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 95가 남긴 유산을 웹브라우저 위에서 생각해 보자.
윈도우 95가 앱으로 등장해서 화제다. 100MB 남짓한 앱을 내려받아 윈도우 10이나 맥에서 실행하면 바로 그 시절의 윈도우 95가 등장하는데, 가상머신에 옛날 운영체제 돌려보는 일은 뉴스거리도 아니다. 뉴스가 된 이유는 받아서 바로 실행하는 앱이라는 편리함 덕이리라. 그런데 기술적 입장에서는 다소 특이하다. 윈도우 95를 돌리는 것이 웹브라우저라는 점 때문이다. 이 앱의 용량 100 MB 중 대부분은 내장된 크롬 브라우저 때문이고, 윈도우 95는 크롬 안의 자바스크립트 안에서 돌고 있다.
굳이 이 앱을 설치할 필요도 없다. 이 앱의 원조는 웹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 가능한 v86이란 것으로 자바스크립트만으로 인텔 x86 CPU 그 자체를 에뮬레이트해 버리는 과업을 이미 수년 전부터 마무리해 두었다. 지금이라도 아무 웹브라우저를 띄워서 copy.sh에 접속해 v86을 클릭해 보자. 윈도우 95~98이나 리눅스는 물론 오베론과 같은 80년대 후반의 전설적 ‘레어템’도 웹브라우저 위에서 돌려볼 수 있다.
자바스크립트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은 결국 자바스크립트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이를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취미든 자기계발이든 이 역작에는 의미가 있는데, 바로 사료(史料)로서의 의미다.
윈도우 95라는 유산
짧은 컴퓨터의 역사지만 윈도우 95의 등장은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새로운 PC의 시대가 열린 해였기 때문이다.
도스(DOS)에서 ‘win’을 타이핑해서 실행하던 윈도우 3.11의 시절, 윈도우란 도스에 부가된 옥상옥의 부가 기능에 지나지 않았다. 통합 운영체제 윈도우 95의 등장은 윈도우가 본격적인 운영체제로서의 기본기를 갖췄다는 뜻이 되었고, 도스는 도스창이 되어 윈도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윈도우만 공부해서 개발하면 되는 시절이 펼쳐진다. 시기적으로도 본격 32비트의 시대의 개막식이기도 했다. 윈32(Win32)라는 프로그래밍 모델이 본격적으로 퍼져 나갔다. 그때만 해도 윈32의 ‘레짐’이 액티브X 잔당으로 남아 여전히 2018년까지 우리를 괴롭히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도스 시절, 컴퓨터를 다루는 일은 너무 어려워서 컴맹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윈도우처럼 대상을 바로 눌러 조작하는 직관적인 UI라면 남녀노소 누구나 배워볼 만했다.
편집하고 싶은 파일을 더블클릭하여 실행하는 지금은 당연한 일도 윈도우 이전에는 낯선 일이었다(물론 어르신들에게는 더블 클릭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는 응용프로그램을 꼭 먼저 실행시킨 후, 파일을 읽어 들이는 것이 정석이었다.
또 윈도우 95는 우클릭으로 그 대상 ‘개체’의 ‘속성’을 파악한다는 객체지향적 철학이 반영된 운영체계이기도 했다. 모든 개체에는 각자가 할 수 있는 ‘행동’과 각자를 설명하는 ‘속성’이 있었고, 이를 우클릭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프로퍼티(Property)가 속성이 아닌 ‘등록정보(R)’로 번역되어 있었는데, 왜 등록정보로 번역되었는지 이는 옳지 않다고 혼자 분해했던 추억이 생각난다.
또 윈도우 95부터 하드웨어 장치를 구동하는 디바이스 드라이버에 대한 통일된 접근법이 채택되었다. 도스란 얼마나 많은 .SYS, .BAT, .INI 파일을 만지작거려야만 했던 황무지였던가. 윈도우 95 이전에는 주변기기마다 제각각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스스로들 직접 만들어와야만 했기에, 제조사도 사용자도 늘 불편했다.
윈도우 95가 기본적 공통 기반을 어느 정도 갖춰주면서 꽂으면 바로 쓸 수 있는 플러그 앤 플레이의 시대가 열린다. 하드웨어는 하드웨어에 집중하여 마음 놓고 열심히 만들 수 있게 되니 PC의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지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윈도우는 늘 어딘가 약간 느린 느낌이었다. 그런 악역을 일부러 자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들 더 좋은 하드웨어를 만들어야겠다고 정말 생각하곤 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의 등을 밀어주고 하드웨어가 끌어당기기도 하며 PC 생태계는 커져만 갔다.
컴퓨터는 그렇게 절실하게 성장했고, 세월은 흘러 웹브라우저가 CPU를 흉내 내도 전혀 느리지 않은 시대가 되어 버렸다. jor1k라고 RISC 기반 리눅스를 그대로 웹브라우저에서 돌려 보는 프로젝트도 벌써 4년째로 접어들고 있는데, 그 위에서 ScummVM을 실행시켜 원숭이섬의 비밀을 실행해 보니 도대체 몇 겹의 가상머신으로 추상화가 된 건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그렇게도 흥미진진하고 당시는 온종일 하고 싶었던 고전 게임들도 이제 와서 에뮬로 실행시키면 몇 분 하다가 말게 되듯이 2018년의 윈도우 95도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하고 백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추억보다는 미래에 맞닿은 현재가 여전히 재미있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