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人2色 '마리', 어느 쪽이든 객석은 운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의 두 주역 김소현·김소향]
김소현 - 같은 배역 맡았지만 대사, 손짓 하나까지 전부 달라요, 하하
김소향 - 소현 언니의 타고난 사랑스러움이 부러워… 걸음걸이 따라하기도
김소현이냐, 김소향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포털 한 공연 카페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누구 걸 봐야 할까요?"라는 질문들이 올라온다. 남자 배우가 흥행을 좌우하는 여느 뮤지컬과 달리, 이 작품은 마리 역을 맡은 여자 배우가 무대의 성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성악을 전공한 김소현은 2001년 국내 초연이었던 '오페라의 유령'에서 주인공 '크리스틴'으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뮤지컬 데뷔 19년 차인 김소향은 2017년 아시아인 최초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시스터 액트' 월드 투어에서 '메리 로버트' 역을 맡았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마리 역을 맡은 김소향(왼쪽)과 김소현. /EMK뮤지컬 컴퍼니 |
15일과 16일, 연달아 관람한 김소현과 김소향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같은 공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김소현의 마리는 순수했고, 김소향의 마리는 발랄했다. 21일 만난 두 사람에게 "같은 배역이 달라봤자 얼마나 다를까 생각했다"고 하자 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소현이 "대사 하나, 노래 한 소절은 물론 손짓 하나까지 다르다. 마리의 첫 대사 '봉수아'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고 하자, 김소향도 "공연을 할수록 마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기 때문에 공연 중반이 지난 지금은 연습 때보다 더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가 신문에 연재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를 바탕으로 실베스터 르베이(곡)와 미하엘 쿤체(극작)가 뮤지컬로 완성한 작품이다. 2014년 한국에서 초연을 했고, 이번이 5년 만의 재연이다. 가상의 인물과 설정이 들어가 있지만, 마리가 실제 인물이다 보니 배우와 관객 모두 감정이입을 깊이 하게 된다.
21일 만난 두 사람은 리허설 이후 서로의 공연을 본 적 없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서로의 감정과 컨디션을 알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김지호 기자 |
남편과 아이를 잃고 애인과도 헤어지는 2막에 다다르면 객석에서도 두 여배우의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마리가 아들을 뺏기는 장면에서는 중년 여성 관객들이 눈물, 콧물을 쏟아낸다. 김소현은 "진정한 고통을 겪지 못하면 자아를 찾지 못한다고들 하는데, 마리는 단두대 앞에서 여왕과 엄마로서 자신의 모습을 찾았던 것 같다. 그래서 1막과 2막에 대비를 많이 주는 편이다"라고 했다. 김소향은 "1막에서 마리를 보면 복장 터진다는 관객이 많을 정도로 그는 철이 없지만, 2막에서 현실을 대면하면서 강인해진다. 나라면 어땠을지 생각하며 연기한다"고 했다.
마리의 상대역이랄 수 있는 악셀 폰 페르젠 백작 역을 맡은 배우는 손준호, 박강현, 정택운, 황민현 등 네 명이다. 손준호는 김소현의 남편이기도 하다. 어느 페르젠 백작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고 묻자,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이한밀"을 외쳤다. 이한밀은 마리의 남편인 루이 16세를 맡은 배우로, 이 역에 혼자 캐스팅됐다. 일단 공연 때마다 '바뀌는' 애인들이 아니라 매 공연 곁에 있는 남편이라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다른 작품에서 음악감독을 할 정도로 다재다능한 데다"(현) "선하고도 기품 있는 왕의 연기"(향)를 해냈다는 평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내한팀의 주인공 팬텀을 맡은 조너선 록스머스는 인터뷰에서 "팬텀이 다른 팬텀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라고 했다. 김소현과 김소향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자 "우리도 마찬가지다. 다른 마리가 신경 안 쓰일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니까 더 나아질 수밖에 없어요. 서로의 장점을 그대로 흉내 낼 순 없지만 참고할 수도 있고, 나와 다른 점을 발견하면 신선한 자극이 되니까요. 저는 최근에 진지하고 위엄 있는 역할을 주로 맡아서 소향씨의 발랄하고 경쾌한 연기가 부러웠어요."(현)
"저는 언니가 프랑스에서 보고 온 베르사유궁전 이야기를 듣고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는 걸요. 언니의 타고난 사랑스러움을 부러워하지만,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대신 언니를 보면서 걸음걸이도 따라 한답니다. (손짓을 머리 위로 하며) 이렇게 머리 위에 책을 올려놓고요, 하하!"(향) 11월 17일까지 서울 디큐브아트센터.
[변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