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 바둑판 위에서 펼쳐지는 연기 대결
이병헌과 유아인이 바둑 전설 조훈현과 이창호로 변신한 영화 ‘승부’. 사제 간 대결이라는 묵직한 테마 위에 정교한 연기와 연출이 얹혔습니다
영화 [승부] 리뷰
![]() ⓒ 바이포엠스튜디오 |
조훈현(이병헌)은 세계대회에서 국내 최초로 우승하며 한국 바둑의 전설로 떠오른다. 바둑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처음 등장한 영웅이다. 그는 부산에서 ‘바둑 신동’으로 불린 이창호(유아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생활하며 바둑 기술을 전수한다.
10년 후, 스승과 제자는 바둑판 위에서 경쟁자로 마주한다. 모두가 조훈현의 승리를 점쳤지만 이창호가 스승을 꺾는다. 제자에게 패한 조훈현은 깊은 충격에 빠지지만, 곧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 그는 도전자로서, 제자를 상대로 다시 승부사의 본능을 깨운다.
<승부>는 조훈현과 이창호, 두 전설적인 바둑 기사의 사제 대결을 그린 영화다. 영화는 공개 전부터 순탄치 않았다. 팬데믹 여파로 극장 배급이 무산되며 넷플릭스 공개로 방향을 틀었지만, 2023년 주연 배우 유아인의 마약 투약 혐의가 불거지며 OTT 공개마저 좌초됐다.
작품은 4년 가까이 표류했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극장으로 돌아와 관객을 만나게 됐다. <보안관>(2017) 이후 8년 만에 내놓는 신작인 이유도 있겠지만, 김형주 감독에게 <승부>는 여러모로 마음 쓰인 작품일 것이다. 관객에게 작품을 공개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감독의 말이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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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돋보이는 건 두 주연 배우의 연기다. 영화 속 이병헌과 유아인은 실존 인물인 조훈현과 이창호와 외형적으로 전혀 닮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은 마치 실제 조훈현과 이창호가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둑은 역동적인 스포츠가 아니다. 한 수마다 느린 호흡으로 치밀하게 펼쳐지는 두뇌싸움이다. 두 배우는 상대의 바둑돌 하나에 대응하는 표정과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연기하며, 영화의 정적인 흐름 안에서도 긴장감을 유지한다.
이병헌은 감정의 변화 폭이 큰 조훈현의 격동적인 심리를 능숙하게 표현하고, 유아인은 차분하지만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이창호의 내면을 탁월하게 구현한다. 특히 눈 밑과 볼살의 떨림까지 연기할 정도로 두 배우의 연기는 정교하다. ‘승부’라는 제목처럼 두 배우가 연기력으로 또 하나의 승부를 펼치는 듯하다.
연출은 정교한 상징과 구조적 배치로 설득력을 높인다. 감독은 영화의 핵심 소재인 바둑판의 사각형 구조를 연출에 활용한다. 이창호가 심리적으로 위축될 때, 조훈현이 바둑에서 패배했을 때 창문, 문틀, 가구 등으로 그들을 가둔다. 바둑판 내에서 상대의 프레임에 갇히는 모습을 스크린으로, 연출로 표현한다.
인물이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끼는 모습을 바둑판 위의 돌과 비유한 연출이 흥미롭다. 또, 조훈현이 패배를 경험할 때는 붉은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에 홀로 서 있게 된다. 얼굴 위로 흐르는 붉은 조명은 마치 피를 흘리는 듯한 패자의 감정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조훈현이 수세에 몰리며 바둑판을 뒤집듯 앵글이 뒤집히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이처럼 시각적 구성을 바둑판의 구도와 연결해 두 사람의 승부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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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된다. 목관악기와 현악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음악은 대국 장면에서 승부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다. 음악 덕분에 화면 속 느린 바둑 대결에도 긴장감이 유지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음악은 철저히 조력자 역할에 그친다. 당장의 장면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기능적인 장치에 그친다. 영화에 쓰인 음악을 그대로 떼어내 다른 영화에 붙인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음악의 개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친절함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다가온다. 감독은 이 모든 이야기를 낯설지 않게 전달하려 한다. 바둑을 모르는 관객도 따라올 수 있도록 자막과 음악, 해설을 아낌없이 쓴다. 대국 장면에선 해설자 목소리가 중계를 방불케 한다.
누군가에겐 과하고 어설플 수 있으나, 이 영화가 목표로 삼는 관객에겐 분명 친절한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친절이 과한 탓에, 이 영화의 소재가 바둑이 아니더라도 설명이 될 정도다. 가장 중요한 소재인 바둑이 필수요소가 아니라 느껴질 정도라면 영화의 기틀이 허술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정지환 에디터 stop@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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