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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사찰과 두 개의 길 -영동의 황홀한 매력

충북 영동. 초행의 그곳은 낯설었지만 푸근했고,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만나는 풍경은 감동스러웠다. 아…. 영동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고요하게 흐르는 금강을 벗 삼아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영동의 수수하면서도 황홀한 매력에 아득히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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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행길의 설렘은 늘 좋다. 약간의 호기심과 두려움도 있지만, 시종일관 떠나지 않는 텐션은 적당한 크기로 오감을 일깨워 놓는다. 더구나 걷기에 이만한 계절은 없으니, 여행이 주는 온갖 재미와 감동 속으로 빠져들기만 하면 될 터다. 그래서 더욱 설레는 충북 내륙 영동으로의 여행. 무더위가 가신 초가을의 여정이 제법 그럴듯하게 시작됐다.


영동은 익숙하기도 하지만 사실 잘 알지 못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포도와 곶감은 지역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온 국민이 쉽게 대하는 것이지만, 영동의 위치가 지도의 어디쯤인지 한 번에 찍기란 누구도 쉽지 않다. 대충 뭉뚱그려 한반도 남쪽의 중간쯤? 그 정도만 해도 잘 아는 축에 들지 않을까. 그만큼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곳이 바로 영동이다.


영동은 충청북도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고장으로,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그리고 경상북도와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군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전북에서 발원한 금강이 이곳으로 흐르며 곳곳에 수려한 자연과 절경을 빚어놓았다. 또 일교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의 특성을 보이지만 따뜻하고 햇볕이 잘 드는 까닭에 과일 맛이 뛰어나고 생산량도 많아 ‘과일 나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알려져 있는 난계 박연이 태어난 곳으로 국악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도심 곳곳에 ‘과일과 국악으로 유명한 영동’이란 현수막이 걸려있을 정도로 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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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영동의 서쪽, 영국사와 금강둘레길

영동으로 가는 교통은 나쁜 편이 아니다. 쉽고 빠른 KTX가 서지는 않지만, 정감 어린 무궁화호와 그보다 조금 더 편한 ITX-새마을호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서는 곳이 영동역이다. 소요 시간도 서울에서 2시간 30분이 채 안 걸리니 당일 코스 여행지로도 부담이 없다. 아침에 서울역에서 출발해 영동역에서 마지막 기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면 대략 12시간 이상을 머물 수가 있어, 꼼꼼히 영동을 돌아보기에도 충분하다. 영동역에 내리면 역 광장 옆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먼저 찾는 게 좋다. 아무래도 낯선 영동을 제대로 둘러보기 위해선 현지 사정에 밝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준비된 여행 지도와 관광 안내 자료를 받아 길을 나서는 게 나을 테니 말이다. 안내소의 스태프들은 영동에 대한 프라이드가 대단해 안내와 설명이 열정적이고 게다가 다정하고 친절하기까지 하다. 영동 여행의 첫인상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유명한 여행지 말고 좀 더 새롭고 신선한 여행지는 없나요?’와 같은 여행자의 까탈스러운 요구에도 친절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추천하는 곳이 양산팔경이다. 얼마나 멋진 곳이길래 저리도 머뭇거림이 없을까. ‘어느 곳의 몇 경’ 하는 식의 뻔한 여행 공식은 크게 미덥지 않지만 초행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일단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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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결정된 영동 초행자의 첫 여행지는 양산팔경의 제1경인 영국사(영동군 양산면 영국동길 225-35)다. 영동역에서 서쪽으로 약 25km. 충남 금산과 맞닿아 있는 양산면의 대표적 사찰이다. ‘영국사?’ 사찰 이름이 좀 독특하다. 물론 대부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그 ‘영국’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인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668)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가 이름을 국청사라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이름인 ‘영국사’는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난을 피하기 위해 노국공주와 대신들을 데리고 떠난 피난길에 당시 국청사로 불렸던 이곳에 들러 나라의 안녕을 빌었고, 그 뒤 나라가 평온하게 되었다 하여 편안할 영(寧)자와 나라 국(國)자를 써서 영국사로 고쳐 불렀다고 전해진다. ‘충북의 설악’이라는 천태산의 뛰어난 자연 경관과 함께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승탑(보물 제532호), 삼층석탑(보물 제533호),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제535호), 영산회후불탱(보물 제1397호) 등 많은 유적이 잘 보전돼 있고, 특히 수령 1000년이 넘는 천연기념물 제223호 은행나무가 사찰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높이가 31m, 나무 둘레만 해도 무려 11m나 되는 이 은행나무는 매년 가을, 천태산 단풍과 함께 영동 여행의 백미를 선사해준다. 도량은 놀라울 정도로 고즈넉하다. 어쩌면 그곳에 머무는 동안 스님은 물론 여행자 한 사람도 마주칠 일이 없을 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고요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경내를 거닐다 보면 ‘절은 이래야지~’ 하는 감탄사가 내내 떠나지 않는다.


