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알 “이춘재의 시그니처, 화성 8차 사건에서도 발견”
전문가 “8차 사건, 2차와 유사한 수법”
이춘재, 화성 8차 사건 자백. (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
이춘재(57) 만의 범행 시그니처(범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저지르는 판박이 행위)가 화성 8차 사건에서도 남아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이하 ’그알‘)’에서는 화성 8차 사건의 진실을 파헤쳤다.
지난 1988년 9월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에서 중학생인 박모(13)양이 자신의 집 안에서 성폭행당한 뒤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인근 농기구 공장에서 근무하던 당시 22세 윤모씨를 범인으로 지목, 자백을 받아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씨는 “경찰의 혹독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었다”며 항소했지만, 상급심 재판부는 “윤씨의 자백에 신빙성을 의심할만한 부분이 없고 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만한 자료도 없다”고 판단해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윤씨는 1990년 5월 무기징역을 확정받아 복역하던 중 징역 20년으로 감형돼 2009년 8월 가석방됐다.
그로부터 30년 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이춘재는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했다. 이춘재의 자백 이후 윤씨는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준비 중이다.
윤씨는 ‘그알’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는 몰랐는데, 친구가 ‘이춘재가 자백했다’라고 전화로 말해 알게 됐다”며 “솔직히 말하면 이춘재가 밝혀준 것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윤씨는 이어 “잡혀간 날이 저녁 먹을 때였다. 한 숟갈 뜨는데 잡혀갔다. 나 하나 죽는다고 신경도 안 쓸 것 같았다. 3일 밤낮으로 잠도 못 자고 조사를 받았다. 거기서 자백을 하라더라. 자백하면 사형보다는 낫다고 하더라. 사체에서 내 음모가 나왔다는데 왜 나왔을까 궁금하다. 조작인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알’ 제작진은 윤씨의 진술조서를 단독 입수했다. 진술서에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윤씨가 썼다고는 보기 어려운 어휘들이 발견됐다. 윤씨는 당시 진술서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자필로 썼다고 하는데, 형사들 말을 듣고 받아쓴 건 기억난다”고 주장했다.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박지선 교수는 윤씨의 진술내용과 관련 “윤씨가 말하는 범행 동기는 지나치게 길고 장황하다. 마치 윤씨가 범죄자라는 것을 믿는 누군가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사건은 목적이 뚜렷한 강간이다. 강간 사건의 동기라는 것은 달리 없다. 그렇게 자세하게 진술할 필요가 없다”고 추측했다.
또한 피해자 박양 사체에는 윤씨의 진술서에서 볼 수 없었던 상처의 흔적이 있었다. ‘그알’ 제작진이 한 법의학전문가와 함께 화성 8차 사건과 관련된 미공개 자료 원본을 확인한 결과, 다른 연쇄살인사건에 나타난 이춘재의 범행 시그니처가 8차 사건에도 남아 있음을 발견했다.
부검 사진을 본 법의학전문가는 “피해자 목에 있는 상처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안에 뭔가를 집어넣고 목을 졸랐을 가능성이 있다. 노련한 범죄자 스타일이다. 1986년 10월 발생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 2차 사건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데일리 장구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