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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3시간 동안 굴 그물망 80개… 허리가 끊어졌다

천북 ‘자연굴’ 양식 체험


천북 굴 단지가 있는 충남 보령 천북면 장은리 부두. 배를 타고 10분쯤 바다로 나가니 빨간 깃발 꽂힌 부표가 바다에 둥둥 떠 있었다. 장은어촌계 소속 한재봉(32)씨가 부표에 달린 밧줄을 뱃머리에 고정된 양망기(揚網機)에 걸고 스위치를 눌렀다. 양망기가 천천히 밧줄을 감아 당기자 이불 보따리만 한 초록색 그물이 줄줄이 딸려 올라왔다. 따개비·조개·해초·펄 따위 이물질이 덕지덕지 붙은 시커멓고 커다란 ‘돌덩이’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한씨는 “그게 자연 굴”이라며 “밧줄에서 망을 떼어내 배에 실으라”고 지시했다.


굴이 담긴 그물은 짐작보다 무거웠다. 한씨는 “망 하나에 자연 굴이 50개쯤 담겨 있고 무게는 17~20kg쯤 나간다”고 했다. 한씨와 함께 3시간 동안 망 80개를 건져 올렸다. 17~20kg이면 만 5~6세 남자아이 하나와 맞먹는 무게. 3시간 동안 어린아이 80명을 들었다 놨다 한 셈이다. 당연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함께 작업한 한씨는 “평소에는 혼자 나와서 이만큼, 일주일에 세 번 작업한다”며 “어려서 운동(씨름)을 했지만 그래도 힘들다”며 순박하게 웃었다.


자연·양식산 장점 두루 갖춘 굴


분명 양식장에서 끌어올렸는데 왜 자연 굴이라고 부를까. 태생이 자연산이기 때문이다. “해녀들이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가 갯벌이나 바위에 붙어 자생하는 굴을 채취해 옵니다. 그 굴을 받아다가 망에 담아 40일가량 양식합니다. 이렇게 하면 일반 양식 굴과는 다른 맛이 납니다. 살이 통통히 오르면서 해감도 되고요.” 치어를 잡아다가 양식장에서 크게 키우고 살찌워 판매하는 참치, 방어 등 생선과 같은 방식이다. 자연산과 양식산의 장점을 섞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굴 양식법이다.


국내에서 현대적 의미의 굴 양식은 일제강점기에 시작됐다. 전남 고흥이 최초 굴 양식지로 알려져 있다. 갯벌에 돌멩이를 던져놓고 작고 어린 굴 종패(種貝)를 붙이는 ‘투석식’이 가장 오래된 양식법. 그러다 ‘지주식’이 등장한다. 기다란 나무를 박고 굴을 붙여 키운다. 굴 양식을 비교적 일찍 시작한 천북에는 지주식이 많았다. 최근 대세는 ‘수하식’이다. 경남 통영, 전남 여수 등 주요 굴 양식 지역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어린 굴이 다닥다닥 붙은 줄을 바다에 내려 키운다.


양식법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투석식과 지주식은 자연산 굴과 자라는 환경이 비슷하다. 바닷물에 잠겼다가 물이 빠지면 공기와 햇빛에 노출되기를 반복하면서 맛의 밀도가 높아지고 육질이 탱탱해진다. 대신 씨알이 잘다. 반면 수하식은 24시간 내내 바닷물에 잠겨있다 보니 영양 섭취량이 훨씬 많고 그만큼 크게 빨리 자란다. 대신 살짝 싱거운 편이다.


과거 천북면 장은리와 사호리 일대는 자연산 굴이 지천이었다. 마을 아낙들은 10월부터 이듬해 봄까지 갯바위에 달라붙은 굴을 캐 생계를 이었다. 아낙들은 굴을 채취하자마자 깠다. 굴을 지고 돌아가려면 무거운 굴 껍데기를 까서 무게를 최대한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추위에 곱은 손을 녹이기 위해 피운 장작불에 어느 날 굴을 껍데기째 구워 먹어보니 달고 고소했다. 굴 구이는 이 지역 토속 음식이 됐다. 굴 구이가 소문 나면서 찾는 이가 점점 많아졌다. 구이에 더해 찜, 솥밥, 칼국수, 물회, 무침 등 온갖 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밀집한 천북 굴 단지가 형성됐다.


홍성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자연산 굴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여수, 통영 등 다른 지역에서 양식 굴을 가져다 천북산 자연 굴과 함께 팔아야 했다. 맛은 자연 굴이 한 수 위라지만, 대부분 손님은 씨알이 굵고 먹기 편한 양식 굴을 선호했다. 한재봉씨를 비롯한 지역 주민들은 ‘천북에서 나는 굴을 맛보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해낸 게 자연산 굴을 가져다가 일정 기간 수하식으로 양식하는 것이었다. 5년 전쯤 장은어촌계 소속 어민 여섯이 시작했다.