영국사에서 느낀 고요함의 절정은 다시 길로 이어진다. 영동이 자랑하는 양산팔경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는 길. 바로 금강둘레길이다. 양산을 꿰고 흐르는 금강 변의 아름다운 절경 여덟 개를 ‘양산팔경’이라 부른다. 금강둘레길을 거닐다 보면 강선대, 비봉산, 봉황대, 함벽정, 여의정 등 양산팔경의 2경부터 6경, 그리고 8경인 용암까지 모두 여섯 개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앞서 보고 온 1경 영국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7경 자풍서당까지 모두 한번에 둘러볼 수도 있다. 금강둘레길은 여의정이 있는 송호관광지를 출발해 봉곡교를 건너 산자락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데크로드를 걷다 봉황대가 있는 수두교를 건너 다시 송호관광지로 돌아오는 순환 코스다. 보통 걸음으로 약 2시간 정도면 둘러보며 걷기에 충분하다. 특히 역사와 전설이 깃든 여덟 개의 명승지 중 여섯 개를 직접 만나고, 또 감상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길은 시종일관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네듯 정겹고 편안하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하나씩 양산팔경을 찾아가는 여정은 설렘과 감동의 연속이다.

송림의 압도적 아름다움, 송호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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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관광지-송림

보통 금강둘레길의 출발점으로 삼는 송호관광지(영동군 양산면 송호로 105)는 ‘관광’이라는 명칭이 구태의연해 보일 정도로, 보면 볼수록 멋진 곳이다. 수령이 100년에서 400년 정도 된 노송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송림의 모습은 ‘소나무 사진 대가’로 불리는 사진작가 배병우의 그것 못지않게 신비스럽고 황홀하다. 더 놀라운 사실도 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그 소나무 아래에 캠핑 사이트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압도적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곳이다. 강변을 따라 이어진 버드나무 산책길도 빼어나다. 마치 소싯적 캘린더 풍경 사진 속 바로 그 장면이 재연된 듯한 강변길에는 곳곳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그곳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워도 좋고, 고요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냥 ‘멍’ 때리기를 해도 좋을 그런 곳이다. 강에서는 낚시가 한창이다. 가슴까지 닿는 강물 속에 들어가 연신 낚싯줄을 던지는 모습이 여유롭고 평화롭기만 하다. 송호관광지에는 캠핑 사이트와 캐러밴은 물론 ‘원룸’이라는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다. 또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터 등의 시설도 있어 가족 휴양지로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만, 지금은 지난 여름의 수해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재개장 여부를 꼭 확인하고 가야 한다.

영동의 동쪽, 월류봉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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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팔경-월류봉

영동 시가지를 중심으로 영국사 반대편에 반야사가 있다. 영동의 동북쪽 백화산 자락이다. 영국사가 있는 양산면에 양산팔경이 있다면, 반야사가 있는 황간면에는 ‘한천팔경’이 있다. 한천팔경은 황간면 원촌리에 있는 깎아지른 절벽산인 월류봉의 여덟 경승지를 말하는데, 우암 송시열 선생이 머물던 한천정사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달이 머물다 가는 봉우리’라는 뜻의 월류봉이란 이름처럼 절벽에 걸려 있는 달의 정경이 특히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이 일대의 뛰어난 경치를 ‘한천팔경’이라 불렀다. 높이 약 400m의 월류봉과 그 아래로 물 맑은 초강천이 휘감아 흐르며 만들어내는 수려한 풍경은 영동의 상징적 이미지가 된 지 오래이며, 양산팔경과 견줄만한 황간의 절경이 되었다.


