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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지콜론북

일상을 바꾸는 쓰레기들 부엌에서의 모험

일상을 바꾸는 쓰레기들 부엌에서의 모

Patates Party - by Garbage 지름 39cm의 냄비에 뒤집개와 국자를 붙여 조명을 만들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집’일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얻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공간은 부엌이 아닐까 싶다. 음식 냄새와 사람의 온기가 두루 어우러지는 부엌은 단순한 집 이상의 따뜻한 가정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때문에 커피나 차를 마시고 과자를 굽고 수프를 만들던 도구들은 오래되어도, 아니 오래될수록 정이 간다. 가비지Garbage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질 에이헨바움Gilles Eichenbaum은 프랑스의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다. 그는 오래된 생활집기들, 주로 부엌용품들을 매혹적인 조명으로 만든다.

 

오래된 커피포트, 프라이팬, 그릇, 수저 등이 만나 시대나 유행을 초월하는 하나의 새로운 도구가 된다. 가벼운 금속 조리기구에 작은 구멍들을 뚫어 패턴을 만들고, 때로는 그저 뒤집어놓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용도의 사물이 되는 것이다. 시적이고 유머러스한 디자이너의 시각이 일상을 밝힌다.

“조리도구들은 경제적인데다 기술적으로도 훌륭한 소재입니다. 경제적인 이유는 버리거나 벼룩시장에서 판매하는 오래된 금속 식기나 도구들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기술면에서 가벼운 금속 제품들은 철이나 구리 같은 소재보다 작업하기에도 수월해요. 특히 부엌의 도구들과 큰 그릇들은 전등갓 대용으로 완벽하죠. 저는 일반적인 전등갓을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낡은 조리도구들로 만들어졌지만 그의 작품에는 부정할 수 없는 예술성이 있다. 게다가 실용적이다. 매일같이 사용하던 평범한 조리기구들을 동화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로 변화시키는 힘은 아마 상당 부분 그의 상상력에 기인하는 것일 터다. 질 에이헨바움은 모험으로 가득 찬 환경과 경험 속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 안에 내재된 유쾌한 경험들이 이제 특별한 일상용품으로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상을 바꾸는 쓰레기들 부엌에서의 모

Canny-sur-Therain - by Garbage 오래된 주전자에 작은 구멍들로 패턴을 만들어서 빛이 아름답게 새어나오도록 했다. 원형 그릇을 매달아 전등갓으로 활용했다.

일상을 바꾸는 쓰레기들 부엌에서의 모

[Y-noT](n°483) - by Garbage Y자 형태로 커피주전자를 양쪽에 매달았다. 커피주전자의 바닥을 뚫어서 안에 전구를 넣었다.

일상을 바꾸는 쓰레기들 부엌에서의 모

Spoonlight Serenade - by Garbage 속이 깊은 냄비를 뒤집어 전등갓으로 활용하고 숟가락을 빙 둘러가며 붙여 장식했다.

1959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질 에이헨바움은 지질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40개국 이상을 다니며 생활했다고 한다. 언제나 낯선 곳을 여행하고 캠핑을 하며 살았고, 제대로 된 집에서 사는 건 1년 중 고작 몇 개월에 불과했기 때문에 오래된 물건들을 재활용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는 일에 익숙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영업사원, 바텐더 등 먹고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는데 10년 동안 20개의 직업을 가졌을 정도였다. 그러다 에이헨바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파리에 정착한 후에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오래된 물건으로 뭔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호응에 힘을 얻은 그는 물건을 몇 개 더 만들어 판매를 해보기로 결심했고, 그 물건들은(그의 표현에 의하면 ‘핫케이크’처럼) 금세 팔려 생산량을 점차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첫 전시회가 좋은 반응을 얻어서 이제 이 일이 유일한 직업이 되었다.

 

누구보다 국제적이며 다채로웠던 성장환경 덕분에 ‘혼합’이라는 개념은 에이헨바움에게 있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또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아주 깊숙이 심어주었다. 파리라는 문명화된 도시로 돌아왔을 때도 그 마음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래된 생활집기들을 여전히 사용하는 유럽인들의 모습, 마치 조상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듯한 삶의 방식은 그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는 지금도 마음속으로 모험을 떠난다. 낯선 땅에서의 캠핑이나 트럭에서의 생활을 상상한다. 오래된 냄비는 전등갓이 되고 판자 조각은 의자가 된다. 상상 속 모험은 주변 사물들을 결합하고 뒤집으면서 실재가 되고 증거를 남긴다.

 

에이헨바움은 일요일 아침이 되면 벼룩시장을 거닐며 시선을 끄는 물건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그의 ‘집념’은, 가족과 외식을 하러 가면서도 쓰레기통을 뒤지고 금속으로 된 쓰레기를 몇 개씩 주워와서 가족들을 창피하게 만들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쓰레기들이 그의 손을 통하면 아주 기능적인 생활용품이자 아방가르드한 예술품이 된다.

“당신의 쓰레기통에 재능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말이다. 그의 말처럼 쇼윈도가 아닌 쓰레기통에 어쩌면 영감을 주는 작품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글. 조창원

 

* 이 컨텐츠는 『일상을 바꾸는 쓰레기들』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일상을 바꾸는 쓰레기들』의 저자 조창원은 책을 쓰고 만드는 작가이자 에디터이다. 서강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IT 기업에서 영업과 마케팅을 했지만 숫자보다 글자가,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좋았다.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떠나 런던커뮤니케이션대학(London Collage of Communication)에서 출판학을 공부했다. 디자인문화잡지 '지콜론'에서 쓰레기를 재생산하는 디자인 작업 기사를 연재하면서 이 책의 기초를 다졌다. 출판사에서 단행본 편집자로 일하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다양한 책들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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