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형제의 난, 장남이 떠난다
한국타이어에서 벌어진 형제의 난이 수습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높아졌으나 장남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대표이사가 사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이한상 고려대 교수를 한국앤컴퍼니의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회 위원으로 제안하는 내용을 담은 주주선한을 발표하며 일각에서는 '여지'를 남기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왼쪽부터)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 출처= 뉴시스 |
형제의 난
한국타이어에서 벌어진 형제의 난은 지난해 6월 조양래 회장이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 23.59% 전량을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양도하며 부상했다. 차남이 후계자로 낙점된 것이라는 내외부의 평가가 나온 가운데 다른 형제들의 반발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은 차남에게 지분을 양도한다는 결정이 나온 후 조양래 회장을 대상으로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법원에 청구했다. 한정후견은 정신적 제약을 지닌 성인을 대신해 의사를 결정해줄 후견인을 선임해주는 제도다. 조 이사장 측은 "조 회장이 건강한 정신을 지닌 가운데 자발적인 의사로 (지분 양도) 결정 내린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장녀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매주 친구들과 골프를 즐기고 있고, 개인트레이닝(PT)을 받거나 하루 4~5㎞씩 걷기운동도 하고 있다"며 "이번 주식 매각 건으로 (딸과의) 관계가 조금 소원해진건 느끼지만, 딸에게 경영권을 줄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순식간에 아버지+차남과 장녀+장남의 경영권 분쟁구도가 그려졌다.
사실 이러한 분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이 재계 내외부의 증언이다. 실제로 2019년 조현범 사장이 배임수재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전격 구속된 당시 장녀인 조희경 이사장이 기존 경영 투톱 라인업인 조현식 대표, 조현범 사장 구도를 깨고 조현식 대표 체제 강화를 노렸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경영환경이 불투명해지자 조 이사장의 로드맵에는 제동이 걸렸고, 이런 상황에서 조양래 회장이 차남인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을 몰아주자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후끈 달아올랐다는 해석이 많다.
이후로는 난타전이 벌어졌다. 조 이사장의 한정후견 개시심판 신청 후 침묵을 지키던 조현식 대표는 지난해 8월 "현재 회장님의 건강 상태에 대해 주변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그에 따라 그룹의 장래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는 상황"이라면서 "회장님의 최근 결정들이 회장님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제공된 사실과 다른 정보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조희경 이사장과 함께 움직이며 경영권 분쟁에서 뒤쳐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후견심판이 진행된 후에도 대립은 이어졌다.조희경 이사장은 후견심판 직후 "아버님(조양래 회장)의 신념과 철학이 무너지는 결정과 불합리한 의사소통이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비밀리에 조현범 사장에게 주식을 매매하는 방식으로 승계가 갑자기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조희경 이사장은 이어 "조현범 사장의 부도덕한 비리와 잘못된 경영판단은 회사에 금전적 손실은 물론 한국타이어가 쌓아온 신뢰와 평판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다만 지난해 11월 그룹 이사회에 두 형제가 나란히 참석하는 한편 인수합병과 관련된 현안들이 매끄럽게 통과되며 일각에서는 '상황이 달라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24일 조현식 대표가 전격 물러나며 형제의 난은 동생의 승리로 끝났다.
출처=회사 제공 |
여진 있을까
대한항공 및 롯데그룹 사태에서 형제 및 남매의 난은 심심치않게 벌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기업의 가치와 브랜드는 곤두박질치기 일쑤였다. 한국타이어에서 벌어진 형제의 난도 마찬가지다. 재계에서 잊을만 하면 벌어지는 '탐욕의 전쟁'이 또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내외부에서 나왔다.
이런 가운데 조현식 대표가 사임을 결정하며 한국타이어는 빠르게 정상궤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영권 분쟁 논란의 책임을 지고 떠나는 조 대표가 이한상 고려대 교수를 바뀐 상법의 3% 룰에 따라 주총에서 분리 선출하는 감사위원(선임되면 당연직 사외이사)으로 추천하는 주주제안을 낸 점은 묘하다는 말이 나온다. 경영권 분쟁에서 패했으나 이사회에 '자신의 사람'을 심어두려는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다만 김 교수는 SNS를 통해 "이번 제안과 관련해 조 대표와 만난 것은 두 번이 전부"라면서 "특별한 인연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분리 선출되는 감사위원으로 들어가 조현식 대표의 대리인으로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조현식 대표를 돕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절대 아니다"면서 "그런 제안이었다면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기업지배구조에 관심이 있는 학자로서 사회에서 주목을 받는 회사에, 특히 개정된 상법의 감사인 분리 선출이 원활하게 작동하는지 시금석이 될 수도 있는 케이스에 직접 관여하게 된 것을 의미 깊게 생각한다"면서 "감사위원 겸 사외이사로 선임된다면 독립성과 회계/세무/감사 분야의 전문성에 대해 해당 산업을 면밀히 학습하고 여러분들에게 배워 회사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통해 주주들과 이해관계자들에게 그리고 사회와 가치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