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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글인간-업그레이드는 계속 되어야만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업글인간’이라는 용어가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다. 쉴 틈 없이 바쁜 일상을 살짝 제쳐 두고, 오로지 자신의 취향을 더 발전시켜 나가는 행위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성공보다는 성장을 위해 자신을 업그레이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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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인간

최근 들어 필자는 인간의 진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는 집에 있는, 그러니까 이 글을 쓰는 순간, 세상에 나온 지 532일이 된 아기에 의한 결과다. 참 기억이라는 건 미비해서 스스로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처음부터 지켜볼 때 비로소 그걸 깨닫게 된다. 아무튼 필자는 아기가 첫 울음 소리를 터트리며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17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했다. 아기는 정말 놀라운 속도로 성장한다. 하루 2시간마다 우유를 찾던 존재에서 지금은 사지를 다 사용하며, 심지어 말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스스로의 의지가 생성되어 하기 싫은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대한 표현도 명확해졌다. 이는 생물학적 진화, 유사한 표현으로 ‘업그레이드’다. 사실 업그레이드라는 표현은 보통 소프트웨어적 차원의 접근이었다. 이진법 세계의 매트릭스를 근간으로 한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최신 버전으로 변경할 때 주로 쓰던 말이란 것이다. 언젠가부터 업그레이드는 포괄적 범주에서 상용되는 용어가 되었다. 특히 인공 지능(AI) 테크놀로지가 세상에 알려진 시점부터 이 용어의 사용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역작이라 칭할 수 있는 영화 ‘그녀Her’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흥. 꽤나 여운이 짙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돌이켜보면 이상하리만치 섬뜩한 느낌도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인류 대부분이 손에 쥐게 된 모바일 속의 인공 지능들이 ‘그녀’의 현실적 버전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류를 포함한 모든 사물들이 ‘업그레이드’라는 명목으로 성장 또는 변경(변화)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녀가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동안, 세상의 수많은 모든 것들 역시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인간 역시 성공이라는 명목 하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업그레이드해 왔다. 사실 성장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만, 아무튼 지속적으로 자신을 단련시키고, 훈련해 왔다. 꽤 오래 전부터 서점에서는 ‘자기 계발’ 서적들이 잘 팔려 왔다. 어떻게든 돈을 더 벌거나, 직장에서 승진하거나, 사회적 명예를 얻기 위한 노력에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이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언젠가부터 이에 대한 관심사가 확연히 달라졌다. 성공을 전제하지 않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는 말이다. 2020년에 툭 튀어나온 트렌드 용어이긴 하지만 이런 인간의 범주를 ‘업글인간’으로 정의하는 분위기다.


2021년 새해에도 이 같은 업글인간 트렌드는 지속되고 더 활성화 될 예정이다. 업글인간은 “단순한 성공이 아닌 성장을 추구하는 자기 개발형 인간들을 이르는 말”(네이버 시사상식사전)이라고 표현된다. 또 이들은 “타인과 경쟁해 승리하기 위한 단순한 스펙을 축적하는 것이 아닌, 삶 전체의 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물론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 나가려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래서 트렌드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성공이 아닌 성장을 추구하며, 남들보다 나은 내가 아닌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나를 목표로 한다. 이들은 자신의 건강과 취미 여가 활동, 지적 성장을 위한 소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라고 볼 수 있다.


나의 처제는 대학 졸업과 함께 곧장 결혼해 호주 시드니로 갔다. 거기서 남편과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 그러니까 그녀가 호주로 건너간 지 10년이 다 되었다. 어느 날 아내에게 처제는 영어 강좌 프로그램인 ‘야나두’ 회원권을 구매할 것이라고 했다. 아내 왈 “너는 영어 쓰는 나라에 10년이나 있었는데, ‘너도 나도 야나두’를 한다고?”라며 비꼬았다. 시민권 획득을 위한 시험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나는 그 회원 아이디 공유 좀 하자고 했다. 예전부터 “내가 영어만 잘했어도!”라는 아쉬움을 간직한 채 오래도록 살아왔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잘했으면 취재하고 글을 쓰는 나의 인생이 꽤나 달라졌을 거라는 어쭙잖은 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야나두 접속 권한을 가진 지금도, 나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그러니까 나는 외국어에 한해서는 업그레이드를 하지 못한 채 살아온 셈이다. 그런데 지금이라도 한번 도전해 볼까 한다. 업무적 성공을 여전히 목표로 하고는 있지만, 한편에는 살아 생전 그거 하나는 좀 이루자라는 스스로의 욕심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도 일종의 업글인간 트렌드에 호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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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위기를 디딤돌 삼다

업글인간 트렌드가 성공이 아닌 성장을 전제로 한다는 것은 우리네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의 변화와 밀접해 보인다. MZ세대가 사회의 주축으로 자리 잡으면서부터 이 같은 분위기의 확산이 더 가속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세대는 과거 세대와 달리 (연봉이 높으면 좋지만)직장 생활에 큰 욕망을 불사르지 않는다. 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시간이며, 삶이다. 동시에 소확행, 라곰 라이프, 미니멀리즘 등의 간결하면서도 확실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게 되면서 스스로의 성장이 더 중요해졌고, 그것이 가져올 오늘의 충만함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에 대한 관심, 인문학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느슨한 관계의 친밀도가 우선 순위로 놓였다. 이러한 결과로 건강 식품 판매량 상승, 운동에 대한 관심 폭증, 소소하면서도 진지한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살롱 문화의 확산 등이 나타났다. 동시에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보다는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는 세대답게 자신의 성장을 위한 것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업글인간 트렌드를 이끄는 세대론의 핵심이다.


