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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인생 50년, 두리랜드 33년 배우 임채무 “여생은 의료봉사 다니며 살고 싶다”

동아일보

데뷔 50주년을 맞은 ‘원조 멜로장인’ 배우 임채무.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일일연속극, 주말드라마 안방극장의 ‘탤런트’로 50년, 운영할수록 손해가 더 큰 놀이공원 ‘사장님’으로 33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 새 나이는 칠순을 넘었습니다. 인생 후반부 여생은 40년 전 품었던 숙원을 이루며 살아보기로 다짐했습니다.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은 배우 임채무(75)의 이야기입니다.


40년 전, 전국을 돌아다니며 드라마 촬영을 다녔던 10년 차 배우 임채무에겐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산간벽지에 의료봉사를 다니는 것.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시로부터 한참 떨어진 시골의 의료 인프라는 열악합니다. 한평생 농사짓느라 몸을 쟁기처럼 써왔던 어르신들 대부분 무릎과 허리에 골병이 들었지만 제때 치료를 받기란 어려웠습니다. 시골엔 큰 병원이 없었던 탓에, 진료라도 받으려면 대도시로 나와야 하지만 교통편도 여의치 않은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세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을 지켜볼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 살다가 이 나이가 됐다”는 임채무. 칠순이 넘은 나이, 자식이 자식을 낳아 손주를 둔 할아버지가 된 후에야 오랜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4월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예능 ENA ‘임채무의 낭만닥터’를 진행하게 된 겁니다. ‘임채무의 낭만닥터’는 이동치료소 차를 타고 다니며 전국 각지를 찾아 의료봉사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조만간 시즌2 촬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임채무는 이번 시즌에서도 출연료를 받지 않습니다. “늘그막에 봉사한답시고 시작했지만 결국 내가 얻는 게 더 많더라”는 그를 최근 경기 양주의 두리랜드에서 <복수자들>이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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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방영된 ‘임채무의 낭만닥터’ 시즌1에 이어 시즌2에도 임채무는 출연료를 받지 않을 계획이다.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임채무의 낭만닥터’ 시즌2 촬영을 앞두고 계십니다.

“(시즌1 촬영 때) 7개월 동안 20개 넘는 읍면리 시골을 다녔어요. 가서 보니까 어르신의 99.9%가 무릎, 허리는 기본으로 고장이 나 있는데 병원을 안 가시는 거예요. 왜 안 가시느냐 물으면, 마을 교통편이 아무리 좋아도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아니곤 버스가 오질 않는다는 거예요.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시골엔 병원이 없잖아요. 병원 가려면 대도시로 나와야 하고 겨우 예약을 하면 환자가 워낙 몰리니 진료도 미뤄지고…. 그러다 보면 버스가 끊겨서 집에 오기 힘들고. ‘에라 모르겠다, 귀찮다’ 하면서 병원을 안 가는 거죠.”


―의료봉사 하겠다 마음 먹으신 게 40년 전이시라고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드라마 촬영을 하고 야간 업소나 지역 축제에서 행사 뛰던 시절이에요. (시골의 의료시설이)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어요.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나이 들면 시골로 의료봉사를 다니며 살아야겠다고요. 어르신들 치료도 해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먹여드리고 싶다. 진료 의자, 의료기구, 침대, 냉장고 같은 게 다 들어갈 수 있는 버스가 한 대 있으면 참 좋겠다. 구상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해보려고도 했어요. 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님이 도와주려고 하셨어요.”


―김우중 회장과는 어떤 인연이었나요.

“당시 연예인들로 이뤄진 ‘무궁화 축구단’이 있었어요. 그때 김우중 회장이 우리 축구단을 지원해주시면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나요. ‘대한민국 공무원들, 특히 경찰, 시청, 구청 공무원들이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 한다고 하더라. 억지로라도 운동을 해야 몸도 정신도 건강해진다. 유명한 연예인들이 친선 축구대회 하자고 하면 운동하러 나올 것이니 공무원들 불러내서 같이 운동하라.’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신 분이었어요. 참 존경하고 좋아했죠. 사석에서 회장님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의료봉사 이야기를 잠깐 꺼냈었어요. 당시만 해도 (제가) 인기가 좋았을 때니 팬클럽 회원들이랑 봉사활동 다니고 싶은데 의료 차량 한 대만 기부해줄 수 있냐고 여쭤봤죠.”


