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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뜨거워야 제맛? 편견입니다

잔치국수는 40도가 최적… 차면 비리고, 뜨거우면 맛 못 느껴

하루 묵혀 먹는 ‘일본식 카레’·아귀찜도 뜨거운 밥과 차게 곁들이면 별미

음식에 얽힌 고정관념 깨면 더 색다르고 맛있게 즐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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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국당 대표 메뉴 ‘별표국수’. /풍국면

하얀 김이 살그머니 피어오르는 잔치국수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멸치와 디포리(밴댕이)로 진하게 뽑은 육수는 따뜻하지만 혀를 델 정도는 아니었다. ‘끓는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만큼 국물이 뜨거운 다른 국수집과는 온도차가 있었다.


따뜻하지만 뜨겁진 않은 이 잔치국수는 ‘풍국당’ 대표 메뉴인 ‘별표국수’. 1933년 대구에서 창업한 풍국당은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국수회사로, 지난 2015년 국수집 사업을 시작해 전국적으로 30여 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풍국당 최익진 대표는 "육수가 섭씨 5도 이하이면 너무 차갑고 비릴 수 있고, 70도 이상이면 너무 뜨거워 맛을 느끼기 어렵고 면이 퍼지기 쉽다"며 "오랜 연구 끝에 잔치국수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온도는 40도라는 걸 찾아냈다"고 했다.


음식에는 ‘국물은 뜨거워야 제맛’처럼 진리로 통하는 고정관념이 많다. 하지만 ‘따뜻하게 먹어야 하는 음식’ ‘차갑게 먹는 음식’이란 고정관념을 깨면 더 맛있게 먹거나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 세계적으로 여럿 있다. 스페인 ‘가스파초’는 여름철 차갑게 먹는 수프이고, 독일 ‘글뤼바인’(프랑스어 뱅쇼)는 겨울철 뜨겁게 즐기는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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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차갑게 즐기는 스페인 수프 ‘가스파초’./조선일보 DB

일본에서는 카레를 일부러 냉장고에 묵혀 먹기도 한다. 카레가 저온숙성되면서 맛과 향이 응축되면서 풍미가 훨씬 좋아진다. ‘어제의 카레’라고도 부르는 이 묵은 카레는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차가운 상태 그대로 갓 지은 밥에 얹어 먹으면 특히 별미이다. 뜨거운 밥 위에서 카레가 따뜻하게 풀리면서 농축된 풍미가 입안에서 폭발한다.


경남 마산에는 어제의 카레와 비슷한 음식이 있다. 마산 사람들은 식당에서 아귀찜을 먹고 남은 양념을 포장해 집에 가져와 냉장고에 넣어둔다. 다음날 이 저온숙성된 아귀찜 양념을 냉장고에서 꺼내 바로 뜨거운 밥에 비벼 먹는다. 마산 토박이 서준수씨는 "다시 데워 먹는 것보다 이렇게 먹는 게 더 맛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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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사람들은 아귀찜 먹고 남은 양념을 집에 싸와서 다음날 차가운 상태 그대로 뜨거운 밥에 비벼 먹는 걸 별미로 친다./조선일보 DB

뜨거운 음식을 차갑게, 차가운 음식을 뜨겁게 내는 발상의 전환으로 손님을 즐겁게 하는 식당도 많아졌다. 서울 홍대 앞 카페 ‘움트’에는 ‘구운 빙수’가 있다. ‘토치 빙수’라고도 알려진 이 빙수는 얼음을 평평하게 누르고 설탕을 뿌린 뒤 가스 토치로 설탕을 갈색이 되도록 녹여 얼핏 보기엔 프랑스 디저트 ‘크렘 브륄레’처럼 보이기도 한다.


역삼동 ‘우리집만두’는 냉만둣국을 낸다. 차가운 육수에 쪄서 식힌 만두를 넣은 전통음식 ‘편수’와는 다르다. 뜨거운 만두에 양지 육수와 동치미를 섞은 차가운 국물을 부어 먹는다. 식당 주인이 가족들과 여름에 만들어 먹던 별미로, 시험 삼아 소개했는데 손님 반응이 좋아 고정 메뉴가 됐다. 차가운 국물에 탱탱해진 만두피 씹는맛이 탁월하다. 종로 2가 ‘찌겹사돈’은 삼겹살을 얇게 썰어 넣은 ‘삼겹물회’가 인기다.


농심켈로그는 최근 시리얼을 차가운 우유도 좋지만 따뜻한 우유와도 먹어보기를 권하고 있다. 농심켈로그 박재희 뉴트리션 매니저는 "아침으로 주로 밥을 먹는 한국인들에게 시리얼은 간편한 식사 대용식이지만, 차갑게 먹는 음식이라 한끼 식사로 충분하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며 "따뜻한 우유와 함께 핫 시리얼을 경험해본 소비자들은 따뜻하고 든든해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박 매니저는 "전자레인지에 2분 가량 60도 정도로 데운 우유를 부으면 보다 부드러운 식감을 제공하는 새로운 맛의 시리얼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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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얼에 60도 정도로 데운 우유를 부어 먹으면 따뜻하고 든든한 ‘핫 시리얼’이 된다./농심켈로그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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