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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산은 따뜻할까? 지리산 노고단 사계

노고단은 해발 1507m. 노고단을 가장 가까이에서 올라갈 수 있는 성삼재휴게소는 해발 1100m이다. 휴게소부터의 높이는 407m이다. 등산길 난이도는 중상, 왕복 세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으니, 등산이라기보다는 여행에 가깝겠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오산이었다. 성삼재에서 출발하는 노고단은 결코 쉬운 여행길이 아닌,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를 해발 1507m 고산준령이었다. 하물며 이곳은 백두대간이 흘러와 쌓이고 쌓인 지리산인 것이다. 지리산의 사계, 봄·여름·가을·겨울은 매일 시시때때로 왔다 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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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서 바라본 지리산과 섬진강 모습(사진 : 구례군청)

노고단 등산로, 조금 전까지 청명했던 날씨가 갑자기 왜

산청 민박집을 떠나 성삼재 휴게소로 향한다. 어젯밤, 민박집 주인이 황매산과 근처 중산리 순두류에서 출발하여 지리산 영봉 천왕봉에 이르는 왕복 7시간쯤의 코스를 슬쩍 흘려주기도 했으나 이번 여행의 목적지를 변경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년 봄 진달래 필 무렵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가는 지리산 종주를 꿈꾸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노고단을 통해 지리산의 맛을 살짝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성삼재 휴게소에서 노고단 정상까지의 거리가 약 400m라는 점은 맛보기 지리산 여행을 하는 등린이들을 안심시키는 정보였다.


경남 산청군 동당리에서 전남 구례군 좌사리 성삼재휴게소로 가는 길은 청명한 11월 말 가을날의 연속이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동영상을 찍어 친구에게 보내자 ‘지리산 날씨가 정말 영특하다’며 등산 잘 하라는 격려의 답문을 보내주었다. 날씨가 끄무레해지기 시작한 것은 달궁 자동차 야영장을 지날 즈음이었다.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는 기상 상태가 더욱 나빠져 있었다.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일행은 말이 없었다. 여벌로 가져간 옷을 꾸역꾸역 껴입고 이미 여행길에서 험한 등산길로 바뀐 현실 속으로 들어갔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삼재휴게소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평탄화 작업도 잘 되어 있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도 될 정도로 편안했다. 부모와 함께 온 초등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조금 창피했던 것은 우리들의 복장이었다. 아이들은 평범한 운동화에 가벼운 파카 차림이었는데, 우리는 이게 뭔가. 누가 보면 에베레스트라도 오를 듯한 두툼한 등산복에 발목까지 오는 등산화, 장갑, 털모자에 스틱까지 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자괴감도 잠시 후 노고단 정상에 도착했을 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오히려 보온성이 더 뛰어난 겨울 파카와 방수 방풍 재킷, 그리고 바람을 꼭 잡아주는 혹한기용 장갑도 필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준비가 과한 게 아니라 미흡했던 것이다. 자연은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노고단 등산로는 난이도에 따란 선택지가 있는 게 특이했다. 이를테면 가파른 계단으로 오르면 거리가 짧아지고 완만한 길을 걸으면 거리가 멀어지는 식이다. 이런 비교적 편안한 등산로는 무넹기 갈림길 즈음에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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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다른 꿈과 현실, 노고단대피소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날씨와 상고대

