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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by 조선일보

재건축 26년 좌절의 흑역사… ‘은마’가 움직인다

[아무튼, 주말] 새 정부 규제 완화에

기대 부푼 강남 은마아파트

지난달 4일 네이버부동산에선 서울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매물이 0건을 기록했다. 전날까지 40건이 넘었던 매매 게시물이 하루 만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은마아파트 단지 내 공인 중개사 사무소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유는 전날 나온 서울시의 ‘35층 층고 제한 폐지’ 발표 때문. 오랜 기간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의 발목을 잡았던 규제 대못이 사라지면서 ‘이번엔 진짜 되겠다’는 기대감에 집주인들이 일제히 매물을 거둬들인 것이다. 며칠 후 다시 나온 은마아파트 매물들은 달라진 재건축 분위기를 반영한 탓에 가격이 껑충 뛰었다. 지난달 29일 은마 단지 한 부동산 중개소에 올라온 전용면적 84㎡(34평형) 호가는 28억원대였다. 비록 호가지만 약 1개월 전 실거래가(25억5000만원)보다 2억 넘게 오른 것이다. 은마 단지의 한 공인 중개사 대표는 “재건축이 50층 이상으로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집주인들이 ‘싼값에 급매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며 “올해는 확실히 재건축이 성사될 듯한 분위기가 강하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 모습. 은마는 정부 규제, 주민 갈등으로 20년 넘게 재건축을 하지 못하다 최근 서울시의 층고 제한 폐지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규제 완화 약속, 주민 재건축 추진위 새 집행부 출범으로 다시 사업에 탄력을 받고 있다./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은마 재건축 26년 흑역사

은마아파트는 25년 넘게 ‘재건축 후보’였다. 지난 1979년 입주를 시작한 은마아파트는 1996년부터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집값 상승을 우려한 정부·서울시의 철벽 규제와 입주민 간 거듭된 반목으로 사업이 이뤄지지 못했다 .


은마의 재건축 사업을 좌절시킨 가장 큰 요인은 정부의 규제였다. 대표 사례가 2006년 도입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다. 은마와 같은 대단지 아파트일수록 재건축 사업에서 많은 수익이 발생하는데 이를 노린 투기 세력이 기승을 부리자, 재건축에 따른 집값 상승 이익이 조합원 1인당 3000만원을 넘을 경우 그 일부를 정부가 공적으로 환수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은마아파트는 4400가구에 이르는 강남 대표적 매머드급 단지다.


재건축 가능 여부를 가려주는 잣대가 되는 아파트 안전 진단 기준도 계속 높아졌다. 은마는 2010년 4차례 도전 끝에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을 받았지만, 이번엔 층수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당초 은마 주민들은 49층 높이로 새 아파트를 지으려 했다. 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35층 층고 제한을 도입하면서 정비 계획 심의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 소장은 “은마아파트는 잠실 주공5단지와 더불어 소위 ‘집값 상승 주범’으로 서울시에 찍혔던 지역”이라며 “상대적으로 재건축을 늦게 추진한 개포 주공 사업이 이미 끝났고 다른 강남 주요 단지도 조합 설립을 끝냈는데 은마만 진척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와 서울시의 고강도 규제는 은마 주민들을 분열시켰다. 재건축을 추진하려면 조합 설립을 위해 주민 7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오랜 기간 사업 방식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 지난 2002년 주민 손으로 재건축 조합 추진위원회를 설립했지만 지금까지 재건축 사업에 필수인 조합 설립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그마저도 2017년 서울시 35층 층고 제한에 걸려 재건축 계획안이 반려되자 ‘차라리 35층 이하로 하자’는 주민들과 ‘사업성이 떨어져 안 된다’는 반대파로 나뉘었다. 결국 주민들은 은마반상회·은마소유주협의회·은마사랑모임 등 여러 비상대책위로 갈라졌다. 조합 설립 과정에서 주민 단체 간 소송전까지 이어졌고, 지난해 9월엔 주민 총회에서 조합 설립에 성과를 못 낸 지도부 전체가 해임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은마아파트 거주자 양모(63)씨는 “수년간 재건축 계획이 서울시에 퇴짜 맞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끼리라도 의견을 하루빨리 통일해야 하는데 재건축 추진위와 비대위가 지저분한 싸움만 하면서 오랜 시간 주민들에게 희망 고문만 했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 외부 계단에 가재도구들이 버려져 있는 모습. 재건축이 늦어지면서 각종 아파트 노후 시설이 방치돼 있다./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재건축 시계 빨라지나

