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 때쯤 미국인들은 미친다
이번 수퍼볼은 역대 두 선발 쿼터백의 나이 총합이 가장 어린 수퍼볼이다. 27세의 마홈스(왼쪽)는 두 번째 우승을 노리고, 허츠는 첫 정상에 도전한다. /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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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 스포츠 최대 이벤트인 ‘수퍼볼(Super Bowl)’이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NFL(미프로풋볼)의 시즌 챔피언을 결정하는 올 시즌 수퍼볼은 한국 시각으로 13일 오전 8시30분에 펼쳐집니다. 미국 일요일 오후라 한국은 월요일 오전에 열리게 되죠.
미국에선 폭스(FOX)사가 중계를 하고요. 한국에선 쿠팡플레이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읽어보시는 분이라면 미식축구나 NFL을 잘 몰라도 수퍼볼이란 단어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단일 스포츠 경기로는 흥행 면에서 4년에 한 번 열리는 FIFA 월드컵 결승전 다음으로 꼽히는 메가 이벤트입니다.
실제 미국에서 가장 많은 TV 시청자를 기록한 프로그램 30위 안에 수퍼볼이 29개나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2015년 수퍼볼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는 톰 브래디. 이 경기는 미국 TV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 조선일보DB |
1위가 2015년 2월 1일 열린 제49회 수퍼볼이었죠. 톰 브래디가 이끄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경기 막판 극적인 인터셉트로 시애틀 시호크스의 대회 2연속 우승을 저지하며 10년 만에 수퍼볼 정상에 오른 경기였습니다. 시청자 수가 1억1444만2000명에 달했죠.
2위는 시애틀 시호크스가 우승한 2014년의 제48회 수퍼볼(1억1219만1000명), 3위는 덴버 브롱코스가 정상에 오른 2016년의 제50회 수퍼볼(1억1186만4000명)입니다. 이렇게 보면 수퍼볼의 전성기는 2010년대 중반 같기도 하네요. 참고로 작년 수퍼볼은 1억109만명이 지켜보며 11위에 랭크됐습니다.
시청자 수 30위 내 유일하게 수퍼볼이 아닌 프로그램은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M.A.S.H’로, 1983년 방영한 마지막 회를 1억597만명이 지켜봤습니다.
올해 수퍼볼이 열리는 에리조나 스테이트팜 스타디움. / AFP연합뉴스 |
57회를 맞이한 올 시즌 수퍼볼은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홈구장인 스테이트팜 스타디움에서 열립니다.
내셔널 콘퍼런스와 아메리칸 콘퍼런스 챔피언끼리 맞붙는 수퍼볼은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처럼 중립 구장에서 펼쳐지는데요.
이미 몇 년 전에 개최 경기장은 확정되어 있습니다. 내년엔 라스베이거스 레이더스의 홈구장 앨리자이언트 스타디움, 내후년에는 뉴올리언스 세인츠의 홈구장인 시저스 수퍼돔에서 수퍼볼이 펼쳐집니다.
중립 구장에서 열리기 때문에 대부분 팀은 홈구장이 아닌 곳에서 경기를 가지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두 시즌엔 탬파베이 버커니어스(2021년), LA 램스(2022년)가 홈구장에서 수퍼볼을 치렀습니다. 두 팀의 홈구장이 이미 수퍼볼 개최 장소로 확정되어 있었는데 두 팀이 수퍼볼에 진출한 거죠. 버커니어스와 램스는 모두 홈 팬 앞에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 경기는 안 봐도 이것은 본다?
미국에서 수퍼볼이 열리는 일요일은 ‘수퍼 선데이(Super Sunday)’로 통합니다.
미국인들은 이날 파티를 열어 가족·지인들과 함께 수퍼볼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죠. 수퍼볼 당일 닭날개를 얼마나 먹고, 맥주 등을 얼마나 마시느냐는 이맘때쯤 늘 나오는 단골 뉴스입니다.
