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레시피-동기가, 후배가, 내 상사로 왔다!
지금의 직장 생활에서 나이, 경력 즉 연공서열은 더 이상 무기가 아니다. 오로지 실적과 능력만이 ‘직장에서 내 자리를 보존하는 부적’이다. 나와 불과 한두 살 차이거나 동갑이나 동기 혹은 나보다 어린 상사를 ‘모시는’ 일은 이제 불만과 투덜거림의 대상이 아닌 흔한 일이 되었다.
이왕 하는 거, ‘나이스’하게 하자
‘곧 서초동 일대의 사무실 임대료가 폭등할 것이다’는 이야기가 로펌가에 돌고 있다. 무슨 말인가? 바로 검찰 이야기다. 얼마 전 검찰총장에 윤석열 서울지검장이 내정되었다. 그가 “나는 사람이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고 말한 사실이나, 적폐 수사를 임기 내 지속할 것이라는 등의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초동 주변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으로 검찰 조직에서 과연 몇 명이 ‘옷을 벗는가’가 세간의 궁금증이다. 검찰은 ‘검사 동일체의 조직’이다. ‘전국의 수많은 검사는 검사 동일체 원칙에 따라 검찰총장의 지휘, 감독을 받는다. 정점에 서 있는 검찰총장은 어떤 검사의 직무를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검찰청법 제7조의 2)’는 조항이 보여주는 이 같은 사실은 검찰만의 독특한 문화이자 전통이다. 이 원칙으로 인해 총장이 임명되면 신임 검찰총장 임용 기수보다 선배나 동기 기수들은 자동으로 사표를 내는 관례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임명된 윤석열 검찰총장은 23기로 18기인 문무일 검찰총장보다 무려 5기수 아래다. 자연히 19기부터 22기까지는 ‘검사 동일체의 원칙’에 따라 검찰총장의 효율적인 지휘권을 위해 검찰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최대 30여 명의 검사들이 그 기수에 해당된다고 보도한다. 물론 박상기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검찰총장 위로 다 옷을 벗으라는 뜻은 아니다” 혹은 “선배들이 조직에 남아 주었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어쨌든 상당수 검사들이 수십 년 근무하던 검찰청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윤석열 총장이 기수 선배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이 변수라면 변수다.
직장에서도 이런 케이스는 흔하다. ‘옛날’ 그러니까 IMF 사태가 오기 전에는 일단 신입으로 입사하면 그 회사는 누구에게나 ‘평생 직장’이었다. 그 시절에는 나이 많은 선배들이 승진해 상사가 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IMF 사태는 대한민국의 모든 것, 특히 직장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었다. 이제는 연공서열이 아닌 실적과 능력만이 ‘직장에서 내 자리를 보존하는 부적’이다. 나하고 불과 한두 살 차이거나 동갑이나 동기 혹은 나보다 나이 어린 상사를 ‘모시는’ 일은 이제 직장에서의 불만과 투덜거림의 대상이 아닌 흔한 일이 되었다. 물론 불편하다. 그것도 서로. 하지만 방법이 없지 않은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는 법이라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지금 시대에 아무리 능력 있고 스펙 좋다고 해도 그 이유만으로 사표를 던지기에는 명분과 실리를 찾기 어렵다. 해결책은? 적응하는 것이다. 그것도 이왕 하는 거, 아주 ‘나이스’하게 하면 된다.
