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한글패치', 그들은 한국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어로 쇼핑하려면 여기를 클릭하시오”
한글번역 적용이 완료된 아마존 웹사이트. 출처= 아마존 |
글로벌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의미심장한 시도로 또 한 번 한국 이커머스 업계를 놀라게 했다. 28일 새벽(한국시간) 아마존은 자사의 전자상거래 사이트 ‘아마존닷컴’의 외국어 번역 지원 언어에 ‘한글’을 추가하면서 아마존을 이용하는 한국인들의 편의성을 끌어올렸다. 이에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아마존이 한국 이커머스 시장 진출의 포석을 깔고 있다”는 등으로 해석하며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마존은 자사 사이트 메인에 “한국어로 쇼핑하려면 여기를 클릭하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문을 내걸었다. 이 안내문을 클릭하면 아마존은 기본 언어를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창을 보여준다. 기존에는 영어(기본)에 스페인어, 중국어(간체/번체), 독일어, 포르투갈어까지 총 6개 언어 설정 변경이 가능하던 것에 일곱 번째로 한국어가 추가됐다. 다만, 번역의 수준은 구글번역기 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며 아직까지 화면에 보이는 모든 텍스트가 한글로 완벽하게 변환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상품 검색과 결제까지 모든 과정에 대한 정보 전달은 확실히 이전과 달라져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이용자들도 아마존에서 물건을 구매하기 한결 쉬워졌다.
아마존에 추가된 한글 번역 옵션. 출처= 아마존 |
아마존은 클라우드(IT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가상 공간) 구축과 관리를 돕는 ‘아마존 웹서비스(AWS)’와 판매자들의 글로벌 이커머스 입점을 돕는 ‘아마존 글로벌 셀링’ 등 2개 법인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이커머스 업계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현재 운영하고 있는 사업과는 내용이 조금 다르다. 업계에서 말하는 한국 진출은 아마존이 직접 직출해 세운 일본의 ‘아마존 재팬’처럼 우리나라에 ‘아마존코리아’라는 법인을 세우고 이곳을 통해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존이 현재 미국 내에서 추진하고 있는 규모가 큰 사업들은 사실 우리나라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 이를테면 드론을 활용한 상품 배송이나 무인매장 ‘아마존 고’의 운영, 온라인 의약품 유통사업 그리고 온라인과 연계된 오프라인 매장의 개척과 활용 등은 철저하게 미국 유통업계의 구조에 맞춘 아마존의 영역 확장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제프 베조스(아마존 CEO)는 현재 이커머스로 새로운 국가에 진출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의견에 설득력이 생길 때쯤마다 아마존은 한국의 이커머스와 관련된 ‘어떤 것’들을 언급하거나 실행에 옮겨왔다. 지난 2017년 7월 아마존은 한국지사인 아마존서비시즈코리아는 약 50명의 마케팅 인력 채용 후 국내에 전자지급결제대행(PG) 합작사를 설립했다.
여기에 아마존은 지난해 7월 5일부터 13일까지 이커머스 법인으로 직접 진출하지 않은 국가에서 발생하는 90달러(약 10만2303원) 이상 주문에 대한 배송비를 받지 않는 ‘글로벌 무료 배송(Free Amazon Global Shipping)’ 서비스를 시행했다. 무료배송 대상 국가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돼있었다.
현실적 가설과 한계
지금 당장 아마존이 한국의 이커머스와 관련된 어떤 변화를 추구한다면 생각할 수 있는 가설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 지역의 이커머스 구매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물류 기지를 우리나라에 마련해 운영하는 것이다. 이 기지가 완성되면 해당 지역의 해외직구 수요가 높은 품목들을 미리 물류 창고에 적재해두고 빠르게 배송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처럼 당일배송을 할 수 있는 여건도 갖춰진다. 아마존 이커머스 한국 법인의 출범은 일련의 단계로 한국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는 실험을 한 뒤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아니라면 국내에 이미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는 이커머스 업체와의 인수합병을 통한 진출이거나.
진짜유통연구소 박성의 소장은 “만약 아마존이 한국에 물류센터를 운영한다면 그 물류센터는 FBA(Fulfillment BY Amazon)의 운영 방식을 차용해 운영되면서 직접 배송은 한국의 배송 기업에게 외주를 주는 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것”이라면서 “여기에 아마존이 미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사의 수많은 자체 브랜드(PB) 제품 유통이 전략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몇 가지 선행 전제가 있은 후의 가정일 뿐이다. 우선 한국의 관세법상 아마존이 우리나라에 물류 거점을 마련하더라도 상품의 직접 판매는 불가능하다. 만약 이것이 가능해진다면 해외 업체에 대한 전에 없던 특혜가 된다. 물론 최근 싱가포르가 아마존에게 이 제한을 해제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 문제를 떠나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의 반발이 있을것이기에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구매자로 달라진 한국 구매자들의 입지
아마존의 한글 번역 추가는 배송 대행을 통한 구매가 아닌 아마존을 통한 한국소비자들의 직접 구매가 늘어난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아마존의 이커머스는 구매액으로 각 국가에 대한 서비스의 수준을 다르게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커머스 업계 한 전문가는 "아마존이 자체적으로 측정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직접 구매액은 이미 2016년에 아마존과 거래하는 수많은 전 세계 국가들 중 10위권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이번 아마존의 한글 추가는 그만큼 한국이라는 시장의 입지가 아마존에서 중요하게 여겨질 정도로 커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베조스가 지켜보고 있다
출처= 뉴시스 |
제프 베조스가 “우리는 한국에 이커머스 법인을 설립합니다”라고 당장 내일이라도 말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혹은 아마존이 망하기 전까지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발을 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2017년 신디 타이(Cindy Tai) 아마존 아태지역 부사장은 공식석상에서 “한국(이커머스) 시장 진출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는 내용은 없다”면서 “아마존은 언제나 다양한 시장에서의 영역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련의 사례들로 볼 때 아마존은 분명히 한국의 이커머스 시장을 계속해서 분석하고, 연구하고 있다. 그것이 인접한 국가로의 진출을 위해서든 혹은 한국 직접 진출을 위해서든 말이다. 이번의 아마존의 한글 번역 추가는 이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예상’하게 만들었다. 과연 제프 베조스의 수첩에 한국은 어떤 키워드로 기록돼있을까.
박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