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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부자 여행 - 가을 수타사 찬찬히 걷기

수타사에 다녀왔다. 홍천의 가을은 은은하고 갑작스럽다. 조금씩 색이 변하는가 싶더니 어느 날 천지가 붉고 노란 세상이 되어 버린다. 강원도 내륙 홍천의 가을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져 낙엽이 산과 들을 뒤덮어 버렸다. 수타사는 그 변화무쌍한 자연의 한복판에 납작하게 앉아 있다. 왠지 모를 중력에 끌려 찾아간 그곳엔, 숱한 이야기와 문화 유물들이, 그리고 미래의 시간이 여행자들을 쓰다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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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당기는 힘, 심오하고 흥미로운 얘깃거리들

수타사는 강원도 홍천군 시내에서 자동차 도로로 약 9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찰이다. 수타사는 조용한 여행가들에게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이름난 절이며, 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도보여행지 산소길, 생태공원, 더 이상 투명할 수 없을 것 같은 맑은 물, 거대한 바위들로 이뤄진 덕치천 등으로 홍천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여행지이다. 수타사를 찾는 사람들이 1년에 80만 명에 달하고, 공작산생태공원 방문객이 30만 명이 넘는다니 그것만 보아도 수타사의 지명도를 가늠할 수 있다. 수타사를 품고 있는 공작산 일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는 이유 또한 이곳을 강원도 내륙의 인기 여행지로 개발하겠다는 홍천군의 생각이 담긴 일이라 할 수 있다. 한두 번 들어보았던 이름, 수타사였지만 ‘다음주에 꼭 가야지!’ 생각한 것은 얼마 전 홍천군의 유명산 중 한 곳인 팔봉산을 다녀온 직후였다. 긴장감 넘치는 여덟 곳의 바위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한 뒤 하산하여 신발끈을 느슨하게 풀다 발견한 ‘홍천구(9)’경 사진에서 기억의 경계쯤에 머물고 있던 수타사를 떠올리면서였다. 사진은 그저 그런 모습이었지만, 어쩐지 확 끌어당기는 중력을 느꼈고, 그 중력에 심신 해제 상태로 끌려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여행의 동기가 대개 그렇지 않던가?


수타사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은 대개가 수타면을 생각하게 된다. 나도 그랬다. 수타면은 한자로 손 ‘수’에 때릴 ‘타’, 즉, 반죽을 손으로 치대며 뽑은 면을 말한다. 괜히 좀 더 맛있을 것 같은 기대가 일어난다. 그래서일까? 수타면과 아무 상관없는 홍천 공작산 수타사는 그 이름만 들어도 일단 친근하며, 중국스럽기도 하고 기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수타사는 물론 한자 이름이다. 나이 ‘수’에 때릴 ‘타’. 그렇다고 나이를 때리는(이것도 나쁘지 않은데?) 뜻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무량수불의 ‘수’, 아미타불의 ‘타’를 가져온, 즉, 수행을 거듭하던 사람이 죽으면 서방극락정토에서 환생한다는 정토 신앙의 근본을 뜻하는 이름이다. 물론 단순하게 아미타와 무량수에서 각각의 음절 하나를 가져왔다는 것으로 수타사의 근본을 헤아릴 수는 없다. 그 장황한 이야기를 여기서 늘어놓을 수도 없다. 그 심오한 수행의 세계를 난들 알고 있겠는가! 누구나 한번쯤은 영생을 꿈꾼다. 물론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낸 뒤 다른 세상으로, 그것도 지옥불이 아닌 아주 좋은 낙원에서 다시 태어나 영원히 살게 되는 그런 영생 말이다. 그렇게 행복한 영생의 축복을 아무나 받을 수 있을까? 극락정토 역시 마찬가지이다. 누구나 다 그곳에 갈 수는 없다. 완전한 지혜를 얻은 사람, 자비심으로 가득한 삶을 산 사람에게만 그곳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모든 사람이 지혜와 자비로 가득 찰 수는 없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극락정토에 갈 엄두를 낼 수조차 없다. 그런데, 이런 부족한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길은 있다. 아미타불이 바로 그 구원의 부처님이다. 그가 손을 잡아주면 지혜가 부족하고 자비심이 인색해도 영생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미타를 추앙하는 절은 아미타 불상을 모시고 누구나 기원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아미타에게 기도를 하면서도 아미타불을 모시지 않는 절도 있다. 이곳 수타사 역시 아미타불은 없다. 이 절을 만들고 가꿔온 스님들은 이미 절 자체를 아미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대답은 원효대사가 하고 있다.

