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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일본이 메이지 이후 150년간 해온 말 “국가는 잘못 없다”

在日 한국인 2세 지식인 강상중, 후쿠시마·오키나와 등 찾아가 국가주의에 희생당한 국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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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강상중 지음|노수경 옮김 사계절|228쪽|1만3800원


몇 달 새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 까발려진 수많은 강대국의 민낯을 보았다. 일본은 가장 충격적인 사례였다. '관리의 일본'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대처도 늦었고, 결국은 자국민을 위험에 빠뜨렸다. '2020년 도쿄올림픽'이라는 대의(大義) 때문에 국가가 국민 보건을 희생시켰을 거라는 추측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재일(在日) 한국인 2세인 강상중(70) 도쿄대 명예교수는 2018년 출간한 이 책에서 말한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150년간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것을 관리하여 회복하기보다는 한결같이 감추고 피해자를 쫓아내는 방식으로 대처해 왔다." 저자는 오키나와, 후쿠시마 등을 여행하며 국가주의에 희생당한 일본의 '헐벗은 백성'들을 만난다.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근대화를 이룩했지만, 생산을 떠받친 사람 기둥[人柱]이 없었다면 빛과 밝음, 번영과 성장도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일본의 국가주의는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현재의 인간을 단물 빨아먹고 버리는 기민(棄民) 정책을 취해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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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몇 주 후 후쿠시마현을 방문했을 때, 원전 사고로 피난 온 주부가 강상중에게 말한다. "왜 우리가 도쿄를 밝히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말이 '정치학자 나부랭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질책으로 다가온다. 일본의 근대는 하시마 탄광 등을 중심으로 한 석탄 채굴에서 시작되었다. 알몸에 육척 띠 하나 두르고 갱 안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노래했다. "당신이 그런 마음으로 말한다면 단념할게요. 원래의 18세 처녀로 돌려준다면 헤어질게요." 학대당하던 여성들의 비가(悲歌)는 전후 부흥의 응원가로 되살아나 유행했다. 이후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 등 에너지 믹스의 시대로 이동했지만 '에너지가 곧 국가'라는 기본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원자력발전이 각광받았다. 그렇지만 2017년 10월 현재 후쿠시마 시민 4명 중 1명에 해당하는 5만5000명이 피난 중이며, 사고 전 살던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귀환 희망자는 거의 없다. "일본은 후쿠시마를 콘크리트로 덮으며 국가의 실수와 잘못도 함께 묻어버렸다. (…) 눈에 보이는 탄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까지, '에너지가 곧 국가다'라는 국책이 걸어온 길에는 수많은 사람 기둥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메이지 시대 이후 근대 일본은 식산흥업과 국위 선양의 일환으로 국제 행사 개최에 홀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도쿄올림픽만 해도 이 행사가 반드시 도쿄에서 열려야 하는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올림픽과 만국박람회로 도시와 국가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발상은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고 제로 성장이 당연해진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저자는 메이지 시대 슬로건인 '화혼양재(和魂洋才·일본 정신과 서양 기술의 결합)'의 낙관주의가 잔존하는 것이 일본의 고질적 병폐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이는 국가주의의 분위기를 앞으로도 유지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화혼양재란 정신과 기술의 분리 위에 성립된다. 국체를 구현하는 관료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정신의 집합체로 간주되었다. 반면 기술을 짊어진 인텔리는 국체 바깥쪽에 하위 집단으로 구조화되었다. 이 집단은 화혼, 즉 정신의 영역에는 참견할 수 없다."


2016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교도통신이 주관하고 전국 30여 일간지에 동시 연재된 화제의 기행문 ‘강상중 사색의 여행 1868년부터’를 한 권으로 묶은 책이다. 사유는 묵직하나 이해하기 쉽고, 문장은 단정하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아마도 ‘코로나 이후’가 아니라 ‘코로나와 함께하는’이라고 부르게 될 미래에 ‘유신’으로 만들어진 약한 사회 위에 군림하는 국가는 쇠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2020년의 한국은 메이지 유신과 10월 유신의 그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중이다. 반면 메이지 국가를 영광의 시대로 칭송하며 아름다운 일본을 만들겠다고 말하는 귀태(鬼胎)의 아이와, 그를 중심으로 하는 통치 시스템은 지금도 ‘약한 사회 위에 우뚝 솟은 국가주의’의 생리를 버리지 못했다. 그 결과 일본 전국에서 균열과 비틀림이 계속되고 있다.” 원제 維新の影.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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