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대설특보, 5월엔 폭염특보… 여름이 길어지고 독해졌다
[아무튼, 주말] 빨리 온 더위 올해도 폭염?
대설특보 한 달 만에 폭염특보가 도착했다. 지난달 11일 폭설로 깜짝 재개장한 강원 평창 용평리조트에서 스키를 타는 사람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16일 광주 북구 문흥근린공원에서 학생들이 물줄기로 몸을 씻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연합뉴스 |
'여름 폭력배'가 돌아왔다. 지난 15일 광주광역시에 첫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낮 최고기온이 이틀 이상 33도를 넘을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한다(35도를 넘으면 폭염경보). 2008년 폭염특보제 시행 이래 올해는 종전 기록(2016년 5월 19일)보다 나흘 빨라졌다. 23일엔 서울과 경기, 경북과 전남 등 내륙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지난달 11~13일 강원도 평창 용평리조트에선 '춘사월(春四月) 스키' 진풍경이 펼쳐졌다. 4월 중순에 20㎝ 넘게 폭설이 쌓이자 폐장한 슬로프를 다시 연 것이다. 서울엔 벚꽃 축제도 끝난 시점이었다. 그 대설특보 한 달 만에 폭염특보가 도착했다. 전국 해수욕장은 이르면 6월 1일 개장한다. 지난해 최악 폭염이 남긴 트라우마 때문일까. 다들 말한다. "긴 여름을 어찌 견딜지 무섭고 불안하다"고.
벌써 조짐이 불길하다. 5월 중순(11~20일) 평균 최고기온은 26.1도. 1981~2010년 평년값 22.4도보다 3.7도 높았다. 1979년(20.5도) 1989년(21.8도) 1999년(22.7도) 2009년(22.1도) 등 역대 5월 중순과 견주면 뚜렷한 상승세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폭염연구센터 이명인 센터장은 "지구온난화로 겪고 있는 기후변화 양상 중에 날씨의 변동성이 커진다는 게 가장 우려스럽다"며 "추세를 보면 올여름에도 꽤 심한 폭염이 닥칠 것"이라고 했다.
여름이 한 달 길어졌다
기상학은 여름을 '일평균 기온이 20도 이상인 날'로 정의한다. 보통 6~8월로 여기던 여름이 지구온난화로 더 길어졌다. 더위는 일찍 오고 늦게 떠난다. 1910년대 평균 94일, 1990년대 113일, 2010년대 126일이던 여름의 길이가 2070년대엔 152일(약 5개월)로 늘어날 것으로 기상청은 추정한다.
정의대로라면 올여름은 지난 11일 시작된 셈이다. 서울은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운 5월을 보내고 있다. 신간 '파란 하늘 빨간 지구'에서 기후변화를 다룬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전문가들은 '겨울이 한 달 줄었고 여름이 한 달 늘었다'고 이야기한다"며 "기후변화 신호는 겨울보다 여름에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폭염은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여름엔 반갑지 않은 기록이 쏟아졌다. 장마는 1973년 이후 둘째로 짧았다. 이후 폭염이 장기간 지속됐다. 전국적으로 폭염은 평균 31.4일(평년 9.8일), 열대야는 17.7일(평년 5.1일). 모두 관측 이래 1위를 기록했다. 8월 1일엔 강원도 홍천의 최고기온이 41도까지 치솟았다. 서울도 이날 39.6도로 111년 만에 극값을 찍었다. 온열 질환자 4526명(사망 48명), 전력 수요 9만2478MW(7월 24일)도 기록을 갈아치우며 온 국민이 '폭염 공포'에 시달렸다.
폭염에 부고(訃告)도 늘어난다
'오늘 폭염특보 발효 중. 야외 활동 자제, 충분한 물 마시기 등 건강에 유의 바랍니다.'
여름엔 이런 재난 문자를 휴대전화로 받는 게 일상이 됐다. 폭염을 알리는 경보가 일제히 울리곤 한다. 너무 잦아 둔감해질 정도다.
한반도 남쪽은 '폭염 속으로' 진입 중이다. 대구는 24일 낮 기온이 35도까지 올랐다. 기상청은 여름철 기상 전망에서 "작년에는 강한 고기압이 장기간 한반도 위에 머물며 '히트 돔(heat dome)' 현상을 일으켰지만 이번에도 그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며 "대체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은 기온을 보이겠으나 변동성이 클 것"이라고 밝혔다.
여름에 도시를 찜통으로 만드는 폭염과 열대야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지구온난화가 70~80%, 도시화가 20 ~30% 비중을 차지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구온난화는 산업혁명 이후 이어진 전 지구적 현상이다. 녹지가 줄어들고 고층 빌딩에 바람길이 막히면서 도시 내부에 열이 쌓인다.
노인에게는 극한 날씨가 호환 마마(호랑이와 천연두)보다 무섭다. 겨울과 여름에 부고(訃告)가 많아진다. 2003년 유럽 전역에서는 폭염으로 약 7만명이, 2010년 러시아에서는 5만명이 사망했다. 미국도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한파에 이어 둘째로 많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호 교수는 2009~2012년 서울의 전체 사망자 3만3544명을 대상으로 폭염이 죽음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다. 폭염에 따른 사망 위험은 가난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8% 높게 나타났다. 녹지 공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공간에 사는 사람도 사망 위험이 18% 상승했다.
김호 교수는 "기온이 올라가면 땀을 흘리거나 피가 빨리 돌아 몸을 식혀줘야 하는데 노인은 열 조절 능력이 약해 폭염에 사망률이 높아진다"며 "시골에 사는 독거노인에겐 폭염특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보통 때처럼 밭에서 일하다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냉방이 어려운 중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야외 노동자, 군인도 위험군으로 꼽힌다.
피해 줄이는 방법은
기상 이변의 빈도와 강도,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 일상과 극한의 차이가 빠르게 좁혀진다. 지자체마다 '무더위 쉼터'나 '야간 폭염 대피소'를 운영하고 취약 계층에게 전기료, 양산 등을 지원하기도 한다.
폭염은 서울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격차가 있다. UNIST 유철희 연구원은 2006~2016년 해마다 7~8월에 인공위성이 촬영한 서울 지표면 온도를 바탕으로 공간적 열 분포를 추정했다. 기상 관측소는 띄엄띄엄 있어 세밀한 측정이 불가능하다. 유철희 연구원은 "강남과 청량리 등 서울 동부가 서부보다 여름철 최고기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남산을 비롯한 지형과 녹지, 서풍의 영향 등을 복합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폭염을 완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도시에 녹지와 분수를 늘리고, 고층 빌딩이 바람길을 막지 않도록 환경영향평가를 하며, 인공 열을 현명하게 빼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공급 체계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고층 빌딩을 지을 때 교통유발부담금에 상응하는 폭염유발부담금을 매기자는 의견도 있다.
이명인 폭염연구센터장은 "올림픽을 앞둔 일본 도쿄는 에어컨 실외기를 옥상으로 옮겨 거리 온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며 "콘크리트는 열을 담고 있다가 밤에 뿜어내 열대야를 일으킨다. 나무나 분수 등 물을 품은 공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도시의 열섬 현상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온도를 1~2도만 낮춰도 폭염 피해가 작아진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폭염을 '자연 재난'으로 분류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대상은 폭염특보 발효 기간에 해당 지역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로, 의사가 열사병 등 온열 질환으로 판정한 경우다. 귀책 사유가 없으면 사망자는 재난 지원금 1000만원, 부상자는 250만~500만원을 받는다.
[박돈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