굴 까기도 보통 일 아니네


양식장에서 건져 올린 굴을 망째 부두에 내렸다. 이제 숨 좀 돌리나 했더니, 한재봉씨가 고압 살수기를 가져왔다. 빠르고 강한 물줄기로 굴 껍데기와 망을 털어내고 씻어냈다. 물과 함께 이물질이 온몸에 튀었다. 망 80개 세척에 1시간쯤 걸렸다. 세척 다음은 분류 작업. 망을 풀어 굴을 크기별로 골라 플라스틱 상자에 담았다. 큰 놈은 남자 어른 손바닥을 편 것보다도 컸다. 이만한 굴은 양식용 망의 절반 크기인 판매·유통용 망에 다시 담아 식당이나 소비자에게 판다. 나머지 작은 굴은 껍데기를 까 ‘깐 굴’로 따로 팔거나 굴젓을 담근다.


굴 까기는 숙련된 아낙들 일이었다. 어느새 모여든 아낙들이 작은 칼로 굴을 까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동작이라곤 조금도 없는, 간결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손놀림으로 알과 껍데기를 빠르게 분리했다. 너무 쉬워 보여서 굴 까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벌어진 틈으로 칼날을 집어넣어 납작한 껍데기를 들어올린 뒤 떼내야 하는데, 보기처럼 쉽지 않았다. 틈새로 칼날을 집어넣기도 힘들었지만 단단히 붙어있는 껍데기를 분리하기가 힘들었다. 칼날을 겨우 욱여넣었다고 해도 껍데기가 깨지기 일쑤였다. 껍데기에 들러붙은 부분 없이 굴 알맹이를 남김없이 도려내야 하는데, 이것도 잘 되지 않았다.


보다 못 한 한씨가 그만하게 했다. “껍데기 약한 부분이 깨지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굴이 충격받아 죽어요. 그러면 맛이 떨어지고 쉬 상하죠. 또 살을 완전히 떼내지 않으면 맛도 떨어지지만 양도 줄어들기 때문에 안 돼요.”


커다란 상자에 가득 담긴 굴을 모두 까봐야 고작 5kg가량 나온다. 손바닥만 한 봉지 다섯 개 분량이다. 그 대가로 2만원을 받는다. 한씨는 “보통 한 분이 하루 4~5상자를 깐다”고 했다. 일당 8만~10만원이면 시골에서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 노고에 비해 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굴찜·구이·솥밥… 안 되는 요리 없네


한씨가 “비교해보라”며 자연 굴과 양식 굴을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내왔다. 한씨는 20년 넘게 굴구이 집을 운영해온 어머니를 도와 천북 굴 단지에서 ‘재봉이네’와 ‘떳다! 먹방’ 등 식당도 2곳 운영한다. 자연 굴은 껍데기가 좁고 길쭉한 모양에 물결 무늬가 있고 어른 손바닥만 했다. 양식 굴은 아무리 커도 자연산 절반 정도 크기에 동그랗고 물결 무늬가 없다. 자연산이건 양식 굴이건 종류는 참굴로 같지만 자라는 환경에 따라 모양과 맛이 달라진다. 자연산은 갯벌 바위에 붙어 살다 보니 밀물과 썰물에 적응하고, 양식 굴은 잔잔한 바다에서 지내다 보니 차이가 생긴다.


까보니 자연 굴은 알맹이 테두리가 누르스름 옅은 색이고, 양식 굴은 검정에 가깝게 진한 테두리를 둘렀다. 맛도 다르다. 양식 굴은 짭짤하면서 약간 싱겁고, 자연 굴은 짭짤하면서 동시에 단맛과 감칠맛이 함께 느껴진다. 굴 특유의 향도 자연 굴이 더 짙다. 구이나 찜으로도 맛과 향의 차이가 느껴지지만 특히 날로 먹었을 때 특히 확연하다. 그러면서도 씨알은 양식 굴처럼 굵다. 한씨가 “이것도 맛보라”며 천북 바다에서 수하식으로 100% 양식한 굴도 가져왔다. 자연 굴만큼은 아니지만 여수, 통영 등에서 온 것보다는 단맛이 더 들었다. “서해와 남해 바닷물 차이인가 봐요.”


천북 굴 단지에 있는 식당들에서는 굴을 여러 요리로 맛볼 수 있지만 구이와 찜이 가장 인기다. 식당 바깥 찜기에 쪄서 내주는 굴 찜은 통통하고 탱글탱글하면서 담백한 감칠맛이 좋다. 굴 구이는 테이블 가스 불판에 올려 구워 먹는데, 굴을 구웠을 때 나는 특유의 맛과 불향 때문에 마니아가 많다. 대개 굴 구이 4만원·찜 3만5000원·구이 반 찜 반 4만원에 낸다. 어른 서넛이 먹을 만한 양이다. 전화 주문·판매도 한다. 한씨는 자연산 굴은 1망에 2만5000원, 양식 굴은 1망(약 50마리)에 2만원에 판다. 택배비 4000원이 추가된다. 천북면사무소 (041)930-0804.


[천북(보령)=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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