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부터 갤럭시Z 플립까지..삼성 "귀여움이 폭발한다"
IT여담
밀레니얼 세대 정조준
취재를 위해 미국 출장을 가면 대부분 우버나 리프트를 통해 이동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 회사의 이미지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응입니다. 현지서 일하는 한국 엔지니어는 “우버가 비즈니스나 택시 이미지의 연장선이라면, 리프트는 다소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서 “리프트 고객들은 여성들이 많다”고 귀뜸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두 기업의 로고나 컬러의 차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버는 블랙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리프트는 진한 분홍색으로 어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기업으로 활동하는 우버와 달리 리프트는 미국을 중심으로만 서비스되고 있으나, 리프트는 최소한 미국에서 만큼은 우버에 크게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력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이미지 메이킹이 아닐까 합니다.
삼성, 귀여워지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는 다소 딱딱한 이미지입니다. 총수를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고 완고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조직. 서양인의 기준으로 보면 유교식 조직문화에 익숙한 ‘아재들의 집합체’입니다. 앤디 루빈이 안드로이드를 창업한 후 삼성전자를 찾아왔을 때 임원들이 일제히 회의장에 도열하는 장면을 보고 놀랐다는 일화는 삼성전자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삼성전자가 변하고 있습니다. 왠지 실제로 만나면 말 한 번 붙이지 못할 것 같은 다소 딱딱한 이미지의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이 2016년 미국에서 열린 언팩서 블루코랄 자켓을 입고 무대에 올라 본인이 조지 클루니와 닮았다는 농담을 해 좌중을 놀라게(?) 만들더니,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해 9월 국내 기자회견서 프로젝트 프리즘의 첫 작품인 비스포크를 소개하며 아예 상하의 블루코랄 깔맞춤으로 역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고 사장이 상의만 블루코랄 자켓으로 커버했다면 김 사장은 상하의 전부를 블루코랄로 맞췄고, 구두 대신 하얀색 운동화를 신어 더욱 맵시를 뽐냈습니다. ‘이런 것도 할 줄 알았구나’ 이제 김기남 부회장만 남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패션 컨셉의 ‘일부 변화’로 삼성전자가 딱딱한 이미지에서 말랑말랑한 이미지로 변신한다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올해부터 보여지는 제품 라인업을 보면 ‘어? 달라지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볼리입니다.
CES 2020 현장에서 처음 공개된 볼리는 공 모양의 로봇으로 이동이 자유롭고 사용자를 인식해 따라 다니며, 사용자 명령에 따라 집안 곳곳을 모니터링하고 스마트폰 및 TV등 주요 스마트 기기와 연동해 다양한 홈 케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온 디바이스 AI(On-Device AI) 기능이 탑재돼 있어 보안과 프라이버시 보호를 강화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볼리의 비밀무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귀여움’입니다.
발표 현장에서 김 사장은 볼리의 기능을 설명하더니, 갑자기 함께 무대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김 사장은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무대를 누렸고, 볼리는 그 뒤를 마치 귀여운 반려동물처럼 졸졸졸 따라왔습니다. 현장에는 박수가 터져나왔고 모두들 볼리의 귀여움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 ‘저걸(볼리)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싶던 사람들도 김 시장과 볼리의 발랄한 산책을 보고는 ‘아, 귀엽다..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Z 플립도 마찬가지입니다. 6.7형 폴더블 글래스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한 손에 쏙 들어가는 크기와 말 그대로 ‘블링블링한 디자인’은 충분히 귀엽고 예쁩니다. ‘여심 저격’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수준입니다. 혁신적인 하이드어웨이 힌지 기술 등 폴더블 스마트폰의 혁신을 체감하려고 갤럭시Z 플립을 구매한 이들이 그 ‘예쁨과 귀여움’에 매료되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객들이 폴더블 스마트폰의 혁신을 체감하기 위해 갤럭시Z 플립을 사는 것인지, 너무 예쁜 스마트폰이 등장해 소장하고 싶은 것인지 헷갈려합니다. 165만의 가격도 갤럭시폴드와 비교하면 착하고, 무엇보다 소유욕구를 ‘뿜뿜’ 잡아냅니다.
밀레니얼 잡고, 미래 잡는다
몇 년전 중국에서 스마트폰 사업을 하는 전문가를 만났을 때 일입니다. 당시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부동의 1위에서 소위 날개없는 추락하던 때였고, 저는 그 이유를 전문가에게 물어봤습니다. 전문가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삼성 스마트폰은 엣지가 없다”
무슨 뜻일까요.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현지에서 자사 스마트폰의 특색을 설명할 수 있는 이미지를 강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샤오미는 젊은층을 겨냥하고, 비보는 남성을, 오포는 여성을 겨냥했다는 말이 나왔으나 삼성전자는 이미지가 ‘어정쩡’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아재폰’이라는 이미지 컨셉이라도 잡아야 했는데 여기는 화웨이가 이미 자리를 잡았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삼성전자는 변하고 있습니다. 더욱 귀여워지고, 더욱 발랄해지면서 자기의 존재감을 독특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직은 제품 라인업이 소프트웨어와의 시너지보다 몬스터급 하드웨어 기능 강화에 방점이 찍혔으나, 프로젝트 프리즘에 이어 스크린 에브리웨어와 같은 다양한 전략을 끌어가며 힘있는 행보를 보여주는 중입니다. 김 사장과 산책하는 볼리가 나오고, 한류스타 못지않은 여심저격을 보여주는 갤럭시Z 플립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이러한 변화는 밀레니얼 세대를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파괴적 커머스 시대, 우리의 대응과 미래 경쟁력 컨퍼런스’가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5일 열린 가운데 무대에 오른 김연희 한국 BCG(보스턴컨설팅그룹) 대표의 말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현장에서 “이미 5, 6년전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들의 주 타깃은 밀레니얼로 옮겨갔다”고 단언하며 “밀레니얼은 시대를 주도하고 있으며, 그 대척점에 있는 베이비 부머 세대가 밀레니얼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추세가 보인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어 2020년까지 전 세계 소비의 70% 이상은 밀레니얼 세대가 주도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예전에는 각 지역, 부모의 특성에 따라 자녀의 트렌드가 정해지고는 했으나 밀레니얼 세대는 거주지역이 한국이거나 중국, 유럽일 경우에도 비슷한 트렌드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밀레니얼이 주류가 되고, 그들은 글로벌 원마켓(하나의 시장) 트렌드를 이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밀레니얼은 세상의 중심에 본인을 두고, 본인의 뜻에 따라 물건이나 서비스를 소비하면서 그 트렌드를 동시다발적으로 확산시킨다고 합니다.
삼성전자도 여기에 주목하는 분위기입니다. 밀레니얼을 전담으로 연구하는 조직을 구축하고, 조직은 물론 제품 라인업에도 ‘말랑말랑함’을 넣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프리즘을 통해 맞춤형, 경험의 시대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볼리와 갤럭시Z 플립같은 귀여움이 폭발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이유있는 변신이 앞으로도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최진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