한천팔경은 제1경인 월류봉을 비롯, 산양벽(2경), 청학굴(3경), 용연대(4경), 냉천정(5경), 법존암(6경), 사군봉(7경), 화헌학(8경)을 일컫는데 이는 월류봉을 이루는 여러 곳의 모습을 지칭한 것이다. 산양벽은 병풍같이 깎아지른 월류봉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봉우리를 일컫고, 청학굴은 월류봉 중턱에 있는 자연동굴로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물들고 그곳에 청학이 깃든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용연대는 월류봉 앞에 있는 절벽을, 냉천정은 법존암 앞 모래밭에서 솟아오른 샘물을 일컫고, 법존암은 작은 암자를, 사군봉은 황간면 북쪽에 있는 명산을 이르는 식이다. 또 화헌악은 월류봉이 진달래와 철쭉으로 만산홍을 이루는 모습을 가리킨다. 모두 사시사철, 시시때때로 연출되는 월류봉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인지를 표현해주는 이름들이다. 하지만 아름답다고 해서 한천팔경을 일일이 찾아갈 필요는 없다. 한천팔경의 중심이 되는 월류봉 일대의 절경을 한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절벽 암석 위에 지어 놓은 ‘월류정’의 풍광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그곳이 영동의 도원경이 되고도 남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넋을 잃고 바라보기를 수십 분. 이제 반야사로 가야 한다. 그런데 월류봉광장에서 반야사로 가는 길에 월류봉둘레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쁜 마음에 차를 타고 후루룩 반야사에 당도할 수도 있지만, 월류봉 인근에서 합류하는 석천을 보면 십중팔구 생각이 달라진다. 석천을 따라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과 산자락을 파고드는 월류봉의 유려한 산세는 또 다른 무릉도원이 그곳에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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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팔경-산양벽, 월류봉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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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봉둘레길은 월류봉광장에서 반야사까지, 굽이쳐 흐르는 금강의 줄기 석천을 따라 약 8.4km가량 이어진 산책길이다. 월류봉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에 담고, 농익은 포도 향을 따라 걷는 이 길은 석천의 물소리와 띄엄띄엄 만나는 시골마을의 정겨움을 벗 삼아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짐작건대, 계절에 따라 짙푸른 녹음과 화려한 단풍, 그리고 새하얀 설경으로 뒤덮인 아름다움의 절정을 감상하며 걷는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가 될 것이 분명하다. 월류봉둘레길은 모두 3개의 코스로 이어져 있다. 석천과 초강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여울소리가 즐거운 ‘여울소리길’과 한적한 시골마을길을 따라 산새의 노래 소리에 취하는 ‘산새소리길’, 그리고 반야사의 청정한 기운을 따라 걷는 ‘풍경소리길’이다. 1코스인 여울소리길은 월류봉광장에서 완정교에 이르는 약 2.7km의 코스로 칼산 옆으로 조성된 나무 데크를 따라 석천 위를 걸을 수 있는 환상적인 길이다. 2코스인 산새소리길은 완정교에서 우매리까지 이어지는 약 3.2km의 코스로, 시골 마을의 목가적인 풍경에 매료될 만한 아름다운 길이다. 그리고 우매리에서 반야사까지 이어지는 약 2.5km의 풍경소리길은 피톤치드가 가득한 편백나무 숲을 거쳐 반야사 뒤편 산허리에 쌓인 호랑이 모양의 돌무더기를 가까이 볼 수 있는 길이다.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름처럼 운치 있고 편하다. 누구나 가볍게, 월류봉과 석천의 풍경에 빠져 걷다 보면 어느새 길이 끊기고 조용하고 아담한 반야사를 만나게 된다. 길을 걷는 동안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던 ‘아~’ 하는 탄식이 과연 몇 번이었던가. 반야사에 발을 디디며 처음 들었던 생각도 ‘그래~ 이런 게 진짜 여행이지’, 바로 그것이었던 것 같다.