‘무넹기’란 물길의 둑을 말하는 무넘기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1929년 일제시대 때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에 큰 저수지를 건설했다. 농업 용수 확보와 물관리를 위한 시설이었다. 그런데 이 저수지에 물이 차질 않았다. 원인을 알아보니 지리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길의 방향이 저수지를 채우기에 충분치 않았던 것이었다. 해서 이듬해에 노고단 아래 물길 중 일부를 저수지 방향으로 틀었고, 그 뒤로 공급이 원활해졌다고 한다. 지금 무넹기는 저수지로 향하는 물길 기능은 없어져 일반 하수도로 사용되고 있다. 암튼 이 무넹기 지점을 지나면 노고단 대피소를 만날 수 있는데, 지리산의 8개 대피소 가운데 시설이 비교적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피소 옆 공동 주방에는 식수도 나와 컵라면 등 가벼운 식사를 해 먹을 수 있다. 훗날 지리산 종주를 실행하게 되면,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화장실을 이용할 겸 잠시 휴식한 뒤 다시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다음 목적지는 노고단 고개. 무넹기에서 노고단 고개까지는 등산로 난이도가 다소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사실 크게 어려운 코스는 없었다. 30분 남짓 후에 노고단 고개에 도착하니 오른쪽에는 노고단 탐방 예약을 한 사람들이 통과하는 노고단 출입구가, 왼쪽에는 노고단 정상에 있는 돌탑과 거의 똑같이 생긴 돌탑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천왕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가 보였다. 이번 지리산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노고단 정상이지만, 천왕봉 가는 길 푯말을 보자 마음이 두근거렸다. 이곳에서 25km를 걸으면 천왕봉이라 이거지! 여행 당시 천왕봉 가는 길은 산불 방지 통제 구역으로 지정되어 12월16일 04시까지 통행이 금지된 상태였다. 또한 천왕봉까지는 아니라도 노고단 고개에서 약 5km 지점에 위치한 반야봉이나 삼도봉까지 갔다 되돌아와 노고단에 오르는 등산객들도 꽤 있다는 사실을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노고단은 노고단 고개에서 10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노고단은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는 곳으로, 출입 초소 앞에서 오늘 오전에 예약한 QR코드를 입장 시설 창에 대자 내 이름과 일행의 이름이 뜨면서 확인이 완료되었다. 신기한 것은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더욱 세차게 불어 닥치는 바람.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 갑자기 더욱 찬 냉탕에 던져진 기분이랄까? 장갑 낀 손은 즉시 곱아오기 시작했고 가을용 등산복을 뚫고 들어오는 겨울 바람으로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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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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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를 거쳐 우리를 맞이한 첫 번째 풍경은 지리산 상고대. 정상을 향해 데크길을 올라가는 걸음보다 훨씬 빠른 바람이 하늘로 치솟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새에 능선의 구상나무, 진달래 가지가 하얀 서리로 뒤덮인다. 이것이 상고대이다. 입이 떨어지지 않으니 말을 할 수도 없고, 손이 굳어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씩씩대며 정상에 올랐으나 보이는 건 정상 표시석과 돌탑, 그리고 섬진강이 보이는 지점을 표시해 놓은, 그러나 섬진강은 전혀 보이지 않는 안내판뿐이었다. 이런! 그 맑던 하늘은 어디 가고 이런 회색빛 세상이라니! 투덜댈 새도 없이 급히 표시석과 돌탑 사진을 찍고 하산 전용 데크를 이용해 다시 노고단 고개로 내려가야 했다. 우리와 비슷한 시간대에 정상에 오른 다른 방문객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기습공격 당한 표정이었고, 등산로 곳곳에 강추위에 달아나던 사람들이 흘린 스틱, 안경 등도 눈에 띄었다. 우리의 현안 목표는 어서 노고단 대피소에 가서 점심 대용으로 성삼재 휴게소 매점에서 사온 연꿀빵을 먹는 일. 그렇게 챙기자고 한 김밥과 컵라면을 결국 오늘도 챙기지 못했다. 등산에 이력이 붙으려면 일단 시간 관리와 김밥 챙김이 이뤄져야 하는 것일까. 해발 1100m 성산재 휴게소에서 추위를 녹이고 출발하며 어제 갔던 구례군 산동면 토담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아, 사장님, 어제 저녁에 갔던 네 명…기억나세요? 저희 노고단에서 내려가는 길인데, 콩나물국밥 뜨겁게 2인분에 닭볶음탕 중자 하나 준비해 주세요. 20분 후 도착입니다!”

가슴이 녹아 내리는 풍경, 화엄사의 원찰 연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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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전, 마니차, 마니차와 섬진강과 구례마을

노고단 등산 이틀 전, 연기암에 올랐다. 화엄사가 산자락 이마쯤에 있다면 연기암은 그 위 정수리 부근에 있다. 이곳에 오른 이유는 다소 불경스러웠다. 화엄사 암자를 그 아름다운 전망 하나 때문에 오르다니, 부처님에게 혼쭐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쁜 건 예쁜 것. 부처님 터전이 아름다운 풍경을 통해 인간의 오감을 위로해 준다는 것 또한 불교가 지향하는 자비의 일종이 아닐까? 실제로 연기암 마당에서 내려다 본 해질녘 섬진강과 강변 마을의 모습은 평화 그 자체였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다. 나는 암자 앞에 서 있지만 수행을, 묵언수행을 하는 주체는 강물과 마을이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이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연기암을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들었는데, 모두들 섬진강 먼 곳을 내려다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돌아갔을까.


