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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혐오시설에 디자인 숨결… 동네 자랑이 되다

폐쇄된 소각장 등 주민 기피시설, 공공 프로젝트 통해 문화공간으로

버려진 건물, 갤러리·카페로 개조… 운영 중인 시설 일부만 재생하기도


용도를 다한 쓰레기 소각장이나 하수 처리장이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 작품이나 문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버려지다시피 한 혐오 시설에 디자인을 더해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 골목에는 흰색 타일 3000여 개로 내·외부를 덮은 구조물이 하나 있다. 이곳은 원래 1985년 지은 초등학교 쓰레기 소각장이었다. 타일에는 각각 다르게 생긴 푸른색 무늬가 있는데, 얼핏 보면 날개 달린 새나 나비 그림 같기도 하다. 이 무늬는 인근 주민과 학생들이 물감을 '후' 하고 불어 번지게 해 만든 무늬다. 공간 이름은 '숨결'. 말 그대로 사람들의 숨결이 담긴 작품이다.

혐오시설에 디자인 숨결…  동네 자랑

학교 내 폐쇄된 쓰레기 소각장을 휴식 공간으로 바꾼 서울 금천구 ‘숨결’. 내·외부를 덮은 흰색 타일 3000여 개에는 인근 주민들이 직접 물감에 숨을 불어넣어 만든 무늬가 새겨졌다. /사진가 이남선

버려진 기피 시설 또는 혐오 시설에 디자인을 입혀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프로젝트가 최근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금천구 도시계획과 이원희 과장은 독산동 쓰레기 소각장에 대해 "몇 년째 버려져 있어 민원 대상이었다"며 "지금은 주민과 학생들의 휴식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전체를 타일로 덮고 굴뚝과 수돗가 등은 남겼다. 사회적 기업 '어반소사이어티'의 양재찬 건축가와 최선 작가가 디자인한 이곳은 최근 해외 건축 웹진에도 소개됐다.


경기 시흥시의 '아트 앤 큐브'는 대형 하수 처리장의 일부를 복합 문화 시설로 바꾸는 프로젝트다. 정왕동 하수 처리장에 있는 노후한 시설을 전망대, 전시실, 카페로 개조한다. 내년 완성될 예정인데, 관제탑과 소화조(消化槽)를 바꾼 '비전타워'가 먼저 문을 열었다. 내부의 파이프와 탱크에 알록달록하게 색을 입혀 장식용으로 꾸몄다. 시흥시 경관디자인과 김미옥 주무관은 "완전히 폐쇄된 시설이 아니라 지금도 운영 중인 시설 일부를 재생한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올해 초 지은 문화 공간 'B39'는 부천시 쓰레기 소각장을 고쳐 만들었다. 건축가 김광수가 설계한 이곳은 1995년 가동을 시작했다가 2010년 가동을 멈추고 폐쇄됐던 곳이다. 소각로는 중정(中庭)과 갤러리로, 쓰레기 반입실은 공연장으로 변했다. 쓰레기를 모아두던 벙커는 그대로 보존돼 그 자체가 전시물이 됐다. 김씨는 서울 성동구의 한 학교에 몇 년 동안 방치된 폐건물을 리모델링한 '제2 서울창의예술교육센터'를 설계하기도 했다. 그 외에 쓰레기 매립장을 공원과 생태 교육장으로 바꾼 '청주 국제에코콤플렉스', 쓰레기 소각장 굴뚝으로 만든 전망대 '구리타워' 등도 혐오 시설을 문화 공간으로 바꾼 사례다.

혐오시설에 디자인 숨결…  동네 자랑

경기 시흥시 하수 처리장을 개조해 갤러리와 카페로 만든 ‘비전타워’의 내부. 오래된 파이프를 떼어다 작품처럼 전시했다. /시흥시

'동대문 옥상낙원'은 재작년 공공디자인대상을 받았다. 동대문 신발 상가 옥상에 있는 이곳은 원래 쓰레기 18t이 쌓여 있던 도심 속 쓰레기장이었다.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젊은이들의 놀이터로 만들었다. 건축과 라이프스타일 강연, 파티 등이 열리며 쓰레기 속에 있던 옛날 테이프와 CD 등을 전시하기도 했다.


재작년 폐쇄된 인천항 곡물 창고를 CGV가 영화관과 가상현실(VR) 체험관 등으로 만들 예정이며, 20년 넘게 방치된 경기 성남시 분당의 옛 하수 처리장도 문화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이 추진 중이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 교수는 "이런 시도는 용도를 다한 시설을 재활용하는 것을 넘어, 주민들에게 외면당해 소멸 위기에 놓인 도시 공간을 회생시킨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김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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