잊어라! 나이도, 기수도
‘상사는 상사다.’ 상사의 개인적인 바이오그래피는 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나보다 학벌도 떨어지고 리더십도 별로인 것 같은데…’ 등 아무리 혼자 머리 싸매고 끙끙거려도 기차는 이미 떠난 뒤다. 인사발령 방이 붙는 순간, 빨리 판단하고 수긍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회사는 ‘가마니’가 아니다. 아무 이유와 명분 그리고 근거 없이 인사를 내지 않는다. 그 이유를 재빨리 알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나를 내보내려고 콕 찍어서 내 위로 인사를 낸 것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 생각을 덧칠할 생각도 해야 한다. 회사가 이중적 절차를 통해 당신을 내보낼 정도로 ‘당신이 중요한 인물인가?’를 자문자답해봐야 한다. 물론 회사에서 당신의 처지나 경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인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사에 있어 당신의 존재는 제1의 조건이 아닌 ‘약간의 변수’ 정도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당신이 정확하게 회사의 의도를 읽을 수 없다면 일단은 ‘긍정적인 원인과 결과’에 걸어야 한다. 회사는 문제를 만드는 조직이 아닌 해결하는 조직이다. 어떠한 경우든 문제를 일부러 만들지 않는다. 즉 인사와 같이 그 파장이 중요한 결정을 여러 번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팀장을 발령 낼 때 만약 당신을 처리하겠다고 마음 먹었다면 한꺼번에 인사를 내는 것이 상례이다. 팀장 인사를 내고, 그 후유증을 감내하며 당신의 사표를 받거나 전보 발령을 내는 이중 절차를 통해 인사 여파를 오래 끄는 것 등을 회사는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또 하나 체크 포인트는 회사에서 당신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다. 회사에선 새 팀장을 발령 내고 바로 아래 직급인 당신이 발휘하는 화합의 리더십과 조직 안정을 위한 충성심의 그 교묘한 접합점의 점수를 매긴다. 즉 ‘일타쌍피’다. 새 팀장의 능력과 함께 당신을 시험대에 올리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 당신의 조직을 위한 헌신적인 팀플레이는 당신의 인사고과 점수를 높이는 ‘눈에 보이는 실적’이 된다. 약간의 후유증, 즉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소극적인 저항감을 예상했음에도 당신이 눈에 보이게 새 팀장과 호흡을 잘 맞추고 부하들을 훌륭하게 이끈다면 회사의 당신에 대한 평가는 ‘의외의 발견이자 승진의 발판’이 되는 것이다. 이 정도로 인과 관계를 정리했다면 팀 안에서 당신의 행동이 남아 있다. 새로 온 팀장도 다 회사 생활 경험자다. 그 역시 상사를 모셨던 경험자라는 뜻이다. 이제 위치가 바뀌어 그는 상사가 되었지만 동기나 나이 많은 하급자인 당신을 당연히 신경 쓸 것이다. 새로 부임하고 한 달, 그 시기가 가장 중요하다. 물론 ‘직장에서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직급이 장땡이지!’를 부르짖는 뻔뻔한 상사라면 당신에게는 고난의 행군이 되겠지만, 요즘 같은 직장 문화에서 그런 류의 상사가 올 확률은 거의 로또급이다. ‘펜은 말보다 강하다’는 언론이 좋아하는 말이지만, 직장에서는 ‘펜보다 말이 강하고, 말보다 강한 것은 행동이고, 행동보다 강한 것은 표정이다’를 명심하자. 설사 상사가 은근히 당신에게 ‘말을 짧게’ 해도 맞받아치면 안 된다. 특히 공적 자리인 회의나 팀원들이 모두 지켜보는 자리에서 ‘까짓것’ 하는 마음으로 내지른 당신의 짧은 말은 1분의 통쾌함이나 영웅심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훗날 상사의 ‘길고 굵은 보복’으로 돌아올 확률이 많기 때문이다. 상사 역시 새로운 조직과 조직원이 낯설다. 그때 당신이 상사의 궁금증을 풀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주변에서 ‘곧바로 새 줄을 탄다’는 평가를 받더라도 이는 엄격히 구분하면 회사 일이다.