연기암은 1500년 전, 백제 성왕 때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화엄경을 설파하기 위한 암자를 물색하던 중 세웠다. 바로 해발 560m 이 지점에 이르러 예사롭지 않은 산세와 풍경에서 부처를 보았고, 그 자리에 토굴을 지은 후 화엄법문을 설파했다고 전해진다. 연기암은 임진왜란 등 전쟁통에 소멸된 후 터만 남기고 자연화 된 채 그 긴 세월을 묻혀 지냈다. 연기암이 복원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1989년, 종원선사에 의해 대적광전, 문수전, 적멸당, 원응당, 일맥당, 법성원 등이 복원되었고, 종원선사가 열반한 뒤 꾸준한 복원과 가람 건축 작업 끝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문수보살 입상과 역시 최대 기록을 갖고 있는 마니차를 구축하기까지 이르렀다. 문수보살은 석가모니가 죽은 뒤 인도에서 태어난 불가의 제자로 반야(지혜)를 상징하고 있다. 그는 지혜를 통해 세계의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되기를 소원했는데, 심지어 문수 자신을 죽이려는 자까지 소원 안에 넣음으로써 지혜와 함께 드넓은 자비가 무엇인지 실천했다. ‘마니차’란 불교 경전을 넣어둔 경통으로, 이것을 한 바퀴 돌리며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주문을 읊으면 불교의 지혜와 가르침을 깨닫게 되고 관세음보살의 자비로 세상 모든 번뇌와 죄악이 소멸된다고 한다. 옴마니반메훔은 ‘오!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으로, 지혜로 세상을 살아가고 도를 득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니차 한 바퀴를 돌리는 것으로 삼라만상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니, 불교의 법도, 너무 쉬운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옴마니반메훔의 뜻을 제대로 알려면 적지 않은 공부를 해야 한다.


연기암 절벽 위에 설치된 마니차는 높이 10.5m, 폭 4m의 대형 마니차와 작은 마니차들로 조성되어 있다. 큰 마니차를 한 바퀴 돌리면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하는데 우리는 큰 마니차를 돌리지는 못했다. 아무도 없는 암자, 이제 어둠이 깊게 내리기 시작한 화엄사 산내암자에서 소란을 떠는 꼴, 이라는 양심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약수터 한편에는 부처님 손바닥 문양이 붙어 있다. 그곳에 이마를 세 번 댄 후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는 지점인데, 역시 그러지 않았다. 이미 가슴은 이 아름다운 연기암을 거닐며 수많은 생각과 바람을 떠올린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포만감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비게이션에도 잡히지 않는 연기암은 화엄사 주차장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이용, 승용차로 20분쯤 천천히 달리면 도달할 수 있다.

화엄사의 오묘한 산내 암자 구층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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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층암은 화엄사 뒷뜰에 있는 암자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화엄사 대웅전 뒤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대나무숲길로 들어서거나 오른쪽으로 이어져 있는 마산천 계곡 윗길에서 이어진다. 대숲길은 은은하고 계곡 윗길은 요즘 같은 건기에는 계곡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걷게 되는 길이다. 암자는 절에서 스님들이 수행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다. 절에 비해 작고 좁은 게 보통이다. 또한 언제 누가 어떻게 지었는지 그 연원이 기록되어 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암자를 지은 절이 번성을 하면 암자도 함께 다듬어지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동시에 퇴락하기도 한다. 구층암은 두 가지 오묘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암자다. 두 가지 이야기란 모과나무와 야생차를 말한다. 구층암 승방 정원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천불보전이 있고 그 앞에는 모과나무 두 그루, 왼편으로 승방 정면이 있다. 그런데 승방 기둥이 오묘하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미끈한 기둥이 아닌, 모과나무 두 그루가 지붕을 받치고 있다. 수명을 다 한 모과나무를 건축을 통해 되살려 놓은 것이다. 기둥이 된 모과나무는 살아있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울퉁불퉁, 삐죽삐죽 제멋대로의 형태를 하고 있다. 누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으니 그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간다. 구층암의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는 야생차다. 지리산 일대가 야생차 자생지라는 사실은 상식이다. 또한 어지간한 절의 스님들은 야생차에 해박하고, 향과 맛을 내는 비법도 많이 알고 계신다. 그러나 대부분 스님 자신과 주변의 다른 스님, 또는 지인 방문 때 대접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구층암 스님들은 누구나 원하면 차를 내어준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날은 무슨 일인지 암자에 전기 기술자들이 왔다 갔다 하고 스님들도 엄청 분주해 보여 차를 달라는 말은커녕 인사조차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공식적으로 매년 4월부터 6월까지 야생차 수확부터 차 만들기 체험, 그리고 그렇게 만든 차를 스님과 함께 마시며 삶을 이야기 하는 다담 행사가 열린다. 2박3일 일정이라고 한다. 색다르고 슬기로운 템플스테이라는 생각에 한번 참여해 볼까 마음이 흔들린다.