문수보살의 전설, 반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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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사, 반야사-3층석탑 배롱나무

반야사(영동군 황간면 백화산로 652)는 한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아담한 사찰이지만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유서 깊은 절집이다.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세조와 문수보살의 전설이 이곳에 서려 있고 그래서 문수보살을 상징하는 ‘반야’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는 보물 제1371호인 삼층석탑과 500년 된 배롱나무도 있지만, 독특한 볼거리는 역시 호랑이 형상을 한 거대한 돌무더기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산기슭에 거대하게 만들어진 호랑이 형상. 산기슭에 돌무더기가 흘러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영락없이 호랑이 한 마리가 잔뜩 웅크린 채 꼬리를 치켜세우고 포효하는 듯한 모습이다. 영험한 호랑이의 형상이 나타났다고 해서 ‘호랑이의 화현도량’이라고 불리며 호랑이를 품고 있는 백화산이 반야사를 지켜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반야사의 신비로운 매력은 문수전 때문에 더욱 빛이 난다. 대웅전 옆에 산으로 난 계단을 따라 150m쯤 올라가면 거대한 절벽 위에 작은 전각 하나가 위태롭게 올라앉아 있다. 바로 문수전이다. 거대한 절벽은 세조 앞에 나타난 문수보살이 그 꼭대기에 올라 두루 살펴봤다는 망경대이고, 망경대 앞의 석천은 세조가 목욕을 해서 피부병을 고쳤다는 바로 그 영천이다. 문수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문수보살의 전설이 실제처럼 느껴질 만큼 아름답다. 건너편 백화산의 산세는 부드럽게 이어지고, 봉우리는 아름답게 겹쳐지며, 까마득한 절벽 아래의 석천은 장쾌하게 흘러 한 폭의 수묵화를 연출한다. 그야말로 절경이자 선경이다.


반야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템플스테이 도량이다.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야 대부분 비슷하지만 특별한 볼거리와 이야깃거리를 품은 아름다운 사찰로 성찰과 수행의 깊이를 더한다. 그래서 짧지만 제대로 된 수행을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문수보살이 머무는 사찰’이란 표현처럼 도량 곳곳에 흐르는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영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된다. 거기에 수령 500년이 넘는다는 배롱나무와 문수전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산길,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도량과 무릉도원을 찾아가는 것처럼 아름답게 이어지는 둘레길까지, 사진으로 남겨놓지 않으면 영영 후회할 것만 같은 아름다운 산사가 반야사였다. 반야사에서 느낀 고요함과 아름다움은 경외감까지 들게 했다. ‘영동에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동스러운 여정. 거기에 반야사가 있었다.

또 하나의 길, 노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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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쌍굴다리, 노근리평화공원

‘고요함의 끝, 아름다움의 절정.’ 처음 찾은 영동에서 내가 찾은 여행의 멋이자 맛은 바로 그것이었다. 영국사와 반야사, 금강둘레길과 월류봉둘레길을 걸으며 잠시나마 무릉도원을 느꼈고, 앞으로 누구에게든 영동을 소개하게 된다면 그것을 말해줄 요량이다. 이제 영동 여행을 서서히 마무리할 시간. 하지만 영동에서의 마지막 일정 하나가 남아있다. 초행길인 영동을 찾으면서 유일하게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정했던 곳, 노근리다. 노근리는 70년 전 한국전쟁의 비극이 선연하게 서려 있는 곳이자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양민 학살 현장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고 곧이어 서울이 함락되자 많은 사람들이 피난길에 올랐다. 노근리가 있는 영동도 전쟁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은 대전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영동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당시 미군은 임계리 일대에 모인 피란민들을 남쪽으로 피란시키는 과정에서 방어선을 넘는 자들을 적으로 간주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들의 위협에 의해 노근리 쌍굴다리 안으로 들어간 양민 250여 명이 사살됐다. 황간에서 영동 시내로 들어가는 4번 국도 변에 노근리쌍굴다리가 있다. 개근철교 아래 처연하게 서 있는 두 개의 굴 표면에는 당시의 무자비한 총탄의 흔적이 세모, 네모, 동그라미 모양의 흰 페인트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 옆으로 ‘이곳은 노근리 사건의 현장입니다’라고 쓰인 커다란 안내판이 절규하듯 붙어있다. 그 위로 기차가 무심히 달린다.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수백의 비명이 아직 들리는 듯하다. 이곳은 등록문화제 제59호로 지정되어 있고, 철교 뒤쪽 산기슭에는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위령비가 초라하게 세워져 있다.