A기업 이야기다. 부장이 새로 부임하면 그날 첫 점심을 누가 사느냐가 그 부서의 1년을 좌우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점심을 먹으면서 새로 온 부장에게 ‘부서 오리엔테이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장도 나름 정보를 알고 오지만 생생한 부서의 현장 이야기는 그의 귀에 쏙 박힐 것이다. 그래서 그 부서에서는 첫날 점심과 저녁에 누가 부장과 함께 하느냐가 관심이라고 한다. 그만큼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예의 바른 태도와 말 그리고 ‘포커 페이스’가 되어야 한다. 말과 행동은 겸손한데 얼굴 표정에서 ‘나 너 싫어’가 쓰여 있으면 이는 ‘할 것 다 하고 욕먹는 바보짓’이기 때문이다. 일에서도 조심할 것이 있다. 그것은 ‘직급은 네가 위지만 일에서는 내가 선배야’라는 ‘자기 과시’형 업무 스타일이다. 상사와의 미팅에서, 회의 자리에서, 클라이언트를 상대할 때, 후배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사무실에서 은근히 전화로 주고받는 몇 마디에서, 당신의 그런 기미를 상사가 읽는다면 그것은 상사에 대한 정면 도전인 셈이다. 물론 상사라고 모든 것을 갖추고 준비된 자는 아닐 것이다. 그도 새로운 부서 업무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때 당신이 보여 주는 ‘나이, 기수를 떠나 상사로 인정하는’ 태도는 업무의 능력과 관계없이 상사에게 당신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공’이 된다.
영광은 상사에게, 티 안 나는 일은 내가
리더십의 비교로 수없이 등장하는 유방과 항우의 이야기는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를 적확하게 표현하는 좋은 예다. 천하통일에 성공한 유방은 화합과 합의의 리더십이었고, 항우는 영웅적 원맨쇼 리더십의 전형이다. 물론 최후의 승리자는 유방이었다. 하지만 그 후가 더 중요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유방이 한나라 황제가 되면서 동시에 진행한 일이 ‘공신 숙청’이다. 그야말로 SA급 인재로 영입된 한신, 죽마고우 같은 번쾌 등 모두 유방의 1인 통치를 위해 토사구팽 당했다. 이때 유방의 숙청 레이더에서 벗어난 인물들이 바로 소하, 장량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나서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한나라 창업에 있어 거의 1, 2등을 다투는 개국 공신이었지만 모든 영광을 유방에게 돌렸다. 그 대가는 유방의 “그래, 목숨만은 살려드릴게!”였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상사는 아이돌 그룹으로 치면 센터이자, 리더이자, 메인 보컬이다. 즉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서태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상사라면 당신의 이런 고민은 쓸데없는 짓이 되겠지만 ‘평범한 샐러리맨 복’에 그런 상사를 만나는 것 또한 ‘로또급’이다. 그야말로 민폐 수준의 상사가 오는 경우도 감안해야 한다. 그런 캐릭터의 상사일수록 특히 공을 독점하고 자신의 성과를 내세우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억울하다고? 당연히 억울하겠지만 회사는 생각보다 많은 눈과 귀를 갖고 있다. 일정 성과에 대해 상사의 상사 역시 다양한 경험으로 그 성과가 팀플레이인지, 팀장의 원맨쇼인지 다 알고 있다. 특히 부서원 개개인의 역량 또한 파악이 이루어져 있고, 또 진행 중인 것이다. 그럼에도 빛나는 자리는 상사가 나서야 한다. 실적 향상, 프로젝트 수주 등의 자랑스러운 보고는 상사의 몫이다.