트렌드라는 것은 그것을 이끄는 세대가 있고, 또 그것에 동조하는 상하 세대가 있기 마련이다. 필자의 경우는 MZ보다 한 세대 더 위에 있는 구세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그 트렌드를 추구하고 있다. 나의 업그레이드가 과거에는 명확한 목적성을 가지고 내달렸다면, 지금은 일과 삶의 균형을 최대한 맞추며, 후자의 측면에 더 집중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비단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MZ에 의해 견인된 업글인간 트렌드에 편승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자신을 내외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많은 일들은 사실 소규모 커뮤니티 또는 일대일 코칭에 의해 진행되는 일이 많았다. 웨이트 트레이닝, 필라테스, 인문학 수업을 포함한 소소한 강좌들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업글인간 트렌드가 도출되는 시점부터 전혀 예상치 못했던 팬데믹과 마주하게 되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위기는 우리의 업그레이드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될 줄만 알았다.


기우였다. 어차피 MZ세대는 모바일 환경에 대단히 친숙한 이들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많은 활동이 가로막히자, 일단 ‘홈트’라는 것이 대확산을 이루었다. 홈 트레이닝의 줄임말인 홈트는 팬데믹 시대를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요즘 운동을 못 해서 몸이 영 개운치 않아”라는 말을 내뱉을 때마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 “홈트 안 해?”라는 것이었을 정도니까. 이 상황에 맞춰 기존에 존재하던, 새롭게 출시된 운동 애플리케이션의 다운로드 횟수가 급증했고, 또 유명 트레이너 및 강사들이 등장하는 유료 온라인 프로그램들도 성황을 이루기 시작했다. 필자의 경우는 짐에서 운동할 때 예전부터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내놓은 ‘NTC(Nike Training Club)’를 활용하고 있었기에 홈트에도 이 애플리케이션을 적용해서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각종 브랜드의 수많은 앱이 등장했고, ‘클래스 101’과 같은 스타트업 기업이 내놓은 많은 프로그램들도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팬데믹이 종식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이 같은 애플리케이션 또는 온라인 프로그램들에의 많은 관심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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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성장이 삶이 될 때

스스로를 성장시킨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겐 건강을 위한 것일 테고, 또 누군가는 현실과 관계 없이 ‘찐 자아’를 구현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취향 존중의 시대에 어떤 이는 꽃을 만지는 작업을 배우기도 한다. 어떤 이는 가죽 공예에 열중한다. 누군가는 전문 화가는 아니어도 자신만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한다. 또 다른 취향을 가진 이는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번 설계하기 위해 인생 강좌 프로그램에 등록한다. 글을 쓰고 싶어 커뮤니티를 통해 글 쓰는 연습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정말 다양하다. 예전 같으면 ‘그걸 배워 어디다 쓰게?’라는 면박을 받았을 만한 것들이 지금은 업글인간 트렌드의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부유하고 있다. 관심 분야를 온라인 상에서 검색하기만 하면 쉽게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밀물처럼 쏟아진다. 과거처럼 큰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하루 커피 한 잔 마실 가격이면 이런저런 것들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학습할 수 있다. 이렇게 취향에 따른 업그레이드가 가속화될수록 우리 주변에는 소위 전문가라 칭할 이들이 셀 수 없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니까 많은 이들은 관심 분야를 조금 더 깊게 파고 들어 향상시키며 또 다른 삶의 방식을 꿈꾼다. 시쳇말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동시에 오로지 성공을 위해 달리던 시대에서 취미가 되려 성공을 가져오는 발판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필자에게도 취향적 접근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하나 있긴 하다. 그건 바로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 아주 오래 전부터 필자 곁에는 몇 대의 기타가 있었다. 음악적 재능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나였기에 취미 수준으로 줄을 튕겨 보고, 코드를 짚어 보는 게 다였다. 그 기타들이 몇 년 동안 케이스 안에서 숨죽이고 있다. 올해는 그것들을 다시 꺼내고 다듬어 배워 볼 심산이다. 재능이 없다면 홀로 독학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예전에는 학원 또는 개인 교습 등을 통해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야 했었다면,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또 온라인 강좌를 통해 그것들을 해낼 수 있다. 물론 손끝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연습해야 하는 건 스스로의 몫이다. 기타를 잡는다는 게 업글인간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을 테다. 분명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나의 곡을 완주할 수 있고, 또 간단하지만 나만의 곡을 하나 만들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이제 532일을 살아가고 있는 아기 앞에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으로 아빠의 취향을 아들에게 명확히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밴드 멤버가 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도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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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둘러보면 은근히 자신의 취향을 조금 더 성장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해 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면 동시대의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 속에서 굉장히 뒤처져 있다는 소외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클래스101’과 같은 곳에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해도 좋다. 또 ‘인생도서관’ 같은 프로그램을 찾아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고, 스스로의 삶을 브랜드화하는 경험을 해도 흥미롭다. 굳이 이런 거창한 성장이 아니어도 하루 하나의 실천을 기록해 나가며 성취하는 애플리케이션도 꽤 많다. 이 모든 것들이 ‘업그레이드’라는 명분으로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인간은 섬이 아니다”라는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대부분 섬처럼, 특히 MZ세대라면 소외와 고독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듯 보인다. 외관상으로만 그렇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 삶 속에서는 끊임없는 소통과 실천이 오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업그레이드라는 용어로 표출되고 있다. 그러니까 영화 ‘그녀’의 인공 지능이 진화하고 있듯, 우리네 삶도 지속 가능성이라는 화두 속에서 쉴 틈 없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업그레이드가 멈춰 버린 상태 속에 있는 당신이라면 지금이라도 찾으면 된다. 인생은 길고 할 일은 많으니 말이다.


[글 이주영(라이프 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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