노근리쌍굴다리 건너편에는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을 기억하고 민간인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노근리평화공원(영동군 황간면 목화실길 7)을 조성해놓았다. 가슴 아픈 비극의 현장이지만 진실이 규명되는 과정과 잊힌 비극의 과거사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곳에는 평화기념관과 위령탑, 조각공원, 교육관, 전시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사건 당시에서부터 지난 2004년 '노근리 사건 희생자 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50여 년의 지난한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또 희생당한 민간인들을 기리는 다양한 미술 작품들과 조형물들이 여행객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오락가락하기를 반복하며 세차게 내리던 비가 수그러들면서 잠깐 밝은 햇살이 위령탑을 내리 비춘다. 잠시 붉은 기운을 회복한 노을도 평화공원의 숙연함을 감싸주는 듯하다.


영동 여행의 끝자락에 노근리를 찾은 건 제법 잘한 선택이었다. 고요함의 끝에 느끼는 숙연함이라니. 그래도 나쁘지 않다. 어느 날 영동에서 맞은 초가을의 서정은, 고요했지만 외롭지 않았고 적막했지만 쓸쓸하지 않았다.

그밖의 여행지


#1. 여행자의 공간 - 황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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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간역

‘철도 마니아들의 성지’로 불리는 황간역. 사실 외양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는 크게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낡고 오래된 시골 간이역을 떠올리겠지만 막상 건물은 깔끔한 현대식 옷을 입었다. 황간역이 유명세를 타게 된 건, 115년이라는 오랜 역사에 도시인들이 공감할 만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입혔기 때문. 자그마한 역사 1층에는 갤러리를 만들어 일 년 내내 전시회를 열고 있고, 2층에는 여행객들이 차도 마시고 책도 읽으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겸 무인 카페를 만들어놓았다. 역 광장과 기차가 정차하는 플랫폼에도 시와 그림이 그려진 전통옹기가 전시되어 있고, 그럴듯한 포토존도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하루 이용객이 그리 많지 않은 한적한 시골역이지만 무엇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섬세하고 다정한 배려가 마냥 정겹다. 굳이 기차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영동에 오면 꼭 들러보고 싶은 그런 곳이다.


위치 충북 영동군 황간면 하옥포2길 14


#2. 영동의 특별한 먹거리 - 동해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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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식당, 다슬기국밥

영동의 특별한 맛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올뱅이’다. 올뱅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다슬기’의 충청도 사투리. 지역에 따라 올갱이, 고동, 고디, 도슬비 등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바로 그것이다. 물 맑은 금강 상류에 자리한 영동 황간은 예로부터 올뱅이가 많이 잡혀 올뱅이 음식의 기원을 이룬 곳이다. 올뱅이를 재료로 하는 음식만 해도 국밥을 비롯 올뱅이전, 올뱅이무침, 올뱅이비빔밥, 올뱅이조림 등 다양하고, 심지어 올뱅이 엑기스도 만든다. 황간역 주변에 몰려있는 올뱅이 음식점 가운데서도 40여 년 역사의 동해식당은 현지인뿐 아니라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올뱅이 맛집이다. 깊고 물살이 센 강에서 잡은 100% 자연산 올뱅이살에 얼갈이배추와 근대, 부추를 듬뿍 넣어 끓인 국밥은 진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주사기로 한 시간을 발라내야 국밥 한 그릇의 양이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정성을 쏟아야 하는 올뱅이 음식. 동해식당의 올뱅이 메뉴들은 먼 길을 찾아오는 수고가 아깝지 않다는 게 세간의 평이다.


위치 충북 영동군 황간면 영동황간로 1676


#3. 핫 플레이스 - 와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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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코리아

영동은 국내 최대의 포도 산지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미국 시장에 포도를 수출하고 있고, 영동 포도로 해외 와이너리와 견줄만한 정통 와인을 생산해내고 있다. 영동 포도로 정통 와인을 만드는 그 시초를 이룬 곳이 와인코리아다. 이곳은 국내 최대의 와인 생산 공장을 갖추고 완제품까지의 모든 과정을 직접 처리한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폐교를 개조해 만든 공간은 웬만한 테마파크 못지않은 멋진 외관을 자랑한다. 무주에 40여 개의 와이너리가 있지만 여행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까다로운 전통의 자연발효공법으로 탄생시킨 100% 원액 와인 샤또마니는 와인 애호가들로부터 해외 유명 브랜드 못지않은 평가를 받는다. 와인 족욕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함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와인바, 테스팅룸, 개인 와인셀러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위치 충북 영동군 영동읍 영동황간로 662


[글 이상호(여행작가) 사진 이상호, 영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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