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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한정식 같은 6000원 백반, 언제든 볼 수 있는 바다… 佛남편, 하루하루가 설렌대요 ”

[아무튼, 주말]

디자이너 이선혜·바르드 부부

여수 1년살이서 찾은 멋&맛



“하루하루가 너무 좋아요. 무엇보다 바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 바로 갈 수 있는 바다가 코앞이라는 게 여수(麗水) 살이의 가장 좋은 점이지요.”


20년 넘게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이선혜(61)씨는 대중적으로는 ‘쉬우면서도 맛있고 근사한 요리 선생님’으로 더 유명하다. 제삿날 만두 300개를 혼자서 척척 빚는 종갓집 맏며느리였던 어머니 손맛을 이어받았고, 30여 년 전 프랑스 유학 중 만난 건축가 남편 크리스티앙 바르드(Barde)씨와 결혼해 시어머니에게 라타투이, 뵈프(비프) 부르기뇽 같은 프랑스 가정식을 배웠다. 여기에 디자이너의 감각이 담긴 플레이팅까지 더해진 그의 요리책 ‘나의 프랑스식 샐러드’ ‘나의 프랑스식 오븐 요리’, 그리고 서울 청담동에서 운영했던 지중해 음식점 ‘빌라 올리바’로 사랑받았다.


부부는 지난해 10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전남 여수로 내려왔다. 부부가 제2의 삶을 어떻게 살지 고민할 장소로 여수를 택한 건 예전부터 자주 찾던 도시이기 때문이다. “경남 진해 태생이지만 남도(南道)를 좋아해 자주 여행했어요. 그때마다 여수는 우리 부부의 여행 베이스캠프였어요. 여수가 사통팔달한 곳이다 보니 해남·완도·순천·고흥 등 전남 어디건 오가기 편하거든요.”


미감(美感)과 미감(味感)이 남다른 이 부부가 일년간 여수에서 찾아낸 ‘보물’은 어떤 곳들일지 궁금했다. 부부는 “친구들이 여수에 놀러오면 데리고 다니는 코스를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흔쾌히 허락했다. “아침 일찍 오셔야 해요.” 지난 19일 오전 5시 10분 용산역을 출발하는 여수행 KTX에 올라탔다.


◇08:30 교동시장 & 6000원짜리 백반집


오전 8시 3분 열차가 여수엑스포역에 도착했다. 이선혜·바르드 부부가 반려견 두 마리를 데리고 역 앞에 나와있었다. 부부가 여수 여행 첫 코스로 안내한 곳은 교동시장. “어떤 도시를 여행할 때 그 시작을 시장으로 하는 걸 좋아해요. 아침 시장을 봐야 사람 사는 냄새가 나죠. 그 지역에서는 그 철에 어떤 식재료가 나오는지도 파악할 수 있고요.”


연등천을 따라 늘어선 교동시장은 1965년 생겨났다. 여수항과 근접해 배에서 들어온 생선을 파는 조그만 어시장으로 시작해 지금은 점포 70개, 노점 400개가 넘는 큰 규모의 재래시장으로 컸다. 교동시장은 되도록 아침 일찍 가야 한다. 오후 1시면 상인들이 건너편에 있는 또 다른 재래시장인 서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부부가 “아침 일찍 오라”고 한 건 그래서였다.


교동시장에 들어서자 이씨는 뭐가 나왔나 둘러보느라 정신 없었다. 바르드씨는 옆에서 스마트폰으로 시장 구석구석을 사진 찍었다. “어머, 굴이 나오기 시작했네! 여기 굴은 통영 것보다 잘지만 싱겁지 않고 달아요. 저기 삼치도 커다란 게 나왔네요. 삼치도 날이 차가워지면서부터가 제철이잖아요.”


이씨가 추천한 가게는 ‘부촌수산’(010-4653-8416). 시장 입구 ‘건강샘’ 건강기능식품점 앞에 있다. 주인은 “우리 해산물은 모두 자연산”이라며 “오빠가 새벽에 목포⋅완도⋅신안에서 제철 것들을 모아서 가져온다”고 했다.


“저기 등지느러미 가시가 굵고 날카로운 금풍생이(딱돔) 아시죠? 서대와 함께 여수를 대표하는 생선인데, 저는 저게 제일 맛있더라고요. 맛이 너무 좋아서 남편은 주지 않고 애인한테만 준다고 해서 여수 사람들이 ‘샛서방고기’라고도 부르잖아요(웃음). 직화로 구워야 가장 맛있지만 오븐 구이도 훌륭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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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여수에 1년 살면서 지역 식재료로 만든 새 요리책 ‘나의 로컬 푸드 샐러드’(브레드)를 내놨다. 이씨는 레시피를 개발하며 음식을 만들었고, 바르드씨는 교동시장, 돌산도 앞바다 등 책 여기저기 나오는 여수 풍광을 찍었다. 이 요리책에서 금풍생이는 ‘근대와 폴렌타를 곁들인 금풍생이 구이’로 근사하게 변신한다.