전미소매업협회(NRF)는 올해 1억9290만명의 미국 성인이 어떤 형태로든 수퍼볼을 관람할 계획이며, 이 중 1억350만명은 수퍼볼 파티를 주최하거나 참석할 전망이라고 밝혔습니다. 1780만명은 식당이나 술집에서 수퍼볼을 지켜본다고 합니다.
이들이 수퍼볼을 보며 지출할 금액은 163억5000만달러(약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미국인 1인당 85.36달러를 수퍼볼을 위해 소비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소비 비중은 79%가 식음료, 12%가 팀 의류, 10%는 TV, 7%가 가구를 사는 데 쓴다고 하네요.
그런데 미국인들 중엔 광고를 보기 위해 수퍼볼을 보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빅 이벤트를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각 기업은 사활을 걸고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광고를 내보내죠. 통통 튀는 아이디어나 가슴을 울리는 감동 스토리를 보고 있노라면 수퍼볼이 메인인지 광고 퍼레이드가 메인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이번 수퍼볼은 폭스가 중계하는데요. 폭스는 이번 수퍼볼의 30초 광고 가격을 700만달러(약 87억원)로 책정했습니다. 초당 23만3000달러(약 2억9000만원)죠.
30초 광고 가격이 650만달러였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또 올랐습니다. 역대 가장 비싼 수퍼볼 광고는 2020년 구글의 ‘로레타’와 아마존의 ‘비포 알렉사’ 90초 광고로 단가가 1680만달러(약 209억원)에 달했습니다.
2016년 수퍼볼 하프탐임쇼에서공연을 펼치는 비욘세(왼쪽)과 콜드틀레이의 크리스 마틴. /조선일보DB |
◇ 하프타임도 절대 놓칠 수 없다
화려한 광고 라인업 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이 하프타임쇼입니다. 설문조사 결과 수퍼볼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42%가 경기를 꼽았고, 19%가 광고, 18%는 하프타임쇼를 선택했을 정도이니 하프타임쇼는 수퍼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라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팝스타 리한나가 하프타임쇼를 장식할 예정입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곡만 14개로 ‘빌보드 핫100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는 2억5000만장 이상의 음반을 판 수퍼스타입니다.
빌보드 선정 역대 싱글 여성 아티스트 순위에서 마돈나, 머라이어 캐리, 자넷 잭슨, 휘트니 휴스턴에 이어 5위에 올라 있죠. 가수뿐만 아니라 사업가로도 성공해 2조원에 가까운 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의 고향인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는 리한나의 생일(2월 20일)을 국경일로 정했을 정도로 엄청난 셀럽입니다.
올해 수퍼볼 하프타임쇼에 나서는 팝스타 리한나. / AP 연합뉴스 |
이번 수퍼볼 하프타임쇼는 오랜 공백을 깬 리한나의 복귀 무대로 큰 관심을 끕니다. 그는 2018년 1월 그래미상 시상식을 끝으로 무대에 서지 않고 자신의 패션 사업에 매진해 왔습니다. 이번 수퍼볼 하프타임쇼는 오랜 시간 후원을 맡았던 펩시를 대신해 애플 뮤직이 새로운 스폰서로 나서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역대 하프타임쇼에서 수많은 레전드들이 멋진 공연을 펼쳤습니다. 2007년 프린스의 하프타임쇼가 많은 매체가 꼽는 1위 공연입니다. ‘킹 오브 팝’ 마이클 잭슨의 1993년 하프타임쇼도 잊을 수 없죠.
U2의 2002년, 레이디 가가의 2007년, 마돈나의 2012년, 비욘세가 공연한 2013년, 케이티 페리의 2015년, 닥터 드레와 스눕 도기독, 에미넴 등이 나섰던 작년 하프타임쇼도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2004년 하프타임쇼 도중엔 팝스타 재닛 잭슨의 가슴이 2초가량 노출되는 방송 사고가 터져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 5년 만에 열리는 1번 시드 팀의 맞대결
이렇게 수퍼볼과 관련한 얘기를 하다 보니 정작 경기에 대한 소개는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번 수퍼볼의 매치업은 필라델피아 이글스 대 캔자스시티 치프스입니다.
