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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by 김국현

USB4는 인텔, 애플, 소니 주연 썬더볼트 드라마의 마지막회?

초대 USB, 그러니까 USB 1의 속도는 놀랍게 느렸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별로 느리다고 느끼지는 못했는데, 요즘에야 일반시민에게 USB가 외장메모리의 동의어로 쓰일 정도이지만 당시에는 그저 키보드나 마우스를 꽂는 일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USB(Universal Serial Bus)는 이름 그대로 ‘보편적인' 시리얼 버스였다.


그 시절 PC에는 (모뎀 등을 꽂던) 시리얼 포트와 (주로 프린터를 꽂던) 패러랠 포트가 따로 있었고, 키보드와 마우스를 위한 별도의 PS/2 포트도 있었다. 큼지막한 PC 뒤에는 제각각의 역할을 지닌 포트가 빼곡히 들어 서 있던 것이 90년대적 풍경이었다.


주변기기가 모두 자기 포트가 있어야 한다니, 이는 모두에게 부담이었다. 이를 하드웨어/소프트웨어적으로 유지하는 일이 주변기기 산업 성장에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보편적인' 포트인 USB였다. 포트 하나가 여러 역할을 나눠 할 수 있으니 노트북과 같은 PC의 소형화도 촉진할 수 있었다.


1996년에 등장한 USB 1.0의 속도는 고작 1.5Mb/s, 1.1은 풀 스피드라 불리며 12Mbps가 되었지만 1초에 1MB 정도 옮겨지던 태평스러운 사양이었다. (하지만 디스켓 한 장이 1초에 복사되다니! 좋아 보였다.) 결국 USB는 성공했는데, USB가 오늘날의 보편성을 지니게 된 계기로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 사건을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애플이 종래의 잡다한 포트(ADB, SCSI)를 전부 없애고 USB만을 채용한 1998년의 일이다. 아이맥과 잡스의 화려한 귀환과 함께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포트를 과감히 날리는 일은 이때부터 애플의 새로운 전통이 되었다.


그리고는 속도가 480Mb/s로 대폭 늘어난 USB 2.0의 등장(2000), 또 결정타가 되었던 것이 비슷한 시절 확산이 시작된 '플러그 앤 플레이(PnP)'였다. USB 메모리가 등장한 것도 바로 그때로, 꽂기만 하면 알아서 신기하게 작동했다. 용량은 8MB였다. USB 1이어도 8초면 다 옮기는 용량이었다. 여러분도 행여나 광에서 발굴된 PC 유물을 꺼내 데이터를 옮기려 한다면 USB가 얼마나 느린 것인지 깨닫게 될 일이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첨단이었다.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USB 3.0은 그로부터 10년 후에나 시장에 등장했다. 초당 5Gb/s. 수퍼스피드 USB라는 별칭처럼 속도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제 거의 사라졌는데, 그것조차 어느새 10년 전의 일이다. 이처럼 USB의 진보는 빠른 듯 느리다.


왜냐하면, USB의 탄생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인텔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USB 3.0이 시장에 막 풀리던 2010년이라는 중요한 시점에 인텔은 라이트피크(Light Peak)라는 독자적 신규격을 발표한다. USB와 호환되는 하이브리드 포트에 광케이블을 쓴 야심작이었다. 그런데 어째 PC 제조사들은 시큰둥했다. 속도는 두 배로 10Gb/s가 되었고, 디스플레이까지 물릴 수 있으므로 HDMI 등의 비디오 포트마저 필요 없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USB보다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들었고, 그 시절 일반 PC 사용자에게 그런 속도가 별 필요 없기도 했다. 박한 마진의 PC 비즈니스에 설득되지 않는 비용이란 용납되지 않았다.

라이트피크라는 기로에서 만난 두 회사

그런데 이 신기술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둘 있었으니 그들은 프리미엄 브랜드인 애플과 소니였다. 특히나 USB 얼리어댑터로서 시장을 열어줬던 애플은 인텔에게 남다른 존재였다. 인텔은 이름도 애플이 지어준 ‘썬더볼트'로 바꾸기로 하고 포트 모양도 애플이 고안한 표준인 '미니 디스플레이포트'를 채용하기로 한다. 인텔의 초기 아이디어 그대로라면 USB 포트를 사용했어야 할 라이트피크가 산으로 간 순간이었다. 물론 USB 표준화 단체도 이러한 임의 개조에 난색을 표명하긴 했다. USB를 아무리 인텔이 주도했어도 표준이 된 이상 마음대로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USB 포트와 호환되는 이 원조 규격 거의 그대로를 채택한 소니의 VAIO Z가 몇 달 뒤에 독자적으로 출시되고 만다. ‘썬더볼트’라고도 라이트피크라고도 부를 수 없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인텔은 썬더볼트가 널리 퍼지기를 바랐겠지만, PC 업체들은 소니의 쓸쓸한 처지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애플 냄새 나는 썬더볼트라는 이름에서, 게다가 애플 썬더볼트 디스플레이 같은 제품 탓인지 썬더볼트는 애플 전용처럼 여겨졌다. 맥의 썬더볼트와 아이폰의 라이트닝이라니, 유의어 사전 보고 작명한 듯 흡사하다. 애플은 인텔과의 협업을 사실상 독차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썬더볼트는 프리미엄 맥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또 그렇게 세월도 흘렀다. 썬더볼트는 USB-C라는 최신 포트 모양을 채택하며 버전이 3가 되었고, 속도는 무려 40Gb/s가 된다. 썬더볼트 2(20Gb/s)의 2배, USB 3(5Gb/s)의 8배에 달했다. MP3 1만 곡을 1분 이내에 옮길 수 있는 속도인 데다가, 4K 모니터를 4대 물려도 거뜬한 대역폭이었다. (5K라면 2대까지)


