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와이퍼…"자동차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양정민 기자]
#. 출고된지 25년이 넘은 '볼보 850' 차량을 모는 베테랑 운전기사 우 모씨(72·가명)는 최근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다. 국내에서는 사라졌다고 여겨졌던 헤드라이트 와이퍼 차량이 발견되자 자동차 유튜버들이 무단으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한 것이다. 우 씨는 "당황스럽다"면서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헤드라이트 와이퍼가 있는 차를 신기하게 보는 시각이 또 새롭다"고 말했다.
차량의 '미니멀리즘'과 디자인 강조 트렌드가 대두되면서 리어와이퍼(뒷유리 와이퍼), 스페어 타이어 등 차량의 필수 장치로 여겨지던 부품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실제로 20일 자동차 업계 등에 따르면 2025년 현재 헤드라이트 와이퍼를 장착해 출고되는 차량은 전무하다. 르노삼성의 XM3, 메르세데스-벤츠 GLE 쿠페 등 쿠페형 SUV도 리어 와이퍼가 장착되지 않은 채 차량이 출고된다. 현대자동차도 최근 차량들의 리어와이퍼를 히든 형태로 출시 중이다.
'안전'의 상징이던 헤드라이트 와이퍼… 왜 단종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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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헤드라이트 와이퍼는 볼보, 사브 등 북유럽 출신 자동차 제조사에서 안전의 상징으로 꼽혔다. 북유럽은 비나 눈이 자주 내리고 기후가 자주 변하기에 주행 중 헤드라이트에 쌓이는 흙먼지, 진흙 등 오염물을 제거하는 기능이 실용적으로 평가됐다.
노르웨이에 거주하는 모튼 하플란(25) 씨는 "북유럽은 낮이 짧고 눈이 자주 오거나 먹구름이 낀 날이 많아 운전 중 헤드라이트 기능이 필수다"며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도 비포장 도로가 많아 차량에 눈에 섞인 진흙이 자주 묻어 이것을 털어낼 때도 많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 헤드라이트가 유리로 만들어졌던 점도 헤드라이트 와이퍼가 채택됐던 이유였다. 당시 유리 재질은 오염이 심해질 경우 빛의 투과율이 크게 떨어져 안전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헤드라이트 와이퍼는 유지 보수 비용이 높고 LED 조명·플라스틱 커버, 발수 코팅, 헤드라이트 워셔 등이 등장하며 점차 모습을 감췄다. 업계 관계자들은 "차량 기술이 급격히 발전한 만큼 헤드라이트 와이퍼가 다시 부활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열선 대체·히든화… 리어와이퍼, 시야 밖으로 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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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후면 유리 청소를 담당하는 리어와이퍼도 일부 SUV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SUV와 해치백은 뒷유리의 경사각이 세단 등에 비해 커 빗물이나 먼지가 잘 쌓이기 쉽기 때문에 리어와이퍼가 필수 장치로 여겨졌다.
업계 관계자는 "(차량은) 주행 중 생기는 공기의 흐름으로 인해 더티에어와 소용돌이(와류현상)이 발생하는데 먼지와 이물질이 쌓이는 현상이 생긴다"며 "SUV나 해치백처럼 뒷유리의 경사가 90도에 가까울수록 와류현상으로 인해 더러워지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메르세데스-벤츠 GLE 쿠페 시리즈, BMW X6 등 일부 쿠페형 SUV들은 루프라인부터 트렁크 상단까지의 형태가 세단과 비슷하기 때문에 리어와이퍼가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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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는 아이오닉5 출시 당시 리어와이퍼 제거라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후면 카메라의 발달과 리어 스포일러 보급 확대에 맞춰 외관 디자인이 더 돋보이도록 강조한 시도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2019년 당시 초기 모델은 리어와이퍼를 없앴다가 추후 고객 의견을 수렴해 다시 넣었다"며 "얼마 전 출시한 디 올 뉴 팰리세이드를 포함한 최근 모델들은 리어와이퍼를 '히든'형태로 숨기고 있다"고 언급했다.
리어와이퍼를 작동해야 하는 순간에만 와이퍼가 작동하고 평소에는 리어와이퍼를 가리며 외관과 성능을 모두 챙긴다는 것이 최근 차량의 트렌드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리어와이퍼가 꼭 하단에 존재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열선 등을 이용해 물, 먼지 등을 털어낼 수 있으며 미적 디자인과 성능을 모두 잡을 수 있는 선택도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박병일 자동차 정비 명장은 "외국 차의 경우 헤드라이트 와이어 같은 부품 공수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후면카메라 기술 등의 발달로 리어와이퍼도 필수가 아니게 됐고 최근에는 히든 형태의 차량도 많이 생겨 와이퍼의 종류는 되려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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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에 리어 스포일러를 장착하는 것이 와류현상 감소에 유용하다는 연구도 존재했다.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전융합공학과 박동규 교수가 진행한 『SUV 차량 리어 스포일러 최적 형상에 관한 연구』는 가니쉬 라인의 리어 스포일러를 장착할 시 현 사양 대비 항력 1.1% 감소와 연비 0.55% 향상, 원가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국민대학교 권용주 자동차운송디자인 교수는 "리어와이퍼의 유무가 와류현상에 큰 영향을 끼친다기보단 디자인적 요소때문에 차량 후면의 리어 스포일러 안쪽 부분 등 (시각적으로 리어와이퍼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하다"며 "히든 도어 적용이나 리어 윙의 발전으로 더티 에어로 인한 차량 후면 유리 오염과 와류현상을 줄이려는 기술적·미적 시도도 최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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