대신 진상 클라이언트 정리,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귀찮고 불편한 일, ‘묵묵한 성실함이 필요’한 일상적 업무 등은 시키기 전에 ‘당신이 자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사 역시 알고 있다. 상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하 직원은 의외로 빛나는 성과를 올리는 부하일 수도 있지만 묵묵히 귀찮고 모두 회피하는 일을 해 주는 부하가 더 필요한 법이다. 상사들은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부서를 위해 헌신하는 믿음직한 직원’으로. 화려한 쇼 무대 뒤에는 수많은 스태프의 열정과 노력이 숨어 있다. 카메라, 무대, 세트, 조명, 헤어메이크업, 안무, 음향, 코디, 연출 등이다. 이들의 팀플레이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때 단 몇 분인 스타의 화려한 노래와 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자막이 흘러간다. 연출 등 중요한 스태프들 뒤로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 이름이 지나간다. 그 사람들은 역시 이 쇼의 또 하나의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모두가 화려한 조명을 받을 수는 없다. 그것이 아무리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라도 결과를 도출하기까지는 누군가 결정권자와 아이디어맨이 있기 마련이다. 결재 서류의 맨 오른쪽으로 갈수록 결재란이 커진다. 그만큼의 권한이 있고, 그 권한만큼의 책임과 영광도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조직의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달콤한 과실만 따먹고 껍데기만 부하 직원에게 던져 주는 상사에 대한 대비책도 필요하다. 바로 ‘기록’이다. 프로젝트의 시작, 협의, 수정, 완성 단계까지 중요한 포인트는 시간, 회의 사항, 결정 유무를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문자, 카톡, 사진, 녹음 등으로 ‘언젠가 너를 한 방 먹일 거야’라는 의도를 갖고 이 일을 시작하면 안 된다. 일종의 ‘백서’가 되어야 한다. 백서는 미래의 후배들에게 프로젝트의 효율적 진행을 위한 나침반으로서의 역할에 치중해야 한다. 객관적인 일의 프로세스를 기록하고 메모하는 것은 당신의 업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고, 언젠가 회사에서 ‘그때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상사의 성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상사가 결과를 중요시하는지, 일의 과정을 중요시하는지, 전시 목적의 포장을 중요시하는지, 회사 고위층의 관심사에만 관심 있는지 등을 체크한다. 그것이 파악되면 상사가 원하는 것을 작은 것부터 상사의 공으로 돌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과정은 상사가 당신을 우군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당신도 조직에, 상사에 의존하듯이 상사도 당신에게 의존할 수 있다. 그 의존의 의미는 다르다. 상사는 당신에 대한 의존을 배려와 혜택을 베푸는 것으로 여기겠지만 어쨌든 당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엇보다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의도치 않게 상사의 공을 가로채지 않는 일이다. 시스템상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본의 아니게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일테면 상무가 불시에 프로젝트를 점검한다고 치자. 부장과 차장인 당신 그리고 실무자가 모였다. 상무의 예리한 질문에 부장은 얼버무리고 차장인 당신이 상무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답변을 했다면, 당신은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부장은 상무 앞에서 자신을 망신시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아마도 상무 역시 ‘부장이나 돼 가지고 업무 파악도 못하고’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여기서 ‘기술’이 필요하다. 당신의 똑떨어지는 답변의 일정 부분을 ‘부장의 지시’와 ‘부장의 방향 설정’ 그리고 ‘부장의 결정’이 개입됐다는 것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상무님, ◯◯공장 건은 전체 일정이 마무리되어 가는데 시기 조율이 안 되고 있습니다. 해서 부장님과 상의해 시기 문제는 우리 쪽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습니다. 오늘 확실한 답이 오면 부장님께 보고해 결정받으려 했습니다. 사실 그 문제가 제일 합의점을 찾기 어려웠는데 부장님이 합리적인 방향을 제시해 실무진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부장이 큰 역할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부장’이라는 단어 세 번으로 부장의 얼굴을 세운 것이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자. 상사가 제일 싫어하는 부하 직원의 유형에는 의외로 똑똑하고 일 처리는 잘하지만 ‘잘난 척’하는 직원이 1위임을. 영국 프로축구 토트넘에서 활약하는 손흥민 선수를 보자. 가끔은 하프라인부터 치고 들어가 골을 넣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1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개인기다. 대개는 그가 골을 넣기까지 몇 번의 패스와 동료들의 어시스트가 필요하다. 회사 일도 마찬가지다. 골을 넣는 것은 상사지만 그를 어시스트하고 수비하고 열심히 뛰는 필드 위의 11명이 모여야 ‘원팀’이 된다. 상사는 골을 넣기 위한 쓰임새다. 손흥민 선수가 수비도 잘하지만 그의 쓰임새는 오로지 골을 넣는 것처럼,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진짜 무서운 상사는 평소에 조용하다