이글스와 치프스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일단 두 팀 모두 정규리그에서 콘퍼런스 1위에 올라 플레이오프 1번 시드를 받았습니다. 치프스는 AFC(아메리칸 콘퍼런스)에서 14승3패, 이글스는 NFC(내셔널 콘퍼런스)에서 14승3패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죠.
수퍼볼에서 1번 시드 팀끼리 맞붙는 것은 2018년 수퍼볼 이후 5년 만입니다. 당시엔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꺾고 정상의 감격을 누렸습니다. 치프스와 이글스가 플레이오프를 포함해 올 시즌 똑같이 546점을 올린 것도 이채롭습니다.
필라델피아와 캔자스시티의 프로스포츠팀이 챔피언십에서 맞붙는 것은 1980년 MLB(미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당시 월드시리즈에선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6차전 끝에 꺾고 우승했는데 당시 평균 시청자 수(5490만명)와 시청률(40%)은 월드시리즈 사상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2018 수퍼볼에서 우승한 뒤 기념 퍼레이드에 참석한 이글스 팬들. / 조선일보DB |
◇ ‘필리건’의 도시 필라델피아
그럼 수퍼볼에 오른 두 도시의 스포츠 얘기를 해볼까요?
미합중국 최초의 수도인 필라델피아는 매우 유서 깊은 도시입니다.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이 도시는 미국의 건국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인 만큼 역사적인 유적이 가득합니다.
이런 도시의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필라델피아 스포츠는 이른바 ‘필리건(필라델피아+훌리건, 주로 국내 팬들이 부르는 별명)’으로 불리는 초강성 팬들로 악명이 높습니다.
필라델피아 스포츠 팬덤은 이주민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열광적인 만큼 매우 거칠어서 자기 팀 선수라도 기대에 못 미치면 가차없이 야유를 퍼붓죠. 2016년 MLB 필리스의 한 홈 팬은 팀 내 최고 스타인 라이언 하워드에게 맥주병을 던졌습니다. 하워드는 필리스를 2008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영웅이었지만, 부진이 길어지자 표적이 된 거죠.
이글스는 NFL 선수 설문 조사 결과, 가장 뛰고 싶지 않은 팀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이글스 팬들이 싫어서’라는 이유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인기에 비해 한참 모자란 성적이 그들을 더욱 극성맞게 합니다. 스포츠 라이벌 도시인 보스턴이 2000년 이후 4대 프로 스포츠에서 12회 우승하는 동안 필라델피아는 단 두 번 우승에 그쳤습니다.
2018 수퍼볼에서 우승하고 트로프를 든 이글스 쿼터백 닉 폴스. 이글스의 수퍼볼 첫 우승이었다. / 조선일보DB |
그나마 2018년 수퍼볼에서 카슨 웬츠의 부상으로 대체 쿼터백으로 나선 닉 폴스의 이글스가 ‘G.O.A.T.(Greatest Of All Time·역대 최고 선수)’ 톰 브래디가 이끈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꺾고 첫 수퍼볼 정상에 오르며 필라델피아 팬들은 설움을 달랠 수 있었죠.
하지만 최근 또 필라델피아 스포츠는 아픔을 맛봤습니다. 지난해 11월 5일 필리스는 MLB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1대4로 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MLS(미 프로축구) 플레이오프 결승인 MLS컵에서 필라델피아 유니온은 LA FC에 3대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패하고 말죠. 미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한 도시의 팀이 같은 날에 준우승이 확정된 경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이글스는 이번이 네 번째 수퍼볼입니다. 1981년엔 오클랜드 레이더스에 패했고, 2005년에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글스가 올해 수퍼볼에서 우승해 통산 성적을 2승2패로 맞출지 관심이 쏟아집니다.
