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는 개인용 에어컨. 4차 냉방 산업 혁명 시대?
다행인지 아직 작년과 같은 더위는 시작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올해도 작년과 같다면 이제 에어컨 없이 버티는 일은 점점 무모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가정용 에어컨이 드문 유럽에서도 올해는 40도를 오르내리고 있으니, 전 지구가 트로피칼 원더랜드다.
리콴유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발명품 운운하며 싱가포르의 성공 비결로 에어컨을 꼽았는데, 이 명언의 의미를 이제야 우리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적도는커녕 훨씬 더 북쪽에 있는 한국에서 에어컨 없이 한나절만 있어 보면, 업무고 혁신이고 뭐고 만사 귀찮아진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게으름 피울 야자 그늘이 없고, 그러기에는 공기마저 안 좋다는 점 정도다.
주기적으로 위정자들은 절전 운운하며 에어컨을 백안시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곤 하는데, 지금 필요한 일은 이미 주어진 냉방의 은총을 권위로 막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 이 사회의 사각 지역에까지 냉방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전달할지 고민하는 일이다.
에어컨은 흥미로운 기술이다. 특히 실외기의 존재가 현대사회의 상징같이 느껴진다. 열은 이동시킬 수만 있을 뿐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에어컨은 실내의 더운 공기를 실외기로 내다 버리는 기기다. 컴프레서와 팬이라는 두 개의 모터가 달린 실외기는 소음과 진동을 내며 뜨거워진 냉매를 팬으로 식혀가며 실내의 열을 밖으로 버린다.
소음이나 진동을 실외기로 외주화하여 깨끗하고 조용해야 할 실내에 두지 않고, 그 뜨거운 배기와 소음이 다른 집이나 통행인들에게 전가하는 셈이니, 실외기가 있는 풍경이란 지극히 이기적인 현대적 풍경이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을 때 아파트 창문에서 실외기를 CG로 일일이 지우느라 힘들었다는 에피소드가 기억이 난다.
소음과 진동 등 시원함의 부산물을 외주화하는 것도 여유가 되는 이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요즈음에는 실외기가 미관상 그리고 안전상 기피되면서 실내에 설치해야 하는 분위기다. 실외기이지만 실외에 달지 못하게 하는 규제가 늘고 있다. 실외기 공사가 여의치 않은 이들을 위해 이동식 에어컨이나 창문에 매다는 창문형 에어컨 등 실외기와 실내기가 일체화된 에어컨들도 있기는 있지만, 임시변통의 기분이다.
‘일체화’라고 하니 냉각부와 발열부가 들러붙어 있는 또 다른 냉각 기술이 떠오른다. 이미 19세기에 그 개념이 발명된 펠티어 소자(열전소자, Peltier module)다. 전기를 흐르게 하면 한 면이 열을 흡수해서 다른 한쪽으로 방출하는 소자인데, 부품은 몇천 원이면 살 수 있다. 다만 냉각 성능이 좋아 결로 현상이 꼭 뒤따르곤 한다. 이 성능이 탐나 CPU 냉각 등에 끊임없이 시도되었으나 메인보드를 축축하게 만드는 두려움 때문에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흥미롭게도 이 펠티어 소자를 활용한 민생 용품이 지금 소니에 의해 크라우드펀딩 중이다. 집필 시점 현재 99%였으나, 퇴고를 하기 전에 100%가 되었으니 이변이 없는 한 제품화는 될 예정이다. 바로 소니 레온 포켓(REON POCKET)이라는 제품이다.
마우스 같이 생겼는데, 펠티어 소자와 열을 방출하기 위한 노트북 CPU 냉각팬 같은 것이 배터리와 함께 일체화된 제품이다. USB-C로 충전하고 스마트폰으로 블루투스 조작을 한다. 펠티어 소자의 특성상 냉방뿐만 아니라 온열기능까지 갖췄으니 일석이조다. 이 제품을 목덜미에 주머니가 달린 전용 속옷을 입고 그 주머니에 넣는다. 스마트폰으로 ‘등골을 오싹’하게 하거나 ‘등따습게’ 할 수 있으니, 어느 계절에도 양복을 자신 있게 입을 수 있다.
이런 제품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완성도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소니 내부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추진된 이 프로젝트는 소니의 영상장비에서 숙성되어 온 방열기술을 활용하고, 또 결로를 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제어되는 특수 펠티어 소자에 의존한다고 한다.
자동차 잘 만들던 회사가 자동차 혁명을 이끌고 있지 않듯이, 에어컨 혁명도 에어컨 잘 만들던 회사에서 시작되지 않는 법일까?
너도나도 손에 선풍기 하나씩 들고 다니는 요즈음, 우리 몸에도 선풍기만으로는 도저히 힘드니 에어컨 놔야 할 때가 오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