빨간 지붕 아래채와 파란 지붕 안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채 현관에서 내다본 마당

“대부분의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죠. 부동산에서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원주택 부지가 좋지 않겠냐며 몇 군데 소개해주었고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어요.”

일주일에 적어도 3일은 부동산 중개인과 거제도를 구석구석 누볐지만, 마땅한 집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석 달째 접어들어 몸도 마음도 지쳐가던 차, 드디어 조건에 맞는 매물이 나타났다. 농촌마을 ‘해안’의 중앙에 자리한, 정동향의 안채와 정남향 아래채가 있는 시골집. 서까래가 튼실했고, 시멘트로 덮여 있긴 했지만 넓은 앞마당이 있었다. 공사에 필요한 1톤 트럭이 집 앞까지 들어올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길로 윤정 씨는 자신의 퇴직금을 털어 집을 샀다. 동네 철물점도 몇 번 가본 적 없는 자매가 덜컥 일을 벌인 것이다. 처음에는 아래채만 온전히 둘이서 고쳐보고, 안채는 전문업체에 맡길 생각이었다. 그런데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뜯어보기 전에는 상태를 알 수 없는, 40년 넘은 구옥을 맡기엔 위험부담이 크다는 이유였다. 어렵게 받은 견적도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일 때가 많았고, 다들 허물고 새로 지으라고만 했다.
 

안채의 주방 겸 식당. 색이 다른 기둥은 썩어 있던 기존 기둥을 잘라내고 보강한 것이다. 주방 가구는 하부에 벽돌을 쌓아 수납 공간을 만들고 원목 상판을 얹은 후 커튼을 달아 완성했다.


아래채 대청마루에서 바라본 마당. 처음 만났을 때 이곳 안채는 여러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툇마루 바깥쪽으로 확장되어 있었고, 아래채는 거의 처음 지어진 모습 그대로였다.

“손으로 무언가 만들기 좋아하는 동생이 주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현실에 맞춰 제작하는 건 제 몫이었어요. 될 수 있으면 집에서 나온 고재나 작업 중 나온 자투리 재료를 활용했죠. 조명, 선반, 거울, 스위치 커버도 모두 저희가 직접 만든 거예요.”

결국 안채와 아래채, 마당 공사까지 모두 자매가 직접 나섰다. 아이들 등·하원 시간에 맞춰야 했기에 매일 출근 도장을 찍어도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윤진 씨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둘째를 떼어 놓을 수 없어 공사 기간 내내 데리고 나와 일했다. 생전 처음 사본 헤라를 들고 벽지를 뜯어냈고,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기둥과 대청마루도 손수 그라인딩했다. 썩은 기둥이 있던 자리에 보강을 하고, 제각각이었던 안채 바닥 높이는 평평하게 새로 맞췄다. 온수 배관도 직접 깔았는데, 용감하게 나설 땐 언제고 막상 처음 보일러를 가동할 때는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고. 바닥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자 윤진 씨가 “언니야, 불 들어온다!” 외치며 감격하던 그 순간을 자매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얗게 새 단장을 마친 안채 앞에 선 두 사람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 안채 침실에는 널찍한 평상형 침대를 만들었다.

“어느 날, 마당에서 한창 작업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오셨어요. ‘여기 우리 엄마가 살던 집인데, 허물지 않고 이렇게 남겨주어서 고맙다’ 하시더라고요.”

서너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공사는 꼬박 1년이 걸렸다. 이웃집으로 둘러싸인 마을 한복판이라 자칫 다툴 일도 많았을 법한데, 오히려 두 사람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정이 담뿍 들었다. 대청마루 위에 무심히 놓고 가시곤 했던 잘 익은 홍시, 고구마는 더딘 작업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힘이었다.

그 마음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자매는 얼마 전 부산에 있던 막내 남동생까지 불러들여 ‘관포 60’이라는 카페도 열었다. 해안 마을에서 나는 유자, 치자, 쑥 등을 재료로 만든 베이커리와 음료를 선보이는 카페로, 어르신들이 힘들게 농사지어 수확한 농산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곳이다. 이 착한 소비를 더 넓혀가기 위해 윤진 씨는 요즘 채식 베이킹을 배우는 데 열심이다.

직접 만든 벽 선반, 고재 테이블, 조명 등이 멋스럽게 어우러지는 거실


아이들 놀이 공간으로 쓰는 아래채 내부. 반대쪽 벽 일부에는 칠판 페인트를 칠했다.


자매의 정성이 깃든 스위치와 조명 / 아래채 처마 아래, 아담한 바비큐 공간. 윤진 씨가 취미로 만든 마크라메를 걸어 장식했다.

안채의 침실 평상에 기대어 앉으면, 창 너머 대나무 숲이 청량하게 담긴다. 고요한 바람 소리가 마음의 무거운 짐을 쓸어내고, 아이들은 마당과 동네를 천진난만하게 누빈다. 다시 한 번, 자매는 이 집을 고치길 참 잘했다 싶다. 가족 별장으로 만든 곳이지만, 이 정취를 우리끼리만 누릴 수 없어 마음을 쉬러 온 여행자에게도 빌려줄 생각이다. 집을 기억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법. 윤 자매에게 이 이야기는 이제 겨우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해안에 머물다_ 경상남도 거제시 하청면 해안2길 48 www.instagram.com/geoje_yunsisters
취재_ 조고은   |  사진_ 변종석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18년 6월호 / Vol.232 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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