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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도 소문났던 조선의 밥짓기 솜씨

미식(米食)시대

중국 淸나라 학자 "조선사람이 지은 밥, 윤기있고 부드럽고 향긋"

식당가에 온장고 보급, 스텐레스 밥그릇 확산되며 밥맛 나빠져

해외에서도 소문났던 조선의 밥짓기 솜

갓 지어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조선일보DB

‘조선사람들은 밥짓기를 잘한다. 밥알에 윤기가 있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솥 속의 밥이 고루 익어 기름지다.’ 중국 청(淸)나라 때 학자 장영(張英)이 쓴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說)' 즉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한 열두 가지 조건’이란 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은 외국에 소문 날 정도로 ‘밥 짓기의 달인’들이었다.

조선 후기 성인들 한 끼 식사에 무려 밥 420ml 섭취

맛있는 밥 짓기에 심혈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밥을 워낙 좋아해 많이 먹었다. 대체 얼마나 먹었기에. 조선후기 기록을 보면 당시 한 끼 식사로 성인 남자가 7홉, 여자 5홉, 아동 3홉, 어린아이 2홉을 먹었다. 조선시대 1홉이 약 60ml이니까 남자 어른 한 끼 밥양이 무려 420ml나 된다. 요새 식당이나 가정에서 흔히 쓰는 밥 공기 용량이 290ml이다. 성인 밥 한 그릇이 조선후기 갓난아기의 그것보다 작다.


물론 당시에는 하루 두 끼를 먹었고 반찬이 별로 없었으니 밥을 요즘보다 많이 먹은 건 당연하달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시대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성인 남성이 2홉쯤 먹었다. 일본인과 중국인이 조선에 왔다가 밥 먹는 양을 보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익이 쓴 ‘성호사설’을 보면 "유구국(琉球國·오키나와) 사람들이 '너희 나라 풍속에 항상 큰 사발에 밥을 퍼서 쇠숟가락으로 퍽퍽 퍼먹으니 어찌 가난하지 않겠냐’고 비웃었다"는 구절이 나올 정도다.


밥을 맛있게 짓기란 쉽지 않다. 실은 무척 어렵다. ‘요리사들의 요리사’로 추앙받는 프랑스의 세계적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69)는 "잘 지은 쌀밥 한 그릇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엄청나게 정교하고 어려운 요리"라고 했다. 한국음식문화사의 기틀을 세운 고(故) 이성우 교수는 밥 지을 취(炊)자를 설명하면서 ‘삶아서 수분이 줄고 다음은 뚜껑을 덮은 솥 속에 수증기가 가득하여 이것으로 뜸을 들이고 솥 밑바닥의 곡물은 약간 타기까지 하여야 제맛의 밥이 된다’며 ‘팽(烹)·자(煮)·소(燒)의 세 가지가 일체화하여 취가 된 것’이라 했다. 한마디로 밥이란 끓이고 찌고 굽는 3가지 요리법이 모두 제대로 이뤄져야 완성된단 말이다.

밥맛이 없어진 건 60년대 후반… 품종 개량과 스텐레스 밥공기 사용

더구나 조선시대 쌀은 오늘날과 달라서 맛있는 밥 짓기가 더 어려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는 ‘껍질맛 가볍게 벗기고 속겨는 벗기지 않은 ‘매조미쌀’(현미)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밥맛은 지금과 달리 거칠었다. 또 알갱이가 지금의 쌀보다 훨씬 작고 붉은색이 도는 적미(赤米)도 밥 속에 많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조선시대 사람들은 밥을 맛있게 지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밥맛이 이렇게 됐을까. 음식 관련 연구자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밥맛이 나빠지기 시작해 1980년대 지금처럼 됐다고 본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한국 쌀농사는 생산량 확대가 목표였다. 쌀 품종은 맛보다는 수확이 많은 쪽으로 개량됐고, 질소비료가 다량 사용됐다. 쌀의 단백질 함량이 적을수록 밥이 맛있어진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쌀로 밥을 지으면 금방 단단해진다. 단백질을 만드는 게 질소다. 질소비료를 사용하면 소출은 늘지만 단백질 함량이 높아진다.


1960년대 후반 한식당에는 스텐레스 밥공기 사용이 확산됐다. 정부는 부족한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스텐레스 밥공기 사용을 권장했다. 서울시는 1976년 음식점에서 스텐레스 밥공기만 사용할 것을 의무화한 규정을 요식협회에 내렸다. 스텐레스 밥공기 규격을 내면 지름 10.5cm, 높이 6cm로 정하고, 이 그릇에 밥을 5분의 4 정도 담도록 했다. 보건사회부는 1981년 이 서울시 규정을 전국으로 확대 ·적용하는 행정조치를 내놨다.

공깃밥 온장고 출시되면서, 갓지은 밥의 찰진 맛 사라져

식당에서는 요즘도 1981년 보사부 권장 규격 밥공기를 대부분 사용한다. 탄수화물을 꺼리는 풍조가 확산되면서 2012년부터는 지름 9.5cm에 높이 5.5cm인 밥공기가 생산·보급되고 있다. 음식점 주인 입장에선 스텐레스 밥공기가 밥양을 줄여 원가가 절감되는데다 미리 밥을 담아두면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도 빨리 식사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1980년대 중반 공깃밥 온장고가 출시되면서 스텐레스 밥공기는 전국 식당가를 장악했다.


스텐레스 밥공기에 미리 담아두면서 한국의 밥은 편리함과 속도를 얻었지만 맛을 잃었다. 미지근하게 오래 보관된 밥은 윤기와 촉촉함을 잃는다. 쫀득하고 차진 식감이 사라지고 퍼석하고 불유쾌한 군내가 난다. 가정에서도 심지어 며칠 전 지은 밥을 전기밥솥에 보온 상태로 두고 먹기도 한다. 갈수록 밥을 적게 먹는 건 어쩌면 밥이 예전만큼 맛있지 않아서일 수 있다. 그래선지 요즘은 ‘밥맛’이 ‘밥의 맛’ ‘밥이 먹고 싶은 마음’이란 사전적 의미보다 ‘재수 없다’는 뜻으로 더 널리 쓰이는 듯하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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