그리고 맥북은 그 USB-C와 썬더볼트로 모든 포트를 통일해 버린다. USB로 포트를 통일하려던 소니의 헛발질은 USB-C 시대가 되어 애플이 이뤄내고 만 셈이다. (USB-C란 마이크로USB, USB Type A처럼, 꽂는 부분의 생김새에 대한 최신 규격, USB 1.0~USB4란 생김새가 아닌 꽂힌 뒤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하는 프로토콜)


이로써 지금까지 내장기관이었던 각종 부품이 밖으로 뽑혀 나올 수 있게 했는데, 예컨대 eGPU라고 기본 내장 그래픽보다 몇 배의 성능을 뽑아내는 괴물 같은 상자를 달 수 있게 했다. 이는 흥미롭게도 소니가 2011년에 라이트피크로 만들었던, 외장 GPU를 탑재한 ‘파워 미디어 독’ 그대로의 구성이다. 소니는 미래를 읽을 줄 알았지만, 친구가 없었던 셈이었다.


애플은 만족했겠지만, 인텔은 그러지 못했다. 애플은 기본적으로 포트 장사, 그러니까 같은 생태계에 묶어 놓으려는 장사법인 반면, 인텔은 칩셋 장사, 어디든 칩을 팔아 생태계를 확장해야 하는 장사꾼이다. 원조 USB 때처럼 애플이 끌어주면 PC 업계가 따라가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USB와 썬더볼트의 재회, USB4

썬더볼트는 복잡한 만큼 부품비와 인증비에 돈이 많이 들었다. 썬더볼트 케이블만 해도 몇만 원이다. 그러다 보니 업계는 썬더볼트는 내버려두고 아쉬운 대로 USB를 고쳐 쓰기 시작했는데, USB 3.2 Gen 2x2 처럼 소수점과 Gen(세대) 표시를 복잡하게 더해가며 썬더볼트를 따라갔다. 어느새 속도도 20Gb/s까지 따라왔다. 게다가 썬더볼트처럼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인텔로서는 답답한 일이다. 썬더볼트 대중화가 답보 중인 2017년, 인텔은 썬더볼트 프로토콜을 로열티 프리로 공개하기로 한다. 그리고 최신 CPU 칩에서 표준적으로 지원하기로 하는데, 드디어 올해의 인텔칩 10nm 아이스 레이크 칩에는 썬더볼트 3가 기본 탑재된다. 썬더볼트 3가 세상에 퍼진다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AMD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구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지난주 USB4가 완성되며, 이제 USB가 썬더볼트 3를 완전히 품게 된다. 먼 길을 서로 돌아온 인텔의 두 작품은 드디어 하나가 되었으니 나름 역사적 순간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썬더볼트는 USB4에게는 옵션이다. USB는 말 그대로 보편적이어야 하기에 염가형 제품에 최신기능을 탑재하는 것은 부담일 수 있어서다. 즉, 썬더볼트 3가 빠진 USB4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기에, 직접 사서 꽂아봐야 잘 되는지 알 수 있는 현재의 대혼란은 당분간 더 지속할 듯싶다. 특히나 5년여간 쌓여 온 저질 USB-C 케이블 및 주변기기는 USB4의 하위 호환성에 적잖은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새로운 USB4는, 표기할 때 중간에 스페이스 없이 붙여서 써 하나의 단어가 되는데, 그 이유는 3.1, 3.2와 같은 소수점 마케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기야 현재 사양이 3.2 Gen 2x2라니 도무지 감이 안 온다.


하지만 그래도 기술의 진보는 거듭될 터 앞으로는 무엇으로 부를지 기대된다. 비슷한 고민은 와이파이 6의 자연수 네이밍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소비자는 아무래도 수학을 연상시키는 소수점에 약한 법, 하지만 그래도 전작과는 차별화시켜야 한다. 이래저래 기술의 진보를 지갑을 열려는 이에게 설명하는 일이란 쉽지 않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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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hyun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