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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한 점의 힘

티치아노 ‘나를 붙들지마라’, 1514년경.

전쟁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으로 영국 런던의 미술관과 공연장들은 일제히 문을 닫았다. ‘모두의 미술관’으로 불렸던 내셔널 갤러리의 소장품들은 웨일스의 탄광 지하로 옮겨져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데 티치아노의 이 그림은 전쟁 중에 먼저 돌아와 단독 전시회까지 열었다. 왜였을까?


전쟁 시기 텅 빈 미술관을 채운 건 런던의 예술가들이었다. 마이라 헤스를 비롯한 뮤지션들이 매일 ‘런치타임 콘서트’를 열었고, 미술가들은 전시를 열어 시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예술의 힘을 간파한 미술관장은 웨일스에서 티치아노의 그림을 가져와 벽에 걸었다. 단 한 점으로 여는 전시회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이 젊은 시절 그린 이 그림은 부활한 그리스도가 마리아 막달레나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성서 속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놀란 마리아가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어 스승을 만지려 하자 예수는 뒤로 물러서며 “나를 붙들지 마라”고 말한다. 예수는 제자들이 그의 육체에 집착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화가는 예수와 마리아를 수직과 수평 구도로 배치했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앉아 있는 마리아는 지상의 세계에 속한 범속한 인간을, 하얀 가운을 두르고 거의 벗은 몸으로 서있는 예수는 천상의 세계에 속한 영적인 존재를 상징한다. 예수의 몸짓과 말은 마리아를 멀리하는 것 같지만 그녀 쪽으로 기울인 상체와 눈빛은 변함없는 사랑과 보호를 약속하고 있다. 사랑과 부활, 보호와 약속의 메시지를 주는 이 그림은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에 떨던 런던 시민들에게 큰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내셔널 갤러리는 매달 소장품 한 점을 공개하는 전시와 콘서트를 종전 때까지 지속했고, 이 전통은 온라인 전시 ‘이달의 그림’과 미술관 콘서트 ‘피아노 데이’를 통해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멈추게 했지만, 동시에 역발상의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시작하게 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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