대중에게 불교를 심어준 원효의 사상을 따른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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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 진영. 일본 교토의 고산사에 있다. (사진 위키미디어)

수타사의 창건 근원은 원효대사이다. 알려진 대로 원효대사는 신라의 큰 스님이자 사상가이자 풍운아이기도 했다. 또한 원효는 한반도 최초로 아미타불을 대중에게 알린, 다시 말해서 왕족과 귀족만을 위한 불교를 대중 속으로 전파한 스님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을 따르는 수많은 사찰들이 창건 설화에 원효를 올리는 것은 그의 화엄과 아미타, 정토교 등을 뿌리로 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타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타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일월사를 이어받아 창건된, 정확히는 중창된 절이라 볼 수 있다. 일월사는 원효가 죽은 후 20년 뒤인 신라 성덕왕 7년(708년)에 세워졌다가 고려 말에 폐사했다. 조선 선조(1592년) 때 다시 세웠으나 창건과 동시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또 다시 사라졌다, 인조 14년(1636년)에 공잠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 무슨 절의 팔자가 이리도 기구한지, 임진왜란이 시작된 해에 중창되었다 사라진 절이 병자호란이 시작된 해에 또 다시 일어났으니, 수타사는 과연 국난과 함께 태어나는 절이었던가? 다행히 수타사는 인조 중건 이후 오늘날까지 결정적 재난 없이 차근차근 다듬어지고 있다. 같은 인조 때 선당과 승당이 세워졌고 1650년 효종이 즉위한 해에는 도전사문 스님이 정문을 건축했다. 9년 뒤에는 현재 보수 공사 중인 법회공간 홍회루(11월30일 마무리)가 완공되었다. 수타사의 전각 건축은 20세기, 21세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 중기 최고의 전통종 장인이 만든 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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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상단에 ‘옴마니반메훔’을 새겨넣은 사인비구 제작 수타사 동종, 사천왕상 배 안에서 월인석보 17~18권이 발견되었다.

‘사인비구’라는 스님이 있다. 조선 중기 때 수행한 스님이자 대종 제작의 장인이었다. 그는 신라의 에밀레종으로 상징되는 한반도 전통 종 제작에 뛰어난 솜씨를 발휘함은 물론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소리가 좋고 여운이 오래가며, 디자인이 유려한 종들을 제작했다. 당대 최고의 전통종 장인이었으니 그에게 범종을 만들어달라는 사찰들이 줄을 선 것은 물론. 그렇게 만들어 준 종이 무려 8기에 이른다. 수타사 범종 또한 그 중 하나다. 사인비구 스님이 만든 나머지 7개의 종으로는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 문경 김룡사 동종, 안성 청룡사 동종, 서울 화계사 동종, 양산 통도사 동종, 의왕 청계사 동종, 강화도 고려궁지에서 강화산성의 문 여닫는 시간을 알려주다 지금은 강화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강화 동종 등이다. 물론 이 종들을 사인비구 스님 혼자 제작한 것은 아니다. 작업을 할 때마다 대종 장인스님 등으로 팀을 짜 함께 만들었고, 때로는 제자, 또는 동료가 사인비구의 기법을 전수해 제작을 하기도 했다. 수타사 대종 등 8기의 종들은 모두 보물 제1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공잠대사의 수타사 중건 이후 조선조 때 이뤄진 불사로는 봉황문과 봉황문 안에 설치된 사천왕상, 청련당, 향적전, 백련당, 송월당, 영월당 등이 있다. 특히 사천왕상은 1957년에 보수 공사를 했는데, 그때 사천왕상 목각물 배 부분(복장)에서 「월인석보」 17권과 18권이 발견되었다. 「월인석보」는 세종대왕이 직접 쓴 「월인천강지곡」과 세조가 쓴 「석보상절」을 편집해서 만든 석가모니의 일대기이다. 보물 745-5인 이 「월인석보」 17, 18권은 발견 직후 수타사의 큰 절인 월정사에서 보관하다(수타사는 오대산월정사의 말사이다) 훗날 수타사에 성보박물관인 보장각을 세워 되가져 왔다.

닫집만 잘 보아도 수타사 여행은 성불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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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보전의 닫집. 대적광전의 닫집과 더불어 저절로 엎드리게 되는 수타사의 명물이다.