스타의 이름을 가져온 ‘김다현 길’, 회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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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현길 개통과 함께 회남재는 도보여행 숲길 기능이 강화되었다.

풍기의 금계촌, 봉화의 춘양면, 보은의 속리산, 두류산(지리산) 운봉읍, 예천의 금당동, 공주의 유구와 마곡사, 영월의 정동 상류, 무주의 무풍동, 부안의 변산, 성주의 만수동. 이곳들은 조선시대 『정감록』에 등장한 십승지 지역들이다. ‘십승지(十勝地)’란 평화롭고 질병도 없으며 전쟁이 나도 침략당하지 않는 안전한 곳을 일컫는다. 『정감록』은 당시 조선의 큰 전쟁을 예고하며, 그 난을 피하기에 좋은 지점으로 십승지를 지정하여 가르쳐주고 있다. 실제로 그 지역들을 보면 지금도 오지 중의 오지, 또는 비교적 한적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학자 남명 조식이 청학동에서 산길을 오르고 올라 고개 꼭대기에 이른 이유도 바로 그 십승지 중 한 곳이 이곳 어디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갯마루에 올라 산 아래 지세를 살펴보던 그는 그냥 발길을 되돌려 산청으로 내려가 버린다. 자기가 찾던 십승지가 그곳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조식이 발길을 돌렸다는 이유로 그 고갯마루의 이름이 남명이 몸을 돌린 고개, 해서 ‘회남재’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니 당대 남명 조식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음을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남명 조식은 어쩌면 십승지 가운데 지리산의 다른 이름인 두류산 기슭 운봉읍을 찾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


남명 조식이 발길을 돌린 회남재는 역시 지리산 기슭인 하동군과 산청군의 경계 지역이다. 십승지를 찾던 남명 조식은 발길을 돌렸지만, 사실 회남재 아래에 있는 하동군 악양면은 박경리 소설 『토지』의 배경 마을로 등장한다. 소설 속의 최참판댁은 실제 한옥으로 건축되었고, 그 평사리가 악양벌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회남재 너머 산청군에는 청학동, 삼성궁 등 그곳들이 바로 십승지라며 주장해도 반론의 여지가 없는 마을들이 납작하고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회남재를 둘러싼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생겼다. 그것은 바로 ‘김다현길’. 김다현은 청학동 국악소녀로 알려진 15세의 국악인이자 ‘보이스트롯’에도 출연한 가수인데, 어렸을 때 이미 판소리 신동이라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의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방송인으로도 활약한 바 있는 청학동의 선촌 서당 훈장. 산청군은 산청을 알리는 일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삼고 그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회남재 숲을 인기 여행 지점으로 조성하기 위해 김봉곤 훈장의 본가가 있던 도인촌 입구에서 회남재 고개 정상 팔각정에 이르는 8km 구간을 김다현길로 선정했다. 회남재도, 김다현길도 아름다운 숲길로 사랑받기를 바란다.