2020년 수퍼볼 우승 후 트로피를 높이 든 패트릭 마홈스.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통산 두 번째 수퍼볼 우승이었다. / 조선일보DB |
◇ NFL 강호로 올라선 캔자스시티
캔자스시티는 캔자스주와 미주리주에 모두 있는 도시입니다. 주 경계에 걸쳐 같은 이름을 가진 별개의 도시가 있는 거죠.
치프스는 미주리주의 캔자스시티를 연고로 합니다. MLB 로열스 역시 미주리주가 연고죠. 두 경기장이 붙어 있거든요. 반면 MLS 팀인 스포팅 캔자스시티는 캔자스주의 캔자스시티에 홈 구장이 있습니다.
캔자스시티는 스몰 마켓에 해당합니다. 포브스가 매긴 구단 가치에 따르면, 이글스는 10위, 치프스는 23위입니다. 그래도 치프스는 ‘족보’ 있는 팀이죠. 수퍼볼 이전 시대인 1960년대 AFL(아메리칸풋볼리그)에서 3회 정상에 오른 치프스는 1970년 수퍼볼에서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물리치고 첫 우승을 차지합니다.
1970~80년대 암흑기를 거쳐 1990년대부터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이 됐고,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다가 NFL 현 최고 쿼터백으로 꼽히는 패트릭 마홈스의 등장으로 최강 팀으로 올라섰습니다. 치프스는 마홈스와 함께 최근 5년 연속 콘퍼런스 챔피언십에 진출했습니다. 참고로 MLB 로열스는 1985년과 2015년, 두 차례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습니다.
◇ NFL 신 황제를 꿈꾸는 마홈스
흔히 미식축구를 쿼터백 놀음이라고 합니다. 공격을 지휘하는 ‘필드의 야전 사령관’ 쿼터백의 비중은 스포츠 종목, 포지션을 막론하고 최고로 꼽히죠. ‘강철 어깨’는 필수이며, 전화번호부 두께의 플레이북을 완벽히 암기하는 명석한 두뇌와 상대 수비 움직임을 꿰뚫는 시야에 임기응변 능력까지 두루 갖춰야 합니다.
이번 수퍼볼에선 처음으로 흑인 쿼터백끼리 맞대결이 펼쳐지게 됐습니다. 믿기지 않는 운동 능력을 자랑하는 ‘괴물’들이 득실대는 NFL 무대에선 수많은 흑인 선수들이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쿼터백 포지션은 여전히 백인 선수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죠.
쿼터백 역대 패싱야드 순위를 살펴보면, 1위부터 12위까지 모두 백인입니다. 흑인 쿼터백 중 최다 야드 기록은 1980~90년대 활약한 워런 문이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경기는 두 선발 쿼터백의 나이 총합이 가장 어린 수퍼볼이기도 합니다. 앞에서도 소개한 치프스의 쿼터백 마홈스가 27세, 이글스의 쿼터백 제일런 허츠는 24세입니다.
마홈스는 현 최고 쿼터백으로 꼽히는 수퍼스타입니다. MLB 투수로 11시즌을 뛴 아버지 팻 마홈스를 닮아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운동 능력을 보였던 그는 풋볼과 야구를 병행하다가 텍사스테크대 2학년 때부터 풋볼에 집중했습니다. 2017 NFL 드래프트 전체 10순위로 치프스 유니폼을 입었죠.
야구 선수 시절 시속 153㎞ 강속구를 자랑할 만큼 강한 어깨를 자랑하는 마홈스는 총알 패스를 앞세워 치프스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기량이 만개한 것은 2018시즌이었습니다. 앤디 리드 감독의 신임 속에 주전 쿼터백을 꿰찬 그는 5097패싱야드에 터치다운 패스 50개를 기록하며 단숨에 시즌 MVP에 올랐죠.
마홈스는 2019시즌 플레이오프에선 매 경기 10점 차 이상 뒤진 경기에서 역전을 이끌어내며 2020년 2월 수퍼볼 정상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와 맞붙었던 당시 수퍼볼 경기를 잠시 살펴볼까요?