지지부진하던 은마 재건축 사업은 최근 들어 호재가 쏟아지며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층고 제한을 폐지하면서 주민 갈등을 일으키던 규제가 사라진 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과감한 재건축 규제 완화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적용 기준 완화(초과 이익 기준 3000만→5000만원)와 용적률 법정 상한 인상(300→500%), 안전 진단 기준 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지난달 17일 은마 재건축 추진위 집행부가 6개월 만에 새로 결성되면서 재건축 사업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새 지도부는 최근 시공사·설계사와 회의를 갖는 등 조합 설립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은마 재건축 추진위는 층고 제한이 풀리기 전인 지난 2월 새 아파트 단지를 35층으로 조성한다는 정비 계획안을 서울시에 제출했는데 향후 이 계획도 대폭 수정할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당 최고 35층으로 재건축할 경우 재건축 단지 전체 규모가 5900여 가구에 불과하지만, 층수를 50층까지 높일 경우 1만2000가구 수준으로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다. 최정희 신임 추진위원장은 “서울시와 주민 모두 상생하는 방법을 찾아 새 정비 계획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마아파트 한 주민은 “서울시와 정부의 규제 완화, 안정적인 추진위 집행부 등 재건축에 필요한 3박자가 한꺼번에 갖춰진 것은 처음”이라며 “주민들 사이 ‘지금이 아니면 은마 재건축은 물 건너간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2019년 헌법재판소에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과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이 규제 자체를 손대기 쉽지 않겠지만 새 정부가 이익 환수를 유예하거나 부과 기준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규제 문턱을 낮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에서 재건축 규제가 대폭 완화될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은마 재건축 사업 추진 속도는 어느 때보다 빨라질 것”이라면서 “다만 재건축 추진에 따른 주변 집값 상승 우려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여의도, 목동 재건축 후보지도 술렁

재건축 규제가 대폭 풀리면서 은마를 비롯해 여의도·목동 등 그동안 각종 규제로 발이 묶였던 주요 재건축 후보지들도 재건축 기대감에 부풀고 있다. 올해로 준공 45년이 된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는 지난달 16일 서울시의 재건축 사업 계획 심의를 통과했다. 주민들이 정비 계획안을 마련한 지 7년 만이다. 정비 계획안 통과로 이 단지는 3900가구에서 6800가구 규모로 탈바꿈하게 된다. 서울 강동구 삼익그린2차아파트는 지난달 재건축 안전 진단(D등급)을 통과했다. 서울 재건축 단지가 적정성 검토 단계를 통과한 건 2020년 삼환 도봉(도봉구) 이후 처음이다. 활기를 잃었던 서울 아파트 재건축 시장에 훈풍이 불면서 강남구 압구정동, 영등포구 여의도동, 노원구 상계동, 양천구 목동 등 노후 아파트 밀집 지역에선 “우리 단지도 재건축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으로 재개발 사업이 타격을 입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지역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대통령 새 집무실이 들어설 용산 국방부 청사 일대다. 국방부 청사에서 200여m 떨어진 주거 시설인 삼각맨션(130가구 규모)은 올해로 준공된 지 52년 된 낡은 건물이다. 삼각맨션 특별계획구역은 30층 이상의 주상 복합 개발 사업 계획이 예정돼 있다. 최근 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할 경우 경호·보안을 이유로 국방부 청사 인근 지역의 재개발 일정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오세훈 시장과 윤석열 당선인이 집무실 이전에 따른 용산 개발 추가 규제는 없다고 발표해 층고 제한 규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개발 허가가 지연될까 걱정하는 주민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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