교동시장을 둘러본 부부가 “아침 먹자”며 데려간 곳은 시장통 한가운데 있는 ‘풍성식당’(010-2046-4243)이었다. 백반 1인분이 6000원. 흰밥 대신 찰밥이나 호박죽을 먹을 수도 있다. 가격은 모두 같다. 이씨는 “이 집은 찰밥이 유명하다”고 했다. 주인은 “단골 오셨네”라고 환하게 맞으며 가게 뒤에 딸린 방을 내주는 ‘VIP 대접’을 해줬다. 뜨끈뜨끈 끓는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자 대접 가득 찰밥이 담겨 나왔고, 곧이어 커다란 양은 쟁반에 갈치·가자미·조기구이, 물김치, 콩나물, 시금치 나물, 겉절이 김치, 김무침 등 반찬 10접시가 따라나왔다.


“C’est authentic(이게 진짜지)!” 바르드씨가 밥상을 보며 감탄하더니 젓가락을 들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이씨는 “여기 반찬은 모두 주인이 직접 만든 것들”이라고 했다. “반찬을 사다가 내는 식당이 많잖아요? 저는 그런 집은 가지 않아요. 밥이란 마음을 나누는 일인데, 사오는 반찬에는 마음이 없거든. 갈 때마다 반찬이 바뀌면 직접 만드는 집인 걸 알아요. 시장에 그때그때 나오는 재료가 다르니 반찬도 달라지는 거죠.”


식당 주인은 “우리 집 찰밥을 서울 강남 사모님들도 주문해 먹는다”고 했다. 이씨는 “찰밥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찰밥 4㎏ 3만5000원. 12~13명이 먹는단다. 20여 명이 먹을 양인 찰밥 6.5㎏ 6만원. 배송비 5000원이 추가된다.


◇10:00 고소천사벽화마을


아침을 먹은 뒤 고소천사벽화마을로 향했다. 부부는 “반려견들과 산책하러 자주 가는 곳”이라고 했다. 여수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부락인 고소동에 지난 2009년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조성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길이 1004m 골목길을 벽화로 장식해 ‘천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금은 1650m 10개 구간에 여수의 역사, 문화, 생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수가 고향인 허영만 화백의 만화 벽화도 있다.


부부가 즐겨 산책하는 길은 ‘고소3길’이다. “관광객이 몰리고 식당과 카페, 가게가 엄청나게 들어서면서 벽화마을이 번잡해졌어요. 그나마 여기가 아직 한적해서 걸을 만해요.”


반려견을 데리고 길을 걷던 바르드씨가 “오, 여기도 건물이 들어섰네. 얼마 전 왔을 때만 해도 없더니”라고 했다. 낡은 집을 개보수하거나 좁은 골목 틈바구니에 끼워 넣듯 지은 새 건물 등 온통 공사판이었다. 이 길도 곧 벽화마을 다른 곳들과 비슷해질 모양이다. 그래도 여수 바다와 돌산대교, 이순신대교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시원했다. 이씨는 “야경도 좋다는데 밤에는 다니질 않아 모르겠다”며 웃었다.


골목이다 보니 차량 진입이나 주차가 어렵다. 인근 이순신광장·진남관·여객선터미널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둘러보는 게 편하다.


◇11:00 돌산 드라이브 & 카페 모이핀


돌산대교를 건너 돌산도로 넘어갔다. 1984년 준공된 길이 450m, 높이 62m의 국내 최대 규모 사장교인 돌산대교는 여수의 랜드마크이자 관광 명소. 돌산대교에서 시작하는 돌산 해안일주도로는 산 8개로 이뤄진 돌산도 해안을 도는 드라이브 코스다. 길이 약 46㎞로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일곱째로 큰 섬인 돌산도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섬 끄트머리에 있는 향일암을 향해 남쪽으로 달리니 창 밖으로 아름다운 해변과 바다 풍광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곧 무술목 해변이 나왔다. 몽돌밭 해변을 감싼 솔숲이 아름답다. 이어 방죽포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200년 이상 된 소나무숲과 백사장이 조화롭다. 방죽포에서 임포까지 해안길은 바다 풍광을 제대로 느끼며 달릴 수 있는 코스다. 향일암은 일출이 장관이라 신년 첫날이면 인파가 몰린다. 7개의 바위동굴 혹은 바위 틈이 있는데, 모두 통과하면 소원이 하나는 반드시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다.


시내로 돌아오는 길 이신혜·바르드 부부가 “‘모이핀(061-644-9313)’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쉬어가자”고 했다. “바다 풍광, 건물, 인테리어, 커피, 빵·케이크며 그 안에 담고 있는 콘텐츠까지 두루 훌륭해요.”