마홈스의 치프스는 경기 종료 7분여를 남기고 10점 차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드라이브(4번 공격 10야드 이상 전진) 3번째 공격권에서 15야드 이상을 전진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죠.
만약 실패하면 공을 차 보내 공격권을 넘겨줘야 하는 위기였습니다. 경기를 중계하던 현지 스포츠 캐스터가 “치프스는 ‘마홈스 매직’이 필요하다”고 말하자마자 그라운드에 있던 마홈스가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44야드짜리 장거리 패스를 찔러 공격권을 되살렸습니다.
마홈스가 기세를 몰아 트래비스 켈시에게 터치다운 패스를 연결하면서 치프스는 종료 6분 17초 전 17-20까지 따라붙었죠.
그의 마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홈스가 종료 2분 50초 전 대미언 윌리엄스에게 5야드짜리 터치다운 패스를 연결해 24―20으로 전세를 뒤집었죠. 치프스는 러싱 터치다운 하나를 보태 31대20으로 승리했습니다.
마홈스는 역대 최연소 수퍼볼 MVP를 차지하며 자신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습니다. 2018시즌 정규리그 MVP에 뽑혔던 그는 수퍼볼 우승과 정규리그 MVP를 모두 이룬 최연소 선수로도 이름을 올렸죠.
마홈스는 이듬해에도 수퍼볼에 올랐습니다. 상대는 브래디의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많은 팬들이 마홈스가 브래디를 꺾고 새로운 NFL 황제의 등극을 알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 밖으로 승부는 싱겁게 끝났습니다. 마홈스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며 31대9로 버커니어스가 압승한 것입니다.
그는 작년엔 AFC 챔피언십에서 조 버로우가 이끄는 신시내티 벵갈스에 일격을 당하며 수퍼볼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치프스와 마홈스는 이번 AFC 챔피언십에서 벵갈스를 꺾으며 작년의 패배를 시원하게 설욕했죠.
마홈스는 올 시즌 패싱야드 1위(5250야드)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패싱야드 1위 쿼터백이 수퍼볼에 진출한 게 6번이었는데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브래디도 2007시즌과 2017시즌 패싱야드 1위를 해놓고 수퍼볼 준우승에 머물렀죠. 마홈스 입장에선 반드시 깨야 할 ‘패스 1위의 저주’입니다.
그가 레전드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이번 수퍼볼 우승 트로피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수퍼볼 2회 우승은 쉽게 이룰 수 없는 업적이니까요. 2000년대 이후엔 페이턴 매닝과 일라이 매닝, 벤 로슬리스버거 등의 특급 쿼터백이 2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역대 패싱야드 2위 드루 브리스와 4위 브렛 파브, 9위 애런 로저스 등도 수퍼볼을 한 번밖에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6위 필립 리버스와 7위 맷 라이언, 8위 댄 마리노는 아예 수퍼볼 우승이 없죠. 새삼 패싱야드 1위이자 수퍼볼 7회 우승자인 브래디의 위엄이 느껴집니다.
◇ 러싱에 패싱 능력을 더한 허츠
마홈스에 맞서는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쿼터백은 제일런 허츠입니다. 프로 4년차로 24세의 젊은 쿼터백이죠.
2020년 드래프트 2라운드 53순위로 지명된 허츠는 루키 시즌 주전 쿼터백인 카슨 웬츠가 부진하자 14주차부터 주전 자리를 꿰찹니다. 이글스는 시즌이 끝나자 웬츠를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로 보내며 허츠를 넘버원 쿼터백으로 삼죠.
2021시즌 준수한 활약으로 팀을 플레이오프에 이끌었지만, 브래디의 버커니어스에게 무너집니다.
