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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가 주인공인 삶… “우리, 채소 요리 만들어 먹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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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호텔리어 워킹맘의 인스타그램에 어느날부터인가 채소 요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버터를 녹인 팬에 구운 채소, 식용 꽃을 얹어낸 완두콩 스프…. 채소들의 빨강 노랑 초록 색상과 ‘지글지글’ 불에 달궈지는 소리가 어찌나 건강한 행복감을 전하던지. 그녀는 요리 사진과 영상에 이런 문장들을 달곤 했다. ‘이번 주도 힐링’. ‘나의 꾸준한 채소 식단을 위해’.


매번 채소의 변신이 무궁무진해 놀라웠다. 알고 보니 그녀는 정기적으로 채소 요리 클래스에 다니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양출서울’이다. 김승미 양출서울 대표(45)는 함께 일하던 송호윤 셰프(32)의 제안으로 2014년부터 운영하던 일본 가정식 식당을 2020년부터 채소 요리 식당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낮에는 정기적으로 채소 요리 클래스를 진행하고, 저녁에는 채소 요리를 내놓는 와인바로 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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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출서울 김승미 대표(왼쪽)와 송호윤 셰프.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20일 이 클래스에 찾아가 봤다. 여기에 모인 30대 여성 수강생들은 수년째 이 요리 수업을 들어온 ‘베테랑 수강생’들이었다. 편안한 라운지 음악이 조용하게 흐르는 가운데 셰프를 향하는 아일랜드형 조리대에 수강생들이 둘러앉았다. 파인애플, 대저토마토, 아스파라거스, 양파 등이 마치 갓 수확된 듯 신선한 상태로 준비돼 있었다.


클래스를 이끄는 송호윤 셰프는 가장 먼저 아스파라거스를 다듬기 시작했다. 먹음직스러운 굵은 아스파라거스는 평소 거래하는 농장을 통해 구했다고 했다. 가정식 식당을 할 때에는 귀한 채소를 어렵게 구해 요리해 내도 손님들은 남기기 일쑤였다. 고기는 다 먹어도 채소는 남기는, 채소를 하찮게 여기는 음식문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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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4년 전 아예 ‘채소가 중심이 되는 식당’으로 콘셉트를 바꾸자 채소 요리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건강한 요리’에 대한 수요도 생겨났다. 채소 요리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예뻐지는 요리, 오감을 깨우는 요리로 새로운 위상을 얻었다.


이제 세상은 채소를 즐겨 먹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채소는 지친 삶을 위로하는 ‘소울 푸드(soul food)’가 됐다. “토마토를 갈아서 끓인 후 걸러내면 맑은 물이 똑똑 떨어져요. 얼마나 깨끗한 맛인지 몰라요. 채소 요리를 마친 후 설거지할 때 향이 참 좋아요.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조차 예쁠 정도라니까요.” (김승미 양출서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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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리 수업은 고요하게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셰프와 수강생들이 오랫동안 교감해온 만큼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저 어떻게 파인애플을 썰어내는지, 어떻게 토마토를 다지는지 셰프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필요한 부분을 메모해 두는 식이다. 채소 요리는 신기했다. 파인애플은 굽기만 해도 당도가 올라가 달달해졌다. 구운 배추를 썰어 먹는데 마치 채소 스테이크를 먹는 기분이었다. 채소는 요리 방법에 따라 식감이 정말로 다양하게 바뀌었다.


수강생들이 말했다. “1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이 시간이 제게는 정말 힐링이에요”, “평소 집에 있는 채소들을 활용해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 먹게 되니까 채소를 묵혀 버리는 일이 없게 돼요”. 이날 수업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국내 대형 로펌에 다니는 40대 미혼의 남성 변호사도 이 채소 요리 클래스의 수강생이라고 했다. ‘미래의 신부’에게 건강한 요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다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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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수업 동안 콩나물, 무, 브로콜리, 당근을 건조해 우려낸 채소 차가 제공됐다. 몸속 장기까지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 같았다. 8살 아들을 둔 한 수강생은 아들이 5살 때부터 이 클래스를 다녔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채소를 만지게 하고 냄새 맡게 했더니 이제는 각종 채소 요리를 즐긴다고 해서 부러웠다. 이 얼마나 훌륭한 자녀 교육인가. 송 셰프는 “대개의 아이들은 채소 특유의 쓴맛을 싫어한다”며 “아이가 채소를 먹기 꺼려한다면, 갈아 넣거나 다져서 채소의 정체를 숨겨 요리하는 걸 권한다”고 했다.


채소 요리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채소 요리를 통해 건강뿐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을 챙기는 것이다. 채소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채소를 공급하는 농장들이 많아지고, 그러면 소비자가 선택할 채소들이 다양해지는 ‘채소의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만들기도 쉽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레시피 (4인 기준)

●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오믈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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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란 7개는 볼에 풀어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잘 풀어 준비한다.

2. 아스파라거스는 먹기 좋게 다듬어 슬라이스 해주고 봉오리 부분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기 좋게 잘라 볼에 담아 준비한다.

3. 대저토마토는 3개 준비해 꼭지를 제거하고 끓는 물에 30초 데쳐 얼음물에 담근 후 껍질을 벗겨 다진다.

4. 다진 토마토에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 레몬 제스트, 다진 마늘, 허브를 넣어 드레싱을 만들고 2의 아스파라거스와 섞어준다.

5. 양파는 얇게 저민 후 4의 볼에 같이 섞어준다. 이때 레몬즙을 살짝 넣는다.

6. 1의 재료를 팬에서 저어가며 익힌다. 다져둔 토마토와 다진 파슬리도 넣어 익힌다.

7. 준비된 접시에 6을 담고 5의 재료를 올린 후 올리브오일을 뿌려 완성한다.


● 구운 파인애플과 컬리플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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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인애플 반 통을 네 조각으로 잘라 오일 두른 팬에서 노릇하게 구워 준다.

2. 컬리플라워는 잘게 썰어 1의 팬에서 볶아준다. 다진 파슬리,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3. 준비된 접시에 2의 컬리플라워를 담고 올리브오일을 뿌려 완성한다.


● 완두콩을 얹은 구운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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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은 알배추를 4등분해 오일 두른 팬에서 노릇하게 굽는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한다.

2. 1의 구운 알배추는 접시에 옮겨 주고 1의 팬에 오일을 둘러 다진 양파를 넣어 볶아 향을 내다가 화이트 와인을 살짝 부어준다.

3. 2의 팬에 완두콩, 다진 파슬리, 소금, 후추, 채수(채소 우린 물)를 넣어 간을 한다.

4. 준비된 접시에 2의 알배추를 담고 3의 완두콩을 올리고 레몬 제스트, 소금, 후추, 올리브오일을 뿌려 완성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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