장관이 바뀌면 신문 인사평에 ‘외유내강’이라는 단어가 곧잘 등장한다. 겉으로는 유하지만 속은 단단하고 빈틈이 없다는 뜻이다. 가장 이상적인 스타일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이런 유형의 상사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오히려 겉으로는 다혈질이지만 한바탕 굿판을 벌이고는 뒤끝 없는 상사가 더 편할 수 있다. 겉으로는 온화한 미소로 ‘자율과 합의’, ‘협동과 이해’를 강조하는 상사 역시 뒤에 한 칼이 있을 수 있다. 누구나 상사가 새로 오면 탐색전을 벌인다. 한마디로 ‘무서운 상사’인지 ‘만만한 상사’인지 간을 보는 것이다. 탐색전의 방법은 다양하다. 휴가계를 내고, 반차를 쓰겠다고 해 보고, 현지 퇴근도 시도해 보고, 중간 보고를 생략하기도 한다. 그때 상사의 반응을 체크한다.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간섭하는 스타일인지,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이는지. 그리고 각각 자기 입장에서 편하게 상사를 판단한다. “이 사람 되게 깐깐하네. 조심해야겠군.” 혹은 “이거 가마니네. 직장 생활 편하게 해도 되겠군.” 두 가지 모두 성급한 판단이다. 만약 전자라면 당연히 근태, 예의까지 잘 지켜야 하겠지만 후자는 더 조심해야 하는 스타일이다. 외유내강형의 상사들은 한 번에 꽝 하고 터뜨리는 스타일이다. 당신의 업무, 근태, 사무실에서의 태도를 아마도 100% 기록할 것이다. 그들은 업무 이외에 당신과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거나 표시 나는 리더십을 행사하지도 않는다. 다만 결과로 보여 준다. 당신의 1년 성적표를 어느 순간 꺼내 승진, 전보, 좌천의 세 갈래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때 당신이 일의 성과와 결과를 가지고 항의하고 변명해도 소용없다. 일단 당신의 기억력이 그의 꼼꼼한 메모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상사에게는 권한이 많다. 심하게 표현해 부서원 한 명의 생사여탈권 정도는 회사에서도 용인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야 조직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건 실화다. 얼마 전 모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 굴지의 회사로 확실한 오너가 있는 회사다. 그 회사의 인사 매뉴얼에 독특한 것이 있단다. 그것은 오너, 회사 그리고 상사에 대한 도전에 대응하는 확실하고도 잔인할 정도의 응징이란다. 일테면 상사가 직원 한 명을 ‘나름의 이유’로 해고하거나 좌천시킨다. 그러면 그 직원은 노동청이나 법원을 통해 자신의 부당 해고를 시정하려 시도한다.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 회사의 대응이 눈에 띈다. 회사는 전담 직원 3~5명으로 한 팀을 조직한다. 그 팀원들은 원래의 업무를 미뤄 놓고 ‘저항하는 직원’의 모든 것을 수집한단다. 업무 내용, 대인 관계, 하청 업체, 법인 카드, 개인 진행비 등등 몇 년간의 모든 자료를 그야말로 탈탈 털어 수집해 대응한다고 한다. 몇 년이 걸려도, 개인적인 보상보다 비용이 더 들어가도, 결론이 날 때까지 대응팀의 업무는 계속된다. 이유를 물어보았다. 대답은 이랬다. “회사는 그 어떤 도전도 용납치 않아요. 특히 인사권의 번복은 향후 조직 운영의 가장 핵심이기에 설사 실수가 있더라도 이를 뒤집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지요.”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경영권, 회계권과 함께 인사권인 것이다. 상사를 간보려는 행동은 아무리 당의정으로 둘러싸도 표시가 나기 마련이다. 상사는 표현을 안 할 뿐 당신보다 훨씬 노련하고 다양한 경험의 소유자다. 설사 간보는 행동을 짧게 정확하게 할 수 있다면 모를까, 길게 몇 번에 걸쳐 시도하는 것은 상사의 블랙리스트에서 앞 순위에 안착하는 행위다. 특히 자신의 권위와 직급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하게 부서를 이끄는 리더십의 상사라면 그에게 분명 ‘한 방’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상사 역시 그 한 방을 어떤 시기에 누구에게 쓸지를 가늠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시범 케이스가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조용한 상사, 그저 조용히 모시는 것이 상책이다. ‘모신다’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저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글 박기종(커리어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및 일러스트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87호 (19.07.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