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수사팀, 영장기각 후 서초동 식당에 다 모인 이유
불법 경영승계 혐의 등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뉴시스 |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 합병 개입 의혹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던 지난 9일 새벽 2시.
서울중앙지검에 남아 그때까지 법원의 영장 발부 여부를 기다리고 있던 경제범죄형사부(부장 이복현) 수사팀 검사들은 영장 기각 소식이 알려지자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1년 6개월에 걸친 수사의 대미(大尾)를 이 부회장 등 삼성 수뇌부의 구속으로 마무리 하려던 구상이 미완에 그쳤기 때문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이 상당히 아쉬워 했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오전 2시40분 이재용 부회장은 그때까지 대기하고 있던 서울구치소에서 빠져나와 기자들에게 “늦게까지 고생하셨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귀가했다.
이재용 수사팀, 영장 기각 후 새벽 서초동 식당에 모여…
같은 시각, 수사팀은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 법원의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임.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는 간단한 입장문을 만들어 언론에 배포한 뒤 사무실 뒷정리를 하고 검찰청사 앞 서초동의 한 식당에 모였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수사팀은 이날 영장 기각에 대한 회한을 달래며 통음(痛飮)을 하기는커녕 하루 종일 영장 심사에 임하느라 제때 챙기지 못한 끼니를 간단히 때우고 모두 고민스런 표정으로 일찍 자리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온 검찰 시민위원회에 제출할 30쪽짜리 의견서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일 자신의 기소 여부에 대한 타당성을 외부 전문가들에게 맡기겠다며 검찰에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다. 절차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은 11일 일반 시민 15명으로 이뤄진 시민위원회를 열고 이 부회장 사건을 대검 수사심의위원회에 넘길지 토의한다. 여기에서 수사심의위로 사건을 넘기기로 결정하면 법률가, 기자, 회계사 등 외부 전문가 15명으로 이뤄진 대검 수사심의위원회가 본격적으로 이 부회장의 기소 타당성 여부를 토의하게 된다.
검찰, 사건기록 20만쪽을 30페이지로 줄이는 초유의 도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지난 1년 6개월간 이 부회장의 불법 승계 의혹을 수사해온 이복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 |
문제는 사건 기록 20만쪽에 달하는 이 부회장 관련 복잡하고 방대한 사건 개요를 A4 용지 30쪽 미만에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에 따르면 일반인들로 이뤄진 검찰 시민위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의견서는 글자 크기 12포인트 이상, 줄 간격은 200으로 하는 등 세세한 규정도 따라야 한다.
수사팀은 지난 9일 출근해서부터 이 30쪽짜리 의견서를 어떻게 작성할지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마감 시한은 11일 시민위원회 개최를 하루 앞둔 10일까지다. 검찰 관계자는 “시민위원들은 그야말로 주부, 슈퍼마켓 사장, 일반 회사원 등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반 시민들이기 때문에 복잡한 사건 내용을 이해시킨다는 게 수사팀으로서는 굉장히 고민일 것”이라고 했다.
한 현직 검사는 “지난 8일 이 부회장의 영장 실질 심사에서 전문 법률가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에게 검찰이 사건 개요와 쟁점을 설명하는 데만도 8시간 이상 걸렸다”며 “법적 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인을 상대로 30쪽짜리 의견서만으로 설득을 해야 하는 게 과연 보통 일이겠느냐”고 했다.
삼성, ‘그림책 수준’의 쉬운 의견서 가져올 수도
매 사건마다 수천수만 페이지의 사건 기록에 빠져사는 검사들로서는 방대한 양의 기록을 작성하는 것은 쉽지만, 오히려 이를 30쪽 미만 분량으로 압축해 정리하는 것은 그간 전혀 해보지 않은 도전이라는 것이다. 삼성 측에서도 역시 시민위원들을 설득해야 하는 의견서를 내야 한다.
하지만 삼성의 경우에는 수사심의위원회 신청인 자격으로 각각 이 부회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 삼성물산 등 세 주체가 30페이지 분량의 의견서를 내기 때문에 총 90페이지 분량으로 시민위원들을 설득하게 되는 셈이다. 30페이지만 할당 받은 검찰보다는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삼성이 그림책 수준으로 이해하기 쉬운 의견서를 가지고 올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박국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