―뭐라고 하시던가요.

“너무나 흔쾌히 알겠다고 하시더니 바로 비서실장을 불러서 이것저것 지시를 하시더라고요. 계획도 다 세우고 이런저런 계산도 끝내고 기다리는데, 나중에 비서실에서 연락에 왔어요. 당시 금액으로 의료 차량 제작에만 2억 원이 넘게 들어가는 거예요. 법인 회사에서 개인에게 무상으로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던 거였죠. 아쉽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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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봉사’라는 40년 전 숙원을 ‘임채무의 낭만닥터’를 통해 이루게 됐다.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배우 생활을 하며, 두리랜드를 운영하며 한동안 잊고 살았던 꿈을 다시 꺼내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었습니다. ‘9988 정형외과의원’ 이태훈 원장과 독특한 인연이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이태훈 원장은 ‘임채무의 낭만닥터’ 시즌1 때부터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태훈 원장과는 어떤 인연이었나요?

“이태훈 원장이 운영하는 ‘9988 정형외과의원’을 보고 누가 나한테 제보를 했어요. 제 노래 ‘9988 내 인생’ 제목을 베껴서 병원 이름을 지은 게 아니냐는 거예요. ‘9988 내 인생’은 2018년에 제가 직접 만든 곡이에요.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아서 자식 속 썩이지 말자’는 뜻을 담은 곡인데, 이태훈 원장이 허락도 없이 ‘9988’을 갖다 썼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매니저한테 ‘잘됐다. 저작권 엄청 뜯어내자’ 해놓고 잊어버렸어요.(웃음)


그러고 한참 있는데, 몸이 너무 아픈 거예요. 치료를 받아야 해서 어느 병원을 갈까 했는데, 매니저가 9988 병원에 가자고 했죠. 당시 상황이 위급해서 바로 수술하고 치료도 잘 받았어요. 그러고 이태훈 원장이랑 식사를 했는데 슬쩍 저작권 이야기를 꺼냈죠. 이태훈 원장은 ‘9988’은 자기가 2017년부터 썼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러더니 ‘선생님이랑 가족분들 평생 정형외과 진료는 제가 무료로 해드리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그건 됐고 나랑 의료봉사하러 다니자’고요.”


―촬영이긴 하지만 7개월 동안 매주 봉사를 다니셨습니다. 힘들진 않으셨나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매주 전국 각지를 다니다 보니 피곤하고 이제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도 솔직히 있어요. 근데 이걸 하면서 새롭게 느낀 건, 남의 인생을 들여다본다는 게 참 즐거운 일이더라고요. 80세, 90세, 10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술 담배 적게 하고 음식 잘 챙겨 먹는 것보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사는 게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경북 의성에 사는 87세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분은 아침 10시에 막걸리 반병, 오후 4시에 막걸리 반병을 매일같이 마셔요. 막걸리가 거의 주식이야. 근데도 나보다 기운이 훨씬 더 좋아요. 낙천적인 마음으로 즐겁게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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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개장해 올해로 33년째 운영 중인 두리랜드의 모습.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시골 노인들의 낙천적인 삶을 동경한다고 했지만, 사실 임채무는 누구보다 ‘낙천적인 몽상가’에 가깝습니다. 30년 넘게 경기 양주에서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원 ‘두리랜드’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아닌 개인이 놀이공원을 운영하는 건 임채무가 유일합니다.


