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대신 '필카'... 아날로그에 꽂힌 20대
디지털 제품 홍수 속 아날로그 아이템 인기 지속
'느림의 미학'에 빠진 20대들 증가 추세
“아날로그 아이템 하나만 있어도 분위기가 살아요”
만년필 동호회 ‘펜후드’의 회원인 임지혁(22·남)씨는 어린 나이지만 만년필이 주는 매력에 빠졌다. 그는 “초등학교 때 노란색 연필로 글을 쓰고는 했는데 그 때부터 펜을 사용해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며 "각종 IT(정보기술)기기가 발달했지만 중고등학교 재학시절에도 손으로 필기를 하는 것을 좋아해 만년필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무선 이어폰 등 첨단 IT기기가 발달하고 있지만 아직도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과거 각종 아날로그 기기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20대 젊은층도 LP판을 이용해 음악을 듣고 스마트워치대신 아날로그 시계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인화 오래 걸리고 빛 번져도 좋아 ‘필름 카메라’
김민주씨가 필름 카메라로 담아낸 사진 (사진=김민주씨 제공) |
김민주(23·여)씨는 지난해 필름 카메라를 구매했다. 그는 “집 청소를 하다가 20년 전의 필름 카메라를 우연히 발견한 뒤 필름 카메라에 관심이 생겼다”며 “처음에는 사용법도 어려워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 계속 연습을 하면서 제 색감을 찾아가는 사진들이 마음에 들었다”고 필름 카메라에 빠진 이유를 설명했다.
김씨는 "빛이나 필름 종류에 따라 사진이 다르게 나온다는 것이 필름 카메라의 장점”이라며 “과할 정도로 선명한 최신 카메라와 다르게 흐릿하게 빛이 번지는 필름 카메라의 감성이 좋다”고 필름 카메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필름 카메라 사진을 확인하려면 현상을 맡기고 기다려야 한다”며 “디지털 사진과는 다르게 천천히 기다리는 맛이 있다”며 사진 한 장을 얻는 과정이 매우 번거로운데도 굳이 필름 카메라를 쓰는 이유를 밝혔다.
서울 중구의 한 카메라 판매점 사장은 “가게에서 다양한 카메라를 취급하고 있지만 특히 필름 카메라가 꾸준히 잘 나간다”며 “필름 카메라를 찾는 주요 고객들은 대부분이 20대”라고 덧붙였다.
만년필 동호회 20대 회원 꾸준히 증가해
20대들의 ‘아날로그 사랑’은 ‘어른들’의 전유물이었던 만년필로도 이어진다. 만년필 연구소를 운영하고 만년필 동호회 ‘펜후드’를 운영 중인 박종진 연구소장은 “과거엔 50~60대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던 만년필이라는 아이템에 20대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아날로그의 인기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였지만 최근 특히 20대 비율이 더욱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소장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동호회에 가입한 신규 가입자 약 3000명 가운데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나 된다.
만년필 보러 미국 박물관 다녀오기도
임지혁씨가 만년필로 필기를 하고 있다 (사진=임지혁씨 제공) |
임씨는 만년필의 매력으로 ‘일반 필기구는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문학적 요소’를 꼽았다. 만년필은 다른 필기구가 가지지 못한 오랜 역사와 유래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는 맥아더 장군의 만년필을 보기 위해 미국 여행 중 미국 육군사관학교 박물관까지 다녀왔다고.
임씨는 “미국에 가서 오래된 만년필을 직접 보며 역사적 지식과 만년필에 대한 지식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아이템 하나만 있어도 분위기가 살아요”
(사진=이미지투데이) |
기술이 발전하며 좋은 전자시계뿐 아니라 스마트 워치까지 등장하고 있지만 한규현(26·여)씨는 여전히 낡은 손목시계를 착용한다. 그는 “시계를 시간을 보는 용도로만 이용하지는 않는다”며 “시침과 분침이 돌아가는 옛날 시계들이 훨씬 예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턴테이블을 직접 구매해 아버지가 수집하신 LP 판을 이용해 음악을 듣는 김혁진(27·남)씨도 “턴테이블에 LP 판을 올리고 듣는 음악은 뭔가 더 깊은 울림을 준다”며 “턴테이블을 통해 흘러 나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 있으면 옛날 사람이 된 기분도 든다”고 말했다. 이어 “LP 판으로 음악을 듣는 것도 좋지만 턴테이블 하나를 둠으로써 집의 인테리어가 더 돋보이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 덧붙였다.
아날로그 유행도 취미의 한 장르
‘펜후드’의 박 소장은 20대들이 아날로그 아이템에 관심을 가지는 현상에 대해 “글을 쓰고 만년필을 다루는 것과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행위 등은 특별한 행위라기 보다는 취미의 한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냅타임 이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