수타사 마당에 들어서면 산 아래 가운데 쪽에 큰 건물과 비교적 작은 건물 두 채가 나란히 서 있다. 수타사의 중심은 당연히 큰법당인 대적광전이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큰법당은 가람 가운데 가장 큰 게 보통인데, 수타사 대적광전은 아담한 규모이다. 그런데 이게 보물덩어리이다. 비로자나불과 탱화를 감싸고 있는 닫집이 그것이다. ‘닫집’이란 다른 집이라는 뜻인데, 궁궐이나 불전의 주인공 즉, 왕이나 부처님을 별도의 집에 모신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닫집이 그 형태에 따라 황홀하게 예쁠 수 있다. 수타사 대적광전의 닫집이 그렇다. 공포를 거꾸로 쌓아 올린 모습이 앙증맞고 공포 위에 서까래와 지붕까지 표현하고 있다. 서까래 아래에는 편액을 설치하여 열반의 즐거움이 있는 궁전의 중심이라는 뜻의 적멸궁을 써 두었고, 공포 아래로는 기둥도 붙여두었다. 이 기둥을 헛기둥이라고 부른다. 그 아래로 탱화가 펼쳐져 있고 그 앞에 비로자나불이 앉아있는 형상이다. 이 닫집은 대적광전 옆 관세음보살이 있는 원통보전에 들어가도 만날 수 있다. 대적광전의 닫집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역시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끈다. 수타사에 가면 특히 대적광전의 닫집을 꼭 관찰할 것을 권한다. 불교미술이 왜 불교비술이 되었는지, 불교미술이 왜 건축까지 포함하고 있는지 닫집이 이야기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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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사에는 이 밖에도 삼성각, 지장전, 심우산방, 백연당 등 14여 곳의 가람들이 밀집해 있다. 수행을 위한 공간, 주지 스님 주거 공간, 문화재, 공양간, 기도처 등이다. 수타사는 평지 사찰에 속한다. 산길을 낑낑거리며 올라가서 만나는 절이 아니라 평지를 걸어가면 바로 일주문이 나오는 절인 것이다. 그래서 건축물들의 모습이 우뚝 서 있지 않다. 게다가 건축물 하나하나가 유난히 크지도 않을 뿐더러 아기자기하게 밀집된 형태여서 양적으로 많아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불자든 여행자든 사찰 여행에서 스스로에게 요구하게 되는 삶의 근본과 자아 발견, 번뇌와 해탈 등을 가람 한 곳 한 곳에서 스토리와 연결함으로써 여행 목적을 가능 또는 희망하게 할 외형적 여건은 갖추고 있다. 물론 사찰의 가람이 지혜와 자비를 주는 유일한 존엄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아지경에서도 인간은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수타사를 둘러싼 생태숲과 산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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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0월 중순에 촬영)

수타사는 아담하고 예쁘며 의미도 깊은 절이지만 수행하는 스님들은 다소 어지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홍천군에서 수타사 주변을 생태공원화 하면서 정원과 도보여행길을 만들어 수시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절에서 수행한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일까? 수행을 위한 암자가 큰 법당과 좀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면 모를까, 다닥다닥 붙어있는 상황에서야 어디 집중이 될까싶다. 물론 이런 생각은 세속의 눈으로 볼 때 그런 것이지, 실제로 스님들은 옆에서 꽹과리를 치고 놀아도 끄떡 없이 정진에 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행처마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니 출입을 삼가 해달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것을 볼 때 아무래도 관광객들이 몰려들면 조금은 방해가 될 수도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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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사를 나섰다. 그러나 속세로 돌아온 느낌은 아니다. 공작산 수타사 생태숲 때문이리라. 이곳은 홍천군에서 만든 자연 공원으로 기존의 숲을 정돈해서 걷고 (쉬고 명상하기)좋은 공간으로 가꾼 곳이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생태숲을 비추고 있고, 이 절정의 계절을 즐기려고 찾아온 사람들은 이곳 저곳에서 깔깔깔 웃어가며 계절을 만끽하고 있다. 깊은 숲이 공원을 아우르고 있고 은행과 단풍나무들이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고 있으며 친구, 가족이 함께하고 있으니 이곳이 바로 극락이 아닐까. 생태숲 끝자락 즈음에는 수타사 주변의 또 하나의 명소인 공작산산소O2길 덕치천 구간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만날 수 있다. 공작산산소O2길은 홍천 토리숲에서 수타사를 거쳐 약수봉, 신봉마을, 굴운저수지, 노천마을 등으로 이어지는 4개 코스의 도보여행길을 말한다. 약수봉에서 이어지는 공작산 등산도 가능한 길이다.