러싱에 강점을 보였던 허츠는 시즌을 앞두고 패싱 훈련에 매달린 덕분인지 2022시즌엔 패싱과 러싱이 조화를 이룬 공격을 선보입니다. 이글스는 허츠의 활약을 앞세워 14승3패로 NFC 1번 시드를 거머쥐죠. 3패 중 2패는 허츠가 부상으로 결장한 경기이니 올 시즌 허츠는 승리의 보증수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허츠의 이글스는 지난 NFC 챔피언십에서 드래프트 마지막 순위로 뽑혔지만, 어렵게 기회를 잡아 스타덤에 오른 브록 퍼디를 상대했습니다. 꽤 기대를 모은 매치업이었지만, 퍼디가 경기 시작과 함께 팔을 심하게 다치며 이글스는 31대7로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 손쉽게 승리했습니다.
이글스 팬들은 2018년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있습니다. 당시 주전 쿼터백 웬츠가 부상을 당하며 그 자리를 메운 닉 폴스가 우승을 이끌었듯 이번에도 지난 시즌 웬츠를 밀어내고 주전을 꿰찬 허츠가 팀에 우승을 안겨줄 것이라 믿습니다.
◇ 올해 수퍼볼은 리드 볼? 켈시 볼?
이번 수퍼볼은 ‘리드 볼’이라고도 불립니다. 앤디 리드 치프스 감독은 1999년부터 2012년까지 이글스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2005년엔 수퍼볼에도 올랐지만 고배를 마셨죠. 이글스에서 130승을 거둔 그는 여전히 구단 최다승 감독으로 남아 있습니다.
리드는 2013년 치프스 지휘봉을 잡은 이후엔 116승을 올렸습니다.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승리를 거둔 감독이죠. 그는 수퍼볼에서 전 소속팀과 맞붙는 다섯 번째 사령탑이 됐습니다.
NFL 명장인 리드는 2020년 수퍼볼에서 첫 정상의 감격을 맛봤습니다. 당시 감독 21시즌 만에 첫 우승으로, 이는 리그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기록이었죠.
창조적인 공격 전술로 유명한 그는 정작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약해 ‘새가슴’ 소리를 듣다가 2020년 수퍼볼 우승으로 그 오명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120kg의 거구인 리드는 2020년 수퍼볼 우승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치즈버거를 먹겠다”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지난해 플레이오프를 앞두곤 “수퍼볼 우승은 질리지 않는 초콜릿 케이크”란 비유를 남겼던 그가 이번엔 또 어떤 음식을 언급할지 궁금합니다.
장남 제이슨과 차남 트래비스 켈시 형제 팻말을 든 어머니 도나 켈시. / USA투데이 연합뉴스 |
미국 언론은 이번 수퍼볼에 대해 ‘켈시 볼’이란 별칭도 붙였습니다. 수퍼볼 역사상 처음으로 형제가 맞붙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령탑 대결로는 2013년 수퍼볼에서 존 하보 볼티모어 레이븐스 감독과 짐 하보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 감독이 맞붙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형인 존이 이끄는 레이븐스가 우승했습니다.
치프스의 타이트엔드 트래비스 켈시는 프로볼(올스타)에 여섯 번이나 선정된 스타 플레이어입니다. 타이트엔드는 작전에 따라 러싱과 패스 캐치, 블록 등을 두루 소화하는 만능 포지션입니다.
이글스에는 제이슨 켈시가 선발 센터로 나섭니다. 센터는 공을 쿼터백이 있는 뒤쪽으로 스냅해 공격을 시작하는 포지션이죠.
2017년 경기 후 유니폼을 교환한 켈시 형제. / 트위터 |
이글스의 제이슨 켈시가 35세로 형이고, 치프스의 트래비스 켈시가 33세로 동생입니다. 둘은 모두 신시내티 대학을 나왔는데 우애가 정말 깊습니다. 트래비스의 등번호가 87번인 이유가 1987년에 태어난 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이슨은 2018년, 트래비스는 2020년 수퍼볼 우승 경험이 있어 이번 수퍼볼 결과로 형제의 명암이 갈릴 전망입니다. 트래비스는 “이번 수퍼볼에서 확실한 것은 어머니의 수퍼볼 반지가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둘의 어머니인 도나 켈시는 하루에 두 아들의 경기를 모두 관람한 것으로 화제가 됐죠. 그는 작년 플레이오프 당시 오전에 탬파베이에서 장남 제이슨을 응원한 뒤 비행기를 타고 캔자스시티로 날아가 차남 트래비스의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도나는 이번엔 이동 없이 애리조나에서 편하게 형제의 경기를 감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둘 다 응원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은 복잡할 것 같습니다.