돌산 무술목 해변 근처에 있는 모이핀은 여수 최초의 ‘대형 오션뷰 카페’ 중 하나.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에서는 ‘인생샷 건지는 카페’로 유명하다. 모이핀(Moi Fin)은 ‘안녕, 핀란드’라는 뜻의 핀란드어. 미니멀한 흰색 건물과 푸른 무술목 바다를 배경으로 도드라졌다. 바르드씨가 “비밀이 맨 아래층에 감춰져 있다”며 안내했다. 지하 공간이 핀란드의 자작나무숲처럼 꾸며져 있었다.


◇13:00 여자만 & 섬달천도


이선혜·바르드 부부는 점심을 여수비행장이 있는 신풍검문소 뒤 ‘여풍식당’(061-682-7763)으로 가려 했다. “외관은 백반집처럼 허름하지만 음식은 한정식이에요. 1인당 1만4000원에 반찬이 30여 가지나 나와요. 가짓수도 가짓수지만 반찬 하나하나 다 맛있고요.” 전화해보니 아쉽게도 식당이 만석인 데다 오후 4시 30분 영업 종료. 다음 여수 여행 때 찾기로 하고 여자만(汝自灣)으로 향했다.


여자만은 여수 서쪽에 있다. 이곳의 2640만㎡ 광활한 갯벌은 생물종 다양성과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연안 습지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갯벌에 펼쳐진 약 100만㎡ 갈대숲은 경관이 특히 뛰어나다. 부부가 ‘조은식당’에 차를 세웠다. “지나갈 때마다 식당 앞에 차가 많길래 맛집이구나 했는데 진짜 맛집이었어요.” 요즘 여자만에서 잡히는 낙지와 주꾸미 중 “낚시로 잡아 맛있다”는 낙지를 맛보기로 했다. 연포탕과 볶음, 잘게 칼로 다지는 탕탕이 중에서 볶음으로 주문했다.


탱탱하면서도 부드러운 낙지 식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너무 맵지 않게 낙지의 감칠맛을 살려낸 조리 솜씨가 훌륭했다. 대접에 매콤한 낙지와 양념을 넣고 밥과 김가루, 참기름을 더해 쓱쓱 비벼 먹으니 꿀맛이었다. 해산물은 시가. 낙지는 요즘 2인분 3만7000원, 4인분 4만9000원 받는다. 삼겹살(1만2000원), 토종한방백숙(5만원), 김치·된장찌개 백반(7000원)도 있다.


식당을 나와 차 2대가 겨우 비켜갈 수 있는 좁은 다리를 건너니 ‘섬달천’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섬이 나왔다. 바다가 육지로 들어와 있는 만(灣)이다 보니 바다 위에 떠 있는 섬과 멀리 다른 육지가 보이는 바닷가 풍경이 이색적이다. 섬달천에도 야트막한 언덕에 카페 ‘어느멋진날’(0507-1474-7201)과 ‘달, 커피’(0507-1311-2793)가 있다. 전망은 두 곳 다 좋다.


◇17:00 히든베이호텔 석양 & 여수해물삼합


부부는 “여수 최고의 전망을 꼽으라면 여기”라며 히든베이호텔(061-680-3000)로 갔다. “모이핀 등 오션뷰 카페들도 바다 전망이 좋지요. 하지만 한쪽이 절벽이나 산으로 막혀 있어요. 언덕 꼭대기에 있는 이 호텔처럼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인 전망은 여수에서 여기가 유일할 겁니다.” 2층 야외 테라스는 호텔 투숙객이 아니라도 들어갈 수 있다. 1층 로비에 있는 카페 ‘더 라운지’나 레스토랑 ‘더 키친’에서 음료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며 전망을 감상할 수도 있다.


오후 5시 30분쯤 히든베이호텔이 바라보고 있는 여자만으로 석양이 졌다. ‘여수해물삼합’을 먹으러 돌산에 있는 ‘해물마당’(061-643-0222)으로 갔다. 이씨는 “우리 아파트 구해준 부동산 아줌마 추천 맛집”이라며 웃었다.


홍어·삼겹살·묵은지로 구성되는 홍어삼합이 유명해지자 전라도 지역마다 나름대로 삼합을 만들어냈다. 보통 3가지 재료가 한정되는데, 먹거리가 풍성한 곳이라 그런지 여수의 해물삼합은 문어·새우·전복·낙지 등 다양한 해산물과 삼겹살, 김치를 함께 불판에 구워 상추나 깻잎에 싸 먹는다. 그러니까 ‘해산물+삼겹살+김치’의 삼합이다.


큼직한 불판에 전복, 키조개, 대하, 관자, 냉동 삼겹살, 묵은지, 갖은 야채가 담겨 나왔다. 재료가 얼추 익자 주인이 살아 꿈틀대는 낙지를 한 마리 가져와 불판에 더했다. 온갖 재료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성하고 깊은 맛은 여수 그 자체를 먹는 듯했다. 여수해물삼합 4만5000·5만5000·6만5000원, 우럭탕 3만5000·4만5000원, 영양돌솥밥정식 1만3000원.


식당을 나오니 어둠이 깔렸다. 돌산대교와 다리 너머 여수 밤바다가 화려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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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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