‘두리랜드’를 만들어야겠다 결심한 건 1973년 경기 양주의 사극 촬영 현장. 단역을 전전하던 무명 배우 임채무는 자신의 촬영 순서를 기다리다 인근 계곡에서 놀던 가족을 발견합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엔 깨진 술병이 흩어져 있고 고성방가를 하는 어른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날 문득 이런 다짐을 하게 합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자!” 10여 년이 지난 1989년 그때 그곳에 짓기 시작한 ‘두리랜드’는 1990년 5월 문을 열었습니다.


―30년 가까이 두리랜드엔 담도 없고 입장료도 없었다고요.

“원래부터 입장료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2000원씩 받았어요. 문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들을 데려온 부모가 문 앞에 서있는 거예요. 아이는 들어가겠다고 울고, 모자를 푹 눌러쓴 아버지의 주머니에선 동전 소리만 들렸죠. 입장료 때문에 난처한 것 같았어요. 다음 날 직원 불러서 입장료 없애자고 했죠.”


1990년대는 그가 CF, 드라마, 야간 업소에 출연해서 돈을 벌었을 때입니다. 방송에 나가 번 돈이 놀이동산 매출의 두 배가 넘었습니다. 사비를 털고 사재를 팔아 직원들 월급을 줬습니다. 하지만 IMF를 겪으면서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놀이동산을 찾아오지 않았고, 그를 불러주는 방송도 많이 줄었습니다. 경영 위기로 두리랜드는 2000년대 초 폐장했다 2009년 재개장했습니다. 이후에도 ‘입장료 0원’을 고수하던 두리랜드는 2020년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입장료를 받으시면서 욕을 많이 먹었다고요.

“여태 안 받다가 다 늙어 돈독이 올랐냐고 욕하는 분도 있었어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해요. ‘돈 받지 말고 다음 달에 문 닫을까요?’라고요. 제가 예전에는 야간 업소도 다니고 CF, 드라마 촬영도 많았으니까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는데 지금은 불러주는 데가 없으니 돈을 못 벌잖아요. 근데 전기세나 세금, 인건비에 매달 이자만 7천만 원이 넘어요. 두리랜드가 망하면 안 되잖아요. 망하는 거 막기 위해 입장료를 받게 됐어요.”


―두리랜드 운영하느라 생긴 빚이 160억 원이라고 들었어요.

“IMF 외환위기 때는 정말 어려웠는데 그래도 입장료 안 받고 운영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했어요. 근데 90년대만 해도 인기 있었던 회전목마, 바이킹, 범퍼카 같은 아날로그 놀이기구는 아이들이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거예요. 요즘엔 미세 먼지와 황사 때문에 엄마들이 바깥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는 걸 꺼리잖아요. 그래서 롯데월드처럼 실내 시설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2017년 말에 두리랜드를 닫고 2018년부터 신축 공사를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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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간 무료입장으로 운영되던 ‘두리랜드’는 재개장을 하면서 3년 전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VR 같은 새로운 놀이기구를 들여오고 실내 시설을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들지만, 연예인 임채무의 수입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의도에 있는 아파트 두 채를 팔았고 자녀들 마이너스 통장까지 끌어 썼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두리랜드는 재개장했지만 정작 그와 부인이 잘 곳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두리랜드 안 화장실을 개조해 일 년 넘게 먹고 자고 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제일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라며 “두리랜드는 돈 벌려고 운영하는 게 아니다. 빌린 돈 갚으려고 이제 와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벌었던 돈도 다 쏟아부으시고 빚도 많으신데, 이렇게까지 하 는 이유가 뭔가요?

“이제 이게 내 삶이에요.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대체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어요.(웃음) 어른들을 만나면 이 사람은 나한테 뭘 원할까, 뭘 바랄까를 고민하게 돼요. 근데 아이들은 달라요. 아무 계산 없이 웃고 울고 나한테 안겨서 인사도 해주고요. 그런 아이들 보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죠. 가끔 놀이공원에서 만나면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시켜요. ‘여기 만들어주신 분이야.’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정말 감사하고 또 보람을 느낍니다.”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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