오늘은 수타사 뒤를 흐르는 덕치천의 귕소까지만 다녀오기로 한다. 덕지천은 공작산에서 발원하여 홍천군 동면 일대를 구비구비 흘러 홍천강으로 들어가는 넓고 깊은 계곡이다. 특히 수타사 뒤를 흐르는 계곡 구간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너럭바위들이 계곡 바닥을 받치고 있어서 거대한 수로를 연상케 한다. 바위가 바닥에 깔려 있어서인지 흐르는 물의 맑기가 어디 비할 데 없이 투명하다. 산책길은 계곡 양쪽으로 나 있는데, 계곡보다 훨씬 높은 곳을 걷기 때문에 시선이 웅장해지고 마음도 한없이 넓어지는 느낌이다. 메마른 가을, 덕치천 수타사계곡에는 적당한 양의 물이 흐르고 있었다. 넓은 바위들이 곳곳에 있어서 내려가 앉아 멍 때리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실제로 삼삼오오 여행 온 사람들이 평평한 바위에 앉아 도시락을 나눠먹는 모습도 보였다. 산책로에서 계곡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소로도 나 있다. 수타계곡에서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너럭바위 지역으로는 귕소와 용담 두 곳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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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넓적바위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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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물통 모양에 고인 물, 소

‘귕’이란 거목 밑둥 부분을 통째로 길게 자른 후 넓적한 그릇처럼 속살을 파낸 후 다리를 붙여 사용하던 소 여물통을 말한다. 시골 집집마다 소 한두 마리는 키우던 시절 흔히 볼 수 있었던 전통 도구이다. 수타사계곡의 귕소는 그곳의 바위가 을 닮았고, 그 귕에 물이 고여있으니 그 뒤에 못 소자를 붙여 귕소라는 이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귕소는 실제로 거인나라의 소 여물통을 닮았고 흐르던 물이 잠시 쉬었다 가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귕소의 모습이 워낙 특이하고, 너럭바위 끝에 앉아 있으면 천천히 흐르는 물과 계곡 위 붉게 물든 가을 산의 정취에 반해 그 자리를 내놓고 일어나기 싫을 정도이다. 귕소 바로 위에는 귕소 출렁다리가 있다. 그 다리 북쪽 방향에서 수타사를 향해 조금 걷다 보면 귕소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수타사와 수타사계곡을 여행할 생각이라면 바로 이곳 귕소의 너럭바위에 꼭 한 번 앉아볼 것을 권한다.

용이 살던 곳, 용담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지만, 이곳은 용이 살던 바위 우물이다. 도대체 얼마나 크길래 용이 살 수 있었단 말인가. 전설에 따르면 이곳 용담 속에는 용이 살고 있었는데, 승천할 때 바로 옆 박쥐굴을 통해 하늘로 올랐다고 전해진다. 용담의 깊이는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타래란 ‘실을 뚤뚤 말아 뭉쳐놓은 모양’을 뜻하는 것이라 용담의 깊이를 그것으로 가늠할 수는 없다. 단, 여름에 객기를 부리다 극단적 사고를 당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깊은 곳이므로, 용담에 와서는 그저 산책하고 바위에 앉아 휴식하는 게 최고다. 용담은 수타사 계곡에서 소 등을 지나오면서 천천히 흐르던 물이 용담에 이르러 용담으로 들어가는 물길이 좁아지면서 유속도 빨라지는 지점이다. 못의 넓이도 제법 큰 편인데다가 용담 뒤로 보이는 붉고 노란 산의 색깔, 투명한 하늘 빛 등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일월사 흔적? 내일을 꿈꾸는 수타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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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사 삼층석탑

용담을 나와 수타사 앞 공작교에 다다르면 연꿀빵과 차를 파는 월인쉼터가 있다. 그 집을 끼고 오른쪽 언덕길을 오르면 폐허가 된 기와집과 저게 뭐지? 싶은 석탑의 흔적이 있다. 공식 명칭은 수타사 삼층석탑이지만 3층은커녕 사람 키의 반 토박 남짓한 규모에 불과하다. 이것이 신라 때 창건한 일월사의 유물을 수타사에서 이어받은 것인지, 임진왜란, 병자호란 즈음 중창했을 때 세웠다 주저앉은 것인지 알 도리는 없다. 그러나 수타사의 공식 안내에 따르면 이 삼층석탑은 고려 말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고, 기단, 탑신, 지붕들의 모양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단, 2층과 삼층 사이의 탑신과 상륜부가 있었다면 원형은 지금의 1.15m보다 훨씬 날씬하고 키도 큰 탑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연구를 통해 원형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면 언젠가 수타사 삼층석탑도 어엿한 문화재이자 기도처로 사랑받게 될 것이다.


Info 공작산 수타사 강원도 홍천군 동면 수타사로 473 (입장료 무료, 주차장 무료)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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