산수유의 근본은 씨 뺀 붉은색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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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천마을 산수유 만개 모습(사진: 구례군청)

초봄이면 지리산 산수유 마을에서 축제가 열린다. 온 세상을 노랗게 물들인 산수유를 보겠다며 수많은 관광객들이 물결을 이루곤 한다. 내년 봄에는 또 다시 그 축제를 열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산수유 마을을 굳이 이 겨울에 찾은 이유는 지금 한창 열매가 농익거나 수확하는 시기라 그렇다. 산수유 꽃은 노란색이지만 열매는 붉은색이다. 지리산 산수유마을은 구례군 산동면 일대를 일컫는다. 사람들은 노랗게 만개한 산수유 꽃을 떠올리고, 가서 보며 예쁨의 위안을 받곤 한다. 그런데 산수유의 핵은 열매다. 산수유는 한방에서 꽤 뛰어난 건강 기능을 지닌 열매로 알려져 있다. 씨를 뺀 산수유를 말려 약재나 차로 꾸준히 마시면 면역력 증강, 노화 억제, 성기능 향상 외에도 땀을 줄여주고 상처 부위를 빨리 아물게 하며 당뇨를 억제해 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식약처 검사 결과 항염증, 호흡기 질환에는 효과적이었으나 항당뇨 효과는 미미한 편이었고 혈소판 응집효과, 골다공증 억제 효과는 미미하거나 유의미한 효과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산수유 수확이 한창인 구례군 산동면의 산수유나무 군락지를 걸으며 곧 출시될 말린 산수유와 내년 봄 노랗게 뒤덮일 마을 언덕길을 상상해 보았다. 제발 내년 봄에는 구름 관중이 산동면 마을길을 뒤덮기를!

스타웨이 스카이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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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웨이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평사리벌판. 동정호, 평사리부부소나무 모습도 보인다. 왼쪽 높은 산이 회남재.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동해 회남재로 가던 길에 들른 곳이다. 고소성 자락에 있는 이곳은, 악양벌과 섬진강, 그리고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는 환상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3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모던한 계단, 직선 산책코스, 그리고 전망 및 사진 촬영 최적 지점을 만날 수 있다. 촬영 지점도 위치에 따라 악양벌 동정호, 평사리 부부소나무, 섬진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지리산 자락을 눈 안에 넣을 수 있는 곳, 이 모든 곳들을 가슴에 새길 수 있는 지점까지! 그야말로 지리산 자락의 최고 전망을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는 자연 극장인 것이다. 굳이 단점이 있다면 방문객이 많아 사진 촬영을 느긋하게 할 수 없다는 점과 다소 비싸게 느껴지는 입장료. 하지만 촬영 포인트를 피해 겨울철 평일, 한가로운 곳에 자리를 잡는다면 제대로 뷰를 즐길 수 있다.


위치 경남 하동군 악양면 섬진강대로 3358-110

행복한 민박집 ‘지리산 마리의 부엌 휴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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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의 둘째 밤을 이 집에서 보냈다. 일행 중 마리의 부엌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 ‘마리’는 이 집 부부 중 아내의 아이디로, 원래 개인 아이디는 꽃마리인데 남편이 ‘사람이 꽃인데 부엌 브랜드는 그냥 마리로 하자’며 애정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히기 전까지는 일년 열심히 벌어 온 가족이 유럽으로 떠나 돈 떨어질 때까지 걷고 보고 먹고 놀다 오던 가족이다. 자녀가 학생인데, 허구한날 현장 학습으로 때울 수도 없어서 그냥 무단 결석하고 비행기를 타 버리곤 한다고. 지리산에 민박을 만들어 이 집과 인연이 잘 맞는 손님들을 소탈하게 반겨주는 집. 너무 편해서 어떤 여자 손님은 제 발로 들어와 감 까기 자원봉사까지 하며 행복해 한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곶감 가공에 집중하는 한편 생강청 등 온갖 자연의 산물을 생산한다. 천연 꿀을 채집하고 친구의 꿀도 가져다 팔아주는 일도 설렁설렁 하시는 사장님이다. 민박을 하면 식사가 제공되는데, 좋은 재료로 착한 맛을 내고 적당한 양으로 모두가 편한 식탁을 만들어 준다. 집도, 사람도, 방도, 마당도, 창고도 모두 풍경 그 자체인 마리의 부엌, 다음 지리산 산행에서도 이 집에서의 하룻밤은 이미 마음으로 예약이 끝났다. 물론 받아주신다면 기약해볼 일이다.


[글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구례군청, 김은비, 이영근]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59호 (20.12.22)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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