◇ 풋볼 규칙을 알고 보자
이쯤 되면 “나는 미식축구 규칙이 어려워 못 보겠다”는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간략한 규칙을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신문 지면에 썼던 글을 다시 옮겨 보았습니다.
미식축구는 기본적으로 양팀 각 11명이 그라운드에 섭니다. 쿼터당 15분씩 4쿼터 60분으로 승부를 가리죠.
동전 던지기를 통해 공·수를 정하는데 먼저 수비할 팀이 킥을 통해 상대에게 공을 넘겨준다. 공격팀은 그 킥을 받아 태클을 당한 지점에서 공격을 시작합니다.
경기의 기본은 ‘땅따먹기’로 공격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공을 들고 달리는 러싱(rushing)과 상대 진영으로 달려가다 패스를 받는 리시빙(receiving)이죠. 수비팀은 태클로 공을 가진 선수를 쓰러뜨리거나 패스를 중간 차단하는 방법으로 공격을 저지합니다. 미식축구에선 공격과 수비 팀이 엄격하게 분리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풋볼 중계를 보다 보면 ‘1st & 10′ ‘3rd & 5′ 같은 숫자를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어려운 암호 해독 작업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죠.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공격팀은 4차례 공격으로 10야드 이상을 전진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머릿속에 담아야 합니다.
4번 공격을 시도해 첫 공격 시작 지점에서 10야드 이상을 전진해야 합니다. ‘1st & 10′은 4번 중 첫 번째 공격이고, 전진할 야드가 10야드란 의미입니다. 첫 번째 공격에서 10야드를 넘으면 플레이가 끝난 곳에서 다시 4번 공격을 시도해 10야드를 전진해야 하죠.
만약 두 번 공격에서 5야드 전진에 그치면 ‘3rd & 5′가 됩니다. 3번째 공격이고, 남은 두 번에 5야드 이상을 전진해야 한다는 뜻이죠.
세 번째 공격에서 목표 야드를 넘어서지 못하면 공격팀은 마지막 네 번째 공격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키커가 공을 차 상대 골대로 넘기는 필드골(3점)을 시도하거나, 볼을 멀리 차(펀트) 상대에게 공격권을 넘기거나, 과감하게 목표 야드 지점까지 돌파를 시도하죠.
보통 상대 진영 35야드 이내이면 필드골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거리가 멀면 성공률이 떨어지죠. 실패하면 그 자리에서 공격권을 그대로 상대에게 내주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과감하게 4번째 공격을 시도할 경우에도 실패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공격권을 내줍니다. 그래서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고 생각하면 펀트를 시도하는 게 일반적이죠.
가끔 반칙으로 공격을 시작하는 시점이 후퇴해도 원래 도달해야 할 목표 지점은 그대로입니다. 첫 번째 공격에서 1야드도 전진하지 못하고, 두 번째 공격에서 반칙으로 10야드 반칙을 당하면 세 번째 공격은 ‘3rd & 20′으로 표현되죠.
가장 큰 점수는 터치다운입니다. 패스나 러싱으로 상대 땅 끝인 ‘엔드존(end zone)’에 도달하면 6점을 얻습니다.
이후 킥(1점)이나 엔드존 2야드 앞에서 정상적인 공격을 펼치는 컨버전(Conversion·2점) 플레이로 보너스 득점을 시도하죠. 수비수도 득점할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 상태에서 상대 볼을 가로채 상대 엔드존까지 도달하면 터치다운입니다. 상대 엔드존에서 태클로 공격을 저지하면 ‘세이프티’라고 해서 2점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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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